한국속담에 튀어 나온 못이 망치질 당한다고 했다. 하지만 튀면 튈수록 주변에서 열광하는 반대급부적 분야도 있는 모양이다. 남들과 차별되는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영화 감독들이 가는 곳마다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것을 보면 그러한 이야기가 나올만 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매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것은 폭력미학이라는 새로운 창조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악질 개구쟁이들의 장난이 상상을 초월하듯이 영화질에 타란티노가 쏟는 온갖 악질적 열정은 그야말로 악질적으로 기발하다.(이건 칭찬임)
아예 영화 제목(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원제: Inglourious Bastards)에서부터 비릿한 냄새가 난다. 영화가 시작되자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감독 등을 비롯한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부터 나온다. 이건 무슨 시작부터 영화 끝나는 분위기로 비틀었다. 이거까지 딴지걸면 내가 오버인가? ㅡ,.ㅡ;
타란티노가 어려서부터 서부 활극을 많이 봤는지 그는 서부극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깔기를 좋아한다. 이 영화에서도 예외가 이니다. "황야의 은화1불"의 배경음악을 빌려다 까는 것은 그렇다치고 Brother's Four의 감미로운 노래까지도 긴장감 넘치는 서부활극풍으로 개작해 배경에 넣은 것은 기발하다 못해 어이가 없기까지 하다. 프랑스의 유태인 소녀 쇼산나가 일을 꾸미는 긴박한 장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Rare Earth의 What'd I say의 마지막 타악기 부분이 삽입된 것은 내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지니 왠지 친숙하다. 사람은 착각을 마니 하고 살수록 행복하게 마련이질 않은가.
타란티노의 악취미 중 새롭게 보이는 것 또 하나는 스토리상 당연히 감독이 죽일 걸로 지레짐작되는 사람은 안죽이고 당연히 안죽일 것으로 짐작했던 사람들은 죄다 죽인다는 점이다. 이 것은 스토리가 뻔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누가 죽고 누가 생존할지는 대충 감이 가게 마련이고 대충은 맞아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여기선 완전히 그 예측을 불허한다. 선과 악이 불분명하고 권선징악하고는 거리가 먼 그의 취향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더욱 심한 것은 역사까지도 비틀어 왜곡한다는 점인데 왜곡의 정도가 황당수준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공군이었다는 돌출발언을 하면 이 사람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레온 트로츠키가 전설적인 러시아 영화 감독이었다고 이야기 한다면 러시아 근대사를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 그런가보다 하고 말테지만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듣는 사람들이 모를줄 알고 아는척하느라 어디서 대충 주워들은 이름을 아무데나 갖다 주워 섬기는 찌질이로 생각할테고 더 나쁘게 보면 사기꾼으로 몰릴 수 있다. 타란티노식 역사왜곡은 그 정도가 전자에 속하는데 그런 발상 자체가 획기적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궁금하면 보셈. 묻지말고.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엽기적인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도 타란티노식 영화어법으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죽은 적병의 머리 껍질을 정성스럽게 벗기는 장면, 음향효과로 불안감을 증폭시킨 뒤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박살내 죽이는 장면, 미모의 이중간첩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다리에 입은 총상에 손가락을 살며시 집어 넣어 아는거 모르는거 다 불게 만드는 장면도 압권이다. 이런 장면 연출하기를 좋아하는 타란티노의 악취미는 그다지 정상적이지 않은 정신세계를 암시하는듯하다. 이걸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나도 변태가 아닐까.
영화속에서 궁금증을 일으키는 부분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띤다. 궁금하게만 만들고 얘기를 안해주는 것도 악취미중의 악취미다. 브레드 피트가 나치 헤꼬지 부대를 조직하는 장면에서 보면 그가 대원들 앞에서 하는 말은 초등학교 수준으로 조금도 지적이지 않고 조금도 잘생긴 분위기나 분장새가 아니었다. 역시 같은 장교출신인 내 기준에서 보자면 그 나이에 겨우 중위 계급밖에 못달고 있다면 지지리도 무능해서 진급에 주구장창 누락됐거나 전쟁터에서 쌈질을 잘해서 파격진급을 했거나 둘 중 하나다. 아마도 이런 경우는 후자에 무게가 간다. 다 좋은데 브레드피트의 목에는 자살 또는 타살의 미수 흔적이 역력하다. 기껏 그렇게 분장을 시켜놓고 영화 끝날 때까지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건 또 머냐고...
말해주지 않아 궁금한건 또있다. 독일 하사관이었던 틸 슈바이거가 고급 나치 장교들을 13명이나 죽이고 저명인사가 된 계기나 이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감독이 영화속에서 눈썰미 있는 사람은 암시나 받으라고 뭘 숨겨 놨나? 이건 타란티노식이 아닌뎅? 만일 그렇다면 나같은 미련 곰텡이들은 어떻게 영화를 보라는거야?
궁금한거? 또있지... 다이엔 크류거가 영화속에서도 최정상급 독일 여배우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배가 맞아 독일을 등지는 이유는 또 머냐고... 이중 간첩이 된 이유 좀 알자고... 미국을 열렬히 찬양하던 여인넨가? 마타하리를 흠모한건가? 아니면 모냐고?
타란티노식 영화어법도 가지가지 인상적이다. 연극도, 오페라도 아닌 이 영화를 1막부터 5막가지로 나누어 구성한건 도대체 무슨 악취미냐고? 연극은 연극이니까, 오페라는 오페라니까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그렇다고 치자고. 영화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무대 변경에 따른 별도의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이 짓을 하는걸 보면 분명 뭔가 이유는 있을테지만 뇌의 깊이가 얕아빠진 나로던 도대체... 안가더라는 말이지. 일부러 막간 순간 인터벌(걍 내가 만든 콩글리쉬)로 인해 영화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로밖엔 안보이는데. 설마 그가 이걸 노린건 아닐테지? 하지만 이것도 타란티노만의 미쟝셴인 것만은 틀림잖은가.
한 수 더뜨는 경우는 등장인물의 이름 소개 방식이다. 히틀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히틀러가 등장할 때 이 사람이 히틀러라는 소개는 굳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깨는 타란티노식 등장인물 소개 방식은 깨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당시 선전장관으로서 히틀러에게 열렬한 충성심을 보여줬던 괴벨스와 비대한 공군장관 괴링이 등장하자 악필로 써서 화면에 표기해 놓은 그들의 이름이 영상 속에서 인물들이 이동할 때마다 이들을 졸졸 따라 다닌다. 게다가 악필로 쓴 등장인물의 이름을 영상 속 캐릭터와 연결짓기 위해 인물과 낙서된 이름 사이에 화살표까지 엉성하게 대충 그려 넣었다. 내 짐작엔 타란티노의 글씨가 틀림없다. 왜냐고? 타란티노는 그러고도 남으니까. 아니라면 1층에서 뛰어 내리든가 머리털에 장을 지지고 말테다. 어쨋든 웃음 나와서 사망하는 줄 알았다.
관객들이 궁금해하거나 반드시 알아야 할 가려진 내용물을 은근슬쩍 보여주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노골적으로 까서 보여주고 다시 장애물로 가리는 타란티노만의 표현법도 여전히 웃음을 제공한다.
괴벨스의 불어 통역자로 등장하는 모니카 벨루치가 괴벨스와 정부관계라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 주는데 암시적인 세련된 방법은 절대 쓰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을 번갈아 화면에 보여 준 뒤 속된 말로 떡치는 장면을 뜬금없이 2~3초 보여줌으로써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암시를 피하는 노골적 센스(?)도 독보적이다.
몇 년 전 킬 빌을 보던 당시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모두 올라가 영사가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고 기다려 줬더니 마지막 부분에 타란티노는 우마서먼을 시켜 뇌살적인 윙크로 내게 보답했다. 문제는 빌어먹을 영화를 같이 보는 다른 사람들과 내게만 보낸 그녀의 윙크를 공유해야 했다는 고약한 일화를 빼면 아주 괜찮은 서비스였다. 바스터즈가 끝나고 이 번에도 보답할 줄 알고 기다려 줬더니 암것두 없네? 이걸 그냥 확~~~!
영화 마지막에 자막 올라가는 부분에선 검정 바탕에 노란 글씨로 마무리했다. 이거 의외로 감각적이고 강렬하다. 게다가 이 때 쓰여진 음악이 무척 인상적이고 강렬하다.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삽입되는 많은 음악들 중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음악이 영화마다 반드시 하나씩은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클래식한 음악이 울부짖는듯한 목관악기군과 흐느끼는 듯한 현악기군의 대비로 인해 이 영화의 삽입곡 중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연기에 있어서는 특히 두 사람에게 갈채를 보내고싶다. 한 사람은 브레드 피트. 이 영화에서는 결코 꽃미남으로서도 아니고 지략가도 아닌 그저 저돌적인 단순무식형 하급 장교로 등장한다. 독일 고관들과 고급장교들이 모인 극장에서 이탈리아인인척 어수룩하게 잠입했다가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고급장교(한스 란다)의 마수에 걸려 당황하면서도 어떻게든 대충 위기를 모면하려는 능청한 장면에서 웃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될만큼 피트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 하나는 유태인 사냥꾼인 악질 한스 란다 대령. 그는 철저하게 비열하면서도 자기 일에 충실한 냉혈한이지만 패전의 기미를 읽고 마지막에 조국을 배신을 해도 가장 찌질한 방법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철저하게 찌질함을 보여주는데 그의 연기 또한 보는 사람을 극도로 짜증나게 하는데 손색이 없다. 박수 짝짝짝!!!
이 영화를 볼까 말까 내게 묻는다면 대답은 다음과 같다.
보고 싶으면 보고, 보기 싫으면 보지 마셈. 물어본다면 관심이 있는게 틀림없으니 타란티노 스타일에 관심있으면 보시고 더더군다나 새롭게 추가된 그만의 스타일을 확인하고 싶다면 보셈.
하지만 기껏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설명없이 영화를 끝낸 데다 절정에서 감독이 죽일 줄 알았던 인물을 살려놔서 그런지 카타르시스까지도 약한걸 보면 2부를 염두에 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게 타란티노식이니까...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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