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6(목)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식사부터 하러 나갔다. 네팔에서 음식 즐기는 것도 사실 네팔 고유의 음식들이 몇가지 없는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은 인도음식과 티벳음식이 주류라 한계가 있었다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고산족들의 음식은 고산지대에서나 맛볼 수 있고 티벳음식과 인도음식은 이제 왠만한 것은 다 먹어 보았으니 이젠 식상해졌다. 뜀도령과 찬바람이 카트만두 도착 이튿날 아침식사를 위해 들렀었다는 미친버거(Crazy Brger)를 들러 보았다. 얼마나 맛있길래 미치도록 맛있는지 나도 궁금했다. 네팔의 음식점 치고는 아주 깔끔하다. ---> 현지 음식에 식상해져 패스트푸드와 한국음식으로 일정을 도배해버리는 파렴치한 짓을 처음으로 해봤다는 나름의 핑계였숨당.
나는 인도에서 먹어본 적 있는 바나나 랏시(인도 전통 요구르트)와 샌드위치(먼샌드위친지 격안남)를 먹었다. 이걸 먹고 나니 엄청 배가 부르더라는... 맛도 이만하면 장이다.(짱까지는 아니고) 샌드위치에 흥건하게 넣은 소스가 좀 짜다.
아침을 먹자마자 우리는 박타푸르와 짱구나라얀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의 카트만두와 그 주변도시 일정에서 가장 먼 곳이 짱구나라얀이 고 그 곳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이 박타푸르다. 항상 가장 먼 곳부터 방문하고 공항으로 부터 가까운 곳일수록 나중에 방문하는 내 원칙과, 시간 절약을 위해 그 날의 방문지를 가급적 지역별로 묶어서 다니는 원칙에 따른 시간안배를 위해서였다. 시내를 다니다 보면 자그마한 사원이 엄청 많이 눈에 띤다. 아래의 사원은 불교사원인듯하다.
타멜지역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지혜의 눈을 가진 소형 탑이 보인다.
가이드 책자에도 소개되지 않은 이 곳은 가운데 광장을 두고 이 탑을 세웠으며 바로 앞에는 곰파가 하나 세워져 있어 볼거리로는 대박에 속했다.
뜀도령은 이 곳이 스와얌부나트 사원을 축소해 만든 곳이라고 한다. 뜀도령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카테심부스투파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카트만두와 스와얌부나트가 합쳐진 이름이란다.
곰파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큰 마니차 1개를 1개의 방 안에 가득 차도록 설치해 놓았고 신도들은 수시로 들어가 마니차를 돌렸다. 이걸 밖에서 구경만 하고 갈 우리가 아니다.
우리도 들어가 번갈아 마니차를 돌려봤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찬바람--마누라와 내새끼 건강하고 행복이 주구장창 이어지길...(아마도) 뜀도령--장가 좀 보내 주이소(아마도). 코렐리---아무생각없음. 마니차 자~~알 돌아간다(확실)
여기서 정신없이 구경하는 것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뜀도령이 오늘 일정이 결코 여유있지 않을 터이니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들르기로 하고 당장 이 곳을 뜨자는 제안을 했다. 뜀도령이 이 번 여행에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에구 귀여운 것 토닥토닥.
타멜거리 남쪽으로 내려가 한참을 걸어 박타푸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역시 중형버스지만 이 버스는 서있어도 지붕이 높아 서있기 편리하다. 다른 버스들은 허리를 굽히고 있어야 한다. ㅡ,.ㅡ;
박타푸르에 도착하자마자 짱구나라얀으로 가는 버스부터 알아보았다. 어차피 카트만두 시내로 돌아갈 것이라면 카트만두로부터 먼 곳을 먼저 보고, 가까운 곳을 나중에 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음료수를 사먹으며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버스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알아서 오면 기다리던 승객들이 알아서 타고 알아서 간단다. 소요시간은 30분 정도란다. 사실 카트만두 시내에서 이 곳 박타푸르까지는 1시간이면 도착한다고들 하지만 버스는 가다 가다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적잖은 시간을 멀거니 정차한 채 대기하는 시간이 적지 않아 실제로는 1시간 20분은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까지 여행을 다니며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 답변으로 듣는 소요시간은 실제보다 대부분 짧게 말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현지인들은 질문을 받았을 때 막연히 생각할 때는 짧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뜀도령이 또 영양가 있는 소리를 했다. 도마뱀모냥 툭하면 실없이 서있다가 생각나면 그제서 움직이다 다시 멈추는 버스를 타고 시간을 허비하느니 택시를 타잔다. 맞는 얘기다. 오늘 적어도 짱구나라얀과 박타푸르 시내만큼은 확실하게 봐둬야 내일과 모레의 일정에 차질이 없을테고 그래야 한국으로 돌아가서 볼건 다보고 왔다는 허풍을 씩씩하게 주워 섬길 수 있지 않겠나. 우리는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간 거리는 솔찬허니 멀었다. 택시로 20분 가까이 걸리는걸 보면 심심할 때마다 승객을 기다려주는 버스로는 30분만으론 택도 없을듯했다. 택시비 300루피였던 것 같다.
이 곳은 많이 후미진 탓에 여행자들이 빼먹고 가는 멍청한 짓들을 많이 하지만 이 곳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의미있고 보존가치 뛰어난 유적이다. 다 좋은데 관광객이 많지 않은 곳이라 실컷 보고 나면 이 곳에서 다시 박타푸르로 갈 망법이 막연했다. 오는 버스가 있다는 말은 되돌아가는 버스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버스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문제는 운행시간 간격이다. 여차하면 박타푸르로 돌아가 구석구석을 충분히 보기도 전해 해가 떨어지면 졸라 속상해질 판이다. 그러면 역시 정답은 택시다. 그러나 이 곳에는 상주하는 택시가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였다. 한편, 이 사람(택시기사)도 여기까지 왔으니 다시 손님을 싣고 가야 할텐데 박타푸르로 갈 손님이 없다면 우리를 다시 태워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짱구나라얀으로 가는 동안 택시기사를 꼬셔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요금 외에 100루피를 더 주겠다고 제안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다. 하지만 협상에는 법칙이 있는 법. 협상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택시에서 내려 돈을 지불할 때까지 입다물고 택시기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 봤다. 과연 그는 돌아갈 땐 어쩔거냐고 물어보았다. 우히히 귀여운것. 웩! 그거 진작 좀 물어보지 그랬어? 나는 박타푸르라는 말을 일부러 강조하며 심드렁한 척 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갈 참이라고 말한 뒤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랬더니 그는 망설일 것도 없이 자신한테 확답만 해주면 기다리겠다고 한다. 기다려주는 문제에 대한 보상같은 건 언급하지 않은채 얼마냐고 물었다. 관심이 별로 없다는 시늉을 하며 기사의 눈치를 살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랬더니 그의 대답이 대박이다. 여기에 온 금액과 같은 금액을 주면 된단다. 나는 심드렁한 척 하고 버스 운운하면 더 깎아주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니 득보다 실이 많았다. 더 싼값에 가기로 해놓고 괜스리 다른 손님이 원하는 요금을 주겠다고 하면 기다리다 말고 미련 없이 가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기다리도록 이야기해 두고 표(100루피)를 산 뒤 유적지로 통하는 입구로 들어섰다.
표를 사서 입구를 지나서 가다 보면 가옥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길이 길게 놓여져 있고
재미있는 탈들을 잔뜩 전시한 기념품 가게들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시 신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말은 탈가게에서도 확인이 된다.
짱구나라얀 사원입구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사원의 본전.
나라얀 여신을 모신 짱구나라얀은 리차비왕조의 시대인 서기 323년에 건설되었다. 네왈양식의 이 신전은 무굴제국의 침략을 받아 파괴되었고 1702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나무 조각들은 섬세하지만 건축상으로는 그리 고급스러운 기법으로 보이지 않으며 혹시나 해서 본 이음새들은 못을 사용한 흔적과 그 짐작이 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채색이 많이 남아 있는 이 신전은 장식하고 있는 신들의 형상이 무척 다채롭고 재미가 있다.
사각의 탑 형태로 건설된 이 신전은
각기 한 면마다 사자, 코끼리, 산양등의 짐승 석상들로 하여금 입구를 지키게 하였다.
사자상이 버티고 있는 후면으로는 황금빛 금속을 이용해 장식한 문양 및 형상과 각종 석상들로 인해 신비감마저 불러 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었으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금속판을 두드려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이 장식물은 곡선이 좋고 문양도 섬세하여 작품성으로 놓고 보아도 가치가 뛰어나 보인다.
주변에 설치된 사당과 석상들은 후에 세워진 것들이라고 한다.
신전을 봉헌한 파틴드라 말라 왕과 왕후. 새장에 가둬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아래 사진은 비슈뉴 신을 찬양하는 가루다상.
가루다를 타고 있는 비슈뉴
역시 비행중인 가루다에 올라탄 비슈뉴 신
한 소녀가 이 곳을 거닐기에 사진을 찍었다. 알고보니 알바(?)소녀였다. 돈달란다. 원하면 방금 찍은 사진을 지워주겠다고 했다. 영어를 못 알아 들었다. ㅡ,.ㅡ;
사원을 나서며 찍은 사진. 찬바람이 사진을 버려 놓았다.
우리는 대략 한 시간 정도를 두고 충분히 짱구나라얀을 감상한 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타고 박타푸르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 곳 박타푸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달발광장부터 찾아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큰 연못을 지나
고전적인 건축양식이 즐비한 주택가를 지나
곧 달발광장 입구에 도착했다. 달발은 궁전을 말하는 것으로 과거 도시국가였던 시절 지어진 궁전이 남아있는 광장을 달발광장이라고 부른다. 달발광장은 이 곳 박타푸르 외에도 카트만두 시내와 파탄에도 있다. 밥 때가 조금 지났을 때였나 보다 우리는 근처 깨끗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버섯볶음밥과 콜라를 주문했다. 왜 이래 짠겨? 반찬도 안주면서 포크는 왜준겨? 버섯은 넣고 볶아야지 왜 위에만 살짝 흩뿌려 준겨? 궁시렁 궁시렁
식사 후에 표부터 구입해 안으로 들어갔다. 현지인들은 무상으로 돌아다니는 이 거리에 외국인은 표를 사서 돈내고 들어가야 했다. 나중에 다른 달발광장에서 티벳계 네팔인인척 해봐도 귀신같이 알고 표부터 사라고 말하고는 표를 살 때까지 쫓아다니며 감시하곤 했다. 아래의 사진은 박타푸르 광장으로 통하는 라이온 게이트.
이 곳 박타푸르의 달발광장은 옛궁전과 사원들이 세워져 있는데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했던 영화 리틀부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후에도 가보게 될 카트만두 시내와 파탄에도 달발광장이 있지만 이 곳 박타푸르의 달발광장이 가장 볼거리가 많다. 그래서인지 입장료가 비싸기도 가장 비싸다. 750루피.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보이는 라메슈왈 사원
라메슈왈 사원을 향해 합장한 가루다.
달발광장 내부
과거엔 왕후의 침실로 쓰였던 미술박물관과 그 앞을 지키는 사자상.
온통 티카를 뒤집어 쓴 이 신의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잡힌 인간의 내장을 후벼파는 건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
부바탄드라 말라왕의 동상
1753년에 세워진 황금의 문. 현지에서는 순도카라고 부른단다. 말라왕조의 마지막 왕인 자야 란지트 말라왕이 세웠다. 문 바로 위에는 비슈뉴 신이 보이고 그 위로 하늘을 날으는 가루다가 형상화 되어 있다.
55개 창의 궁전. 55개인지 실제로 세어보진 않았다. 창에 새겨진 목조의 장식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15세기에 건축되었고 17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각 창에는 각 1명의 첩이 살았다고 한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였다면 55명중 한 명이 왕인 나를 알현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될 것 같다. '쟤가 누구였더라?' 그래도 백제 의자왕이 3천 궁녀를 거느렸던 데 비하면 무척 소박하신 왕이었구만.
이 종은 부파탄드라 왕이 17세기에 악몽에 시달리던 그가 세웠다고 하는데 오늘날 짖는 종(Barking Bell)이라고 불리운단다. 이 종만 치면 근처 개들이 그렇게 짖어댄다나. ㅡ,.ㅡ;
인도에서 많이 보았던 형식의 사원이다. 특히 커주라호에서 본 사원들은 이와 비슷한 형태의 사원이 많이 있다. 커주라호의 신전에는 여러 신들의 야시꾸리한 형상이 다닥다닥 세겨져 있는데 이곳에 있는 사원은 그런 면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오히려 절제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이 광장은 이들 생활의 일부인 것 같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훨씬 많은데 한 켠에서 편안히 낮잠을 즐기는 평화스러운 모습도 눈에 띤다.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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