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8 레바논

레바논여행1-2(비블로스/베이루트)

코렐리 2009. 2. 13. 18:36

2009. 12. 28(일) 계속

베이루트행 버스는 매우 자주 있는 것 같다. 트리폴리에서 베이루트행 버스가  출발한 시각은 오후 3시 25분이었다. 가면서 보이는 바다와 길게 경사져 펼쳐진 녹지속의 바위와 별장같이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서 있고 현대적인 아파트들도 적잖이 눈에 띤다. 비블로스에 도착하는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도를 보고 유적지로 가던 도중 여기 저기에 보이는 부티끄들은 최첨단 유행과 패션을 늘여세워 놓았고 이를 본 나는 이 곳이 파리인지(파리 안가봤음) 뉴욕인지(뉴욕도 안가봤음) 혼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화려하고 현대적이면서도 고전미 넘치는 곳이었다. 

 

디스플레이의 세련됨은 물론 럭셔리한 분위기 연출은 최고의 수준이었다.

 

가다 보니 비슷하게 생긴 혼다 오토바이 두 대가 세워져 있는데 이 것 을 보고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한 놈은 대머리에 검은 수건을 쓰고 썬글라스에 콧수염을 양쪽 턱아래오까지 늘어뜨린데다 회색 털이 지저분하게 뒤덮힌 굵은 팔뚝에는 앵커 문신이 그려져 있고 소매 없는 가죽 옷과 찢어진 청바지에 해골반지를 낀 놈. 또 한놈은 크고 울퉁불퉁 험상맞은 얼굴에 회색 턱수염만 기르고 어울리지도 않게 작아빠진 검은 가죽모자에 썬글라스, 딱 달라붙는 검은 가죽재킷과 몽둥이같은 다리 실루엣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죽바지에 쇠사슬까지 이리저리 둘러감고 손가락 장갑을 낀채 불량스럽게 시가를 물고있는 느끼한 놈. 두 넘은 연인 관계고... 이런 놈들이 타고 다니고 다닐 것 같더라는... 아님 말구.  

 

구유의 아기예수와 동방박사를 재현한 큼직한 디오라마가 눈에 띤다. 이 곳에도 기독교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들어가 유적지가 가까와 오니 고풍스러운 상가가 나온다.

 

 

이 운치있는 곳의 상점이 모두 영업중이라면 좀 더 멋진 곳이었을텐데 닫은 가게가 적지 않다.

 

 

 

오후 네시면 문을 닫는 곳이 많아 걱정했던 나는 아직도 표를 판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서둘러 표부터 샀다.

 

바닷가쪽을 보면 이미 수평선 멀리부터 번져오는 붉은 황혼이 대지를 향해 물들이며 적셔오고 있어 어느 물체를 실루엣으로 두고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이런 상황에 어찌 감격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성문으로 들어가면서 이 곳에 너무나도 깔끔하게 잘 보존된 성곽은 성곽너머에 펼쳐진 유적을 기대하며 들어서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 한켠을 차지하는 소규모 박물관이 있어 석기시대로는 BC5000~3200 의 유물들이, Bronz 시대에는 BC 3200~1200 까지의 유물들이 전시외어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 많은 중동에서도 특히 이 곳 레바논의 처자들은 특히나 눈에 띠게 미인이 많이 보였지만 그 미모의 정도도 다른 지역과는 눈에 띠게 큰 차이가 있었다.

 

성곽 안에 들어가 여기저기 성벽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는지, 북한인지 남한인지, 학생인지(나같은 노땅도 일찍 늙는 중동인들 기준으로 보니 상대적으로 젊어보이는 동양인이 헷갈리는 모양이지만 듣기에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분 짱이라 껄떡대고 있었음), 여기에 오기 전에는 어디 어디를 거쳐서 왔는지, 이 곳 레바논은 어디를 들렀으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을 했다. 나는 이곳까지의 여정을 말해주었 이 곳 레바논에 도착 이후 두 번째 도시인데 레바논이 이렇게 아름다울지는 와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고 말하고 나서 나는 그녀에 대하여 되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학생이었고 무척 청순한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런 기회를 얻으면 무슨말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대화가 짧아지는 것이 나의 한계다. 물론 영어실력의 한계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긴 하지만 내가 좀 얼긴 했나보다. 이 곳 레바논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과거부터 무역이 성행하고 인적교류가 많아 적지 않은 인종의 피가 섞였을 것이고 많이 섞일수록 특출한 외모를 갖게 마련이라 그런지 이 곳의 처자들은 다른 중동지역과 비교해 미모도 더 뛰어나고 청바지를 입은 실루엣에 군살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내내 헤빌렐레하며 레바논을 다녔다. 특히 이 곳 비블로스에서... 어쨋든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더니 포즈를 취했다. 함께 있던 친구가 같이 찍으면 안되겠냔다. 나는 흔쾌히 그러면 더욱 좋겠다고 했지만 그건 빈말이었다. ^^; 

 

해는 이미 바다를 향해 거의 내려 앉았고 이 곳을 나가야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낮에는 결코 느낄수 없었을 황혼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만끽하고자 했다.

  

눈군가 그런 말을 했다. 레바논에 오면 3B만 보면 레바논의 모든 것을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그 3B란 것은 베이루트(Beirut), 비블로스(Byblos), 바알벡(Baalbek) 이 바로 그것. 나는 지금 그 중 하나인 비블로스에 와 있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와의 만남도 필요없고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도 더 지나가는 것도 싫었다. 비블로스의 유적지에 황혼을 바라보는 이 곳에서의 바로 이순간을 누구로부터도 방해받고 싶지 않고 그저 즐기고만 싶었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희안하다.

 

 

론니에 나온 내용을 보면 이 곳 비블로스는 7000년전부터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전해지며 BC 3세기말에는 페니키아의 가장 중요한 무역항으로 부상했다고 한다. 황금과 석회, 파피루스와 린넨을 얻기 위해 이 곳에서 페니키아인들은 백향목과 올리브유를 이집트로 보내 교역을 하였다. 그 후 그리스인들이 BC 333년부터 이 땅에 대한 지배를 시작하여 비블로스로 개명을 하였는데 이는 집트로부터의 주요 교역물품이었던 bubolos(파피루스)를 그리스로 들여가기 위한 중간 교역지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후 BC 64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사원, 목욕탕, 콜로나데드 거리와 공공건물들이 세워졌고 AD 1104년에는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어 로마사원 위에 성채와 기둥들이 세워졌다. 뒤이어 오토만과 맘루크가 집권하는 등 굴곡많은 침략사를 겪었다.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기까지 태양의 눈치만 보고 있던 이 곳 비블로스의 유적 관리인들은 얼씨구나 퇴근시간을 철저준수하고자 하는지 관람객들에 대한 까칠한 퇴장안내를 부산스럽게 떠벌렸다. 모른척하구 멀찌감치 떨어져 눈으로만 보던 곳들도 직접 가보고 싶어 모른척하구 가보려고 했더니 관리인의 목소리는 더욱 까칠해진다.

 

나는 저멀리서도 퇴장할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음을 감안해 관리인의 눈을 피해 조금 더 들어가 본 뒤 그들과 함께 되돌아 나가 볼건 거의 다 보았지만 더 머물고 싶은 생각에 아쉬움이 조금남는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둠이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들어왔던 길을 되짚으며 저녁 도시의 여유로움을 즐기기 시작했다

 

가게들도 저녁시간이 되어 조명을 밝히고 나니 고전적인 분위기의 이 상가는 더욱 운치를 냈다.

 

더구나 이 곳엔 운치있는 레스토랑들이 여기저기 눈에 띠었지만 식당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자니 왠지 내키지가 않는데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렸으니 이 곳을 충분히 구경하고 베이루트로 가기 위해선 막차 시간 전까지라야 했다.

  

 

유적지 근처에는 의외로 많은 가톨릭 교회들이 눈에 띤다. 시내 안쪽으로 들어가면 모스크가 더 많이 눈에 띨지 모르겠지만 이 곳은 조금 특이한곳(?)이었다.

 

성 장 마르끄 성당이란 곳엘 들어가 보았다. 마침 미사가 있는지 신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적잖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따라 들어가 보았다.

 

 

 

마침 미사가 진행되기 시작한 참인 것 같다. 아무리 사이비 신자라지만 지난주 미사도, 크리스마스 미사도 빼먹었으니 오늘은 참석해 보자. 외국에서, 그것도 카톨릭 국가가 아닌 회교국에서 미사를 보았다면 이 것도 굉장한 체험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가 갓 지난 시점이라 당시의 장식물들은 아직도 설치되어 있어 경건한 분위기도 한 껏 고조되었다. 교회 건물은 모두 돌로 되어 있어 중세시대의 성당을 연상시켰다. 론니 책자에도 나오지 않는 이 성당은 건축양식이나 성당의 이름 등을 미루어 십자군 지배하에 있었을 때 지어진 성당일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오랜 역사를 지녔을 법한, 운치있는, 그리고 가톨릭이 주류가 아닌 이 곳에서 체험하는 미사는 나로 하여금 묘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맛을 따질건 절대 아니지만 성찬의 전례에서 분배되는 밀빵 맛도 한국에서보다 훨씬 좋다.

 

여기서 미사는 보지 않고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긴머리에 흰코트와 청바지를 입은 늘씬한 미녀를 보느라고 바빴으니 역시 난 사이비 신자가 맞나부다. ㅡ,.ㅡ;

 

 

밖에는 오늘 혼배미사가 있었는지 아님 헌화 행사가 있었는지 세련되게 묶은 꽃들이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이젠 이 곳을 떠나 베이루트행 버스를 타기 위해 또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던 중 오래된 피아트 모델의 차가 주차되어 있어 나의 눈길을 잡았다. 70년대에 이탈리아의 피아트사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해 국내에 판매되었던 바로 그 모델인데 이 차를 아주 이따금씩 그리워하던 나로선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고속도로로 다시 나와 조금 서있다 보니 내 앞에 낡은 흰색 미니버스가 한 대 섰다. 여기 서있으면 뻔히 베이루트로 가는건가보다. 베이루트로 가냐고 물었더니 간단다. 두 말 없이 올라탔다. 버스비를 지불하고 앉아 보니 승객은 나 한사람 뿐이었다. 막차였는지 이 곳에서 한동안 낡은 엔진을 길길거리더니 이내 곧 출발했다. 레바논에 미인이 많긴 많은가보다. 버스 안내양도 늘씬한 몸매에 상당한 미인이었다. 젊은 버스 기사와는 연인이거나 뭐 쯤 되는지 무척 친하게 보인다. 나는 내가 묵으려고 생각중인 호텔 탈랄이 있는 다운타운으로 가는지를 물었다. 안내양은 친절하게 베이루트에 도착하거든 "다우라"에서 하차하여 다운타운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안내해 준다. 그녀의 안내대로 버스를 갈아탄 나는 다운타운에서 내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모하메드 알 아민 사원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근처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근처 몇 몇 건물들이 화려한 조명과 등장식으로 빛을 발했다.

 

사원 건너편에는 엄청나게 큰 천막을 설치했는데 안에서는 음악소리와 마이크를 잡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산타마을이라... 개방적인 레바논의 한 단면을 다시금 보게 된다.

 

이 곳에서도 호텔을 찾기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일단 지도를 들고 플래시를 꺼내 입에 불고 론니를 뒤져가며 호텔위치를 열심히 찾아 다녔다. 보아하니 모하메드 알 아민 사원의 길 건너편 골목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교회인 성조지 성당은 그리 멀지 않았다.

 

성조지 성당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호텔 찾기가 슂지 않았다. 나는 가게방으로 들어가 호텔 이름을 대며 물어 보았지만 가게 주인은 알듯모를듯한 표정이다. 마침 그 때 아르메니아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질문을 그들에게 돌렸더니 러시아식 강한 악센트의 영어를 구사하며 가는 길을 일러 주었다. 감사의 치하를 한 뒤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역시나 그 근처인 것만은 확실한데 찾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경비인에게 물으니 다시 길을 알려 준다.  

 

어렵게 도착하고 보니 의외로 대로변에 있는 호텔이었다.버스를 타고 분명 이 길을 지나왔었다. 괜스리 빙빙 돌은 셈이다.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는데 프론트데스크가 있는 룸에는 여러 여행자들이앉아 있었다. 그 중 노트북을 들고 앉아 뭔가열심히 하고 있던 젊은 친구가 한국인인것 같았다. 역시나 한국인이었다. 나와 통성명을 한 그는 ROTC를 제대하고 대학원에 다니던 중 08년도 8월부터 시작한 여행이 09년도 8월에 종료할 예정이라는 채경수란 친구였다.

 

이 곳은 음식 재료만 스스로 구입하면 조리도 자유롭게 해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특히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본관에는 방이 없고 신관에는 있다는 것이다. 직원을 따라가 보니 이 곳은 투숙객이 많지 않아 본관보다는 느낌이 썰렁했다.

 

실내가 깨끗했지만 페인트 냄새가 많이 나는게 최근 확장했거나 보수한 모양이다.

 

 

 

내게 배정된 방이 열쇄가 맞지 않아 다른 방으로 배정해 주기를 요구했다. 시원찮은 방문고리에 열쇄를 간신히 쑤셔 넣고 이리저리 해매더니 간신히 열어 놓고는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어이가 없다.  나는 긴말을 하지 않고 다시 해보라고 했다. 그는 약간 당황해 하더니 뭔놈의 책임감인지 열심히 헤매더니 간신히 다시 열었다. 그러더니 내게 열쇄를 주었다. 나는 팔장을 긴채 받을 생각도 안하고 다시 해보라고 했다. 그는 내 속을 간파했지만 시키는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세번째 가서는 문고리를 망가뜨리기에 이르렀다. 그는 내심 당황해했고 나는 내심 즐거워 했다. 결국 방을 바꿔 3인실 도미토리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가방만 있어 누가 함께 묵을건지는 몰랐지만 듣자 하니 레바논인 여행자 두 명이 묵고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 본관 프론트가 있는 방으로 갔다. 그 곳에서 경수가 끓여주는 인도식 라면을 무척 맛있게 먹었다. 나는 보답으로 호텔 프론트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3병씩 먹고서야 알콜에 굶주린 목구멍을 달랠수 있었다. 경수는 얼마만에 맛보는 맥주인지 모른다며 즐거워했다. 이 맥주는 맥시코의 맥주라고 하는데 맛이 별로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에선 할 수 없었다. 찾아보면 이 곳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페스 맥주가 있고 터키에서보다 더 싼 값에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기엔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바빴다. 방에서 카메라 충전기 코드가 맞지 않아 호텔 프론트에 충전을 부탁하려 했더니 경수가 한국에서 사온 아답터를 빌려준다. 이 곳 중동지역은 한국과 같이 220볼트의 전기를 쓰고 똑같은 돼지코 콘센트를 사용했지만 우리의 코드는 어디선 맞고 어디선 미세한 차이로 들어가질 않았다. 여기에 맞추는 아답터가 따로 있는데 그걸 경수는 미리 알고 한국에서 사온 것이다. 밤이 늦어 내방이 있는 신관으로 돌아왔다. 좀 아까 내 방의 열쇄를 망가뜨린 그 직원과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이가 발코니로 나가며 차 한잔 하려거든 나오라길래 따라 나가 보았다. 테라스 아래쪽으로는 무언가 건물 보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시샤까지 그들과 함께 즐기다가 대화가 되지 않아 곧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시내를 둘러본 뒤 바알벡으로 넘어갈 계획이다. 운이 좋으면 당일날 모두 보고 그담날 아침 곧바로 시리아를 다시 넘어 요르단 남부 페트라가 있는 와디 무사로 넘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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