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4(수)
아침 식사는 이 환상적인 정원에서 제공되었다. 타일 바닥 중앙에는 자그마한 분수가 있고 등나무가 심어져 있어 바로 위로는 등나무잎이 철사 프레임을 타고 차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부슬거리며 비가 왔다. 사진에 보이는 곳 모두 비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내가 카메라를 잡은 곳은 지붕이 설치되어 있어 아침식사에는 지장을 받지 않았다.
운치있는 호텔 정원과 청명한 공기속에 낙수소리까지 즐기며 먹는 아침식사는 감동할 맛은 아니었지만 그 분위기때문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짐을 싸고 나오려는데 뉴질랜드 청년은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고 독일인 노인은 인터넷에서 무언가 열심히 들여다 보는 통에 대충 작별인사 하고 방을 나섰다. 이 곳에서 나가면서 팔미라로 갈 버스 승차장을 어떻게 가는지를 프론트에서 물어 보았다. 이 곳에서 분명 멀지는 않은 모양이다. 알려준 대로 가다가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으니 대답하는 사람마다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 이 곳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된다는 사람, 동으로 가라는 사람, 서쪽으로 가라는 사람,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람... 모르면 아는 척이나 말지... 좌우간 이 친절하신 분들땜시 무쟈게 헤맸다.
결국은 걷다가 갇다가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바로 이곳에 팔미라로 가는 버스가 있단다. 하지만 이 것 역시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였다. 나중에 만난 사람들 앞에서 "이 곳 시리아에서 당한 가장 심한 사기는 길을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해서 목적지를 찾는데 오히려 힘들게 만드는 일"이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 사람들의 친절이 그런 오버까지 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알지만 이 날은 넘 마니 헤맸다. 이 곳도 그 버스가 있는 곳은 아니고 이 곳에서 세르비스를 타고 가란다. 결국 세르비스를 타고 가다 운전기사가 일러주는 방향으로 걸어
터미널을 간신히 찾았다. 이 곳은 터미널 입구로 이 곳에 들어가면 공항처럼 짐검색을 한다.
이 곳을 들어가면 행선지별로 표파는 곳이 있다. 터키에서처럼 각기 다른 회사들인 것 같다. 팔미라라는 영문 표기가 눈에 띠어 들어가서 표를 달라고 했더니 어쩐 일인지 버스 승차장으로 가란다. 그 곳에서 기록판과 펜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팔미라행 버스를 물어보니 자기에게 돈을 내고 바로 앞 버스를 타란다. 200SP를 내라고 하는데 왠지 바가지를 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알고 있던 가격과는 좀 차이가 있기에 왜이리 비싸냐고 물으니 올랐다나? 버스는 곧 출발할 태세고 실갱이 하기도 싫어 돈을 내고 표를 받아 일단 올라 탔다. 뭐라고 아라빅으로 수자가 적혀 있는데 이집트에서 익혔던 아라빅 숫자를 모조리 까먹어 얼마라고 쓰여 있는건지 격안난다.
내가 앉은 주변에 영어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여행객은 나 하나 뿐이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보고 나는 팔미라에 가는데 도착하거든 알려 달라는 말을 했지만 전혀 못알아 들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다음 팔미라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도대체 알아듣고 끄덕인건지 아님 그냥 끄덕인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걍 함 믿어 보았다. 어머나 조낸 실수.
고속도로에서 좌회전하여 바로 도착한 첫 번째 휴게소에서 정차. 혹시나 해서 주변사람 하나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바디 랭귀지로 물었다. 뭐라고 뭔가 답변을 한다. 분명 팔미라라고는 안했다. 내가 인터넷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다마스쿠스로부터 팔미라까지는 세시간 걸린다고 했다. 현재시간 출발지로부터 아직 2시간 30분도 안되었으니 아직 도착 안한게 맞을거라고 생각했다. 론니 책자에는 지역명이 아라빅으로도 표기가 되어 있다. 론니 책자가 가방 안에 들어 있는데 그걸 꺼내 보여주며 다시 물어볼까 하다가 설마설마 했더니... ㅜ.ㅜ
나도 버스에서 내려 휴게소 안을 둘러 보았다. 곧 떠날 것 같길래 버스에 올라 탔다. 이 곳에서 유턴을 하고는 출발한 버스가 출발하고 한 10분이나 갔을까. 차장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한다. 아라빅이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따라 나오란다. 나가다 뒤돌아 보더니 영문을 몰라 맨손으로 따라가던 내게 가방 갖고 나오란다. "팔미라?"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젠장. 한참 온 것 같은데... 내가 버스를 탈 때 표파는 직원과 실갱이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쨋든 내렸다.
바로 눈앞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휴게소 겸 식당으로 보이는 곳이 있어 그리로 가 Al Faris Hotel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론니에도 나오지 않는 호텔로 이미 묵어본 사람들이 강추하는 곳이다. 여기선 아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지나니 한 남자가 난감해하던 내게 다가와 내 친구가 그 호텔을 안다며 다짜고짜 택시를 부르려 했다. 걷기 좋아하는 내가 뭐했다고 택시를 타냐. 게다가 택시비도 적잖이 부를텐데. 어쨋든 누군가 찔러주는 방향은 버스가 조금전 머물렀던 휴게소 방향이었다. 거기까지 걸으려면 적어도 30분은 걸을 터였다. 일찍 도착해서 팔미라 유적지를 보고 담날 아침 바로 떠나려고 했던 나는 걷는 것 역시 즐거움이라 아무 생각 없이 쭐레쭐레 걸었다. 걷다 보니 이 사막 한가운데 수영장이 있고 어린이 강습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플래카드도 설치되어 있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적잖이 멀게 느껴졌다.
처음 내렸던 휴게소로 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택시 기사들만 구름같이 몰려들어 자기가 안내하겠단다. 이들이 그 호텔을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지만 드물게 잡는 봉인만큼 바가지도 예상되어 그 곳을 외면하고 그냥 벗어났다.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게방 소년에게 물었더니 택시를 타라며 능숙한 솜씨로 휘파람을 불어 근처 택시 기사를 불렀다. 이런 젠장. 어린 소년까지도 어지간히 세상 물이 들고 뒤집어졌다. 휘파람을 들은 택시 기사 역시 떼놓고 가느라 한참을 외면하고 갔다. 내가 탔던 버스가 유턴했던 곳을 지나 계속 그 방향으로만 걸었다. 가다 보니 T 자로가 나온다. 육감대로 우회전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회전까진 좋았는데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무조건 직진해 가면 약간 한적한 곳에 팔미라 호텔이 대로변에 있었다.
버스정비소에서 정비공들에게 물어보니 알지도 못하면서 마을 쪽으로 길을 안내했다. ㅡ,.ㅡ;
마을 구석구석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호텔을 찾아 돌아다녔다. 론니에도 안나온 호텔이니 지도에 있을리도 만무하고 워낙 자잘한 호텔이 많아 아는 주민도 없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몰려드는 아이들 뿐이다.
멀찍이 꽐랏 이븐 만(이븐 만의 성채)이 보인다.
전혀 다른 방향인 마을 안에서 열라 헤매기만 하고 다녔다.
마을을 헤매다가 만난 전통의상의 세 남자. 한참 헤매다가 지치고 힘들어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보잡시고 들어간 호텔은 투숙객도 나 외엔 없는 것 같고 게다가 도미토리 방이라고 내주는게 지하에 창문도 없는 방이었다. 나는 창이 없는 방은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양해를 구한 뒤 그냥 나와버렸다.
마을끝 유적지 입구 근처에 무언가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엉성하게 만든 칼과 북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은 지하드를 재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헤매다가 간신히 발견한 INFORMATION CENTER. 이 곳에 들어가니 정확하게 알 파리스 호텔의 위치를 말해준다.
결국 마을 바깥쪽 대로변으로 다시 나와 계속 걸으니
그리도 애타게 찾던 알 파리스(AL FARIS HOTEL)이 나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다른건 몰라도 호텔만큼은 한국인들이 좋다고 하면 확실히 좋은 곳이니 믿고 가도 된다. 이 곳 역시 그랬다.
이 호텔 소문듣고 왔지만 찾기는 너무 힘들었다는 넋두리를 한 뒤 도미토리를 달라고 했다. 사장은 독방을 내주며 도미토리 값(300~350SP였던 거 같다. 가물가물)에 쓰란다. 한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이 호텔도 투숙객이 불황 여파로 별로 없는 모양이다. 이 호텔에 4명의 한국인이 있다는 반가운 이야기도 해준다. 이 때 시간이 16시 30분경이었다. 결국 다마스쿠스로부터 이 곳으로 이동하는데 한나절이 걸린 셈이다.
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 보았다. 오른쪽으로 이븐 만의 성채가 근거리에 보이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전망이다.
전방에는 팔미라 유적이 바로 앞에 보인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텐데 방값은 도미토리를 쓰라니 얼마나 좋냐. 그는 어차피 손님도 없고 해서 홍보하는 셈치고 선심을 쓴 것 같다. 나는 밥을 먹기 위해 헤맷던 마을로 다시 나갔다. 대부분의 식당에 손님이 없었다. 그나마 손님이 있는 곳을 찾아 보았다. 한쪽 구석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노부부와 젊은 커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호텔 주인이 이야기한 그 사람들일거라는 직감이 갔다.
이 식당 호객꾼이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당신과 같은 한국인이 안에서 식사중이라며 나를 꼬셨다. 나는 더 좋은 식당이 있을까싶어 더 다녀봤다. 그 곳만큼 사람이 있는 식당도 없는 것 같아 결국 그리로 돌아갔다. 조금 전 본 한국인들과 인사를 나눈 뒤 메뉴판을 보니 한국인이 한글로 남긴 강추 메뉴(300 시리아 파운드)가 있었다. 시켜봤다. 전식으로 나온 야채 샐러드와 스프 그리고 별도로 주문한 맥주(잔당 100 시리아 파운드). 밥을 먹던 중 먼저 와서 식사하던 한인들 4인은 먼저 호텔로 돌아가 기다리겠노라며 식후 호텔에서 보잔다.
메인으로 나온 요리인데 야채 요리였지만 맛은 그런대로 오케이.
맥주 두잔에 식사를 마친 나는 약간 알딸딸 한 상태에서 인터넷을 잠깐 해보았다. 어찌나 느리던지 은행 잔고를 확인하려다 복장터져 포기했다. 그래도 이 웬수들 1시간 인터넷 사용료 100파운드는 다받았다. 도합 600파운드. 왠지 사기 당한듯한...
마지막 후식으로 나온 홍차.
호텔로 돌아가니 은퇴부부 두 분 중 한 분은 주무시고 세 분이 나를 기다려 주었다. 샤워를 마친 나는 이 집 사장인 모하메드 김(Kim 자칭)이 제공하는 술을 마시며 대화를 시작했다. 술이름이 뭐였더라... 물에 희석하면 하얗게 변하는 터키 술이었는데... 오른쪽의 두 사람은 연상커플. 왠지 순수해 보이는 사람들. 맨 왼쪽은 모하메드 김씨. 바로 옆 사모님은 뉴질랜드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신 김 경애 님. 사진은 아랍식 주사위놀이를 갤차주는 장면. 넉살좋은 김사장은 김선생님보구 엄마라고 부른다. 즐기기 위해 자식을 두지 않은 김선생님은 아들하나 생겨 좋다며 반겨준다.
한참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이제 막 팔미라에 도착했는지 네덜란드의 처자 두 명이 내방 바로 건너편으로 체크인 했다. 우리가 대화꽃을 피우며 노는 것이 부러웠는지 초를 들고 나와 불을 붙여 테이블에 올려 놓고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며 합석했다. 이때 빛을 말하는 김선생님의 영어 실력은 분위기를 돋구는데 한층 큰 역할을 했다.
2008. 12. 25(목)
아침 6시 20분경에 밖을 내다 보니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이븐 만 성채가 일출을 보기에 좋다는 말을 인터넷 어디선가 주워읽은 기억이 있어 씻지도 않고 대충 옷을 입은 뒤 밖으로 나갔다. 어제 빨아 놓은 내의와 양말이 하나도 안말랐다. 건조한 걸로만 알고 짐을 줄이기 위해 내의를 3벌만 가져 왔는데 이건 좀 실수한 듯. 결국 내의도 안입고 양말도 안신고 ㅡ,.ㅡ; 나갔다. 쯔발려...
호텔에서부터 보이는 성채를 향해 걍 무조건 걸었다. 여명을 받은 성채가 환상적이다.
이른 아침 차도 거의 안다니는 이시간에 새벽 공기를 만끽하며 혼자 걷는 이기분도 완죤 굿. 사막지역이지만 먼지바람 같은것 전혀 없는 청명한 느낌속에 걷다 보니 새벽이 내꺼인듯한 착각. 완전 행복.
성채를 오르는 아스팔트 길은 눈앞에 보이는 성채의 뒷면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급경사를 네발(?)로 기어서 올라갔다.
꼭데기 성채까지 올라가서 성채 뒤쪽으로 보이는 황량한 사막.
내려다 보이는 마을(왼쪽)과 길쭉하게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팔미라 유적(오른쪽)
물론 성채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이 코딱지만한 성채 내부에 크게 볼 것도 없을테고 전망도 거기서 거기일테니 못들어가본게 억울하지는 않다. 다만 구름낀 하늘에 일출은 없었다. 일출 없어도 좋다. 이 신선한 느낌은 일출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사원이 내려다 보이는 팔미라의 마을
성채
성채로 통하는 아스팔트 길에서 개폼 한 컷.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햇살
아침 먹기 위해 돌아가는 길 역시 돌아서 내려가기 싫어 급경사를 쭉쭉 미끄러져 깔린 잔돌 조낸 굴리면서 신발 속에 모래 넣어 가며 내려하산길을 단축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을 혼자서 걸어 보았다. 나만을 위한 길이라는 행복한 착각을 해가며 이따금 싸가지없이 무심하게 승용차 한 두대가 길을 지나 간다. '저것들이 인사나 허락도 없이 주글라구...'
무언가 홍보하나보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누구더라. 아항. 이나라 대통령이군. 아무 문구도 없이 그냥 이미지 광고만 하넹.
숙소로 돌아가니 투숙객들 모두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두 커플을 떠나 보내고 나는 나대로 팔미라(Palmyra) 유적지로 갔다. 입구는 information center 바로 건너편에 있다.
일할 준비를 끝낸 놈과 한가하게 쉬고 있는 낙타 두마리가 왠지 대조적으로 보인다. "얌마 일 안하냐?"
입구를 지나 걷다 보면 첫번째로 만나는 그리스 양식의 로마유적인 테트라필론(Tetrapylon) 부터 눈에 띤다.
아치형 문과 코린트식 기둥이 인상적이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내게 한 번 찝쩍거리다가 반응없자 지나쳐 버리는 낙타주인
낙타를 타겠느냐고 못먹는감 찔러보듯 물어보고 거절하자 미련없이 지나가는 소년의 뒷모습이 볼만한 피사체를 제공했다. 전방에 보이는 곳이 이 유적의 최고 볼거리인 벨신전.
입장료는 이곳에서만 받고 나머진 공짜다. 이 곳은 거대 신전터이다. 입장료가 얼마였더라... 아마 150SP였을걸? 생각 안난다.
이 곳에 일단의 관광객이 보일뿐 다른 관광객도 여행자도 거의 보이지 않으니 그저 한가롭게 여기 저기 사진을 찍어가며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한 건물의 외관을 떠받치던 기둥임을 암시하는 구조를 보고 이 건물의 규모를 지레짐작해 보고는 그 규모에 경악을 할 만 하다. 으헥. 고대 로마 건축의 본좌. 그가 누구였을까.
이 곳을 나와 계속 유적을 보기 위해 다시 테트라필론으로 다시 나와 실컷 보구 간 이곳에서 카메라 삼각대를 이용해 실컷 직찍도 해보고
테트라필론으로 구성된 중앙로를 따라 걸어보았다.
500미터 정도 연결된 이길을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여유롭게 거닐었다.
왼쪽으로는 로마 극장이 있지만 잠겨 있어 철창 사이로 보았을 뿐이다. 형태가 매우 완벽하게 보존되어있다.
이건 뭘까. 똑같이 생긴 기념물 4개가 머스럽게 서있다.
중앙로 바깥쪽으로 살짝 새서 셀카 한 컷.
이 곳에서 같은 호텔 투숙객인 네덜란드의 처자들과 함께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양말 안신은게 표가 나는군. ㅡ,.ㅡ;
이들은 나와는 반대편으로부터 봐오다가 만났다. 이 유적만 보고 나면 곧바로 크락 데 슈발리에로 갈 참인 나는 이내 헤어지면서 아예 작별인사를 했다.
여유 있게 천천히 봐왔지만 대략 두 시간정도 보니 거의 유적의 끝이 보인다.
디오클레티안 캠프(Camp of Diocletian). 남은 것은 몇 개의 기둥 뿐이다.
바알 샤민의 신전(TEMPLE OF BAAL SH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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