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3(화)
터키를 떠나 시리아의 수도 암만에 새벽에 도착한 나는 잠깐동안 낸시호텔에서 눈을 붙인 뒤 아침식사를 마치는대로 다운타운내 세르비스 승차장을 찾아갔다. 그 곳에는 여러대의 세르비스가 각자의 목적지를 두고 합승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차가 어느거냐고 물으니 한 사내가 자기 차를 가리키며 타란다. 이미 합승객들이 있었다. 내가 타자 승차장을 떠나 어디론가 가더니
이 곳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 승차비를 내고 기다리란다. 8~9JD면 될 줄 알았는데 11JD나 내란다. 그새 오른건가 아님 내가 바가지를 쓴건가. 어쨌든 한국돈으로 이 때의 환율로는 2만원이 넘는다.
아래의 차는 다마스쿠스로 가기 위해 합승객을 기다리는 세르비스. 20분정도를 기다리니 합승객이 4명이 모두 찼다. 관광객들끼리 타게 될 줄 알았지만 세르비스 승객들은 모두가 요르단인이거나 시리아인들이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의 생활 깊숙히 들어가 보길 원하는 나로선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한참 가다가 들른 휴게소. 여기서 잠깐 물 버리고 나서
계속 달리다 보니 시리아 국경 이정표가 보인다.
요르단 국경과 시리아 국경 사이에 있는 모스크. 요르단을 떠날때는 출국세를 내야 한다. 요르단 입국 후 24시간 이내에 떠나면 출국세는 면제다. 오늘 새벽 3시가 넘어 입국했고 이제 오후로 넘어가는 시점이 니 5JD벌었다. 시리아 입국세는 25유로였다.
시리아에 도착하여 내려준 곳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주택 밀집지역인데 요르단에서 본 주택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붕도 없고 칠도 안한 조금은 흉물스러운 모습이다. 오전 10시에 출발한 요르단으로부터 다마스쿠스의 여기까지 오후 두시에 도착했으니 정확하게 4시간이 소요되었다. 가다가 올드시티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동향이니 함께 가자는 사람이 있어 버스를 타러 함께 갔다. 생각해 보니 환전을 아직 하지 못했다. 환전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 곳엔 없다며 차비를 내줄테니 걱정말란다. 폐끼치기 싫어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환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버스에서 내려 내가 가고자 하는 올드타운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것을 미안해서 극구 사양했다. 그는 내 차비까지 내주고는 가는 길을 일러준 친절한 사람이었다. 빚진 느낌이 든다. 가르쳐 준 방향으로 가다가 세명의 청년을 만나 올드시티로 가는 길을 물었다. 같은 방향이니 같이 가잔다.
그들의 외양을 보고 대학생인줄 알았던 이들은 고등학생이었다. 두 명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그랬다간 학생주임한테 조터질테지만 이들은 하나의 문화로 존중받는 것이 부러웠다. 사실 나도 셤좀 길러보고 싶은데 며칠만 면도를 안해도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서 피곤하다.
이 곳이 그들의 학교였다. 가정집같이 생긴 이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면 사각 뜰이 있었다. 학교가 작긴 해도 낭만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헤어져 가르쳐준 길로 계속 갔다.
바로 이 곳이 올드타운인데 이제부턴 호텔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론니에 나와 있는 지도는 워낙 개판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었다. 한 일본인 여행자가 이 곳에서 가까운 성채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길래 그가 왠지 알 것 같았다. 길을 물었더니 그 호텔을 안다며 시간이 있으니 자기가 같이 가주겠단다. 고맙긴 하지만 나는 환전부터 해야 했다. 그래서 난 짐 환전부터 해야 하니 가는 길만 알려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환전소가 바로 근처에 있어 100유로를 내놓았더니 6400 SP(시리아 파운드)를 내준다. 그가 가르쳐 준대로 찾아가 보았지만 그리 찾기가 용이하지가 않았다. 그친구의 호의를 사양한게 후회가 되었다. 목이 타서 콜라(20SP)부터 한 캔 샀다.
신축중인 이 사원에서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Al Rabie Hotel을 모르거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나와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길로 가르쳐 준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호텔을 찾기는 했다. 오후 세시 삼십분이 되어서였으니 여기서 한시간 정도는 헤맨 것 같다.
바깥에서 보는 입구는 무척 답답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잘 꾸며진 프론트 데스크가 있었다. 도미토리는 500 SP였다.
방을 안내해 주는 직원을 따라 안쪽으로 따라 들어간 나는 호텔 사각건물 내에 있는 호텔건물 중정 정원을 보고 감격해 마지 않았다. 아주 멋진 곳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아랍적이라고 해야 하나...
직원을 따라 들어간 방에는
세 개의 침대가 있었고 그 중 두 개의 침대에 주인이 있었다. 나머지 침대 위에 나의 짐을 내려 놓았다. 그 곳에는 독일인 노인 한 명과 뉴질랜드인 청년 하나가 이미 묵고 있었다. 독일인 노인은 이 곳에서 이미 한 달째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이 곳에서 참 어지간히도 많은 룸메이트들을 만났겠다. 그는 이 곳에서 사업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회교도들이 쓰는 하얀 뜨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며 회교도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자신은 실제로 회교도라고 했다. 푸른 눈의 독일인이 회교도라고 하니 이것 역시 이색적이질 않은가. 뉴질랜드인 청년은 자그마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휴가를 얻어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는 오늘의 낮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오늘 이 곳 다마스쿠스의 일부만이라도 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호텔을 나서자마자 출출함부터 느껴졌다. 호텔을 찾아 헤매느라 이리저리 싸다니면서 눈에 띤 군것질거리. 큼직한 콩을 삶아 파는데 맛이 어떤지 궁금했다. 일단 눈에 띠는 포장마차에서 가장 작은 단위로 주문해 봤다. 콩은 '풋나빗'이라고 부른단다. 국물은 '숨풀'이라던가. 콩을 입에 넣고 씹어봤다. 맛은? 걍 콩맛이다. 국물은 콩을 삶은 물에 약간의 향신료와 소금을 첨가했다. 이거 먹고 나니 그런대로 배도 찼다. 얼마였는지 기억 안나지만 기억나는건 조낸 값이 쌌다는 것.
먹는 장면을 주인에게 부탁해서 한 장 찍었다.
어느정도 시장기가 달래지자 나는 호텔 찾아내기 전 한참을 헤맸던 거리를 지나 올드시티로 갔다.
성채와
살라딘의 동상을 지나
알 하미디야 수크로 들어갔다. 작은 사원이 있는지 미나레가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도 많고 무척 활기가 있어 보인다. 관광객이 바글거리는 다른 수크와 달리 현지인들로 넘쳐난다.
이 수크의 끝에는 도시의 가장 큰 볼거리인 우야마드 사원이 있다.
우야마드 모스크의 미나레 중 하나가 보인다.
원래 있던 주피터 신전 자리에 있던 성당세었고 이를 다시 개조해 AD705년에 모스크로 개조했다고 한다. 이슬람교가 600년대 후반에 세워졌으니 시기로 보자면 비교적 회교태동 초창기 사원에 속하는 셈이다.
원래 있던 성당은 어떻게 생겼을까. 외관으로 봐서는 전형적인 모스크의 건축형태만을 보이고 있는데... 궁금하다. 입구도 무척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다짜고짜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표를 사오란다.
사원 한쪽 귀퉁이에서 티킷오피스가 있단다.
이 곳에서 표를 제공하는 노인의 옷차림이 우아해 보이길래 공손하게 허락을 구한 뒤 한 장 찍었다. 나이가 들면 사람 찍기를 좋아하게 된다는데 내가 그런가보다. 전통의상을 입은 노인들을 보면 왜 그리도 카메라에 담고싶은지 모르겠다. 저녁이라 흔들리는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탓에 좋은 모델 후진 사진.
표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모스크다. 안으로 들어가면 지붕이 없고 사각담벼락 맞은편으로는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침 예배시간이었다.
나는 그저 뒤쪽에서 그들의 예배 모습을 이방인의 입장으로 쳐다 보았지만 역시 경건한 모습에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동안 터키와 이집트에서 본 내부와는 좀 다른 모습이 보인다. 터키와 이집트에서 본 유명 모스크에는 가운데 어마어마한 샹들리에가 있지만 이 곳 시리아에서 처음으로 만난 모스크에는 중앙의 거대 샹들리에가 없다.
이 곳 우야마드 모스크에는 명장 살라딘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왼쪽에 보이는 파란 곳이 살라딘의 무덤이다. 살라딘은 십자군을 상대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명장으로 시리아는 물론 아립인들 모두에게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 모스크를 떠받치는 기둥이 코린트식인데 이것이 주피터신전터의 흔적인듯하다.
바닥에 깔린 카펫
대리석에 새겨진 쿠란
예배당 바깥쪽 경내 광장.어둠이 내린 뒤 조명으로 인해 더욱 환상적인 느낌이 든다. 사원 한쪽에 세워진 사각 미나레가 인상적이다. 거의 원형 미나레만 보다 사각 미나레를 보니 이색적으로 느껴지지만 이 곳 시리아와 레바논에서는 심심찮게 보게 되는 형태다.
어마어마하고도 아름다운 이 사원의 모습에 넋을 놓고 보다가도 가급적 오늘중 올드시티 모두를 보려는 욕심에
이 곳을 횡단해 보기 보다는 전체를 거의 한 곳에서 둘러보고 나왔지만
뒤늦게 이 곳 한가운데 황금모자이크가 있다고 하는 론니의 설명을 접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고 나왔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사원 자체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나로선 이 사원을 보았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사원을 나가면서 보는 출구 장식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비길 바가 없었다.
사원을 나와 이미 찍었던 미나레를 조명받은 모습에 자극받아 또 한 번 찍고
이번에는 시장으로 들어갔다. 보기만 해도 휘환한 느낌의 금시장.
향신료와 견과류 등을 파는 가게
식료품과 향신료를 주로 파는 골목
시각적으로도 뛰어난 파스타
견과류와 식료품을 파는 가게. 불가사리도 먹는걸까?
한 펠라페 가게에서 미리 썰어 놓은 토마토와 오이가 예술에 가까와 무척 신기하다.
되뇌르케밥 가게에서 손님을 맞는 소년. 능숙한 손놀림과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가 어찌나 노련하던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 역시 이색적으로 보였다.
생과일주스 가게. 이 곳에서 혼합 주스를 한 컵 마셔 보았다.
완전히 걸쭉한 원액인데 맛이 아주 좋다. 이걸 한 컵 먹으며 바깥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었다. 맛도 맛이지만 먹고 나니 한끼를 먹은 것 같다. 결국 이거 한 컵 때문에 저녁식사를 건너뛰게 되더나는...
론니에 나온 올드시티 지도는 대개 정확했다. 지도에 나온 곳들을 모두 돌아보고 나서 이 번엔 외곽쪽으로 좀 더 깊숙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남들 같으면 으슥하고 조명도 없는 뒷골목은 안갈테지만 이런 곳을 빼놓지 않고 꼭 가보는 이유는 이들의 순수한 삶의 모습을 일부나마 볼 수 있기때문이다.
우야마드 모스크의 뒤쪽으론 아무래도 으슥하긴 하지만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은 좀 더 깊숙한 골목으로 나를 인도했다.
이 곳은 서양의 기타를 닮은 오드라는 악기를 파는 악기상이었다. 이 곳을 지나다 보니 젊은이 셋이서 노인이 연주하는 오드를 흥겹게 즐기고 있었다. 아랍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는 여기 껴서 같이 어울려 보고 싶었다. 게다가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네와도 꼭 대화를 나눠 보고싶었다. 이집트에서부터 회교도 여자와는 눈도 마주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때문에 왠지 하지 말라는 짓은 더욱 더 해보고 싶었고 게다가 안에 있는 히잡을 쓴 여인네가 잠깐 화장실을 가는건지 악기점을 나오는데 무척 귀엽게 생겨서 더더군다나 더 꼽살을 껴보고 싶었다.
나도 여기 껴서 노래를 같이 들어도 될까요? 했더니 한 젊은이가 히잡을 쓴 채 밖으로 나간 처자의 자리를 내준다. 시치미 뚝 떼고 염치불구 털썩 앉았다. 곧 의자 하나를 더 내왔다. 노인의 연주와 노래는 내가 그동안 듣던 아랍 음악과는 약간 풍이 다르게 느껴졌지만 특유의 창법은 아랍 전통의 그것 그대로였다. 조금 노래를 듣다 보니 좀 아까 나갔던 히잡의 처자가 되돌아와 내 어깨를 탁 하고 한 대 친다. 의외였다. 회교도 여자와의 생각지도 않았던 신체접촉까지... 우와... 놀라운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교국이 아니라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일이지만 여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넘 순진한건가? 그 뒤로 노인의 노래와 연주를 들으며 나도 어깨를 들썩였지만 옆에 앉은 이 처자는 남정네(특히 이방인)와의 어깨가 닿는 것에 대하여 그리 개의치 않는지 수시로 내 어깨와 부딛혔다. 거 참 이상하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 일이 단지 회교도라는 이유로 짜릿하게 느껴지니. ㅡ,.ㅡ; 아래의 사진은 연주와 노래를 선사한 노인.
한참을 이들과 섞여 음악을 듣다 보니 나 스스로 느껴지는 뻘주미네이션 때문에 내 소개를 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데 제3세계 음악도 무척 즐겨 듣는다. 내가 가진 음반 15장이 아랍음악 음반이다. 지금도 무척 즐겨듣고 있는데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노래를 들으니 너무나도 행복하다. 아랍음악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이해도 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느낄 줄은 안다"고 했더니 그들은 한층 내게 호감을 가져주는 것 같았다.
거의 한시간동안 노래와 연주를 즐기고 나서 기념촬영도 함께 했다.
좌로부터 암자드, 룰라 그리고 라시드. 암자드는 독일에서 엔지니어를 하고 있는데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와서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고 했다. 가운데는 나를 흥분시킨 처자인 룰라. 암자드 못지 않게 영어회화가 유창한 그녀는 아동보호기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똑부러지는 말솜씨로 인해 그녀가 똑똑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오른쪽 라시드는 시리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시리아에서 회사를 다니는 중산층의 청년이었다.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내게 암자드는 카페 하나를 추천해 주었고 나는 그 곳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세사람 모두 흔쾌히 함께 가기로 했다.
가다 말고 암자드가 가게방에 들어가 자기가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라며 사갖고 나온 물고기 모양의... 뭐라고 해야되나 캔디? 과자? 검처럼 쫄깃한게 둘 다 아닌데... 어쨌든 전혀 낯선 맛은 아니었다. 분명 어려서 먹어본 촌스러운 맛이었다. 이게 뭐냐고 라시드에게 물었더니 맥없이 대답한다. "생선" 너무나도 정확한 이 답변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ㅡ,.ㅡ; 룰라는 독일로 떠난 암자드를 본지 2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좋은 친구라며 자랑을 하면서도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도대체 믿으려 들지 않는다면서 암자드는 골아픈 친구라고 말한다. 내가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했더니 나를 한동안 빤히 쳐다 보더니 그런 너도 똑같겠구나 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믿는다고요.
이 곳이 바로 암자드가 이야기했던 바로 그 카페다.
이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상상도 못해본 풍경에 무척 놀랐다.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실내를 압도하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타 종교에 대하여 폐쇄적일 줄만 알았던 아랍인들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라니... 에구에구머니나...
서기 600년경 회교라는 신흥 종교가 생긴 이래 유대인들의 교만한 선민사상과 십자군의 침략에 시달렸던 그들이 바로 이 날 다마스쿠스의 한 카페 안에 흘러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여기에는 내 보기에 무슬림 외에는 나를 빼곤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개방적이고 이방인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다. 오히려 서방세계나 우리 한국인들이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람들 생각하기에 중동지역은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저 언론매체에 노출되었을 때는 이스라엘과의 분쟁과 서방언론에 의한 부정적 이미지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곳은 절대 위험한 곳이 아니며 이 곳 사람들은 절대 이방인에 적대적이지 않고 그 반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 곳 사람들은 오히려 한반도에 대하여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북한 출신인지 남한 출신인지를 반드시 물어본다. 오늘 만난 이들도 한국은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한반도가 언론에 노출되고 있는 것처럼 항상 분쟁이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에 대한 공격이 거의 없다고 했더니 의외이거나 못믿겠다는 반응이었다. 서로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무지할 수가 있는지 의아하다.
암자드는 나와 함께 맥주를 마셨고 룰라는 코코아를, 라시드는 홍차를 마셨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암자드에게 물었다. 같은 회교도이면서 알콜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안마시는 사람도 있고, 같은 회교도이면서 부르카를 쓰는 처자도, 차도르를 쓰는 여자도, 히잡을 쓰는 여자도, 아무것도 쓰지 않는 여자도 있는데 왜 그런지를 물었다. 대답은 무척 단순했다. 이 것은 얼만만큼 신앙생활이 Orthodox한지를 놓고 이야기하면 설명이 될거라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종파가 다르다거나 국적에 따라 신앙생활의 방식이 다르다는 답변이나 뭐 그런 비스므리한 답변이 나올 줄 알았다. 그리고 속세의 법 못지 않게 회교율법이 이들의 삶을 강제하는줄 알았던 나는 그런 질문을 한 자체가 무척 부끄러워졌다. 이 당연한 답변을 할 질문을 바보스럽게 왜 했단 말인가. 그만큼 내가 그들에게 잘못된 선입감을 만들어 놓고 무척 폐쇄적일거라는 엉뚱한 지식(?)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 것인가. 그러니 이들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에 놀랄 수밖에...
나는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준 암자드가 무척 고맙다. 그러나 암자드는 나를 다시 한 번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날보고 이스라엘은 다녀 왔는지를 물었다. 나는 가보질 않았으니 당연히 안가봤다고 대답했다. 왜 안가보았느냐는 질문에는 적이 당황했다. 이만큼 개방적인 이들이지만 그들에게 적대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나의 방문에 대하여는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을 돌고 하루라도 남으면 예루살렘 정도만이라도 들러보고싶었다. 촉박한 나의 일정으론 그게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었다. 가고 싶다는 말은 빼고 시간상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에 들러보기도 바쁘다고 말했다. 대답하기 민감해하는 나의 눈치를 본건지 몰라도 그 이상의 질문은 안했다. 내가 부끄러운 이유는 그들은 내게 마음을 열고 대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하여도 관대할 그들을 과소평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극히 적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나의 답변이 그들에게 불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솔직한 답변을 할 수 없고 대충 얼버무렸다는 점 때문이었다. 역시 그들에 대하여 내가 마음을 열지 못했단 반증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신앙의 대상이 같으니만큼 가톨릭교도(발바닥만 문턱을 다니는 사이비인 나를 신자로 말하기 좀 민망한 것도 사실이지만)인 나나 무슬림인 너희들이나 신앙의 대상은 같으니 형제로 보아야 맞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던 것에는 그들도 동의했다.
그들과 이메일 주소를 교환한 나는 서로 사진 교환을(룰라도 갖고 있던 카메라로 여러장의 사진을 함께 찍었다) 약속하고 헤어졌다. 나는 좋은 친구가 되어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호텔로 돌아오니 회교도로 개종한 그 노인과 뉴질랜드인 청년은 그 뒤로도 계속 이 곳에 있었는지 한참 대화중이었다. 뉴질랜드 청년은 자그마한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내가 올드시티에서 돌아왔을 때 노인은 무언가 문자 그래픽을 이리저리 수정하고 있었다. 이게 뭐냐고물었더니 짐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인데 회사 로고를 디자인중이란다. 이 독일 노인은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지만 하는 이야기마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통찰력에 실상 나는 은근히 놀랐다. 그가 한 여러 이야기 중 하나는 한국인 개신교도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되었던 한국의 개신교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그곳에서의 그들이 했던 일, 납치과정, 그리고 엄청난 몸값을 지불하고서야 풀려난 상황까지 정확하게 알고 하는 이야기에는 나도 혀를 내둘렀다. 곧이어 이어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의 개신교도들만큼 열성적인 종교인들이 없다. 선교단을 파견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 그들은 기독교가 금지되어 있는 나라에도 최소한 30명 이상이 상주하며 전교를 하는데 이건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며 전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무슬림들과 합승한 택시 안에서 영어로 된 성경을 30분동안 쉬지 않고 소리내어 읽어대서 분노를 살만큼 열성적인 이들을 내 기준에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비난하는 투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그냥 이야기를 들어넘기기만 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개신교도가 모두 그런것은 아니며 많은 같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그들과 공감하지 못한 분위기인만큼 그들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근성으로 보는데는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은 "물론 그걸 내가 모르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있었던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톨릭 교도였다가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된 계기도 이야기하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야그인 즉슨
"기독교도들(무론 구교와 개신교 모두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었겠지)은 특정한 때 모여 제한 되고 밀폐된 된 공간 내에서 자기들끼리만 모여 기도를 한다. 신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데 왜 꼭 예배당에 자기들만 모여서 기도를 하는지 이해를 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가톨릭은 교황으로부터 신앙지침을 받은 추기경과 주교 그리고 교구장과 신부들을 통해 전달하고 신자들은 이 것을 지침삼아 신앙생활을 한다. 신과의 만남에 왜 이렇게 단계가 많고 간접적인 대화를 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반면 회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신과 인간 사이에 걸림돌이 되거나 매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또는 존재)가 없다. 나는 회교의 이러한 사상에 매료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무슬림이 되었다"
고 말한다. 참으로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이 노인 참으로 재미가 있다. 이른 새벽 한참 자고 있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만 "앗차 기도할 시간이네" 하더니 중얼거리며 기도 하는걸 들었다. 희안한건 무심결에 나왔을 이 말이 독일어가 아닌 영어였더라는... ^^
그러고 저러고 고단하면 코를 고는 습관이 있는 나의 코곯이가 그들의 잠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이 곳에서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사이다 루카야 모스크(Saydda Luqayya Mosque)를 보지 못하고 이 곳을 떠났다는 점이다. 우마야드 바로 옆에 있는 사원이라고 했는데 여기저기 구경하느라고 잊은 탓이었다. 이 사원은 드물게도 순니파 사원이 아닌 시아파 사원이라고 했는데 그 건축양식과 내부장식이 매우 독특하고 화려하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걸 놓친 것이 무척 아쉽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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