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여행/클래식음악

스테파노여 편안히 잠드소서.

코렐리 2008. 4. 3. 19:20

또 하나의 별이 떨어졌다.

지난 3월 3일 Giuseppe Di Stefano 가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최근 직장에서의 여러가지 변화와 바쁜 일정으로 다른데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탓에 그 소식을 접한 것은 보름 이상이 지나서였다.

파바로티의 사망소식은 그토록 요란했건만 이 거장의 부음은 어찌 그리도 소박했는지 마음이 아플 정도다.

자세한 소식을 알고싶어 인터넷을 뒤져봐도 강도상해를 당한 그가 식물인간 상태에 있다가 그 날 사망했다는 이야기 외에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5명의 테너 중 마지막 생존자가 떠났지만 나는 그가 그동안 살아있다는 사실 조차도 잊었고 그의 죽음이 생소할 정도로 그에 관한 언론의 관심은 전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성기를 지나 보내고 칩거하던 스테파노가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던 칼라스를 찾아 함께 했던 1974년 11월 삿뽀로에서의 마지막 공연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그이고 보면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되기는 한다. 하지만 한 거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여 가슴아파 하는 것은 나뿐이 아니지 않은가.  

 

그는 오페라 무대에서 항상 마리아 칼라스와 듀엣으로 등장했고 오늘날 남아 있는 토스카, 리골레토,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 위대한 녹음들은 그녀와 함께였다. 두 사람이 듀엣이 아닌 경우는 노르마(코렐리, 탈리아비니)와 카르멘(겟다) 등 소수일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밀접했다. 사실 오페라 무대에서 테너가 발산하는 카리스마는 대부분 무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하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 유시 뵤를링과 징카 밀라노프, 마리오 델 모나코와 레나타 테발디 ,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조안 서덜랜드 등 사람들의 인식속에 강하게 박혀 있는 듀엣들 중 소프라노의 카리스마에 눌려 테너가 상대적으로 외소해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테파노와 칼라스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는 조금 다른데로 흐르게 된다.

즉, 스테파노는 칼라스의 엄청난 빛에 가려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 알려진 사실이 그러한 생각을 갖게 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소프라노인 칼라스가 드라마티코이고 테너였던 스테파노가 리리코였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칼라스의 목소리를 곱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목소리는 무척 못생겼고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극적인 연기와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은 물론 토해내듯 뿜던 그녀의 목소리는 기량에 시너지 효과까지 불어넣어 오늘날 전설로까지 일컬어진다. 마구 쏟아내는 듯한 칼라스의 목소리에 비해 뱃속으로부터 성대를 통해 두성공명 후 나간 목소리를 살포시 다시 모아들이는 듯한 서정적이고 감미롭기까지 한 스테파노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눌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수 가 없는 것이 결국 그러한 결과까지 초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칼라스에 비해 작은 역량을 가진 그가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불운한 명테너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가 남긴 엘피음반들은 가장 비싼 것들에 속한다. 매니아들의 표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니아들이 그의 진가를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나폴리 민요에 있어서는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폴리 민요들은 서정성과 함께 정열까지도 강렬하게 녹아들어야 하는데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가진 스테파노는 여기에 완벽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그만의 영역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특히 그가 부르는 라 바르치르니사를 들으면 천상에서 느껴지는 듯한 표현하기 힘든 감동에 젖게 되곤 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감흥에 젖고 그의 음반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고 애쓰던 나도 잊고 지내던 그의 존재감. 이것 조차도 안타까와진다.

스테파노. 그는 쓸쓸히 떠났어도 그의 이름은 음악사의 거대한 족적을 남긴데다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음악팬들이 그를 기리니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니 결코 쓸쓸하다고는 말하지 말지어다.

스테파노여 이제는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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