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7-08 이집트

이집트여행5(아스완)

코렐리 2008. 1. 31. 10:19

2008년 1월 2일(수)

꼭두 새벽에 일어난 우리는 서둘러 씻고 2시 30분에 호텔앞으로 나가 약속된 픽업서비스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택시 기사가 나타나지 않자 왠지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새벽 3시에 콘보이가 출발하는것으로 알고(나중에 알고 보니 콘보이 출발시간은 새벽 4시였다)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3시가 다 되어도 데리러 오기로 했던 택시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화가 났다. 돈도 안생기는 사기는 도대체 왜 친걸까. 우리는 기다리다 못해 택시를 타고 아스완역으로 가보았다. 역 주변에 가면 버스에 승차하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아 즉석에서 신청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보려고 일단 그리로 가보기로 한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아스완역 가까운 곳 나일강가에는 많은 대형버스들이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잠까지 설친 이 상태에서 그냥 호텔로 다시 돌아가 오지도 않을 잠을 청하기도 억울한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현장에서 투어를 수배해 보려고 했다. 여기저기 서있는 버스 기사들에게 물어 보았다. 사전에 관광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도 지금 남는 자리에 등록이 가능한지를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남는 자리가 있다면 그들은 부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옳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만큼 조급해져 있었다. 명단을 들고 체크중인 한 여행사 직원에게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을 듣고 계속 거절당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행사마다, 차량마다 출발인원과 명단이 하루 전에 콘보이에 통보되어야 한다"고 한다. "사전에 예약한 것이 없다면 명단이 통보되지 않았으니 내가 돕고싶어도 도울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접촉했던 사람들은 여권이나 이름 하나 확인도 안했으니 사기였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은데 예약금을 달라는 요구도 없었고 도대체 돈도 안되는 사기는 왜친건지 화를 내기 보다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여명도 없는 꼭두새벽에 이게 무슨 원숭이쑈냐? ㅜㅜ 너무나도 허무했다. 어제 부지런히 여행사를 찾아 아부심벨투어부터 예약을 했어야 했다. 막상 포기하고 나니 담담해 지기는 했지만 어쨋든 여행중 금쪽같은 휴식시간을 사기당했으니... 쩝! 우리는 할 수 없이 호텔로 돌아가 더 자기로 했다. 일행 모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침에 일어나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했다. 식당에서 내다 보는 나일강의 풍경이 작살이었다. 아침식사는 일반적인것들이었지만 무척 다양한 메뉴로 구성되어 있고 맛도 좋다.

 

아침을 먹고 나서 호텔을 나선 우리는 나일강 서안과 섬들을 둘러보기 위해 필요한 펠루카(요트)를 대절하러 아스완 시내 방향으로 걸었다. 호텔에서 나와 나일강가로 나오니 많은 선주들이 접근해 온다. 때로는 무시하며 몇 번을 지나쳐 멀찍이서도 우리를 봐왔을 듯한 한 선주의 질문에 심드렁한척 하며 얼마인지를 물었다. 행선지를 묻길래 누비아마을, 암굴분묘군, 키치나섬, 엘레판티네섬이라고 대답했다. 400파운드를 부른다. 놀구 있넹. 외면해 버렸더니 따라 다니며 얼마를 원하느냔다. 외면하고 다른 선주들의 접촉을 기대하며 그냥 강가를 걸었다. 100파운드까지는 교섭이 잘 되지만 그 이하가 쉽지 않았다. 적정가 70파운드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렇게 교섭이 되는 선주가 나올 때까지 그냥 걸었다. 그래 봐야 첫 번째로 교섭을 시작했던 장소에서 100미터나 이동했을까. 협상끝에 70파운드에서 조금 더 주기를 원하는 선주를 만났다. 팁을 포함해 75파운드를 주되 그 이상은 안된다고 했더니 선뜻 그러자고 한다.

 

도로에서 강기슭으로 내려가 정박되어 있는 한 요트로 데리고 갔다. 한 누비아인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오자 일어나 판자를 대고 올라 타는 것을 도왔다. 아래 사진의 사공이 바로 배에서 기다리던 사람이다. 나와 협상한 선주도 함께 탔다.

 

대형 유람선 틈바구니에 정박해 있던 요트는 뒤꽁무니의 노를 저어 거대 장애물들을 벗어나

 

닻을 올리자

 

배는 수면을 미끄러져 지그재그로 항해를 시작했다.  

 

요트 위에서 보는 아스완 시내와 섬들은 도로 위에서 봤을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와 협상을 했던 사람은 자기기 소개를 하며 선장의 이름도 소개했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들은 누비아인들이었다. 선주가 "누가 가장 영어를 잘하느냐"고 묻길래 "아주 잘하는 사람은 없고 고만고만하다"고 했더니 "그러면 누구한테 이야기하면 되겠느냔"다. 조금은 어이가 없는게 그 자신도 영에에는 별 소질이 없는 듯 보이는데 뭘 주제에 영어 잘하는 사람을 찾는지... "내게 이야기 하라"고 했더니 이 아저씨 암굴분묘군과 누비아 마을을 가리키며 "That and that same"이라며 어법도 맞지 않고 무슨 소린지도 알아들을 수 없는 희안한 영어를 했다.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같은 소리만 반복한다. 뭔가 수작을 걸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누비안빌리지와 암굴분묘군을 가기 위한 정박지는 한 곳이니까 두 군데 유적지를 보기 위해 배를 떠나거든 다 본 뒤에 같은 곳으로 되돌아 오라는 소리였다.(그것도 하나 표현 못하는 주제에 영어 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 ㅡ,.ㅡ 어이없음) 그 아자씨 그러더니 아주 우끼는 소리를 한다. "네가 말한 세 군데 를 가기 위해 정박하는 곳은 두 군데라"며 능청을 떨었다. 드디어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한 수작에 들어간 것이다. "내가 언제 세군데라고 했나? 난 분명히 네 군데라고 이야기했고 당신도 이미 들었다"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그 아자씨 왈"당신은 내게 세 군데만을 이야기했다. 네 군데 돌자면 돈을 더 내야 한다"며 예상했던 수법을 드러냈다. 나는 할 말을 못하게 입을 막았다. "당신이 정 그렇게 주장한다면 난 당신과는 거래 안한다. 원래 위치로 되돌아 가든지 아니면 첫번째 정박지에서 우리를 내려달라. 대신 돈은 한 푼도 줄 수없다"고 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물론 곤란해질 수 있었다. 그럴리도 없지만 만에 하나 출발지도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적잖은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된다. 또, 첫번째 정박지는 강건너편이라 손님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펠루카는 없다. 그러나 찾자면 방법이야 없으랴. 문제는 상당 거리를 이미 항해해온 그들의 노동력은 공짜로 돌아갈 판이니 똥줄이 타면 네놈들이 탈 일이다. 그래, 맞다 너희들도 이곳의 소수민족이지만 역시 이집션이라는 사실을 내가 간과했나부다. 결국 그는 장난질을 포기했다. 이 쒸 죽을라구...!

 

누비안빌리지 입구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누비아 마을이었다. 이 곳에 소형 트럭이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며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교통편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트럭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트럭이 대기중인 곳은 우리가 내린 곳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방향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상관 없었다. 우리는 그냥 마을 안쪽으로 걸어갔다. 걸으며 다녀야 천천히 볼수 있으니 그게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누비아인들의 집은 자기 집을 예쁘게 채색하길 좋아했다.

 

벽은 물론 창문이나

 

대문도 채색하기를 좋아했다.

 

정수기 역할을 하는 항아리.

 

이 집은 대문이 없어 안이 대충 들여다 보았다.

 

그림같은 마을 골목을 돌아다니다 낙타가 지나길래 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피사제를 칩에 잡아 넣었다.

 

마을은 대체로 이런 모습이었다. 이 곳은 마을 초입으로 더 들어가야 큰 마을 을 볼 수 있었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 곳을 샅샅이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암굴분묘군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마을 뒤쪽으로 나오니 멀찌감치 큰마을 이 보였다. 역시나 파란색과 갈색을 좋아하는지 그 새깔만으로 집들을 채색한 것이 여기서도 보인다.

 

여기서 모래언덕을 오르면 암굴분묘군이다. 경사진 모래언덕을 신발속에 모래까지 퍼담으며 올라 갔더니 매표소는 저 아래 까마득한 계단 아래에 있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던가. 그런데 그노무 계단도 500미터정도는 더 가야 있었다. 검표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기가 가서 표를 사올테니 돈을 자기에게 달라는거다. 이 사람이 검표원인지 확신도 없는데다, 표값을 가지고 장난칠 가능성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다녀오면 보나마나 박시시를 요구할게 뻔했다. 그게 싫어서 내가 간다. 말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이 번엔 급경사 모래언덕 아래로 모래 족욕을 하며 뛰어서 내려가 표를 샀다. 신발 속에 차지하고 있는 모래의 공간이 주인공인 내 발보다 더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았다. 신발 속의 객을 내쫓고 표를 사서 낑낑거리고 계단을 다시 올라 오니 이랗게 생긴 곳에 다다랐다. 표를 나눠주고 돌아보기 시작했다.

펌 : 뜀

 

몇 몇 곳이 이렇게 잠겨져 있었다. 입장료를 받고 들여보내 놓고는 여길 왜 잠갔을까 의아했다. 그 이유를 조금 후에 알게 되었다.

 

귀족들의 무덤은 크기도, 모양새도 무척 다양했다. 

 

후에 보게될 왕가의 무덤과는 비교도 안되게 소박했다.

 

콥트교의 벽화는 뜬금 없이 여기에 왜 있을까나.

 

관광객도 우리 외에는 거의 없었다.  

 

검표원이 일일이 따라다니며 일부 잠겨진 문을 열어주며 친절한 척은 혼자서 다한다(아래 사진의 주인공). 볼만한 벽화나 부조가 있는 곳들의 시건장치는 왜 있을까? 울타리도 없어 야간에 아무나 접근이 가능한 외진 이곳에 문을 잠가 놓고 외부인 출입에 의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것들이 왜 오픈된 시간에 잠겨 있을까. 관리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잠가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훔쳐갈 것도 없는 이곳을 대낮에 일부러 잠가둘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검표원들은 이를 악용하여 일일이 잠가놓고 있다가 뜸하게 오는 관광객들에게 박시시를 뜯어내기 위한 수작을 하는 것으로 나름 판단된다.

 

가이드도 아니면서 '여기에 가면 뭐가 있고 더 가면 뭐가 있는데 내가 문을 열어 줘야만 볼 수 있다'는 졸라 친절한(?) 가이드풍의 안내는 반갑지도 않게 박시시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더 볼게 있다며 우리를 잡아 끄는 걸 무시하고 볼거 다봤다며 내려간다고 했더니 박시시를 달라고 했다. 괴씸하지만 귀찮아서 3파운드를 주었더니 적다며 더달란다. 양심이라곤 눈꼽 속의 박테리아 발톱만큼도 없으신 인간님.  인심쓰고 안줄걸 줬더니. 예라~ 이! 분아.

 

이 곳이 귀족 암굴분묘군에서 마지막으로 본 곳이다.

 

이 곳을 내려 오다가 본 낙타

 

다시 보트를 탔다.

 

다시 멀지 않은 곳을 이동하여 하선한 곳은 키치나섬.

 

식민지 시절 한 영국군 장교 하나가 여기 저기서 희귀 식물을 채집해다 자기 영지였던 이 섬에 심은 것이 오늘날 식물원처럼 운영된다고 한다.

 

내 눈에는 어느 것이 희귀 식물인지도 모르고 걍 비스므리한거 몇 가지 갖다 자그마한 이 섬에 심었을 뿐이다. 그냥 열대정원이다. 잠시 쉬어 가기에 좋다. 우리는 코스에 식당도 없고 해서 과일과 빵을 점심거리로 가져 갔었다. 이 곳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잠시 쉰 뒤 배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섬의 꽁무니에 내려 주더니 머리로 와서 타란다. 길쭉한 섬이라 그게 낫다.

 

왼쪽의 아저씨는 묵묵히 펠루카(요트)만 조종했고 오른쪽의 아저씨가 우리와 교섭하고 안내한 사람인데 호시탐탐 돈 더 받을 생각만 하는 골아픈 사람이다.

 

 

엘레판티네 섬으로 이동하던 중 셀카 한 컷.

 

우리가 묵으려 했던 올드 소피텔 카타락트. 방을 얻는데 실패하고 여기서 보니 왠지 위화감이 드는걸?

 

키치나 섬으로부터 온 펠루카는 엘레판티네 섬 남단으로 와서 내려 준다.

 

요트에서 내리니 왜가린지 뭔지 말라깽이 새 한마리가 여유적적 거닐기에 카메라에 담았다.

 

섬 안에 아스완박물관(Mathaf Aswan)이라는 조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이 곳도 방문했다. 관광객이 가진 돈의 단위가 대부분 큰 단위의 돈이고 잔돈을 맞추지 못할 확률이 높아 매표소에서 이따금 악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잔돈이 없다며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 여기서 또 그 수법을 쓰넹? 그런다고 그냥 넘어가냐? 미워서라도 잔 돈 한푼까지 표 뒷장에 확인서 받아 두었다가 나갈 때 철저히 찾아간다.

 

유물은 대부분 누비아인들의 것들로

 

원시적 냄새가 많이 나지만 

 

미이라를 만들고 장례를 하는 것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드리워진 커튼때문에 어두웠는데 한 누비아인 관리자가 커튼을 살짝 거두어 주어서 이 사진을 어둠침침하게나마 찍을 수 있었다. 박시시를 요구할 줄 알았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박시시 요구는 없었다.

 

이 곳을 나와 바로 뒤쪽으로 넘어가면 폐허만 남은 크눔신전(Ma'bad Knuum)이 있어 둘러 보았다. 크눔 신은 양의 머리를 한 신.

 

거의 폐허만 남다시피 한 이 신전에 그나마 볼거리라고는 앙상하게 남은 기둥 두 뿌리.

 

이 곳을 모두 보고 나서 펠루카가 있는 곳으로 돌아 왔다. 나일미터를 봐야 되는데 이건 도대체 어디에 있는건지 한참을 헤맸다. 박물관에서 가까운건 확실한데... 뜀도령이 찾아냈다. 가봤다.

 

바로 이 곳이다. 박물관으로부터 배타기 위해 내려가는 계단을 끝까지 가면 오른 쪽으로 돌아 계단 입구가 보인다. 계단 입구는 바로 물로 연결되어 있어 뒤쪽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 그리로 돌아서 나일미터가 설치된 계단을 찾아내고 우리는 어지간히도 즐거워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눈금이 바로 나일미터다. 비가 오면 물이 불고 이 계단을 타고 계속 물이 불어 오른다. 나일강 수면에 닿은 눈금이 바로 나일강 수위가 된다. 고대에도 이런 것을 설치하고 과학적 고민했으니 대단하다. 여기까지 확인한 우리는 아스완 시내에서 볼 것은 다 보았다고 판단했다. 펠루카에 올라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당초 이 펠루카를 대절할 때의 조건은 4시간동안 4군데를 돌아보는데 있어 정박 장소는 모두 3군데였다. 펠루카를 다시 탔을 때는 이미 약속된 4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난만큼 더 줄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해두었다. 도착해서 약속된 대절료 70파운드와 팁 5파운드 글고 초과료 10파운드를 주었다. 그래더니 어느정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이 배를 떠나기 전에 배에 쓰여져 있는 이 문구를 찍어둔 이유가 있다. 이 배의 주인은 이 문구와는 전혀 다르게 사람을 정말 불편하게 굴었다. 호시탐탐 돈을 올려받을 궁리. 그래놓고 긴장을 풀라고? 긴장 풀었다간 사기나 바가지 쓰기 꼭알맞지. 우리는 뭍으로 나오자 내일의 아부심벨투어를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를 찾아다녔다. 한 군데 찾아낸 곳은 미니버스를 단독으로 운행할 예정이며 1인당 140파운드를 불렀다. 택시기사들이 말하는 것들보다 비싸다. 생각해 보고 다시 오든지 하겠노라 했더니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단다. 예약하려면 30분 남았으니 그 안에 오라는거였다. 큰버스에 여럿이 타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이 되었고 바로 그 미니버스라는 말이 거슬렸다. 두번째 찾아낸 곳은 문을 이미 닫았다.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군데 더 가보고 역시 없으면 아까 있었던 미니버스 140파운드짜리를 예약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서둘러야 했다. 잠긴 문을 확인하고 다른 여행사로 발길을 돌리려는 바로 그 때 바로 앞 카페트가게 주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여행사 직원을 불러 주기라도 할 참인가싶어 아부심벨투어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도 아부심벨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1인당 110파운드라고 했다. 역시 미니버스 단독운행이라고 하지만 아까보단 쌌다. 우리는 생각해 보고 오겠노라고 하고는 생각해볼 시간동안 아스완 역에 가서 1월 4일에 룩소르로부터 카이로로 갈 침대칸 열차를 구입하러 아스완 역으로 갔다. 일반 차표는 전산화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침대칸 장거리열차는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룩소르에서 모월모일모시에 카이로행 침대칸 5명의 표를 달라고 했다. 한참을 꿈지럭거리고 무슨 리스트를 들척거리는 것 같더니 어디론가 전화한다. 아마도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어딘가 중앙 통제소가 있어 자리가 있는지를 한 곳에서 정리하는 것 같았다. 전화기를 몇 번이고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담당자가 밥먹으러 가서 돌아오지를 않았다"는거다. 어이가 없었다. 그 때는 4시가 이제 갓 넘은 시간이었다. 도대체 점심을 먹는다는건지 저녁을 먹는다는건지. 결국 표를 얻는데는 정확히 두 시간이 걸렸다. 외국에서 일처리가 느려 터져서 답답한게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이 번엔 해도해도 너무 심했다. 그렇다고 이 날은 일정대로 모두 돌았으니 그리 급할 것은 없었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짜증내는 일 한 번 없었다. 하도 일처리가 느려 터져서 우리끼리 얼마나 늦는지 함 보자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두시간만에 표를 얻고는 굉장한 체험을 했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다시 카펫 가게로 돌아왔다. 주인장과 얘기는 잘 되어 가는듯했다. 나는 "지금 예약금조로 100불을 주고 나머지는 내일 여행을 완료한 뒤에 주겠다"고 했더니 어림 없다며 전액을 달란다. 부쩍 의심이 들었다. 그러더니 협상안으로 "400파운드를 먼저 내고 나머지 110파운드를 내일 내"란다. 어이가 없었다. 영수증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거 없단다. 세상에 이집션만큼 못믿을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들을 신용할리 만무하잖은가. 막말로 다음날 난 당신들을 모른다고 하면 그걸로 우린 당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 그러잖아도 우린 이미 한 번 당한 경험(?)이 있었다. "당신을 어떻게 믿느냐"고 했더니 대뜸 "이집션은 신용으로 거래한다(어이구 그러셔?) 믿지 못하면 거래는 없다"며 불쾌한 기색을 내며 벌떡 일어나 자기 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이제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로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아스완에 온 사람 치고 아부심벨을 안보고 가는 바보도 없다는 점도 배짱을 튀기는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은 오늘 받든 내일 받든 하루 차이이고 고객이 돈을 떼어 먹을리는 만무한데 선금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말이다. 게다가 콘보이(관광객 호위대)에 하루전 통보해야 할 우리의 명단을 확인하는 짓은 하지도 않았다. 궁여지책 끝에 손으로 쓴 영수증이라도 받아 둘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다 보니 그새 언제 열었는지 낮에 닫았던 여행사 바로 옆에 Thomas Cook이라는 여행사 겸 환전소가 있었다. 우리가 못본건지 아님 새로 문을 열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이가 없는 것은 우리 다섯명 모두가 못보았다는거였다. 뜀도령 말로는 유럽에선 토머스 쿡이라는 환전소가 엄청 많은데 이 곳에도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나는 내 요구로 마지못해 손으로 영수증을 쓰고 있는 그에게 "환전을 해오겠다"고 했다. 그는 쉰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여행사에선 얼마인지 그거 알아보느라고 그러시지?"라며 치사하다는 듯 말을 흐린다. 내가 보기엔 당신이 치사한 짓을 하려는거 아닌가 의심이 드니 웃기는일이다. 토머스 쿡에서의 프로그램은 비교도 안되게 비쌌다. 입장료와 가이드를 포함한 아부심벨과 아스완 하이댐, 이시스신전, 미완성 오벨리스크 유적을 모두 돌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일인당 자그마치 400파운드(70,000원)나 되었다. 뜀도령이나 내생각이나 같았다. 사기의 냄새가 짙게 나는 무허가 업자에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확실한 곳에 돈을 더 주고 확실하게 예약하자는 거였다. 사기를 당하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부심벨을 못보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카펫 주인은 이 여행사의 참가비를 뻔히 알고 있으니 자기에게 돌아오리라 확신했는지 바같에서 여유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배신했단 소리 듣기 싫어 "이 곳은 1인당 400달러로 당신이 제시하는 값보다 훨씬 비싸지만 믿을 수 있는 영수증을 주니 여기서 예약하겠다"고 했다. 그는 다 잡은 고기를 놓쳤다는 듯 무척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태도가 180도 달라져서는 자기 동업자인 사촌동생에게 전화해서 영수증을 제대로 갖춰서 주겠단다. 없던 영수증이 나와도 뻔한 얘기 아닌가.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더니 다급해진 그는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나는 무시하고 여행사로 들어가 예약을 했다. 비싼 참가비가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확실하지 않은가. 이 인간을 만나지만 않았으면 우리는 처음 들렀던 여행사에서 140파운드짜리를 예약했을 게 틀림없었다. 오히려 이사람 때문에 우리는 저럼한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그는 아쉬워했다. 밉살맞지만 그래도 난 그에게 깨끗한 매너를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곳을 떠나 우리는 아스완역으로 가면서 보아둔 식당으로 가기 위해 이동했다. 가다가 회교사원 하나가 마침 기도시간이 되어 회교도들의 예배를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아래 사진 우측에는 기도를 하는 회교도들의 모습 

 

아스완 역을 나오면 좌측으로 길게 이어진 수크거리는 무척 규모가 컸다. 하지만 물건은 그리 다양하지는 않고 비슷한 물건들만 자주 볼 뿐이었다.

 

엘 마데나 레스토랑. 이 곳이 우리가 찾은 식당이다. 아스완역에서 수크로 들어서서 걷다 보면 얼마 되지 않아 왼쪽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깨끗하고 운치있는 식당이다.

 

왠지 모르게 안쪽의 의자와 장식물들이 붉은색이라 중국식당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분명 이집션 식당이었다.

 

이 곳에서 비둘기요리, 쇠고기(수육같은 육질), 치킨, 이집션셀러드와 쌀밥을 시켜서 먹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모래빵과 찍어먹을 요구르트는 기본으로 나온다. 고추장과 김까지 꺼냈다. 그게 없어도 아주 음식 맛이 좋은 곳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배터지게 먹고 94파운드를 지불했다. 값도 무척 저렴한 편이었다. 비둘기요리(전라도 지방엔 산비둘기요리라는 것이 있는 것으로 안다) 라는 것은 한국에서도 말로만 들어보았지 실제로 먹어보긴 처음이었다.

 

우리는 바깥쪽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으며 수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바로 건너편 찻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슨 회의라도 하는지 번갈아가며 요란하게 한마디씩 하는 모습이 재미 있어 한 컷 담았지만 저녁 시장조명의 희미한 상황에서 흔들려 선명치 못하다. 찍은 여러 사진 중 그나마 덜 흔들린 것 하나를 올려 보았다. 다음날 새벽 3시 전에 일어나 체크아웃 하고 떠날 참이니 호텔로 일찍 돌아가 "아부심벨 투어를 참가할 예정이니 아침식사 포장을 주문하고 이 날은 일찍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