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7-08 이집트

이집트여행2(에스나→룩소르)

코렐리 2008. 1. 18. 16:13

2007년 12월 30일(일)

잠깐 잠들었다가 새벽에 깬 잠은 다시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좁은 공간 안에서 두 사람이 호흡을 하니 금방 실내 공기가 탁해진 때문이었다. 창문은 고정되어 열 수가 없었다. 한동안 객실 출입문을 살짝 열어 두었지만 그러고 잘 수는 없어 다시 닫고는 겨우 잠이 들었다가 화장실 가느라고 밖을 내다 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다시 객실로 들어가 카메라를 들고 나온 나는 먼지낀 지저분한 창문을 통해 아침 햇살을 찍어 보았다. 승객의 안전을 고려해서인지 창문도 열리지 않고 승차문도 단단히 잠겨 열리지 않는 탓이었다. 사막의 모래먼지 때문에 희뿌연 가운데 야자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은 이국에서의 색다른 경험이었다.

 

도착 예정시간인 새벽 다섯시를 이미 넘긴 시각이었지만 상습적으로  연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아직도 멀었겠거니 생각했다. 다시 객실로 돌아간 나는 그 날의 일정을 점검하느라고 일정표와 책자를 뒤져 보았다. 윗칸에서 자는 사람을 깨우지 않기 위해 플래시를 켜고 책자와 일정표를 한참동안 들여다 보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방금 룩소르를 지나친 것 같다'고 하는 말에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다음역에서 차로 30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하차 한 시간 전에 아침식사를 제공한다고 했기에 우리는 객차 담당 웨이터를 믿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전날 확인에도 불구하고 아침식사 제공은 고사하고 기별조차 없었다. 자고 있는 우리 객차 담당 웨이터를 나무랐더니 '식사는 달라고 하면 준다. 하지만 달라고 하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식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웨이터를 추궁해 봐야 별 소득이 될 일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다음 역은 에스나였다. 그러잖아도 일정에 넣자니 룩소르로부터는 넘 멀어 신경을 안썼던 유적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여기도 한 번 들러보자. 우리는 오늘도 일정표를 완전히 뒤집었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달라고 해서 대충 해결하고 남는 것은 가방에 넣었다. 보기만 해도 푸석푸석한 빵에 잼,  치즈, 버터와 절인 올리브 열매 두 개가 전부였다.

 

서둘러 짐을 싸고는 출발하기 전에 흘린 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하차했다. 어지간한 관광객들도 잘 오지 않는 곳이니만큼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정이라 생각하니 만족스러운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예정에 없던 이 날의 이 일정은 그러한 즐거움을 주었다.

 

이 곳에서 택시를 잡으려니 사진에서 보이는 차가 택시란다. 소형 트럭을 개조해 짐칸에 지붕을 얹고 그 안에 타는 것이다. 이 곳은 관광객들도 좀처럼 오지 않는 곳이라 그럴까 우릴 무척 신기한 듯 보았다. 택시를 하나 잡고 룩소르까지의 협상을 하고자 했다. 이 곳에선 영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룩소르' 라는 말과 '파운드'라는 화폐단위만으로도 거래는 가능했다. 나는 공항에서 베를린 호텔까지 30파운드였고 소요시간으로 미루어 거리가 비슷할거라는 생각에 30파운드를 제시했다. 요금협상은 내 생각대로 관철되었다. 10파운드를 더 줄테니 크눔신전을 들렀다가 가자는 말은 통하지가 않았다. 룩소르로 간다는 놈이 크눔신전 얘기는 왜 끄집어 내나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인지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몰려들어 실갱이하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조금 지나니 머플러를 머리에 두른 남자가 와서는 자기가 영어를 할 줄 안다며 문제가 뭐냐고 물었다. 설명을 했더니 크눔 신전을 들러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이유를 물으니 설명은 없고 손사래만 쳤다. 할수 없이 올라탔던 차에서 내려 길을 물어 크눔 신전을 향해 걸었다.

 

지도를 잘 못 판독한 우리는 5분 정도를 엉뚱한 곳으로 걸었다. 바로 근처에 바나나 집하장이 있는지 익지 않은 새파란 바나나를 잔뜩 실은 소형트럭들이 여러대가 출발대기를 하고 있었다. 재미 있는 풍경이라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한 노인이 옆으로 다가와서 능청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포즈를 취했다. 얼떨결에 현지인과 한 컷 찍었다. 

 

 

다시 방향을 제대로 잡아 걷기 시작했다. 지도로 보면 매우 가까와 보였지만 걸어보니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가다 보니 테이크아웃(?) 식당도 보인다. 이집트 전통샐러드와 화덕에 구운 빵이 보인다. 한적한 시골길에 행인도 드문 이 곳에서 장사가 될까 의문스러웠다.

 

나일강을 걸어서 건너 볼 드문 기회도 생겼다. 이 역시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다리 끝에 도달해 보니 에스나 역에서 크눔신전으로 갈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리의 끝은 유람선이 지나갈 수 있도록 끊어져 있고 사진에서 보듯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차량은 다닐 수 없었던게다.

 

길을 건너 미니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그리 멀리 가지 않아 내려준 곳이 크눔신전 입구였다. 역시 관람자는 한 두 명 밖에 없는 한산한 곳이었다. 매표소가 어디 있느냐고 출입구 직원에게 물으니 매표소는 엉뚱하게도 간이 시장을 지나 3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다. 표를 구입하러 나와 진솔이 둘이 가려고 하는데 아까부터 차 안에서 신기한 듯 우리를 지켜보던 두 명의 청소년이 차에서 내린 뒤 계속 따라 붙어 우리 둘이 표사러 가는 길을 따라 붙었다. 속셈이 무엇인지 덜컥 겁이난 나는 일행을 불러 다섯 명이 함께 움직였다. 느덜 갈길로 가라고 하지 그제서야 저희들 갈길로 갔다.

 

어쨋든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했다.  

 

표를 구입한 뒤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매표소 직원은 주변에 서있던 한 노인을 가리키며 따라가 보란다. 그 노인은 코 앞의 회교사원으로 데리고 가 화장실로 안내해 주었다.고맙다고 인사하고 볼 일을 보았다. 일을 보고 나오니 손을 내민다. 나는 사원을 위해 기부금을 내라는 소리인가 싶어 돈을 조금 꺼내 바로 옆 헌금함에 넣으려고 했더니 여기에 돈 넣으면 안되고 자기에게 달라고 하는 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헌금함에 돈을 넣을 수는 있으나 당신에게 줄 돈은 없다고 버텼다. 친절을 가장한 박시시 요구에 밉살맞은 생각이 들어 무시하고 그냥 나와 크눔신전으로 향했다. 이 곳 크눔신전은 우리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고대 신전이었다. 이 곳이 주요 관광지로부터 적잖은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볼거리가 이 신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새소리까지 들으며 감상할 수 있었다.

 

외벽도 세월을 감안하면 무척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내부에는 돌기둥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채색된 여러 문양과 고대문자가 새겨진 기둥과

 

 

내벽에 새겨진 왕과 신들에 관한 부조가 볼거리였다. 이 신전은 프롤레마이오스 왕조부터 로마 시대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33m X 16.5m의 열주실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높이가 13.3m나 되는 24개의 기둥은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기둥이야 말로 볼거리다. 앞으로도 들를 고대신전에는 열주실이 항상 있고 이 열주들로 꽉차 있는데 나는 그 용도와 의미가 참으로 궁금했다. 벽면의 소재나 모양은 고대 이집트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표현 방법은 이집트 미술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리스 미술에 가깝다고 가이드 책자는 기술하고 있다. 양 어깨가 모두 표현되는 반면 두부와 하체는 옆모습만 표현되는 이집트 양식을 그대로 따른 것 같은데 어느 부분이 그리스 미술에 가깝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외벽의 부조는 평면을 파서 테두리를 형성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부조를 새기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내벽에는 부조의 표현물 자체가 튀어 나와 있다. 이집트에서 전자는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형식이고 후자는 그리 흔한 스타일은 아니다. 이걸 일컬어 그리스 미술에 가깝다고 하는건지. 만일 그렇다면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신전 입구 양쪽의 부조는 로마 시대의 것으로 로마 황제 티투스가 여신을 동반하고 크눔신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곳을 나오면 기념품과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자그마한 시장을 형성하는 골목이 있다. 표를 사기 위해 지나 갔던 그 곳이다. 여기서 전통의상 한 벌을 사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한 가격하고는 맞지 않아 그냥 나왔다. 45파운드(7,875원)이면 한국 기준으로 비싼 것은 아니지만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싼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 그냥 나왔지만 다른 곳을 가보고 차라리 이 곳에서 살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현지 복장을 사서 입고 다니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이 곳에서 룩소르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버스는 없고 터미널로 가서 알아보라는 답변만 있었다. 이걸 알아보느라고 경찰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 게 물어 보는 동안 마차를 타지 않겠느냐며 여러명의 마부들이 귀찮게 굴었다. 그 장거리를 좁은 마차 타고 찡겨 갈 생각이 없는만큼 마부들을 떼어내기 위해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일단 무시하고 나일강변을 따라 걸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은 나일강이다. 마부들을 떨쳐내고 나니 그 대신 아래 사진의 빨간 히잡을 쓴 소녀가 죽을 때까지 쫓아 다녔지만 그 아이가 바라는 것 역시 박시시였다.

 

마부들을 떨구고 걷다 보니 노인들이 물담배를 맛있게 피우고들 계시길래 허락을 받고 사진에 모습을 담았다.

 

지나가는 미니버스를 잡아타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정해진 노선을 다니는 마이크로버스를 알아 보았지만 사람들은 이 작은 버스에 완전히 구겨타고 있었다. 도저히 탈 엄두도 나지 않은데다가 우리 일행에는 여자가 두 명이 있어 치한을 당하거나 소매치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택시를 잡는게 나을 것 같았다. 말이 버스 터미널이지 얼기설기 대충 나무와 슬랫으로 지붕만 얹어 놓고 그 아래로 미니버스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꼴만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터미널은 시장과 함께 있었다. 우선 먹거리부터 샀다. 토마토 1킬로에 1파운드(175원), 오렌지 1킬로에 2파운드이니 무척 싸다. 사실 여기보다 더 싼 곳은 이후 못보았다.

 

택시를 찾고 있던 바로 그 때 영어에 유창한 갱년기의 남자가 수작을 붙여왔다. 룩소르까지는 50파운드이며 룩소르입구에서 우리가 사전에 예약한 시내 뉴필립호텔까지는 1인당 25피아스트로로 총 52파운드를 달라는거였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룩소르 입구에서 호텔까지를 굳이 구분해서 부른다면 적잖이 부르려는 수작일텐데 1인당 25피아스트로를 부르는 것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납득을 못하고 있으려니 뜀도령도 같은 애기로 듣고 있었다 한다. 잘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미심쩍어 수첩을 주고 토탈 금액을 적어 보라고 했더니 52파운드를 적었다. 여전히 미심쩍었다. 뿐만 아니라 처음 수배했던 30파운드보다는 많이 부르고 있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다른 사람은 100파운드를 부르고 있었다. 결국 오케이를 하고 차에 올라 탔다. 그는 운전수를 대동하고 동승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아래 사진)는 룩소르에 도착하여 톨게이트를 지나니 여기까지는 50파운드이고 시내의 원하는 호텔까지는 70파운드라며 딴소릴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수첩에 자필로 적은 52파운드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랬더니 여기서 내리고 50파운드를 내라는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바깥을 보아하니 택시나 시내버스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여기서 내리면 아주 아주 골때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데 그는 그걸 악용하는 것 같았다. 약속된 서비스를 이행하기 전까지는 돈을 줄 수 없고 원하는 곳에 도착하더라도 정해진 돈 외에는 한 푼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우선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70파운드라며 다짐을 받으려고 했다. 나는 일단 알았으니 가자는 말로 얼버무렸다. 물론 호텔까지도 그리 적은 거리가 아니었다. 그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가다말고 지금 당장 돈을 내라는 거였다. 내가 바보는 아닌 이상 호락호락 돈을 줄 생각은 없었다.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호텔에 가서 주겠다'고 버텼다. 이 뻔뻔한 아저씨를 카메라로 찍었더니 뭐가 캥겼던지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묻는다. 그냥 차안을 찍었다고 둘러댔다. 뛰는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이놈아. 나는 호텔 앞에서 모두가 내린 뒤 나도 내려 52파운드를 주었다. 그는 길길이 날뛰며 70파운드를 내라며 경찰서로 가잔다. 내가 바보냐 거길 사서 가게. 가재는 게편이니 갈 이유도 없다. '당신은 나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고 운전기사더러 경찰을 데려오도록 시키라'고 말하고는 꼼짝도 안하고 버텼다. 근처의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지 이 아저씨 흥분해서 아랍어로 떠벌렸다. 몰려든 사람들은 내게 뭐라고 한마디씩 했다. 갑자기 조직적으로 자기네 사람에 대한 역성을 든다. 젊은 친구 하나가 내가 바보인 줄 알았는지 휴대폰을 내보이며 경찰에 전화하랴고 묻는다. 나를 물렁하게 봐도 분수가 있지. 나는 뻔한 수작에 고맙다며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시익 웃더니 한 발 물러선다. 지나가던 행인이 무슨일인지 묻는다. 이 아저씬 또 뭐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뜀도령이 60파운드 줘서 보내버리자고 하길래 60파운드를 주며 받으려면 받고 말려면 관두라고 버텼다. 그걸 받더니 10파운드를 더 내란다. 도로 뺏어가려 하자 오히려 낚아채듯 돈을 60파운드를 받아 챙기며 투덜거렸다. 8파운드에 불과한 부당이득이 불만스러웠던 모양이다.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구. 예라 이 나쁘신 분아. 자네 얼굴은 여기서 이미 우중충하게 팔렸다네.

 

뉴필립 호텔은 대로변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그들도 적잖이 헤맸었다. 우리가 실갱이하는 동안 호텔프론트 직원도 이미 다 보았을터다. 상관 없다. 아담하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한국에서 전화로 예약할 때 의사소통 문제로 골머리를 �였던 바로 그 호텔이다. 이틀간의 숙박비로 230불을 지불했다. 트윈룸 45달러와 트리플룸 70달러 이틀이면 총 230달러였다.

 

우리는 1달러가 짐이 되는 통에 1달러를 최대한 쏟아내었다. 단 너댓 장인가만이 10 또는 20달러짜리이고 나머진 전부 1달러짜리였다. 돈을 받은 여직원은 눈이 휘둥그래지며 당황해했다. 나는 당황해하는 그녀의 표정이 그저 단지 잔돈 세기가 귀찮은 정도를 의미하는 줄 알았지만 그녀의 당황스러움이 그 이상을 넘어 공포였다는 사실을 포착하는데는 한식경이 지나서였다. 이들은 돈 세는데 엄청나게 서툴렀다. 어기적 어기적 돈을 반쯤 세더니 옆의 직원이 잠깐 말을 붙인 사이 방금 센게 얼마였나 잊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세기 시작했다. 눈치로 봐선 자신이 카운트하고 있는 현재 숫자가 맞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같았으면 일정액을 세고 나면 보험삼아 따로 떼어 놓고 계속 세었을테지만 그런 요령 조차도 없는 것 같다. 두 번째도 또 실패였다. 나는 일단 몇 장 안되는 10달러와 20달러 지폐를 따로 놓고 그녀에게 확인시킨 뒤 1달러 지폐들을 20장씩 묶어 지그재그로 놓아 주었다.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나는 여직원에게 1달러짜리 20장 한묶음과 10달러지폐 갯수가 도합 이러저러하니 각각의 1달러짜리 묶음이 정확히 20장씩이면 맞을테고 그것만 확인해 보라고 했다. 우리가 두 번이나 확인을 했으니 틀릴리도 없지만 만일 부족하면 부족액을 보충해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며 조금 이따 은행에 가서 돈세는 기계를 이용해 확인해 보겠단다. 미안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이 아가씨는 약간 통통하면서도 아주 귀엽게 생겼다.

 

이 여직원이 방 안내를 해 주었다. 그녀에게 팁으로 1달러를 주었다. 한참 후에 로비에 내려 갔다가 방으로 돌아온 뜀도령이 아직까지도 그 돈을 세고 있더라며 뒤집어져 뒹굴렀다. 적지 않은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진솔이도 그 때까지 돈을 세더라며 웃었다. 우리는 카르나크 신전으로 가기 위해 간편한 차림으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을 나서면서 돈세기를 멈추고 한켠에 돈을 따로 놓아 두었길래 금액이 정확한지 물었더니 1달러가 부족한 것 같더라며 확실하진 않으니 확인한 뒤 알려 주겠단다. 우리가 1달러짜릴 잔뜩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미안하다고 했더니 아니라며 괜찮다고 하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인이 지폐를 셀 때 보여주는 섬세하고 빠른 손놀림에 많은 외국인들이 놀란다는 말이 여기에서 실감이 난다.

여기에서 여담 하나. 부유했던 친구 하나가 젊은 시절 1년 6개월동안 남미의 안가본 나라가 없다며 들려 주었던 에피소드 중에는 정말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돈을 내고 잔돈을 기다릴라 치면 어지간히 꿈지럭거리며 계산기를 두드린 다음에야 정성스럽게 지폐 를 한 장 한 장 센 다음 동전까지 일일히 확인하고 나서야 거스름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 번은 기다리기 지루해서 100 페소의 돈을 내고 32페소짜리와 7페소짜리의 물건을 샀으니 61페소를 돌려주면 되잖느냐고 한 마디 했더니 위 아래로 �어 보며 별 이상한 놈 다보겠다는 듯 하더라나. 그리고 나서 계산기를 두드려 보더니 놀란 눈으로 다시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또 한 번은 브라질에 장기체류하면서 동전이 쌓이고 쌓여 이걸 통장에 입금할 일이 생겼더라나.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동전세는 기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없었다고 했다. 남미의 시중은행에는 동전 세는 기계도 있더라며 그게 필요없는 한국 사람들은 대단하다고도 했다. 설마 돈을 다루는 은행 직원이야 다르지 않겠나 싶어 돈을 단위별로 구분해 보자기에 싸서 가져갔단다. 당황해하며 얼마냐고 묻더란다. 마침 동전 세는 기계가 고장나 한 쪽에 방치되어 있는걸 본 그는 어쩌나 보려고 은행 오기 전 두 번 세고 확인한 실제 금액에 작은 금액의 돈을 짖궂게 더 붙여서 불렀단다. 은행 창구의 직원은 한번 세고 나서 두 번을 센 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세번을 세고 나서 통장을 정리해 주는데 장난으로 더 붙인 금액을 통장에 기장해 주더라나. ㅡ,.ㅡ;

이 호텔 프론트에도 여러 직원이 있었지만 신속성과 정확성이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암튼 우리 기준으로 보자면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생은 있는대로 시켜놓고 큰 단위의 돈으로 다시 준다면 오히려 얄밉게 보겠지 하는 생각에 접어 버렸다. 방에 들어가 보니 외부에서 본 것 못지 않게 깔끔했다.

 

샤워시설과 화장실은 카이로 베를린 호텔의 그것과 비교해서 대궐이나 다름 없었다.

 

익일 방문할 덴데라와 아비도스 장거리투어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면서 짐을 가볍게 꾸려 호텔을 나선 우리는 나일강가로 나와 카르나크 신전 방향으로 슬슬 걸어갔다. 우리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오는 유럽인 가족에게 카르나크 신전으로보터 오는 중인지 확인 후 얼마나 소요되는지 물었다. 2킬로 정도라고 하니 걷기에 딱 좋은 거리였다. 나일강의 운치를 한껏 즐기면서... 길에는 손님을 태우길 원하는 마차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나일강을 따라 발달된 거리가 무척 깔끔했다.

 

유람선도 길게 정박해 있다. 유람선 자체가 호텔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킬로미터 정도를 걸은 것 같다. 입구에 도착하니 주변은 공사중인지 어수선하지만 거대한 벽과 그 앞에 늘어선 스핑크스가 신전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표를 사서 들어서면 바로 이 곳이다.

 

 

이 신전은 실상 하나의 신전이 아니라 신전들의 복합체라고 한다. 세누스레트 1세가 최초로 이 곳에 신전을 세웠으나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이후 투트모스 1세, 핫셉수트 여왕, 투트모스 3세 등에 의해 신축 및 증개축이 이루어졌으며 그 뒤로도 이 신전을 확장하고 장식하는데 관련된 왕들은 호레헤브, 세티 1세, 람세스2세 및 3세, 프롤레마이오스 등이라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여러 차례 증축되고 변경되어 결과적으로 일관성 있는 설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 신전은 물론 다른 신전에서도 보는 것이지만 침략자들에 의한 고의적 훼손이 눈에 많이 띤다. 정과 망치같은 연장으로 신이나 왕의 표현부위를 쳐서 훼손한듯하다. 그래도 작품의 실루엣은 그대로 남아 있어 전체적인 작품의 모양새는 충분히 감상이 가능하다.  

 

이 신전을 모두 둘러보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여러 왕의 작품과 숭배되는 여러 신이 완전 짬뽕볶음밥이니 어디 서 있는 석상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걍 보는거다(무식 들통. 푸쉬쉬...!)

 

열주들의 크기와 규모에 역시 압도된다.

 

열주 안에서 셀카 한 컷.

 

이 곳은 민신(발기된 성기를 한껏 노출한 주책바가지 신)이 주 테마인가보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민신의 거기만 훼손되었다. 이집트의 정기를 없애려 작심한 침략자들의 만행(?)인가? 광화문과 경복궁 주변 여기저기에 조선의 정기를 끊는답시고 일제 침략자들이 쇠말뚝을 박았던 것모냥?

 

오벨리스크도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 이 것이 여러개의 돌을 쌓은 것이 아닌 단 한 개의 돌로 만들었다 하니 놀랄 노자가 아닌가. 그만한 돌텡이는 어디서 다 구하며 만드는건 또 얼마나 대단했으며(나중에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발견된 유적을 보고서 놀랐다) 세우는 이동과 설치(설치는 구덩이를 파고 모래를 쌓아 비스듬히 오벨리스크를 세운 뒤 어쨋다나 저쨋다나) 과정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서구열강들이 이 오벨리스크에 상당히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뜀도령의 말로는 프랑스에 있는 콩코드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뽀리쳐서 옮겨다 놓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오벨리스크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우끼는건 무식하게도 그게 자기들이 만든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라고 한다. 더 웃기는건 이집션들. 여러 열강들로부터 도둑맞은 오벨리스크들을 돌려받길 원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프랑스인들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훔쳐간 고문서들을 애지중지하고 돌려줄 생각도 안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우리도 자부심을 느껴야 되는건가? 퍽! ㅡ,.ㅡ;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곳 신전의 기초가 매년 반복되는 나일 홍수의 습기로 인해 열주와 오벨리스크, 그리고 석상들을 떠받치는 기저부 사암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점이란다. 이걸 보수하는 학자들과 실무자들은 두고두고 졸라 속�게 생겼다.

 

여래 사진에 보이는 관문 비스므리하게 보이는 곳이 끝이다. 나만 그런줄 알았더니 별로 볼 것도 없는데 기념이라도 되는지 오는 족족 이 꽁무니를 찍어 간다. 이걸 찍을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유럽 여자애들 둘이서 눈치 없이 내 카메라 앞으로 나서 기념 촬영을 한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지둘렸더니 잠시 촬영 후 이내 비켜준다. 쒸 이게 비켜준거야?

 

이거 누가 찍은 사진이냐 이거 졸라 멋지다. 예술이다. 역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출구 틈으로 오벨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찍었다.

 

전형적인 이집트 부조. 세월을 감안하면 보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채색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부조

 

거대 석상 앞에서 기념 찰영

 

이 부조도 거대함이 압권이다.

 

육중함을 자랑하는 열주

 

모래 먼저로 항상 뿌연 하늘이 모처럼 맑아 보인다. 그래서 한 컷. 

 

늘어선 거대 석상들

 

다 보고 택시를 잡기 위해 출구를 나와 나일강변 대로로 나오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점심을 건너 뛰었으니 모두들 지치고 배가 고팠다. 에스나의 시장에서 구입한 오렌지와 토마토를 넘 맛있게 먹었는지 밥생각이 없었던 탓에 점심은 건너 뛴 것이다. 현지식을 먹기 위해 이리저리 다녔지만 위해 룩소르는 똑똑한 식당이 별로 안보이는 탓에 샌드위치 전문점을 찾았다. 이름하야 스넥 타임! 현지에서의 문화체험을 위해 현지식만을 고집하는 나로서도 이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워낙에 나도 햄버거를 좋아하지만 안먹으려고 어지간히 노력 중인 편이었다. 하지만 이 곳의 샌드위치는 값도 싸지만 푸짐하기도 엄청나고 맛도 풍부한게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다. 게다가 한가지 더.

 

이 곳 스넥타임에서 바로 옆으로 내려다 보이는 룩소르 신전의 야경은 맛과 푸짐함을 뛰어 넘는 행복한 보너스였다. 

 

여기서 식사를 하는 동안 일단의 대학생 배낭여행객들을 만났다 그 중 한며의 학생과 약간의 대화와 정보교환이 있었다. 이 학생들은 아스완에서 또 만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근처의 수크(기념품 가게가 밀집된 시장)로 가서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첫날 도착해 카이로에서 3시간 자고 강행군을 한데다 열차타고 밤을 보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원래 오늘 저녁식사 이후의 계획은(계획서와는 많이 다르지만) 룩소르 신전을 보는 것이었다. 룩소르 신전은 다른 곳과 달리 22:00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나는 호텔로 먼저 들어가 쉬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곳을 둘러 본 뒤 예정대로 룩소르 신전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나 즐거운 것은 맥주 파는 곳을 이 곳에서 발견했다는 것. 맥주가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저녁 늦게 맥주를 마실 생각에 호텔로 먼저 돌아갈 생각을 접었다.

 

 

지붕을 덮은 수크는 나름의 운치도 있고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엉성하게 만든 투탕카문, 핫셉수트, 작은 부조, 피라미드, 풍뎅이 등 온갖 기념품과 과일, 찻집, 식당 같은 것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오벨리스크 모형은 갖고싶은 생각이 들지만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무척 비싸다. 사도 여행 마지막날 사야지 그 무식한걸 여행 내내 갖고 다닐 수야 없질 않나.

 

수크를 둘러 본 우리는 조명을 받은 룩소르 신전으로 갔다. 룩소르 신전은 낮에 보아도 멋지지만 조명을 받은 신전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모습이다.

 

조명을 받은 오벨리스크와 거대 석상이 무척 인상적이다.

 

하단을 시멘트로 때우긴 했어도 이 곳 오벨리스크는 매우 온전해 보인다.

 

람세스 2세의 좌상 2개가 신전 입구 양쪽에 설치되어 있고 그 앞으로 오벨리스크가 왼 쪽으로 하나 설치되어 있다. 균형이 맞질 않잖은가. 오른쪽에는 오벨리스크의 터만 현재 남아 있고 이 터의 본체가 바로 콩코드 광장에 있다는 것이다. 더덩넘덜.

 

이 신전은 북쪽 3킬로미터에 위치한 카르나크 신전(오늘 낮에 늘렀던)의 부속 신전이며 이집트의 전형적인 형태의 신전이라 한다.

 

아멘호테프 3세와 람세스 2세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조명 받은 기둥들이 환상적이다.

 

 

 

이 곳은 신전 건너편에 설치된 소형 스핑크스들

 

이 곳을 나온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던 덴데라와 아비도스 투어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1인당 금액이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비쌌다. 대충 기억에 1인당 200파운드정도였던 것 같다. 기차를 타자니 한 군데 밖에 못볼테고 현지투어를 이용하자니 너무 비싸고 해서 결국 택시를 아예 한 대 대절해서 다니자는 거였다. 이 곳 룩소르의 택시는 최고 8명까지 탈 수 있는 왜건들이니 5명이 찡겨탈 이유도 없다. 내일을 기약하고 맥주 1잔 마시고 잤다.

 

아래의 동영상은 뜀도령의 블로그에서 퍼온 것임.

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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