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월)
오늘은 2007년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나도 1살 더 늙는다. 이상하게도 여행중이라 그런지 그런 생각들도 별로 들지 않는다. 아침 06:00에 일어난 일행은 식사를 마친 뒤 호텔 부근의 택시들을 잡아 협상을 시작했다. 1000파운드를 부르는 정신나간 아저씨들도 있다. 한 군데만 300을 부르는 아저씨도 있고. 더 알아볼까 하다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500파운드에 아비도스(Abydos)와 덴데라(Dendera)를 들르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400파운드 정도면 적정가라고 한다.
협상이 끝나고 이동을 시작할 때는 대충 아침 7시 30분정도였던 것 같다. 덴데라와 아비도스처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유적지는 공식적으로는 호위대 없이 관광객 단독으로는 갈 수 없다. 따라서 방문자는 호위대 출발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함께 떠나야 한다. 여기서는 관광객 호위대를 콘보이라 부른다. 아침 8시에 콘보이 출발시간이었지만 30분정도 지체한 뒤 출발했던 것 같다.
일단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막힘이 없었다. 모든 것이 호위대와 관광객이 먼저였다. 가는 코스 곳곳에 경찰들이 깔려 있고 사거리나 막힐만한 곳에서는 미리 다른 차들을 통제해서 콘보이와 관광객들의 차량이 떠난 뒤라야만 통제를 풀었다. 만일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땠을까. 난리가 났겠지만 이들은 그게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꼬박 세시간을 도로 위에서 버렸다. 그러나 버렸다고만 볼 수도 없는 것이 이집트의 시골길을 보는 것도 이국적인 풍경에 재미가 있다.
이곳이 유명한 아비도스의 세티 1세 장제전이다. 멀찍이서 본 이 장제전은 밋밋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본 모습과 특히 내부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부조들로 가득하다.
표를 구입해 들어가면서 주변들 둘러 보는데 일단의 이집션 소녀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간다.
들어가면서 보이는 오른쪽 배경
왼쪽 배경
장제전 입구의 오른쪽
입구의 왼쪽.
부조들은 아직까지도 채색이 많이 남아 있고 선이 섬세하다.
이 곳 아비도스의 수호신은 자칼이었다고 한다. 이후 차츰 오시리스 신 숭배의 중심지로 바뀌어 이집트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세티 1세와 라 신
이 곳에 오시리스 신의 공인된 무덤이 있어 왕들은 이 무덤에 가까이 묻히려고 했었다고 한다.
이 곳에 여러개의 신전 및 장제전이 세워졌다고 하는데 바로 이 세티 1세 장제전이 역사적으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라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세티 1세.
7개의 신전과 2개의 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설계는 무척 독특한 것이라 한다. 아몬 신과 민신의 부조도 보인다.
내부의 부조들은 바깥의 부조들보다 더욱 섬세하고 아름답다.
채색이 거의 완벽하리만큼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오시리스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세티 1세의 모습
호루스 신
토트 신
오시리스 신과 세티 1세. 그 뒤로도 길게 이어져 있는 부조
아누비스 신
정말이지 볼만하다. 여기에서 부조를 보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장제전 뒤쪽으로 나가면 오시레이가 있다. 장제전에서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가 보았다. 이는 세티의 기념비이며 지하 납골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수로에 10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프렛폼이 있는데 수로에는 �다시피한 물이 고이 있었다. 바로 위에 경찰이 낙타를 타고 순찰을 도는 모습.
독특한 기념물이라고 하는데 그냥 폐허에 물고인것 외에는 무슨 의미를 두거나 감동을 받을 만한 무엇도 없다. 감동이 없어서 사진 찍어 놓은 것도 없넹? 장제전을 들어서면서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고대 상형문자 중 헬리콥터와 잠수함의 그리고 전폭기의 모양을 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 뜀도령과 나는 먼저 찾는 사람이 알려 주기로 했다. 굳이 혈안이 되서 찾지는 않았다. 사전 정보 없이는 구우일모에 불과한 이 문자를 어찌 찾겠는가 말이다.
헬리콥터의 모양을 하고 있는 문자
잠수함의 모양을 한 문자
일부러 찾으려고 애쓰진 않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가려니 아쉬움이 남았다. 문자는 생각도 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신전관리인인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처음 들어왔던 신전입구를 통해 나가려는데 저곳에 헬리콥터가 있다며 알려 주었다. 문제의 문자들은 모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몇 발자국 안쪽으로 들어가 왼쪽 천정 서까래에 새겨져 이었다. 그것도 전부 한 곳에 몰려 있었다. 그가 묻는다. "good?" 그거 알려 주고 박시시를 받자는 수작이다. 들은척도 안하고 나가려 했다. 계속 묻는다. "good? good?" 박시시를 안주려고 대답했다. "not good!"
오후 2시에 콘보이가 이동한다고 한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그 전에 서둘러 식사를 마쳐야 했다. 람세스 2세 신전도 들러봐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이 곳에서 적잖은 거리를 가야 하는 것 같았다. 단체 관광객들도 그리로 갈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밥부터 먹어야 했다. 이 곳에는 식당이나 먹거리가 거의 없다고 해서 먹거리를 사서 오려고 했지만 아침에 그럴 시간이 없었다. 장제전 입구 표받는 곳에도 야외 카페가 있었지만 이런 곳은 대개 음식 맛도 별로이면서 비싸기만 할 것이라 생각되어 대안을 찾아 보았다. 가게방 같은데서 먹거리를 사려고 했다. 다니다 보니 완전히 촌스럽고 꼬질꼬질하지만 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식당을 하나 찾아냈다.
나름대로 식당의 마크인지 클레오파트라로 여겨지는 못생긴 여자를 엠블럼으로 하고 맞지도 않는 영어를 써 넣었다. 전술한 카페 외에는 이 곳 식당이 유일했지만 이 곳엔 관광객이 전혀 없었다. 대부분 패키지관광객들이기 때문이었다. 삼성이라고 써있는 야구모자를 쓴 현지인이 이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해 보였다. 화덕에 구운 빵에 계란, 치즈, 피망과 토마토,소금에 절여 숙성한 가지였다. 주인의 바가지가 염려되어 밥먹는 사람에게 얼마냐고 물어 보았더니 10파운드란다. 이름 없는 시골 식당의 식사 치곤 현지물가 대비 지나치게 비싸다싶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이들의 1인분은 넘 많아서 5인분을 시켰다간 많은 양을 남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3인분만 주문했다.
아래 사진에 흰색과 된장 색의 것은 치즈이고 노란 뚝배기는 계란이다. 가지를 절인 것도 보이는데 비위가 안맞아 안먹을까 하다가 하나를 들고 맛을 보았는데 군내가 나고 지독하게도 짜다. 화덕에 구운 빵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희안한 빵이었다. 생긴게 꼭 모래나 톱밥으로 만든 것처럼 약간 누리끼리하고 입자가 거칠다. 가끔씩 모래도 씹힌다. 우리는 이후 이 빵을 모래빵이라 불렀다. 빵을 찢어 속안의 틈에 치즈와 계란, 야채 등을 넣어 먹었다. 식사를 하며 우리에게 10파운드라고 알려 주었던 현지인은 우리가 안보이게 지불을 하려고 했지만 고작 3파운드만을 내는걸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보았다. 어이가 없었다. 모른척하고 밥만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얼마냐'고 물었다. 50파운드란다. 어이가 없었다. 1인분에 10파운드로 바가지를 씌웠어도 30파운드다. 다섯 사람이 먹었으니 50파운드를 내라? 9파운드를 내면 계산은 끝나는 일이었다. 주인과 내가 실갱이를 하자 우리같은 여행자를 태우고 와서 대기중인 택시 기사 하나가 밥먹다 말고 끼어든다. '왜 50파운드어치 먹고 9파운드만 내느냐'는거였다. '당신은 빠지라'고 했더니 이집션의 일이니 자기 일이나 다름없다'나. 나는 택시기사는 상종도 안하려고 했다. 당신들은 3파운드를 내는데 우리보고 10파운드를 내라고 하면 우리는 바보냐고 항변했다. 그 곳에서 식사하던 손님들도 간간히 참견을 한다. 식당 주인과 택시기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켕기는데가 있는지 고개를 돌린다(밤색 재킷은 택시기사, 빵모자는 주인). 그러더니 떳떳한 척 하고 고개를 다시 돌리며 찍을테면 찍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뭔가 켕기는 눈치였다. 두사람 다 찍었지만 잘생기지도 못한 얼굴 이 곳에 올리기에는 불쾌한 생각이 들어 그만 둔다. 주인은 나한테서 받은 돈을 집어 던지더니 먹고 남은 것을 거칠게 치웠다. 나는 잘먹고 죽으라는 생각에 잔돈 5파운드를 보태 14파운드를 가게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음식은 맛없고 당신은 나쁜 사람이라"고 내뱉은 내 말은 알아 듣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먹은걸 다 게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콘보이 출발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 기다리고 있자니 식당주인은 묘하게 생긴 젊은 경찰 하나를 데리고 와서 시비를 걸었다. "당신들 50파운드어치 먹고 왜 돈을 조금만 주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집션한테서 3파운드를 받고 외국인에게 10파운드를 받는 이유가 뭐냐. 3인분 시켰는데 5인분을 요구하는 이유는 또 뭐냐'고 따져 물었다. 대답이 걸작이다.'당신은 이집션이 아니니 당연히 외국인이 치르는 값을 내야 한다'는 거였다. 주인은 내가 준 돈을 쥐고 있었고 이걸 획 집어 던지며 주더라는 시늉으로 아랍어로 떠들었다. 나는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이집션은 3파운드를 내고 외국인은 10파운드를 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원래가 그렇단다'. '이해 못한다. 이해 가도록 설명을 해달라'고 했더니 경찰이 먼저 포기하는 눈치다. 무슨 얘기를 해도 설득력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경찰은 싸워봐야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주인을 다독이며 데리고 가 버렸다. 나한테서 돈을 더 받아 나눠 먹자는 속셈이었을테지. 치사하신 분들. 나중에 사막투어때 만난 사람들 중 이 곳 이집트 지사에 일하는 한인 여성으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사기는 외국인들한테만 치는게 아니라 저희들끼리도 사기를 치고 속고 하는 것이 아주 심하다고 한다. 그러니 당하는 사람만 바보라나.
두 시가 되어 덴데라(Dendera)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완만한 속도로 이동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우리 일행 중 한명이 마을입구에 멀건히 앉아 있는 한 소년에게 볼펜을 던져 주었다. 이집트에선 볼펜이 굉장한 선물이라는 얘길 듣고 나도 좀 준비해지만 사실 이집트를 돌아다니며 이 볼펜들을 주고싶은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관광객을 사기쳐서 울궈먹으려는 사람들 뿐이니... 어쨋든 소년은 이게 왠 쾌재냐며 좋아하다 못해 흥분까지 하는 것 같았다. 바로 뒤에서 이걸 본 한 소녀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도 전속력으로 우리 차를 따라 붙으려 했다. 나는 소녀의 눈을 보고 놀랐다. 소녀의 눈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어떻게든 볼펜을 나도 하나 손에 넣어야겠다는 무서운 집념이 보이는데 섬�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 때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콘보이 차량이 완만한 속도로 소녀를 향해 돌진했다. 한쪽 구석으로 차량에 의해 몰린 소녀는 공포에 질려 그제야 우릴 쫓기를 포기했다. 자국민을 그렇게 대하는 그들을 나는 이해할 수 가없었다.
아비도스에서 덴데라로의 이동도 역시 3시간이 걸렸다.
아래 사진은 아비도스에서 덴데라로 이동중 콘보이와 관광차량 행열이 모두 지나가길 기다리는 현지인들의 차량들이다.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지나가지 못하고 대기중이다.
드디어 덴데라의 하토루 신전에 도착했다.
신전 담벼락은 홀라당 무너졌는지 입구 잔해만 알량하게 남았지만 신전 자체는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정면에서 본 하토루신전
기둥의 가장 윗부분은 하토루 여신의 얼굴이 4면에 새겨져 있지만 역시 파괴의 흔적으로 온전해 보이는 것이 없다.
벽면에도 여기저기 파괴의 흔적이 있다.
상이집트에 속하던 덴데라에서 숭배하기 시작한 하토루 여신은 이집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곳 덴데라에 남아 있는 하토루 신전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셈이 된다. 호루스의 아내였으며 축제, 춤, 사랑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테베의 �동묘지가 가까와 죽은 이들이 기거하는 지역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개념이 변질되기도 하였으며 그리스에서는 비너스와 동일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부를 보고 나서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통로에도 부조가 볼만하다.
옥상에 올라오니 자그마한 신전터가 하나 더 있다.
옥상에도 방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천정엔 기름때 같은 무언가가 발라져 부조를 색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폐허 울타리는 넓고 출입문은 여러개였던가보다.
뭐라고 써있는걸까.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달필인 것 같다.
반대편의 내려가는 길
이 곳도 채색이 뚜렷하지만 세티 1세 장제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뭔지 모르게 채색이 아주 중후한 느낌을 준다.
아래의 사진은 뜀도령의 블로그에서 퍼 온 동영상
신전의 외벽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외벽의 보존상태에 감탄을 하게 된다.
덴데라로부터 룩소르로 돌아오는 시간은 불과 1시간 30분 정도에 불과했다. 차창 너머 콘보이의 모습도 보인다(사진제공 : 뜀도령)
룩소르로 돌아온 우리는 식사를 할만한 곳을 찾았다. 다니다 보니 어디선가 유창한 한국어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숙소 어디에요? 식당 어디가요? 만도식당 좋아요". 어눌하지만 귀여운 말투였다. 왠 이집션이 한국어를 이렇게 잘하나 싶었다. 우리는 바가지 쓰기 싫어서 피하려고 했다. "사막투어는 안가세요?" 라고 묻길래 그러잖아도 사막투어를 슬슬 알아보려던 참이어서 알고 있는 여행사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전화를 연결해 준다." 한국여자였다. '값을 확인한 후 연락처를 받아 적고 다른 곳과 요금을 비교해서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한 뒤 끊었다. 우리를 한국인 여행업자와 연결해준 이친구는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만도라는 이름이 사업가였다. 만도식당은 다음에 기회 있으면 들르겠다고 하고 식당을 찾아 다녔다. 똑똑해보이는 식당이 하도 없어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코샤리하우스를 들러 보았다(사진제공 : 뜀도령)
코샤리와 그릴에 구운 요리 2가지를 주문했다. 42파운드어치를 주문했다. 코샤리는 이집트식 마카로니로 약간 물컹거리고 촉촉했다. 여기에 토마토 소스를 뿌려서 먹는데 맛있다곤 할 수 없고 그냥저냥 먹을만했다. 코샤리는 이집트 서민들이 즐겨먹는 전통식이라고 한다. 그릴에 구운 요리 두 가지를 더 시켜서 먹어 보았다. 그런대로 먹을만 했지만 찬양할 정도는 아니다. 이 곳 코샤리하우스는 깔끔하기는 했지만 음식맛은 그냥 그렇다. 비추!(사진제공 : 뜀도령)
계산대에 지불할 때는 100파운드를 냈는데 63파운드만 거슬러 준다. 5파운드를 더 받는 셈이었다. 세금 10%도 아니고 팁을 요구하는 것도 없고 회계를 맡았던 진솔이가 왜 5파운드를 더받느냐고 물었다. 아랍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게다가 뭔지 모르겠지만 태도가 당당하다. 더 따져보려는 진솔이에게 부가가치세인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나와서 보니 같은 집 한 켠에 통닭을 굽고 있는데 누리끼리하게 구워진 통닭이 보통 맛있어 보이는게 아니었다. 저녁 파티를 위해 두마리를 샀다. 마리당 30파운드를 부르니 뜀도령이 두마리에 50파운드로 깎았다. 싼 편이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생과일 주스 전문점을 들러 사탕수수원액을 한잔씩 마셨다. 단돈 1파운드씩이다. 인도 여행 이후 간만에 마셔보는 사탕수수액이다. 맛이 아주 좋아 강추. 이 곳도 무척 깔끔해 모였다. 다 좋은데 우리가 마신 컵을 받자 설거지를 하는게 아니고 수도꼭지를 틀어 시익 한 전 헹군 뒤 컵 진열대에 두는 걸 보고 이 곳의 위행관념이 좀 거시기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다시 수크로 가서 맥주를 샀다. 15병 정도 산 것 같다.
호텔로 돌아오니 연말이라 그랬을까. 수건을 침대 위에 백조 모양으로 꼬아서 예쁘게도 놓았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이 센스. 가진 것들을 내놓고 조촐한 파티 준비를 했다.
뜀도령이 가져온 오징어 다리는 단연 인기 만점이었고 통닭은 예상대로 뒤집어지게 맛있었다. 무언가 향신료를 발랐는지 특유의 향이 있고 짭짤했다.
파티가 벌어졌다. 맥주와 포도주 소주까지 그야말로 짬뽕파티.
밤 12시가 넘으니 한국의 재야의 종소리처럼 신호음이 연신 울려 퍼지는데 확성기를 통한 것을 보면 회교 사원에서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싶다. 마실거 다 마시고 나니 바깥에선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고함치는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나일강가로 나가 보았다. 저마다 새해를 기뻐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생전 처음으로 맞아보는 해외에서의 새해맞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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