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일)
아침에 일어나 가까운 식당에서 아침 먹고 다시 모이기로 했다. 용재와 나만 호텔 로비에 머저 나와 있고 여자들은 찍어 바르느라고 나올 생각을 안한다. 여자들하고 다니면 이래서 항상 시간이 아깝다. 바르나 안바르나 거의 똑같던데(&*%$#*\+@! 퍽!) 그러니 여자들 짐이 그리도 바리바리 많아 이동시마다 고생을 하지. 많은 사람들이 콧구멍만한 내 륙색을 보고 의아해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짐을 그렇게 줄일 수 있는지. 그거야 간단하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만 챙기고 가져가면 편리하다고 생각되는것은 모두 배제하는거다. 즉, 카메라, 엠피 3, 내의 3벌, 갈아입을 티셔츠 1벌, 양말 3켤레, 자그마한 세면도구, 샘플용 로션, 구급약품, 수건 2개, 휴대용 티슈 1개, 손수건 3장, 여행책자, 지도 및 자작 일정표. 활자 작고 두꺼운 읽을거리 1권(활자 크면 금방 읽을거리가 없어지니까), 뱅기표와 여권 그리고 돈. 나머진 현지에서 필요시마다 사면 된다. 이거면 되지 쓰잘데기 없는 두루말이 휴지, 슬리퍼, 오락기, 식료품, 여벌 바지, 심지어는 잘 때 입을 옷.... 같은걸 갖고 다니니 도라꾸를 대절해도 부족하지.(&*%$#*\+@! 퍽! 어윽!) 어쨋거나 숙소를 나서 볼게 가장 많다는 서부 사원군으로 향했다. 워낙에 콧구멍만한 동네다 보니 모든 사원이 걸어서 30분 이내였다. 동부 사원군은 숙소에서 15분 정도 걸었는데 그 곳에 많은 사원이 오밀조밀하게 몰려 있었다. 어디나 그렇듯이 매표소 앞에는 사설 가이드들이 따라 붙는다. 우리도 책자가 있으니 알만큼은 안다. 게다가 알아듣기 힘든 인도영어는 정말 고역이다.
웨라 꼼뽐?(Where are you come from) 위찌 깐뜨리?(Which country?) 아이마 독또르(I,m a doctor)
이걸 알아듣느라 촉각을 기울이느니 미쳐 죽지. 어쨋든 이 곳에 밀집된 사원들은 그저 몇 몇 사람들이 들어가 기도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지만 외벽의 조각들은 눈을 뗄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야시꾸리하다.
짐승과 수간하는 남자의 형상도 있다고 하는데 그걸 찾아볼만큼 한가하진 않았다.
위의 사원 안에 아래의 신상이 있다.
몸에 수많은 형상이 새겨져 있다.
살인 장면도...
이 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현지인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경은과 경은 엄마는 그 곳 현지인과 사진을 또 찍고싶어 했다. 그런데 같이 포즈를 취했던 두 놈 중 한 놈이 바로 옆에 선 경은이를 만져 해프닝이 벌어졌다. 내가 그놈을 붙들고 처벌하겠다고 붙잡고 경비를 부르자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단고 땅바닥에 손을 대고 사죄했다. 영어를 못해서 알아듣지도 못하고 사죄만 하고 있었다. 불쌍하다고 봐주라는 경은이의 말에 보내주고는 기분 나뻐서 사진을 지워버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둘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기념인데 ㅡㅡ;
사원 내부는 대부분 이런 형태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먹으러 갈 곳이 참으로 없다. 이 곳은 똑똑한 식당이 없기로 악명이 높다. 음식이 비슷하지도 않은 디따 웃기는 한국 식당이 많다. 그 중 한 군데를 가 보았다. 그 곳에서 한국인 청년 남녀가 몇 명이 나온다. 맛있냐고 물었다. "되게 맛없어요. 그나마 모양새만 김치지였만 너무 적다구 좀 더달래니까 쳐다도 안보고 불친절해요." 일단 음식이 디게 맛없고 싸가지에도 하자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씨식당으로 갔다. 원래 사파리식당인데 아씨식당이라고 하면 더 잘 알려져 있단다. 그런데 아씨는 그런 아씨가 아니었다. 아씨삼형제(Assi's Brothers)가 운영하는 식당이라는거다. 원 참, 여러가지 한다. 이 집 김치볶음밥에서는 김치볶음밥 맛이 안나고 라면에는 라면 맛이 안난다. 난 해병대 출신이지만 위탁교육 갔을때 먹었던 육군 짬밥 생각이 난다. 짜장맛하고 된장국이나 닭곰탕, 생선탕의 맛과 향(?)이 똑같아 눈감고 먹으면 무슨 음식인지 알아맞히기 힘든... 그 음식들을 연상케 한다. 차라리 잘하는 집의 인도 커리가 먹구싶었다. ㅜㅜ 그건 그렇고 은영군! 자네 표정엔 맛있다고 얼굴에 써있구만. 하긴 인도음식 안맞는다고 볶음밥만 고집적으로 시켜먹은 자네이고 보면. 꺼으~~~! 밥먹었다기 보단 그냥 대충 순대 속만 채우고 나서 서부사원군으로 향했다. 서부 사원군은 사원이 비교적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다.
서부사원군으로 가는 중
약방
모녀
행상
머리를 깎아주시는 할아버지와 손주의 정다운 모습
각양각색으로 노는 아이들
송아지를 안고 노는 예쁜 소녀도 있어 한 장 찍었다.
카메라를 신기해 하는 소년들도 한장. 용재야 니 거그서 모하노?
아주 똑똑하지만 영악한(?) 소년도 만났다. 자기는 한국인을 좋아한다며 가이드를 자처하며 나선 시키라는 소년이다.
이 친구는 다른 아이들이 우리에게로 근접하는 것 까지도 귀찮아한다며 막고 나섰다. 아무래도 이녀석은 가이드비를 원하는 것 같았다. 보통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다. 영어가 유창했다. 인도인 치고는 발음도 아주 훌륭했다. 이 아이는 나에게 정확한 발음으로 흔한 한국인 이름을 대면서(정확한 이름은 생각 안남) 자기 친구의 이름이란다. 그 이름을 나에게 선물하겠단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겐 이름이 있는데 그 선물은 사양하겠다니까 '나는 너를 친구로 생각해서 너에게 그 이름을 선물했는데, 너도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성의를 받아야 한다'는거였다. 어이 없음. ㅡㅡ; 어쩔수 없이 받았지만 난 그 이름을 곧 잊어버렸다. 한국의 어떤 이가 나하고 똑같이 당하고선 이름까지 도둑을 맞은게로군. 이 똑똑한 아이는 세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 가는 것, 자기의 가게를 갖는 것,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란다. 아버지가 2년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단다. 하지만 이렇게 똑똑하고 당찬 아이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나 싶었다. 그의 안내(?)로 사원을 둘러 보다가 원숭이 신 하누만의 사원에서 한 요가 마스터를 만났다. 하누만 신은 중국 서유기의 모델이라고 한다. 요가 마스터는 닫혀있던 하누만 신상이 있는 곳을 직접 열어 주었다. 평소에는 닫아 두는 모양이다.
뭘 잡아먹었나. 왜이리 시뻘거냐. 이 곳에 약간의 헌금을 놓고 나오니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준다.
요가마스터의 오른쪽 노인은 이 사원의 관리인인듯하다.
시키의 말에 의하면 이 곳 인구는 3천명에 불과한데 크고 작은 사원의 수는 4천개에 이른단다. 아래의 코끼리 머리를 한 신은 가네쉬. 아버지인 시바신의 오해로 목이 잘렸다가 잃어버린 머리를 대신해 코끼리 머리를 달았다는 신.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쥐를 타고 다닌다나... 나도 쥐 한마리 잡아 길들여볼까.
서부 사원군의 사원 중 또 하나. 동부사원군에서 본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성시되는 만큼 신발을 벗어야만 올라가 볼 수 있다.
사원 근방의 민가
이따만한 사원에서 요따만한 사원까지 열라 다양하다. 골목길 담벼락에 예쁜 문양이 있길래 찍었더니 그 문양 자체가 사원 중 하나란다. 무슨 신의 신전이라고 했더라...
사원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나서 일행 대부분이 교사들인지라 근처 학교 방문을 원했고 시키는 자기 학교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이 곳이 교실인데 학교는 매우 열악했다.
일요일인데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교실 안에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동작의 이음새가 약간 매끄럽지 못해도 춤을 아주 잘 추는 소년이 있었다. 그의 장래 희망은 유명한 댄스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아주 자상한 양반이었다 우리는 방명록에 기록하고 약간의 기부를 하고 나왔지만 나중에야 좀 더 기부할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키는 마지막 코스로 자기 집에서 짜이 한 잔 하잔다. 사양했더니 여기까지 와서 친구집에 들르지도 않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며 함께 가기를 간청했다. (이게 본색 드러내기의 시작이다. 그걸 모르는 나도 아니다. 가면서 자기 친구인 한국인 아무개는 자기 공부하는데 보태쓰라며 500루피를 주고 갔단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짖궂게 물었더니 그냥 친구 얘기를 하는거랜다. 짜슥!)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선뜻 가자고 했다. 그의 어머니도 만났다. 그의 동생 리키도 마침 집에 있었고 덩달아 그의 친구들도 잔뜩 따라 왔다.
이 곳이 주방 겸 거실이었다. 사진을 찍느라고 내가 선 위치는 시키의 방문앞.
그리고 이 곳은 시키의 방. TV와 침대 그리고 작은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키의 집 마당에 있는 또하나의 작은 사원.
어느 신이라고 했더라... 쉬바신이라고 했던가 하누만 신이라 했던가... 시키가 공부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태쓰라고 작은 금액을 내놓고 나오는데 영어를 몰라 내가 하는 말을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어지간히 고마웠던 모양이다 창문을 통해 인사를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오르차로 떠나기 위해 다시 택시를 대절했다. 이 곳의 택시도 찝차다. 타고 가다가 저녁 노을이 예뻐서 한 장 직었다.
몇 시간이 걸렸더라.... 대낮에 떠나 저녁 시간에 도착했다. 택시비가 1500루피정도 나왔던 것 같다. 숙소인 Shri Mahant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그 곳 숙소엔 특히나 한국인이 바글바글했다. 두 젊은 친구가 이 게스트하우스 테라스의 엉성한 식당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우리도 무언가를 먹어야 하니 말을 걸어 보았다. 맛있느냔 질문에 살기 위해 먹는다는 답변을 하며 정보를 준다. "누구 말도 믿지 마세요. 강쪽으로 가면 음식이 형편없는 집밖에 없어요. 죄다 사기꾼들이걸랑요." 우리는 그들이 추천하는 식당 밀란으로 갔다.
이 곳에 오니 한 떼의 한국 대학생들이 밥을 먹고 나가는 참이었다. 그들이 우리를 아는체 하며 음식을 추천해주었다. 십수명이 단체로 밥을 먹고 나가니 조금은 요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식을 추천해 주는 젊은 친구와 약간의 정보를 주고 받느라고 약간 소란한 그곳에서 나와 그 학생의 목소리가 컸는지 중년의 서양인 부부가 밥먹다 말고 자꾸 쳐다 본다. 그들이 나가고 난 뒤에 소란스러움을 사과했으나 그 중년 부부는 웃으며 사과할 필요 없다고 한다. 어쨋든 그 학생이 추천해 준대로 씨즐러라는 것을 시켜보았다. 음식 자체가 아주 감덩이다. 한국에 씨즐런가 뭔가 하는 체인 식당이 들어와 있는걸로 아는데 어쨋든 씨즐러라는 것이 인도 남부의 전통음식이란다. 장식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뜨거운 철판접시 위에 썰지 않고 한꺼풀 벗겨낸 양배추를 그 위에 접시삼아 몇 장 얹고 그 위에 갖가지 튀김과 이상한 샐러드를 얹었는데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게다가 맥주가 있는 집이고(그 학생이 나가면서 맥주값은 부르는게 값이니까 80루피 이상 주지 말라는거였다. 주인이 120루피를 부르길래 우린 이미 값을 알고 있다고 했더니 웃으며 80루피만 내란다. 어이 없음 ㅡㅡ;) 음식도 맛있고 아주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이 날은 휴식을 취했다.
각 방의 창문은 도둑방지를 위해선가 철창이 둘러져 있다.
방에서 셀카 한 컷
바로 바깥으로 보이는 락시미 나라얀
호텔 난간에서 본 야경
1월 22일(월)
락시미 나라얀 만디르 너머로 동이 튼다.
오르차라는 곳은 아주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다. 그러나 이 곳에 기념품과 특산물을 파는 상점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면 관광객이 상당히 많이 다녀가는 곳인 것 같다. 여기에도 크고 작은 궁전이 많은 곳이며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서 크게 발품을 팔지 않고도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 곳은 헤나 문신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침식사를 한 뒤 우리는 헤나 문신부터 그리러 갔다.아주 자그마한 가게에 두 사람의 아가씨가 문신을 그리는데 한 손 양면 또는 팔뚝 하나에 200 루피란다.
다 들 한 손만 하겠다고 한다. 두 손을 다 그리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문화체험이 목적이니 굳이 두 손을 다 그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싶었다. 두 사람의 젊은 아가씨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대단한 미인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귀여운(?) 뚱녀였다. 나도 남자니 당근 매력녀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헤~~~! 용재, 경은, 나 세사람이 헤나를 그리기로 했다. 두 사람이 각각 용재와 경은 한 사람씩 그렸다. 매력녀의 정면사진을 찍고싶었는데 좀처럼 작업에 몰두하느라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기다리다 결국 고개숙인 옆모습밖에 찍지 못했다. >.< 좌우당간 누군가 먼저 작업을 끝내는 사람이 내 손에 작업을 할게 아닌가. 나는 매력녀가 먼저 일을 끝내고 내 손을 잡아 주길 바랬다. 그런데 먼저 작업을 끝내고 손을 잡아준 사람은 뚱녀였다. 그럼 그렇지 에잉!
알고 보니 애기엄마였다. 깽! 바로 얘네 엄마라네.
좁은데서 참 애쓴다 애써.
나꺼 그리는 중
완성된 용재의 손
완성된 경은의 팔
시크교도들의 퍼레이드가 그 근방을 지나서 한 컷.
인근 고등학교에 들러 보았다.
역시 열악한 환경이다.
운동장도 없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 전부다.
교실. 바닥에 앉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교복 입은 단정한 모습이 예쁘다.
이 학교의 학생들
칠판
앉은 방향이 다른걸 보면 한 교실 두 개 학년인가 보다.
이 곳을 떠나 마할 밀집지역으로 가자면 호텔을 다시 지나가야 했다. 이 통로 바로 왼편에 우리가 목고 있는 호텔 출입구가 있고 전면에 보이는 것이 마할의 일부이다. 오른쪽, 즉 호텔의 건너편에는 우유로 만든 과자를 파는가게가 있었다.
호텔앞 우유과자점. 엄청 달아서 못먹을 것 같아 조금만 사봤다. 설탕덩어리도 이보다 달진 못할 것 같다. 무얼 갖고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독약처럼 달까. 하나를 다 먹지도 못하지만 먹고 나면 속이 느글거릴 정도다.
악세사리 가게
호텔에서 마할 밀집지역까지는 도보로 10분 남짓이었다. 마할은 왕궁을 의미한다. 라즈 마할, 쉬즈마할, 제항기르마할 등 다섯 군데 마할과 왕궁내 식당에서 우아한척하고 밥먹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왼손에 그린 헤나문신은 염료가 마른 뒤에도 오래 놔두어야 지워지지 않고 오래 간단다. 그래서 왼손은 쓰지도 않고 이렇게 모시고 다녔다.
내부 통로
내려다 본 아래터
바깥 풍경
멀찍이 락시미 나라얀 만디르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다른 마할이 보인다.
왼쪽에 보이는 마할로 이동하였다.
왕의 침실은 훼손이 우려되어 관리인이 지키고 있는데 운이 좋아야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운때가 안맞으면 못보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마침 왕의 침실에 도착했을때 관리인이 막 침실을 잠그고 자릴 뜨려던 참이었다. 운이 좋아 달려가 침실을 꼭 보고싶다고 했더니 다시 열어준다. 생각없이 천정 벽화 사진을 찍고 나서 아차싶어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사진 찍어도 되는거예요?" 관리인이 웃으며 고개를 도리질한다. 헷갈린다. 훼손을 염려해 조명 지원도 안하는 이 곳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는데 안된다는 안내문도 못보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전 주의사항도 안주고, 경고도 안하고, 사후 화도 안내고 너 실수했다고 미소짓는건 어느나라 표현식이지? 개념 없군ㅡㅡ; 어쨋든 궁전내 일부를 개조해서 조성한 쉬즈마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인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실내장식과 음식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인근 힌두사원인 락시미 나라얀 만디르 를 마지막으로 보고 짐을 수습해 잔시역으로 떠날 참이었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바로 락시미 나라얀.
입장료에는 그 곳까지 포함한 가격이어서 마할 입장권이 있어야만 관람이 가능했다. 그런데 표를 맡았던 경은에게 물으니 표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못찾겠단다. 표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검표원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고 사정을 말하든지 아니면 용돈을 좀 쥐어주고 들어갈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배뽈록 나오고 작달막한 그 곳 입구 검표원이 자기에게 1인당 돈을(얼마씩이었더라) 내면 들여 보내 주겠다고 하는 거다. 오른 손을 내밀어 돈세는 시늉으로 엄지를 검지와 장지에 비비며 돈을 요구하는 꼴을 보니 밉살맞은 생각이 치밀었다. 기분 상해서 다들 그냥가자고 한다. 경은이가 미안해서 어쩔줄 모른다. 그러자 뽈록이 관리인이 반값에 해주겠단다. 우리가 안들어가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같이 일하는 검표원인지 이번엔 근무하던 젊은 놈이 왜 안들어가냐며 쫓아 오길래. "당신 일이나 신경쓰시지"라고 내뱉고 근처 노점에서 기념품 구경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이 곳 강가에 나가 보았다.
수행자
이 곳에 올 때마다 이강에는 꼭 와본다는 가으럽의 말에 깨끗한 강일거라고 기대하고 왔지만 물은 손을 담그기조차 싫을 정도로 탁하고 이끼가 많이 끼어 있었다.
저녁 노을을 받은 사원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다른 사람들은 귀찮아서 안가겠다고 하는 이 곳에 경은이하고 둘만 다녀왔다. 덕분에 영계하고 데이트했군. ㅍㅎ
다시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수습한 뒤 택시를 타고 잔시역으로 이동했다. 예매를 안하면 기차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처음 이 호텔에 왔을 때 식당 정보를 주었던 학생들은 표를 구하지 못해 구경을 다 끝내고도 3일째 호텔을 못떠나고 있다며 오늘도 기차역에 한 번 나가봐야겠단다. 차라리 택시를 대절해 타는게 나을성싶은 상황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기차를 타고자 했지만 시간이 영 불안했다. 이곳 인도의 식당들은 음식을 시키고 30분 기다리는건 유도 아니고 심지어 1시간도 기다리는걸 감안하면 절대 부족한 시간이었다. 역 안으로 골인하고 보니 구내 식당이라고 하나 있기는 있는데 메뉴라곤 다신 먹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바로 그 탈리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이거 말고는 없으니 안먹으면 후회할 것 같아 억지로 쑤셔 넣었다. 이런 제기럴! 먹고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면서 가고싶지 않은 열차 화장실을 자다 말고 몇 번을 가서 가죽피리 들고 따발총 쐈다.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