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19(수)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괴레메로 향하는 버스를 다시 탔다. 네우세히르에서 어디를 가나 출발지점으로부터 일정 거리까지는 같은 길로 가야했다. 갈림길로 들어서 달라지기 전까지의 길은 새로울게 없었다. 괴레메에 도착해서는 우선 마을부터 둘러 보았다. 가는 곳마다 운치가 있었다.
이 곳의 호텔들도 예쁘게 꾸며 놓아서 그 자체도 볼거리였다.
이 곳의 토굴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호텔로도 운영된다. 아래 사진의 토굴 호텔 1층에 크게 뚫린 구멍이 있길래 무슨 공간인가 들여다 보았다가 곰삭은 인분 냄새에 쓰러지는 줄알았다. 나도 주책이지 거길 왜 들여다 봤나 몰라. 어흐~~~!
이런 바위는 마을 안에도 지천에 깔렸다.
염료를 끓이고 있길래 뭐하는덴가 들러 보았다.
두 명의 젊은 여인이 카펫을 짜고 있었지만 그리 고급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바로 옆에 갤러리 아나톨리아라고 써 있는 건물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그 곳에서는 두 명의 나이든 여인이 카펫을 짜고 있었는데 매우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수준이었다. 역시 젊은 여인네들보다는 지긋한 여인네들의 숙련된 기술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값싼 제품 제작자는 바깥에서, 고급제품 제작자는 실내에서...ㅡㅡ;
안에 들어가 보니 전시된 카펫의 수준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라비아 궁전도 이렇게까지 럭셔리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내 카메라가 얼마나 후졌는지 여기서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 곳의 사장이라며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이 가장 먼저 보여 준 카페트다. 가격이 무려 1,000달러. 아름답고 섬세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비쌀 줄이야... 크기도 일반적인 카펫 사이즈의 반도 되지 않을만큼 작은 편이었다.
하나를 더 보여 주는데 고상한 분위기다.
아주 작은 것도 보여 준다. 돈있는 애들은 이걸 사다가 욕실 발판으로 쓰려나?
비싸다고 손사래를 쳤더니 250불짜리를 보여 주는데 그건 바깥에서 젊은 여인네들이 짜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배낭여행객인 우리가 이런 카페트를 살리 없다는 생각을 이미 했을 법도 한데 박물관 안내하듯이 친절하게 구석구석을 보여 주었다. 어지간한 박물관도 이만큼 눈을 잡아끌지는 못할 것 같았다. 주인은 "이 곳에서 구경하는데만 1인당 20불을 내야한다"고 했다. "이런 훌륭한 예술품을 보는데 20불이면 너무하지 않나. 1인당 100불을 내면 안되겠냐"고 되받아쳤더니 그는 웃었다. 자신의 농담에 당황해 하지 않는 것도 그렇거니와 자신들이 만든 예술품에 대한 최대의 찬사로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한다. 친절하게 입구까지 안내해 주었다.
여기가 들어가는 입구인데 결국 우린 뒷문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가다 보니 어렸을 때 흔하게 본 물건이 보인다. 추억을 자극하는 삼륜차.
나름대로 전통의상이라고 주장하는 가게에 가서 물건도 좀 골랐다.
입어보고 멋있으면 살려고 했는데 생긴건 잠옷이고 잠옷치곤 불편했다. 이게 뭐야 씨! 비단이장수 왕서방 밍월이 쳐다보고 맛이 간 포즈와 표정이다. 그래서 모자만 샀다. 바가지를 쓴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엉성한 모자는 마음에 들었다.
괴레메도 식후경이다. 밥먹으러 갔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메르칸 레스토랑. 막상 찾아가 보니 환상적인 분위기에 우린 기냥 맛이 갔다.
2층 테라스로 가니 2-4인용 테이블만 있는 고로 6인짜리 자리를 만들었다.
늦은 점심이라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꼭 우리 카페인 것 같은 착각.
갖구워 내온 빵이 엄청나게 길다.
뜀도령이 하는 추잡한 짓에 허락 없이 나도 동참.
희준군도 만만치 않군
백포도주도 한 병 주문했다. 한국인 4명의 자리에 터키인 두 명이 꼽살 낀 것 같다.
내가 시킨 주요리. 생선, 고추, 토마토를 구워 적채, 양상추, 레몬과 필라우를 곁들여 내놓았다.
밥을 먹고 나서 마을을 벗어나 괴레메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언덕을 향해 걸었다. 그림같은 곳이다.
괴레메 파노라마가 시작되는 언덕 초입.
여기서부터 계속 걸어가면서 괴레메 파노라마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처음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면 내려다 보이는 지대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올라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면서 더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도대체 어떤 풍화작용이 이런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 놓았을까.
어제 우리가 아바노스에 다닌 동안 광원과 희준은 이미 이 곳 괴레메 파노라마를 봤다고 했다. 그러나 자료 준비가 안되어 있던 그들은 다시 현지 패키지를 이용했던 모양이다. 데리고 다니면서 이따금 내려주고 브리핑과 함께 구경시키고 나서 다시 출발하는 식의 패키지를 돌다가 오늘은 우리와 함께 직접 찾아 걸어다니면서 어제와 같은 길을 가는데도 어쩌면 이렇게까지 느낌이 다를 수 있냐며 만족해했다.
이쯤에서였나 보다. 참았던 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언덕을 따라 걷다 보니 미끄럼을 타면 재미 있을 것 같았다.
말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한 번 시도해 보았다. 처음 내려갈 땐 좋았는데 조금 더 내려가면 낭떠러진데 이놈의 미끄럼이 멈출줄을 모른다. 어어어~~~!
간신히 멈추긴 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은 아래쪽이 그리 까마득해 보이지 않지만 조금 더 미끄러져 내려 갔으면 벼랑에서 떨어져 죽거나 사망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거다. 문제는 바닥이 거칠어 보여서 안미끄러질 줄 알았는데 이건 바위가 아니고 말하자면 매우 단단하게 굳은 모래였다. 그러니 표면은 힘주어 문지르면 미끄러질수 밖에...
이거 왜 이렇게 미끄럽냐. 사력을 다해 지그재그로 달려서 올라가면 단 몇 미터만 더 올라가면 되는데 도로 미끄러지니 이거 참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리유는 내가 사경을 헤매는게 재미있었는지 사진을 두 장이나 찍어서 보여줬다. 마귀할멈같으니... 결국 광원이가 던져주는 가방끈을 잡고 간신히 올라왔다. 역시 사람은 가방끈이 길어야 하나보다. 10년 감수했다. 이젠 철 좀 들어야지.
괴레메 파노라마는 무척 길었다.
하지만 온갖 기암괴석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아
지루한 줄 모르고 걸었다.
희안한 것은 뙤약볕이 눈부실정돈데
그리 덥지도 않고 땀도 별로 나지 않는 건조한 기후가 마냥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가다 보니 터키의 깃발도 보인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운치있는 카페가 또 나온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곳에 들러 차를 한잔 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곳이었다. 포도넝쿨 같은 것들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손님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늘의 일정에 대한 소감도 정리를 해가면서
웨이터인지 주방장인지 아님 카페의주인인지(주인은 아닌듯...) 진짜로 작은키에 콧수염은 아주 멋들어졌다. 인형을 저렇게 만들어서 팔면 잘팔릴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충분한 휴식 후에 다시 우치히사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다 보면 우치히사르가 나온다.
이 곳이 우치히사르 마을이다.
우치히사르는 보는 바와 같이 특이한 분위기를 가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곳에서 버스를 타고 네우세히르로 돌아가 짐을 찾아 나왔다. 희안한건 20분 정도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드나무처럼 생긴 나무가 몇그루 있어 그 밑에서 기다리는 동안 어찌나 시원하던지 거기서 화단턱에 앉아 기다리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네우세히르의 호텔로 돌아와 짐을 수습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위르깁으로 갔다. 위르깁 오토갈에서 출발해 이스탄불로 향하는 야간 고속버스는 네우세히르를 거치기는 하지만 우리가 묶는 이 곳 네우세히르에는 똑똑한 레스토랑이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 남는 시간 때우기가 막연하기 때문이었다. 도착하는 즉시 버스표부터 구입했다. 위르깁에는 운치있는 카페가 지천에 널린데다 기념품을 살만한 가게들도 많았다. 한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하다 나오니 엄청 예쁘게 생긴 22세 전후 정도의 처자와 광원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새를 못참고 한 명 또 꼬셨나 했더니 여자 쪽에서 먼저 꼬신 것 같다. 우릴 본 그 아가씨는 '네 친구들이냐'고 묻더니 사람이 많아서인지 인사만 하고 그냥 갔다. 어느 책에서 보니 터키에도 성의인척 하고 접근해서는 묵을 호텔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면 미인계를 써서 '우리집'에 와서 묵으라고 꼬시고서 넘어가면 기냥 바가지를 씌우는 그런거 간혹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니만 으째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아닌가싶다. 위르깁에 도착한 우리는 약국을 들렀다. 아싸의 약을 구입하기 위해 들렀던 것 같다. 거기 약사의 미모가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얼굴은 하얗고 엄청 풍만한 가슴에 허리는 완전히 개미허리였다. 그 옆에 남편인지 남의 편인지 알 수 없지만 후져 보이는 남자가 함께 약장사를 하고 있었다. 카파도키아에는 미인이 많았지만 남자들은 인물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약국에서 나온 우리는 기념품 가게를 다니며 선물로 돌릴 물건을 골랐다. 손가락 모양의 하드 아이스크림도 사먹어 가며 구경하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게 아니었다. 어느 기념품 가게 사장은 아들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물건도 예쁜게 가장 많았을 뿐 아니라 주인장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신사였다. 주인은 우리보고 대만사람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볼때는 중국계, 한국계, 일본계가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볼 때는 그 인물이 그 인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전통악기를 연주한다면서 원하면 우리들을 위해 전통음악을 연주해 주겠다고 했다. 이거 얼마나 좋은 체험인가싶어 좋다고 했다. 광원과 희준도 좋아했다. 나는 먼저 나가 있던 리유군, 뜀도령, 아싸를 데리러 갔다. 그들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돌아오마구 대답하고 막상 돌아왔지만 왠지 아쉬웠다. 시간이 없으니 두 세곡만 연주해달라며 주저 앉았다.
연주가 흥을 돋구었다. 기다리다 화가난 아싸가 와서 '금방 오겠다고 해서 기다리다 못해 왔더니 여기서 지금 뭐하냐'며 화를 냈다. 순간 양쪽에 미안해졌다. 무안~~~~! 사장은 우리보고 '친구가 화났으니 빨리 가보라'며 등을 떠민다. 우리는 작별을 고하고 나왔다. 나와서 뜀도령과 리유군한테서 또 야단맞았다.
이 곳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레스토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에 운치있는 카페들이 많아 미리 정해두지 않았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엄청나게 고민했을 것이 틀림 없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점찍어 둔 쇠미네 레스토랑으로 갔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쇠미네는 난로라는 뜻이란다.
주변이 내려다 보이는 2층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내가 시켜 먹은 주요리인 닭날개구이(Kanat)
누군가 시켜겠지. 난 별로 먹고싶지 않은 닭 앞가슴살과 볶음밥(Sade Pilav: 사데 필라우)
뜀도령이 뭔지도 모르고 용감하게 주문한 음식은 양고기 구이였다. 은박에 구이가 예쁘게 포장되어 나온 것을 나이프로 잘라 뭔지도 모르고 입에 넣은 뜀도령은 임산부 구역질하듯이 기냥 뱉어냈다. 결국 이사람 저사람이 자기 먹을 것을 덜어 뜀도령에게 동냥했다. 나도 닭날개와 볶음밥을 조금 나눠 주고 양고기를 받아왔다. 그래도 난 먹을만하다. ㅋㅋ
그건 그렇고 이건 도대체 무신 얘기를 하다가 나온 표정일까 내가 생각해도 디따 궁금하다. 음식 나오기 전 리유가 웨이터보구 더운물을 갖다 달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만행을 저지르려고 더운물을 달라고 할까 했더니 리유군은 거기에 라면 스프를 풀고 아작낸 라면 부스러기를 넣었다. 후후 불어가며 돌려서 마시기 시작했다. 현지식만을 고집했던 내가 갈등이 생겼다. 음식에 관한 한 현지음식만을 먹어야 조금이라도 많은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던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싶다. 리유군과 뜀도령이 어찌나 놀려먹던지...
밥을 먹고 난 우리는 야간 버스를 타고 하야장장 긴밤을 주구장창 달리면서 잤다. 네우세히르에 정차한 고속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