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5.(토)
더이상 일본에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은 더 이상 음반을 사지 않겠다는 의지의 직접적인 반영이었다. 음반을 사러 다니는 것 자체가 최근 몇 년 간 일본 여행의 목적이었던데다 한 해를 거르지 않고 겨울만 되면 훌쩍 건너가 쏘다녔으니 이제 더 이상 쌓아 둘 곳도 없고, 그게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탈덕할 때도 됐다는 것을 느낀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도 아니었다. 밴친들은 걱정하는 것도 아님서 약 챙겨 먹었냐고 걸핏하면 내게 묻는다. 특히 S모씨하구 H모씨. 판떼기 환자인데다 노인이니 합병증이 의심된다는 논리다.(아우~ 염병). 겁없이 덜컥덜컥 사대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 번, 딱 한 번만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킹 크림슨이 온다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냐고. 간 김에 그냥 오면 섭섭하니까 살짝 판떼기 디깅도 좀 하고...호호호... 나 자신에 대한 배신인지 배려인지 죄의식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내지 핑계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절대 오지 않을 밴드. 그들이 한국에 오면 신문에 나고도 남는다.
"손해와 망신을 감수하겠다던 킹 크림슨! 의기양양하게 성공을 자신하며 대한민국에 방문했다가 단 1회의 공연에 파리날리는 수모를 겪고 패잔병처럼 영국으로 돌아가다."
남는 방법은 미친척하고 공연일자에 맞춰 영국 내지 유럽이나 미주 투어를 쫓아가든가, 아님 가까운 일본으로 가는 방법 뿐이다. 그나마 일본이 가깝잖아? 판사러 가는거 아니고 공연보러 가는거고 음반 디깅은 2차 문제니까... ㅡ,.ㅡㅋ
당연히 공연티켓 확보 부터가 문제였다. 내게서 부탁 받은 마사유끼군이 미리 회원가입하고 티켓 오픈 10분 전에 로그인하고 대기하다가 바로 치고 들어갔지만 SS석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 S석만 남았다며 그거라도 확보해 놓으랴고 물어왔다. 심란한 마음을 억제하며 공연을 포기했지만 웬수같은 판준군이 건영군까지 합류시켜 구멍난 나의 가슴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push push push... 얼마 뒤 마지못하는 척 마사유끼군에게 다시 연락했다. 진작 S석이라도 미리 확보해 둘걸 잘못했나 보다. 확보한 표는 1층 맨 뒤다. 그나마 당시 남은 자리 중 가장 좋은 자리였단다. 2층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고 다행이 연주회장은 비교적 크지 않았다.
마사유끼군이 확보한 표를 보내왔다. 만나서 주면 될 일이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춘부장께서 암으로 위독하신데 난 그것도 모르고 표를 부탁했고, 내색조차 안하던 이 녀석은 내 부탁을 들어주고는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표를 보낸다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ㅠㅠ 결국 마사유끼군이 막 장례를 치룬 뒤 우리가 도쿄에 도착했고 동행자들과 함께 마사유끼군을 만나 저녁을 함께 하려던 계획도 함께 무산되었다. 다시금 친절하고 상냥하셨던 마사유끼군 선친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바친다. 그 분의 영혼을...
표가 확보되었으니 이제 숙소 문제가 남았다. 판준군의 친구인 진처자와 범석군이 단순히 여행을 위해 합류하고 그 외 또 한 명이 공연 관람에 합류하기로 했다. 공연입장권이 4장으로 늘어난 이유다.
아고다를 통해 아파트 독채를 예약했다가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 불분명한 주소, 호스트의 무성의한 사이트상 응대, 전화는 받지도 않고 받아도 응대 자체가 불가능한 엉뚱한 사람이 이따금 전화 받으면 전화하지 말라는 소리나 하고,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방법은 안나와 있고 숙박 가능여부는 고사하고 찾아갈 수 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숙박비는 이미 완납했으니 아쉬운건 우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아고다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조치도 그렇고. 상황 종료 후 아고다의 노골적인 고객 우롱에 더 열받고 속썪은 경험담은 굳이 더 거론하고싶지 않아 패스. 그동안 애용하던 아고다였지만 처절하게 배신 당하고 나니 이젠 아고다의 "아" 자도 거론하기 조차 지겹다. 간신히 해약하고 나니 진처자가 다른 숙소를 예약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짐을 싸고 각지의 주거지로부터 발을 뗐다.
6명이 공항에 모여 모여 항공권 체크인을 마친 뒤 아침식사 메뉴에 의견이 각기 달라 각자의 취향대로 흩어져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시작부터 각자의 취향대로... 건영군과 함께 먹은 라면과 김밥. 이게 그나마 내겐 최고였다. ㅋㅋ
저렴하지만 가성비 그닥 좋지 않은 저가항공사의 비교적 비싼 항공편. 에라 저가항공도 이게 마지막이다.
출발 전 공연관람팀 중 세 명 1컷. 판준군, 나, 건영군.
나리타공항에 도착해 사전 예약된 픽업 서비스로 시내로 들어가는 중. 세련된 이 표정의 주인공. 이거 누구냐 순간포착 기막히다. ㅋㅋ
목적지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픽업 승합차.
가성비가 뛰어나진 않지만 일본의 아파트 치곤 비교적 아담하고 깨끗한 곳이다.
방은 두 개, 거실 겸 주방과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려 대충 6명의 잠자리가 해결되었다.
짐을 풀자마자 늦은 점심부터 먹으러 개떼같이 기어나갔다. 바로 근처 돈가츠 가게다. 이 집 메뉴 중 요게 가장 맛있어 보인다.
나름 반찬.
메인메뉴. 이 정도면 훌륭한 맛이다. 일본의 돈가츠는 대개 두툼하고 볼륨감 있게 튀긴 집이 많다. 바삭한 튀김 속에 식감 부드러운 두툼한 고기가 들어간 돈가츠는 먹을 때마다 만족감은 높지만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다. 튀김옷을 태워먹지 않고 두툼한 고기 속까지 익힐 수 있는 방법은 지레 짐작으로는 고기를 이미 익힌 상태에서 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방법 뿐이다. 아님 말구.
맛있는 기린맥주. 최고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비교적 맛있게 생맥주를 뽑아 내왔다.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생맥주를 맛있게 뽑는건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80점.
신주쿠 중심 방향으로 나간 이유는 1차 디깅. 잠깐 사이에 어둠이 깔렸다.
디깅팀과 관광팀 두 패로 갈라졌다.
디스크유니온 신주쿠 클래식 및 일반관. 말없이 디깅에만 열중하는 건영군. 고가판만 상대하는 부자을쉰.
갖고싶지만 결정하기 힘든 가격의 지미 헨드릭스. 이 중 상태 좋은걸로 집어든 건영군의 용기에 박수를... 와...짝짝짝...
어마무시한 가격의 초반들. 그냥 구경만 함.
상태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원화 표시라면 얼마나 좋을까. ㅠㅠ 패스.
이게 왠 횡재냐 싶어 속을 봤지만 상태가 표기만큼이나 메롱이어서 포기. 그럼 그렇지 으째 이렇게 저렴할 리가...
표기를 보니 상태가 몹시 안좋은가보다. 이미 갖고있는 음반이지만 비싸게 구입한 음반이 일케 저렴하게 나오니 기분 묘하다.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해적반. 절대 저렴하지 않다. ㅋㅋ
구입한 음반. 엥겔브레슈트의 드뷔시 뒤크레텟 톰슨 초반.
바릴리의 모차르트 일본 웨스트민스터반.
저렴해서 집었더니 상태가 완전 메롱. ㅠㅠ. 상태 감안하니 절대 싸지 않다. 개실패.
덱스터 고든 일본 사보이반.
덱스터 고든 미국 블루노트 70년대 초 프레싱반.
베니그린 블루노트 일본반.
말스뎁스 일본반. 일본 라이선스반도 값이 무척 올랐다.
스티브 해킷 영국 초반.
알 쿠퍼 일본반. 작년 일본초반을 집었다가 10,000엔 가격 붙어있는거 보고 허겁지겁 반품한 적 있었던 I Stand Alone. 오비도 없고 후반기에 찍은거라 저렴해서 집어옴.
T-Rex 영국반.
Van Mirrison.
일본의 라이선스반은 대체적으로 국내 기준으로 NM급인 만큼 일일이 반질을 확인할 필요가 없어 미국반과 고가반만 확인하는 내 기준으로는 꼼꼼하게 한 장 한 장 열어 속을 확인하는 판준군을 기다리기 지루해 잔소리 한 마디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반질 하나하나 세밀하게 보며 기다리는 사람들 수십번 하품하게 만든 판준군. 내가 젖소. ㅠㅠ
디깅을 마치고 숙소 가까운 곳 야키도리집에서 6명 모두가 다시 모였다.
대충 고른 집 치고는 만족도 뛰어난 집이었다. 야키도리가 아주 훌륭하다.
이놈의 소스 만드는 법만 알면 집에서도 즐길 수 있을텐데. 뭔노므 양배추가 이리 맛있냐. ㅠㅠ
첫 날의 간단 일정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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