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3(일)
마사 안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며 서비스하던 말은 이제 휴식을 취하러 가는지 마부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버렸다.
말만 쉬냐. 우리도 쉰다. 우리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가게방으로 가 맥주부터 한 병씩 마셨다. 닛코의 지방맥주인 닛코지 맥주다. 맛은 산토리나 기린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아도 맛은 좋은 편이다.
이 곳에서 뜀도령과 내가 나누는 대화를 얼핏 들으신 한 어르신이 들어오시더니 한 말씀 하신다.
"한국말 오랜만에 들으니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잠깐 들어와 봤어요."
어르신은 풍이 있어 몸이 성치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혼자 여행을 오셨다고 한다. 요코하마에서 거주중인 어르신은 일본에서 살아감에 있어 너무나도 많은 혜택의 차이가 있어 고민끝에 일본인으로 귀화하셨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 노년이 되면 혼자서 여행도 즐기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 음악도 즐기고 조용한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사는것을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는 나로선 그 분이 내겐 그 모습이 무척 멋져 보였다.
그러한 이야기를 해드리니
"불편한 몸에 혼자 궁상떨며 여행이라고 돌아다니는 내가 쑥스러운데 그런 날보고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젊은이 한사람 뿐이었다"며 얼마나 행복해 하시던지 그 모습이 순수해 보인다. 맥주 한 병 권해 드리려니 극구 사양하시길래 명함을 드리며
"한국에 나오시거든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겁니다. 오시면 좋아하실만한 곳 몇군데 모실테니 꼭 연락 주세요."
라고 했던 건 괜한 인사치례가 아니라 좋은 분같아 내가 좋아서 드린 말씀이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내겐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어르신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어요.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으면 소중한 인연이 끊어지겠구나 하는 조바심에 전화해 봤어요."
어르신은 전화번호를 주시며 다음에 일본에 오거든 요코하마의 당신 자택에 꼭 들러 달라고 신신당부 하신뒤 끊었다. 멀마나 고맙고 소중한 인연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관광을 마치고 나온 도쇼구로 이제 막 들어가시는 어르신께 하직인사를 한 뒤 신쿄 방향으로 걸었다.
신쿄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리는 건널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28미터 길이의 이 다리는 이곳을 방문한 쇼도 스님이 강을 건널 수 없어 신불에 기도하니 두 마리의 배암이 나타나 다리를 놓아 오늘에 이른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야말로 완지온 전썰.
단순하게 지어 놓은 다리지만 부드러운 곡선과 주변경관에 비해 튀는 색 때문인지 아름다워 보인다.
이 곳을 지나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식당 한 곳을 정해 밥을 먹기로 했다. 그 냥 돌아다니며 식당을 물색하던 중 발견한 한 국수집. 일단 사람이 많은 곳을 정하기로 했지만 이 곳이 그냥 느낌이 좋아 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손님은 적지 않아 자리가 거의 찼다. 우리도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모리소바를 주문했다. 내가 맛을 모르는걸까. 한국에서 먹던게 더 맛있는 것 같다. 면발의 질감도 소스의 달콤한 맛도, 모두 다 한국의 것이 더 낫다는 느낌은 본토에서 먹는 촌놈이 낼 수 있는 촌티일게다.
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간 곳은 게곤노타키(게곤폭포).
게곤노타키는 일본의 3대 폭포 중 하나로 높이가 100여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마사유끼의 말에 의하면 이 곳에서 한 번 떨어지면 확실하게 죽기 때문인지 자살 장소로 많이 애용(?)된다고 한다.
영상에 담아도 보고
폭포를 배경으로 개폼도 잡아봤다.
이번엔 주젠지 호수로 가보기로 했다. 도보로 15분정도 걸으면 주젠지 호수가 나온다.
호수는 엄청 크다. 뭐 대단한 볼거리냐면 그냥 호순데 뭐 대단한게 있을까. 물있구, 돌있구 보이진 않지만 생선두 있을테구.
온김에 사진 한방씩 찍고(뜀도령군과 마사유끼군)
여기까지 봤으니 오늘의 관광은 종료인가?
어쨌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도부닛코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타자면 남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기념품점을 돌아다녀봤다. 기념품점엔 태반이 먹을거리 천지었다.
얼마전부터 뜀도령의 괴벽이 전염되었는지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 나라의 캔맥주 하나씩 사서 모으고 있다. 아까 마셨던 닛코지 맥주 한 병하고 아래 사진의 맥주 한병을 샀다. 이게 장식장에 들어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괴벽에 놀라 자빠지겠지...
어쨌든 우리는 5시 36분에 출발하는 아사쿠사행 열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다 중간에 올라타 내 앞자리에 앉게 되어 만난 독일의 처자 리타. 나중에 대화로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독일에서 에너지공학 박사과정을 이수중인데 일본의 연구단지(한국의 대덕밸리 같은 곳인 모양인데 지역이름 생각 안남)에 파견을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처음 내 앞에 앉자 일부러 배낭에서 기초일본어 교재를 무릎에 올려 놓고 단어장을 들춰가며 공부하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수시로 단어장에서 눈을 떼곤 의식적으로 나를 힐끗힐끗 보곤 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연스럽게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려 한 모양이다. 안됐지만 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인걸 어쩌나. 난 그냥 모른척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마사유끼를 한번 쿡 찌르려고 봤더니 이 친구는 이미 곯아 떨어졌다. 으따 존장 곤란허네 거... 죄지은것도 없이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미안해질 일도 싫고 그녀가 머쓱해하면 더 썰렁하다. 에라 씨 모르겠다. 나도 잔다. 자려니 잠 안온다. 샘눈뜨고 보니 그녀는 그때까지도 공부하는척 하다 말고 나를 향해 흘끗거리기를 계속했다. 어찌어찌 하다 마사유끼가 부스스 눈을 뜨더니 그녀의 계산에 얼추 맞아 떨어졌다.
마사유끼가 뒷북을 때리느라 그녀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일본어를 공부하시는군요. 일본에 오신지 얼마나 됐어요?"
"3개월요."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일본어는 그 전부터 했으리라는 지레짐작을 나만 한 건 아니었는지 마사유끼가 내 머릿속을 베껴다 말로 복사했다.
"일본어는 어느 정도나 공부했어요?"
"3개월요." ---> ㅡ,.ㅡ;
"얼마나 더 머무를 참인데요?"
"3개월요" ---> 또 ㅡ,.ㅡ;
그녀는 파견 연구로 6개월 머무는 동안 일본어와 문화를 덤으로 공부하고 갈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멍청이들은 이런 기회가 오면 놀기 바쁠텐데 현명한 일이다. 그녀가 일본의 연구단지에 파견와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말에 마사유끼가 놀라며 물었다.
"그 곳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인데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녀는 웃기만 했다.
이 얘기 저얘기 오가는 중에 나는 그녀가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리타라는 이름을 들으니 당신 고국의 소프라노 리타 슈트라이히가 생각나는군요. 그녀의 민요와 아리아를 무척 좋아합니다. 미성이잖아요"
그녀가 무안해 하며 대답했다.
"모르는데요." ---> 또 ㅡ,.ㅡ;
나도 무안해서 이번에는 네팔에서 만난 스튜어디스 리타 이야기를 꺼냈다. 할 얘기 별로 없으니 나중엔 별 얘기 다 나온다. ㅡ,.ㅡ;
기념사진 한 컷. 그녀도 자신의 카메라에 이 만남을 담아갔다.
이야기를 나누는 리타와 마사유끼군.
도부 아사쿠사역에 도착해 숙소로 일단 돌아갔다. 지하 아사쿠사역사 저쪽에는 쿵작쿵작 댄스음악이 흘러나오고
거기에 모여든 젊은이들은 손에 맥주나 소프트 드링크 한잔씩 들고 음악에 맞춰 좁은 공간에 어깨를 맞댄채 흥을 내고들 있었다. 디스코클럽 아닌 디스코클럽인 셈인데 지하역사 여러 점포중 하나다. 허, 이것이 일본 젊은이들이 주말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렸다?
어쨌든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갔다. 마사유끼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겨 나올 참이었고 뜀도령과 나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나올 참이었다. 방송탑과 아시히 맥주 회사 건물이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사유끼의 설명에 의하면 아사히 맥주회사의 건물은 프랑스인이 설계했다고 한다. 건물 위에 몽글몽글하게 덮여진 형태는 맥주잔에 거품이 넘치는 모양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그 바로 옆 황금색으로 날아가는 몽달귀신 같이 생긴 것은 역시 아사히의 건물의 일부인데
젊은이들은 이 것이 똥처럼 생겼다 해서 똥빌딩이라 부른다고 한다. 맞다 완전 변비똥이다. 어쨌든 젊은이들 사이에서 똥건물로 유명하다고 하는걸 보면 희한한 건물의 모양새로 인해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설계비로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그 값은 톡톡히 뽑고 있다고 봐야 맞지 않을까. 떨어지는 맥주 방울을 형상화 한건지...
어쨌든 마사유끼는 짐을 꾸리고 나는 반바지와 얇은 티셔츠로 갈아입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섰다.
마사유끼가 오늘 저녁에도 맛집으로 우릴 데려갔다. 그가 도쿄에서 자주 찾는다는 교자전문점이다.
마사유끼는 사장님과 무척 친분이 있는듯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카운터에 앉아 기린부터 한 병 주문해 목을 축였다.
후덕하신 인상의 주인장 겸 요리사.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시는 모습.
주인장이 카운터 안에서 우리를 향해 찍어준 사진. 간빠이!
그 때 먹었던 닭요리. 부드럽고 새콤달콤한 맛이 지금도 그립다.
마사유끼의 추천으로 먹은 덮밥. 이게 무슨 덮밥이었더라? 다른 때 같았으면 먹기 전에 음식 이름부터 적어 두었을텐데... 어쨌든 튀겨서 졸인 생선 요리를 밥 위에 얹고 그 위에 파를 뿌렸는데 파의 효과가 아주 좋다. 달작지근하고 기름진 이 음식에 파를 얹음으써 신선함을 가미하고 느끼함을 덜어주는 기막힌 매칭이다. 맛? 아주 좋다. 내 보기엔 일본 요리도 아닌 중국 요리도 아닌 퓨전인듯하다. 주인장은 맛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자주 가신단다. 자칭 냉면 매니아인 나는 한국에 오시거든 꼭 맛보시라고 을지면옥 주소를 알려 드리고 물냉면과 편육을 꼭 맛보시길 권했다. 그는 무척 중요한 정보를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적어준 쪽지를 들어 들여다 보고는 입을 오므린 채 약간의 감탄을 내뱉었다. 새 정보에 흡족한 눈치였다. 맥주를 간단하게 한 잔 하며 식사를 마친 우리는 기미나리몬 옆골목 맥주거리로 가기로 했다.
지난번 도쿄여행때 뜀도령과 나리타 공항으로 돌아가기 직전 휴일 낮술로 맥주를 즐기는 일본인들이 무척 무러워 시간이 없음을 아쉬워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오늘에서야 그 벼르던 짓을 할 참이었다. 하지만 거의 문을 닫는 분위기들이었다. 이런 이런 우리 한국 같았으면 열시도 안됐는데 손님을 안받아? 마침 이 집만이 손님도 아직 많고 성업중이어서 우리를 받아 주었다. 이 곳에서 주문을 받던 여직원을 두고 우리는 지레짐작을 주고 받았다. 동양과 서양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그녀. 영어는 좀 서툴다. 어디서 왔을까. 나는 터키에서 왔을거라고 의견을 냈다. 두 사람 모두 터키에는 다녀 왔으니 고개를 삐딱이며 생각해 보더니 맞는 것 같다고 끄덕여 동조해 왔다. 맥주를 들고 오는 그녀를 붙잡아 물어봤다.
"어디서 왔어요?"
"네팔이요."
엥...? 네팔에서? 네팔에선 그런 얼굴 본 적 없는디...?
혼혈인 모양이었다. 네팔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순수하고 꾸밈없는 네팔 사람들에게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나다. 그 이야기를 하니 그녀도 미소짓는다.
이 곳에서 오래는 머무를 수 없었다. 마사유끼가 집으로 가는 10시30분 지하철은 타야 한다며 10시 10분에 먼저 일어나겠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일어섰다. 우리가 나온 집만 빼면 이 맥주거리의 호프집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마사유끼에게 제주도로 데려갈테니 조만간 시간내서 한국에 다시 들를것을 당부한 뒤 그를 보냈다. 외국에도 좋은 친구가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그가 간 뒤 아까 젊은이들이 모여 어깨를 들썩이던 역사내 좁다란 그곳이 궁금해 파장하는 그 곳을 잠깐 들러봤다. 디스코클럽에서처럼 사용하던 판떼기를 한쪽에 두었다. 개눈엔 역시 똥만 보이나 보다. ㅋㅋ
역에서 다시 나와 숙소 방향으로 가던 우리는 아무래도 알콜이 부족했다. 문을 닫았거나 대부분 닫는 중이어서 어디서 알콜결핍증을 해소할 길이 없었다. 우리는 문을 닫은 한 카페 야외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흐흐흐...
우린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다 여기서 마저 한 잔 더했다. 얼마나 좋냐. 운치도 그만이고 값도 저렴하고...
울타리는 쳤지만 쳐봐야 여기저기 통과하기 좋은 공간이 널렸다. 2박3일 도쿄 여행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보냈다. 그리고 착하게 들어가 조용히 씻고 새로 배정된 도미토리 방에 돌아가 조용히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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