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여행/음악에 관한...

음악과 추억 그리고 추억의 음악 5

코렐리 2012. 11. 20. 17:58

중학교 시절에는 음악을 듣는 몇 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라디오에서 걸리는 대로 듣는 스타일이었고 음반 위주로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용돈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는 음반 위주로 음악을 즐기는 친구들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눈에 띠게 달라진 것은 "음악성"이란 것을 따진다는 것이었다. 음악성? 나는 의아했다.

음악이면 모두 다 음악성이 있는거지 음악성이 있는 음악은 뭐고 음악성이 없는 음악은 뭐지?

인간으로 따지자면 인간성 있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인간성 없는 인간도 있다는 얘긴데. 그럼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인건가?

어쨌든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런 친구들이 학교에 서너명이 있었는데 그들의 취향은 각기 달랐다.

 

그들이 주장하는 음악성이 있는 음악, 음악성 없는 음악, 잘하지만 상업성이 강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음악. 대충 기억에 남아 있는 아티스트들을 한 번 되새겨 보면 기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열하는 아티스트들은 당시 내 보기에 음악 좀 듣는다고 아는체 깨나 했던 애들이 논했던 아티스트를 주장자 구분없이 늘어뜨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음악성 뛰어난 아티스트는

Journey, Alan Parsons Project, Yes, Led Zeppelin, Deep Purple, Rainbow, Al Di Meola, Boston, Stevie Wonder, April Wine, Yngwie Malmsteen, Eagles, Emerson Lake and Palmer, Lee Ritnour, Larry Calton, Allman Brothers Band, Eric Clapton, Jeff Beck, Mike Oldfield, Doors, Ten Years After, Santana 등 소위 연주 잘하는 그룹이나 아티스트가 대부분이었다.

 

 

2. 음악성 없는 음악 하는 애들(?)은

Abba, Aha, Beatles, Smokie, Air Supply, AC/DC, Rolling Stones, Joe Cocker, Man at Work, Dr. Hook, REO Speed Wegon 등 고난도의 현란한 연주가 없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3. 잘 하지만 상업성이 너무 강해서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은

Commodores, Goerge Benson, Grover Washington Jr, Michael Jackson, Queen, Uriah Heep 등을 들곤 했다.

아티스트가 여자인 경우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거들떠도 안봤다.

 

지금 나열해 놓고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기준이라는 것이 모호하기 짝이없었다. 아니, 모호하기 보다는 기준이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나보다 많이 아는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하니 나는 덮어놓고 맹신하고 그들이 가졌거나 추천하는 음반을 사곤 했다. 그들이 좋은 음악이라고 하면 좋은가 보다 하고 들었고, 아니다 하면 덩달아 아니었다. 이런 멍청한 음악듣기는 자그마치 3~4년이나 지속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지금은 그다지 욕망이 크지 않은 음반을 당시엔 목을 놓고 찾아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엔 Deep Purple에 완전히 꽂히게 되자 그들의 음반을 찾아 헤맸지만 절판된 탓에 손아귀에 쥐기는 결코 용이하지 않았다. 대형 도매점을 다 뒤져 봤지만 동명타이틀의 3집과 금지곡이 여럿 잘려나간 히트곡 모음집 말고는 구할수가 없었다. 내 보기에 3집이 최고의 명반이지만 당시엔 1기 보다는 2기와 3기의 음악이 더 와 닿았던 탓에 Mashine Head, Fireball, Who Do We Think We Are 같은 앨범을 갖고 싶어 삼양동, 미아리, 수유리, 우이동 등 발길이 닿는 변두리 레코드점까지 이잡듯이 뒤지곤 했다. 오히려 구석진 곳이라면 묵혀있던 물건이 나올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소득은 전무했다. 어느날 신세계 백화점 레코드코너에 가니 거기에 잔뜩 있더라는 친구의 제보에 힘입어 그렇게도 갈망하던 딥퍼플의 2기 음반들을 찾던 음반 모두를 구했으니 당시의 기쁨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사실 백화점은 일반 소매점보다 음반값이 비싸 기피 대상이었고 도매점에 없는 것이 백화점에 있으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은 탓이었다. 당시 여유가 없던 집안 형편에 아들이 좋아하는 음반을 사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보통 크게 먹은 마음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통사정해 생긴 돈으로 이 음반들을 손아귀에 쥔 채 감격한 채 집으로 돌아오던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 한 때는 산타나에 꽂히자 산타나의 음반을 손에 쥐기 위해 어지간히도 발품을 팔았고 심지어 수업 땡땡이도 불사했다. 특히 볼륨 1과 2로 나누어 발매했던 Moonflower 앨범에 목을 놓고 있었다. 한 친구 녀석이 학교에서 적잖이 떨어진 음반가게에 그 음반이 있다는 근거 없는 소릴 하자 나는 순간 꼬깆가 돌았다. 누군가 집어가면 어쩌나 하는 급한 마음에 수업 한 시간을 땡땡이 치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다행이 그 교과목 선생님은 누가 오고 갔는지 관심 없이 수업만 했다고 해서 나의 땡땡이가 문제 되기도 전에 묻혔다. 하지만 불행이도 문제의 음반 가게에선 그런 음반은 없다는 절망적인 대답을 들었을땐 보통 실망이 아니었다. 젠장. 나 지금 돌아가면 담임한테 작살 날지도 모르는데 소득도 없이 돌아가면 이게 뭐야... 그 허무함과 허탈함이란 지금도 생생하다.

"혹시 구할수는 있어요?"

"아마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그걸로 위안 삼으며 교실로 돌아왔지만 며칠동안 하릴없이 마음반 졸이고 나서 구할 수 없었다는 실망스럼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당시의 열망 자체였던 Moonflower도, Zebop도 모두 보유하고 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목숨까지 걸어야 할만큼 설레발을 쳤던 나자신에 웃음이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님과 의형제를 맺은 두 어른 중 한 분이 오아시스레코드사에 근무한 덕에 샘플 레코드를 이따금씩 가져다 주시곤 했다. 그 분도 워낙 음악을 좋아하시는 탓에 방 하나를 차지하는 그분의 음반은 이미 만장을 상회하고 있었다. 소장품 대부분은 여러 레코드사의 샘플반들이 대부분이었다. 음악이 좋아 레코드회사에 근무하셨고 그 여건을 십분 발휘하신 덕이었다. 당신이 레코드 수집을 하니 소장하지 않은 음반 하나라도 더 손에 넣기 위해 수집을 계속하셨지만 이따금 나를 잊지 않고 내게도 콩고물을 떨어주시곤 했다. 주머니에 먼지나는 고등학교 시절엔 대단한 도움이었다. 그 분은 나의 대부님이시기도 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때까지만 해도 월정 용돈이 없었던 탓에 점심값을 절약하고 핑계만 생기면 돈을 타내던 방식으로 음반을 샀다. 머리 크고 대학에 다니자 월정 급여(?)가 있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에 나의 형은 대학원생, 나와 여동생은 대학생, 남동생은 재수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그런 자식을을 어떻게 교육시켰는지 놀라울 정도다. 물론 빚에 또 빚을 얹고 모든 것을 줄이며 팍팍한 살림을 떠안아야 했던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고 우리는 거의 밥만 먹고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난 없는 돈에도 매월 꼬박꼬박 음반 두 세장은 꼭 샀다. 음반을 사러 몇 군데를 떠돌던 나는 돌레코드를 알게 되어 단골로 다녔다. 라이센스 한 장에 2,500원 하던 시절 주인에게 얼굴이 익은 나는 장당 2,000원씩에 사왔다. 내 알기론 소매샵 운영자가 가져가는 좋은 가격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과는 이야기가 통했지만 주변에서 봤을때 내가 듣는 음악은 사이키델릭 음악이 아닌 사이코 음악이었다. 흔치 않은 이상한 음악을 듣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소니사에서 워크맨이라는 휴대용 카세트를 몇년째 히트시키고 있었다. 내겐 워크맨이 없어 테이프만을 갖고 다니다가 친구들의 것을 잠시 빌리거나 빼앗아 집에서 녹음한 음악을 틀어 듣곤 했다. 도대체 무슨음악을 듣느라 그럴까 궁금해 하던 그들이 이어폰을 빼앗아 귀에 대 보고는

'귀신 나올 음악,' '사이코들만이 이해하는 음악,' '넌 취미에서까지도 튀냐?'는 소릴 듣곤 했다. 그들은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올맨 브러더스 같은 밴드들의 음악은 이상한 음악이었던 모양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가 되자 나의 소장음반은 거의 300장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결코 많은 수가 아니었지만 삑빡한 용돈을 절약해 7~8년간 모은 음반으로 보자면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다. 지금 그 음반들 중 희귀음반은 없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간신히 손아귀에 넣은 값비싼 희귀반들 못지 않게 내게는 소중하기 짝이 없다. 하나하나 추억이 어려있기 때문이고 오늘날 큰맘 먹고 사는 희귀반 못지 않은 출혈을 어린 당시에 감수한 것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중에는 두 장의 재즈음반이 포함되어 있었다. 80년대 후반이던 당시엔 재즈음악에 대한 저변이 거의 없어 처음으로 시험(?) 삼아 출반한 모양이었다. 소니 존 컬트레인의 소울트레인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인 유럽 앨범이 그것이었는데 이 두 음반이 많이 팔렸는지 그 뒤로 우후죽순으로 재즈앨피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운이 별로 좋지 않은 나는 이미 군생황중이었다. 재즈 음반들은 물론이고 기다리던 지미헨드릭스의 정규음반까지 마구 쏟아져 나왔지만 그 사실 자체도 몰랐고 그 때문에 뒤늦게 당시의 음반을 찾아헤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학창시절에는 재즈를 듣고 싶어도 출반된 음반 자체가 없어 즐기지 못했지만 클래식은 비교적 여건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내게도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군에 가기 직전 즐겨 듣던 음악의 아티스트 중 하나가 SKY라는 락그룹이었다. 그 그룹의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그의 클래식 음반을 호기심에 구입하게 되었다. 호기심보다는 그가 연주하는 클래식한 음악이 귀에 들어오니 실제 클래식 기타도 귀에 잘 들어 올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쉽게 말하면 존 윌리엄스에 대한 믿음(?)이라 해도 좋다. 이차크 펄만과 함께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아래 왼쪽 사진)가 그 음반이었다. 막상 사다 들어보니 묘하게도 바이올린 연주가 기타 연주보다 더 마음을 끌었다. 두 번째로 구입한 것이 역시 기타 음악인 로드리고의 아랑페즈협주곡(아래 사진 오른쪽)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내가 이해할 수 있을만한 클래식 음악을 더 찾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최초로 구입한 메인스트림 재즈 음반은 윈튼 마살리스의 "블랙코드" 앨범이였다. 그가 클래식 트럼펫에서 엄청난 두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역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 그의 클래식 음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인해 음악영역이 이동한 것이 아니라 확장으로 이어졌다. 어쨌든 군생활 속에서 제한될 수 밖에 없었고 갈증을 느꼈던 음악의 취미는 제대한 뒤에야 좀 더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다. 

 

 

확장 순서는 이랬던 것 같다. 이지팝 --> 락 ---> 포크 ---> 블루스 ---> 재즈 ---> 클래식. 직장생활 이후 음악에 대한 섭렵과 그로인해 얻은 친구들에 대하여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