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2(목) 계속
부슬거리며 내리던 비가 그칠 조짐을 보이지 않다가 잦아들기 시작할 때 이제 진짜로 마추픽추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래의 사진은 거주구역 중 가장 높은 지대인 귀족 거주구역에 속한다.
이 곳에 쌓은 돌을 보면 쿠스코 시내에서 본 물도 새지 않을 것같던 벽들과 달리 이 곳은 돌과 돌 사이의 틈으로 코끼리도 다닐 것 같아 의아함이 먼저 앞선다.
누구 말마따나 잉카 이전의 유적이 아닌지 그 조잡함 때문에 의심해 보지만 피사로 군대를 피해 급조한 곳이라면, 그리고 건축에 사용된 돌이 이 곳의 돌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단시간에 모은 돌이었다면 고개가 한 편 끄덕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신비감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듯 하다.
주거지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역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퍼 온 뜀글이다.
(200여 개의 건물이 남아 있다는 주거지(Reciento Principal)였던가? 제대로 확인할수가 없었다. 에궁,,,어쨌든 분명하진 않았지만 상류층이 살았던 중앙 광장 주변과 벼랑 가까운 곳이나 계단식 밭과 인접해 있는 일반인 주거지로 나뉘어졌다는데 시대를 떠나서 권력자와 서민은 항상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구만...)
홀라당 날아간 지붕과 문짝만 빼 놓고는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유적지다.
계속 퍼옴
(보이는 계단식 밭에서는 감자, 옥수수, 유카 등 200여종의 작물을 재배했다는데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물은 수원자(Fuente Principal)를 출발해 수로를 통해 농지로 전달 되는데, 능선을 따라서 끌어온 17개의 물 긷는 곳에서 물이 쏟아져 물 걱정이 없었다는데 지금의 현대인들도 잉카의 관계수로 기술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잉카의 후손님들은 왜 그러고 사는겨?)
이 쯤이 기술자 거주구역인 것 같다. 당시 기술자들은 중간 계급이었던 모양이다.
주변경치도 절경이고 남은 유적도 멋진 곳이지만 비는 쉴새 없이 흩날린다.
뜀도령 말에 의하면 기둥 터인지 절구 터인지 모르겠다나. 책자에는 60cm의 돌절구란다. 기둥터가 남으면 왜 여기만 남냐. 다른 방에도 남아야지 안그래? 마구 내려 찍으면 죄 다 흩어져 먹을게 안남을테고 그러면 곡물을 갈던 절구가 맞을 것 같은디.
이 곳이 콘도르 신전이다. 왜 콘도르 신전(Grupo del Condor)인가 했다.
이건 뭐여? 알고 보니 이게 콘도르 머리란다. 어딜 봐서 이게 새대가리냐. 뜀도령 말마따나 후세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억지 춘양인데 꿈보다 해몽이다.
잉카제국에서는 아마스아(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아마케아(게으름 피우지 않는다) 등의 법을 어긴 자에게는 엄벌로 다스려졌고 죄인은 이 콘도르 신전 반지하의 감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반역행위에는 최고형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며칠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거나 물은 주지 않고 물소리만 들려 주었다고 한다. 의자 뒤쪽의 움푹한 곳에 머리를 쳐박고 몽둥이로 패기도 했다나. 그런데 도대체 기록도 남기 않은 이 유적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건 또 어떻게 알아? 소설을 쓰는건지 원...
어쨌든 전체적인 콘도르 신전 모습에 나를 끼워 넣고 찍어 봤다. 또 퍼왔다.
(이곳을 소개하는 여러 책들은 자연의 돌과 석벽 건물의 배치가 마치 날개를 편 독수리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둥 바닥에 모이통에 부리를 넣고 닭 머리 같은 형상의 납작한 바위를 볼 수 있고 그 앞에 서서 머리를 들면 바위가 솟아 있고, 그 위에 담을 쌓아놓은 모습이 마치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느낌을 받을거라는데 정말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가끔 사람들은 좋은게 좋다고 참 좋게 말하는 재주들이 있나보다. 그래, 활짝 펴진것 같은(그렇게 느끼기로 했다) 날개 한 쪽과 팍 접혀있는 듯한 또다른 한 쪽은 그렇다고 치겠지만 콘도르의 머리모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빈약한 그냥 병아리 대가리라고 해야할것 같은데 아니면 이 콘도르가 기형이거나...
사실 눈 앞에 두고도 콘도르 머리를 찾느라고 고생한것을 보면 억지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듯한데 남들은 모두 그렇다고들하니 그런가보다만,,,)
그걸 보면 뜀도령의 시각과 내 시각에 별반 차이가 없는듯하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식하다는 점.
이때까지만 해도 알랑거리는 정도로만 흩뿌리던 비가 갑자기 쏟는 정도로 심해지더니 나중엔 조낸 퍼붓기 시작했다. 콘도르 왼쪽 날개(마땅히 부를 명칭이 없어서 그랬다만 그럼 나도 이게 콘도르 신전이라는걸 인정하는게 되는가? 에이 젠장 내가 무슨 사학자냐 그런걸 갖고 대가리 싸매게?) 아래로 가 비를 피했다. 이 곳 마추픽추에 비를 피할 곳은 몇 군데 안된다. 하지만 우리가 비를 피하기에 가장 그지같은 곳에 있을때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이다. 어정쩡하게 비를 피한 이 곳에서 우리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좁은 틈바구니로 몰려든 탓에 좁은데다 바위 틈바구니는 울퉁불퉁했다. 이 곳에서 비를 피하자니 오밀조밀 짐승 모이듯이 모여 수납하니 자세 조차도 편하게 안나온다. 며칠 페루에서 지내보고 나서 비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한 우리가 짐을 줄이기 위해 숙소에 두고 나온 우산이 굴뚝같이 그립다. 한국 같으면 여기에 벌써 늑달같이 나타난 우산장사를 만날 수 있었을 테지만 이 곳엔 그걸 팔만큼 센스있는 원주민도 없었다.
빗물 관리시설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래 사진의 억수같은 빗물은 수로를 따라 맹렬하게 흘러간다.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면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비는 우리의 사정을 봐 줄 기미가 눈꼽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곳까지 와서 비만 피하다 간다는 생각이 들자 금찍했다. 비를 맞고라도 홀라당 다 보고 간다는 사명감 아래 뜀도령과 나는 다음 장소로 뛰며 비를 피할만한 곳이 나올 때마다 그 밑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는 식이었다. 억울하다. 남고도 남는 시간동안 철저하게 뜯어 보겠다던 우리의 계획은 일단 빵꾸가 났다. 그 빵꾸로 비가 마구 샌다. 우리가 빗속을 헤매며 찾아간 주요 건물인 태양의 신전이 아래의 사진 속에 있다. 가이드북에는 이 건물에 적용된 기술이 마추픽추 최고의 것이라며 극찬하고 있는데 내 생각이 여기엔 절대 공감한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게 막아 놓았는데 전엔 올라가 볼 수 있게끔 개방했던 모양이다. 여기엔 두 개의 창이 나 있는데 일설에는 여기에 금과 은으로 장식했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밤에 나 같은 놈들이 몰래 뜯어가니 문제다. 입구 아래쪽으로는 둥근 구멍이 여러개 있는데 돌의 중간에 꺾여서 반대쪽으로 뚫려 있단다. 헉! 나 그거 못봤는디? 그런 대단한 기술이...? 워디여? 워디여? ---> 늦었음. 찡! 빙엄은 이 것을 독사의 통로(Ventana de las Serpientes)라 불렀다고 한다.
퍼옴
(우리가 이동한 곳은 태양의 신전Templo del Sol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실 이때부터는 제대로된 구경이라기보다는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심정이었는데 이곳은 자연석 위에 석조 건물을 세운 것으로 다른 건물과는 달리 돌을 곡선 형태로 쌓아올려 훨씬 정교한 모습으로 젖은 모래에 돌을 비벼 다듬은 후에 쌓았다고 알려진 건물은 면도날 하난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고 하는데 직접 면도날을 가져가서 확인해봤어야 함인데 어쨌든 전설에 의하면 12월 22일 태양의 문에서 태양이 뜨면 정확하게 태양의 신전의 창을 통해서 빛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처럼 태양빛을 관찰해서 계절의 변화를 읽었고 햇빛의 강도를 통해서 건기와 우기를 그리고 그림자를 통해서 동지와 하지를 정확한 시기를 파악하고 파종 시기와 수확 시기를 결정했던 마추픽추내의 최고의 건축물로 소개되고 있는데 원망스러운(?) 비 때문에 집중해서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는곳이 되어버렸다.)
태양의 신전은 원래 있던 바위와 이를 토대로 쌓은 돌의 조화와 섬세함이 일품인데 원래 바위 위에 놓을 돌을 위해 사전에 다듬어 놓은 바위의 윗부분 모습과 그 위에 얹혀진 돌이 조금도 이질감 없는 어울림이 놀라울 정도다.
태양의 신전 바로 옆에는 비를 피할 지붕이 있는 간이 휴게실 비스므리 한 것이 있어 이를 들여다 보는데 빗속에서 그나마 큰 도움이 되었다. 그 하단에는 능묘(La Tumba Real)로 추정되는 공간이 나온다. 움푹 패인 이 곳에 미이라를 안치했고 2단으로 된 커다란 제단에는 재물을 올려 놓았으리라 뭐 어쩌고 저쩌고 가이드북에는 소설 잔뜩 써 놨다. 얘기를 만들어 내도 좀 그럴듯하게 만들면 누가 잡아먹나. 젠장. 설득력이 있어야 슬쩍 속아 보기라도 할거 아냐. 뜀군은 뭐라고 했나 함 볼까?
(태양의 신전 하단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능묘는 우물 옆에 특이한 모양의 구조물로 여행책자의 설명에 따라서 발걸음을 옮겼더니 구조물 아래 부분에 커다란 자연석을 지붕처럼 삼각형 모양이 받치고 특이하게 깎은 모양의 돌로 입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왕족의 미라를 안치했던 장소로 추정된다고 하며, 빠차꾸떽 왕의 시신을 모셨다고 전해진다는데 무덤이라고 보기엔 왠지 어색함이...)
태양의신전 위로 가는 계단에도 수로가 잘 발달되어 빗물을 모으는데 지금까지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 하단에는 물 긷는 곳이 보인다. 아무래도 하단이니 이 곳은 서민 거주구역 되겠다. 아님 말구. ---> 나 이런소리 잘하는거 보니 국회의원 시키면 졸라 잘했을거 같다.
여긴 다시 고지대의 일부분이다. 성직자 물긷는 곳인듯 하다. 아님 말구.
우리는 한동안 태양의신전 바로 옆 간이 휴게소에서 비를 피한 뒤 둘러보기를 계속했다. 비는 우리하고 무슨 웬수라도 졌는지 장대비로 계속 쏟아졌다.
귀족 거주구역을 나와 가장 높은 곳으로 다시 올라왔다.
이 곳엔 섬세한 석공기술이 적용된 고급스러운 방들이 남아 있다. 이 곳이 성스러운 광장이 아닌가 싶다. 아래는 주신전인듯.
비를 쫄딱쫄딱 맞아 가면서도 열심히 지도와 대조하는 뜀도령.
그런데 아래 사진의 거석은 용도가 뭐였을까. 나도 얼토당토 않은 가설 하나 내놓아 보자. 역사학자들도 기록이 남지 않은 잉카 역사에 마구마구 지레짐작을 가설로 내놓는데 나라고 못할건 또 뭐 있냐고?
이 거석은 잉카 황제의 공주가 소꿉장난을 하던 식탁이다. 여기서 모래를 퍼다가 부마의 밥을 지어다 주면 부마는 공주의 밥을 맛있게 먹어야 했다. 부마는 물론 공주가 어리기 때문에 진짜 부마가 아니고 그날 재수없게 공주의 간택으로 걸린 대신이나 군 간부가 가짜로 부마 노릇을 했다. 먹는체 했다간 공주가 기뻐하지 않기에 진짜로 먹어야 했다. 물론 표정도 존나 행복해야 했다. 안그랬다간 황제한테 그 자리에서 개작살 나기 때문이었다. 공주가 소꿉놀이에 싫증이 나면 그때서야 가짜 부마는 그 역할의 소임을 다하게 된다. 문제는 공주가 커서 진짜 부마를 맞이할 때 소꿉장난 하느라 과거에 탔던 부정이 진짜 결혼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막기 위해서 황제는 쥐도새도 모르게 소꿉놀이가 끝난 날 밤에 자객을 보내 그 날의 가짜 부마를 해치운다. 이렇게 해서 이 마추픽추의 대신과 군 간부는 반이 넘게 이렇게 살해 되었다. 그래서 열받은 희생자 가족과 서민들이 황제를 버리고 마추픽추를 등진채 떠나가고 만다. 피사로 군대에 걸리면 본전도 못뽑는다며 떠나는 귀족과 백성들을 말리다 결국 혼자 남은 황제는 밥도 할 줄 몰라 어린 공주와 굶다굶다 죽었는데 지금도 그 유골은 찾을 길이 없네라.
이야~~~! 내가 즉흥적으로 써 놓고도 이렇게 멋지냐. 그래 좋다 이걸 마추픽추가 버려진 연유에 대한 정설로 하자. 으하하
각설하고, 위 사진은 신성한 광장과 세 창문의 신전(La Plaza Sagada/Templo de Las Tres Ventanas)이다.
가이드 책자의 야부리다.
물긷는 곳의 계단을 오르면 완만한 대지가 나온다. 이 곳에서 앞쪽 봉우리 와이나 픽추를 향해 걸어가면 뱀이 새겨진 돌 끝에 '세 창문의 신전', '신관의 저택', '주신전' 세 채의 돌저택이 나온다. 세창문의 신전은 잉카 발상의 두 가지 전설 중 하나와 관련된 곳으로 탐프토코라는 세 개의 구멍에서 8명의 형제자매가 뿜어져 나와 그 중 한 명이 제 1대 황제 망코 가파크가 되었고 쿠스코에서 잉카 제국의 기초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주신전은 세 창문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다각형의 돌로 지어졌으며, 세 방향이 돌벽으로 둘러 싸여져 있다.
이 곳의 돌은 정말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쿠스코 시내의 그것에 비하면 좀 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위대한 문명의 흔적을 현지에서 보는 감흥은 결코 작지 않다.
비도 참 쉬지 않는다. 여기에서 뜀도령은 카메라가 맛탱이 갔다고 걱정했다. 찍어 가야 한다는 사명감에 빗속에서도 열심히 찍던 뜀도령의 캐논 DSLR이 물먹은 모양이다. 뜀도령의 망연자실. 나는 방관.
귀족의 거주구역이 내려다 보인다. 아주 순식간에 안갠지 구름인지 하는 것이 이 곳을
이지경으로 안보이게 만들었다. 그래 구름 속의 산책이다. 좋아좋아... 온 몸이 다 젖어
카메라는 품 속에 갖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사용했지만 이놈의 책은 어쩌냐 싶었다. 책을 봐야 유적을 제대로 볼거 아니냐고. 그래서 이렇게 해결했어. 난 왜 이렇게 똑똑한건지 몰라
이게 억수같은 비를 맞아 가며 마지막으로 본 인티우아타나(Intihuatana: 해시계)다.
가이드 책자에서 발췌하면 아니 참 베끼자면
신전의 앞쪽으로 나아가면 마추픽추 최고점에 서게 된다. 이 곳에는 높이 1.8미터의(이게 나하구 키가 같다구?) 해시계가 있다. 거석을 깎아 만들었고 튀어 솟은 각기둥은 36cm다. 해시계라는 근거는 인티 라이미(동지)에 돌의 각기둥 모서리를 잇는 대각선을 태양이 통과한다는 사실뿐 정확한 실증은 없다.
그럼 내 가설도 함 섞어 보자.
간택된 부마가 모래밥 시식을 거부하거나 먹는체만 하다 공주가 삐치면 황제가 마추픽추에서 가장 높은 여기서 모든 백성과 문부백관 다 보란듯이 아랫 것들을 시켜 목을 따던 장소다. 반역한 가짜 부마는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가 튀어나온 기둥 꼭데기에 목을 늘여 얹는다. 망나니가 칼춤 추며 졸라 스트레스 주다가 지레 지칠때 되면 뛰어 올라가 목을 딴다. 뭐 이런거 아니겠어?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보지 못하고 싸이코 모냥 이리뛰고 저리 뛰며 숙제 하듯이 본 마추픽추를 등지고 나오자니 엄청나게 섭섭했지만 쉬지 않는 장대비를 봐서는 도대체 방법이 없었다. 우린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이 것도 수로인가? 목따면 피받는 곳? 그럼 혈로라고 불러?
이 곳 전망대도 하나하나 올라봐야 했지만 질적하게 속까지 사정없이 젖은 이 상태론 만사가 고단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나라도 더 제대로 봐야겠다는 열정이 있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본 덕에 춥지는 않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16:00쯤 마을로 나왔지만 이젠 추위에 떨어야 했다. 바깥에서 어느 레스토랑을 들어갈까 고민하다 난로가 보이는 곳이 있어 그리로 들어갔다. 추위에 떨면서도 맥주 마시는 건 지금 생각해도 나지만 이해가 안간다. 몸을 말리려 난로가에 선 뜀도령. 요리 주문이 들어오면 이 곳에서 스테이크 따위를 굽는다.
추위를 견디다 못한 우리는 온천을 찾기로 했다. 호텔과 식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의 꼭데기에 도착하니 정신없이 쏟듯이 흐르는 물과
온천장이 나타난다. 온천장을 배경으로 빌린 수영복과 수건을 들고 포즈를 취한 뜀도령군. 물은 절대로 깨끗해 보이지 않았고 추위에 떨은 우리의 몸을 녹여줄만큼 뜨거운 물도 아니었다. 괜스리 물에다 우리 체온만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에서 나오고 나니 몸에서 으따 씨뵹 냄새가... ㅡ,.ㅡ;
19:00가 되기를 간절히 기다려 열차에 올라탄 우리는 20:30이 되어서야 오얀타이탐보 역에 도착했다. 합승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를 비롯한 승객이 다 차자 떠났다. 쿠스코에 있는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22:10경. 신발 속까지 완전하게 젖은채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멀고 춥고 고단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를 보고 돌아온 뜻깊은 날이었다. 하나하나 뜯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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