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9일(계속)
계속해서 들른 곳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리파이사원이다.
이 사원은 화려함은 없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로 느껴지는 장중함은 방금 들렀던 술탄 알리 무하마드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두 사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내게는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만일 서로 반대편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일정상 하나를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입구의 안내 표지판
그러나 어찌하리오. 한 쪽 벽면은 이리도 초라하니... 뭔가 부속 설치물이 무너져버린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화려함에 대한 기대는 이미 버렸지만 경건함은 더욱 고양된다.
이러한 세월의 흔적과 고풍스러움은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발악을 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관람자로 하여금 정숙하고 고요함을 유지하게 만든다.
이거는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은데... 터키의 아야소피아에서 보았던 그런 설치물과 아주 흡사하다.
천정은 없고 하늘이 보인다. 이를 통해서 보이는 하늘은 모래먼지로 인해 그리 푸르름은 없어도 구도가 예쁘다.
기도하는 사람을 도촬.
한쪽 벽면의 연속 무늬로 새긴 부조가 아름다워 한 컷.
더 들어가면 아라베스크식 돔지붕을 한 천정이 나온다.
사원 전체를 통틀어 금색 장식까지 한 이 곳이 가장 화려한 곳인듯하다.
리파이 사원을 나와서 두 사원을 한꺼번에 담아 보았다. 왼쪽이 리파이, 오른쪽이 술탄 알리 무하마드이다. 우리는 블루 모스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리파이사원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설치물. 이게 무슨 문이라고 카더라? 오른쪽은 우리가 지금 가고자 하는 블루 모스크. 눈앞에 보이는 것과 달리 만만치 않게 먼 거리다.
한 번 그 앞에까지 가봤다.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었다. 관리는 고사하고 나의 오감 중 민감한 한 감각을 엄습해 오는 찌린내에 쓰러지는 줄 알았다.
블루 모스크의 입구
이 블루모스크는 이집트 카이로에서의 주요 관광 코스 중 하나이지만 창조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 외에도 지붕을 보면 제일 못마땅했다. 마치 깡통을 모아 대충 이어서 만든듯한 엉성한 느낌이....
그런 선입감을 갖고 들어온 나는 바로 그 선입감에 충실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의 회랑과 사각 안뜰 그리고 중앙에 누각(?)까지도 그대로 흉내를 냈다.
내부에 원형으로 등을 매달은 것 하며
아래 사진의 궁륭천정 좌 우에 달린 방패모양의 문양은 엉뚱하게 아야 소피아에서 모방을 했다.
바로 아래 사진의 방패모양의 문양.
그래도 제법 나름대로의 멋은 갖추고 있었다.
셀카도 한 컷. 나도 참 나니 늘겄구낭.
블루 모스크에서 나오면 군사박물관과
경찰박물관이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다. 가이드 책자에는 들러볼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글쎄요. 혹자는 그 나라에 대하여 이해를 하려면 박물관부터 들러 보라고도 한다지만 내겐 박물관에 대한 인식이 좀 다르다. 어지간한 박물관이 아니고선 시간을 넘 잡아 먹고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나로선 별로 의미가 없었다.
블루 모스크에서 나와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어지간히 지치고 배도 고팠다. 리파이사원으로 오다가 보아 둔 구이집을 들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깥에서 굽는 케밥이 너무나도 맛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블루 모스크를 향해 반원형을 그리며 왔던 관계로 다시 반대편으로 반원형을 그리며 가면 다시 케밥집 가까운 곳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이건 왠걸. 길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 우리는 엉뚱한데로 가고 있었다. 가다 보니 엘지 광고탑이 보인다.
우리는 안되겠다싶어 택시를 타고 되돌아 가기로 했다. 가다 보니 아파트가 나온다. 우리 나라의 서민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구이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식당이름을 베바니라고 읽어야 하는지 어쩐지 모르게지만 1802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니 나름대로 전통있는 식당인 모양이다.
좁은 식당은 주방과 진열대를 제외하니 두 개의 테이블을 한쪽 구석에 두었을 뿐인데 자리가 모두 찼다.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오른쪽 끝에 좁다랗게 설치된 원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
2층으로 갔다. 지붕이 무척 낮고 좁은 곳이지만 이제까지 다녀보지 못한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나쁘지 않았다.
볶음밥은 다른 곳보다 그리 나을건 없었지만
치킨구이는 일품이었고
허브를 넣어 만든 전통 소지지는 기름이 많고 허브향이 강했지만 맛은 괜찮았다. 양이 넘 마나서 반도 못먹었다.
코프타 역시 맛이 아주 좋았고
여기에 콜라가 있으니 부러울게 없다. 식비도 저렴하다.
이걸 다 먹지는 못했다. 배가 고파 1인당 요리 한가지씩을 다 시켰더니 역시나 엄청 남더라는...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이븐 툴룬으로 갔다. 엄청 오래된 유서깊은 사원이다.
바깥에서 보는 이븐 툴른 사원은 절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규모와 압도하는 분위기로 봐서는 결코 소박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문패(?)
입구를 들어서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건물의 외벽이 아닌 담벼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어서자마지 찍은 오른편. 여기서부터 단순하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묻어났다.
왼편.
다른 회교사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되는데 여기선 이런걸 해준다. 그래 놓고 박시시를 1인당 5파운드나 내란다. 다른 곳 같았으면 상종도 안하고 무시해 버렸을텐데 이 곳은 입장료도 없고 이 좋은 사원을 보면서 기분 잡치고 싶지도 않아 달라는대로 1인당 5파운드(700원)를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구도와 분위기의 사진 배경이 바로 나와 준다.
한 가운데 서 있는 이건 또 멀까.
이 곳도 상당히 널찍하다.
이건 또 멀까. 예배시간 표시인가? 아닌가?
우리는 이 곳을 나와 가까운 지하철역을 찾기 위해 버스를 탔다. 새벽 네시에 카이로를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늦어도 두 시에는 일어나야 하니 호텔로 돌아가 오늘은 일찍 쉬어야 한다. 이제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친 것이다. 현지인과 섞여 다니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카메라 들이대기가 조심스럽다. 자신이 찍히는 것에 대해 불쾌해 할 수도 있어 가까이 선 사람의 얼굴이 정면으로 찍힐 상황이 아닌 때를 잘 포착해야 했다.
생과일 주스가 무척 싸다. 주스 한 잔을 만드는데 정확히 7개의 오렌지를 반으로 쪼개 수동으로 눌러 만든다. 맛이 아주 좋다. 첫 째 달지 않아 좋다. 테이크 아웃을 주문하면 이렇게 준다. ㅋㅋ
주스봉지를 쪽쪽 빨면서 걸어간 이 골목도 이젠 정겨워진다.
여기서 전철을 타고 가는데
살짝 맛이 간 아저씨가 열차에 올라 타서는 대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하고나 키스를 하려고 한다. 손등으로 콧물을 그어 문질렀는지 콧물이 뺨을 타고 오른 쪽으로 길게 말라붙은데다 씻는걸 별로 즐기지 않는 아저씨였다. 옷을 빨아 입는 것도 결코 좋아하지 않는 아저씨인 것 같은데 판단력과 정신연령은 다섯살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아저씨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 내게도 다가와 지그시 키스하려는 것을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들고 몸을 뒤로젓혀 피하면서도 정면으로 사진을 찍으며 "이게 뭐야! 왜이래 아저씨! 정신차려!" 했더니 외국인의 반응이 우스웠는지 열차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급한대로 서둘러 사진을 한 장 찍기는 했는데 나를 포기하고 표적을 새로 찾느라 움직이는 중에 찍힌데다 플래시가 안터져 만족스럽지 못한 사진이 나왔다. 다시 서둘러 플래시를 작동시키는동안 다음역에 도착해 문이 열렸고 한 현지인 승객이 그를 바깥으로 쫓아내고 말았다. 재밌는 사건인데 아쉽다. 그래서 흔들린 이사진을 그나마 올려 본다.
우리는 사다트역 못미쳐 있는 도끼(Dokki)역 부근에 쇼핑센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에서 내렸다. 내일 새벽에 돌아갈 참이니 기념품이라도 몇 개 사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근방에 쇼핑센터가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한 가지 성공한 것은 맥주 파는 곳을 찾아 냈다는 것. 우리는 이 곳에서 샤카라 맥주를 샀다. 맨날 스텔라 맥주만 먹다가 새로운 것을 먹어 보려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나도 뜀도령화 되가나보다.
오히려 사다트역에 있는 나일 힐튼 쇼핑센터가 가장 크다는 말을 듣고 가보았다. 물건은 비싸고 살건 없었다. 여기선 안사는게 현명했다.
점심을 워낙 거하게 먹었기 때문일까. 밥생각이 없어 건너뛰게 되었다. 사실 Felfela 레스토랑을 또 가고 싶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의 그 자리에 앉아 바로 그 멋쟁이 노신사의 서빙을 받으며 나올 때는 우리에게 불친절했던 젊은 웨이터 앞에서 보라는 듯이 5달러의 팁을 줄 생각이었다. 신사적이고 친절한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대우가 얼마만큼 다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속셈도 있지만 그 노신사는 대하기가 정말 기분이 좋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뱃속이 그들먹했던 우리는 아무 생각 없었다. 그래서 쇼핑을 좀 더 즐기고 일찍 잠자리에 들 참이었다. 일년 내내 비가 오는 것을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지 하루만에 비가 내리는 카이로 시내의 밤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떠나는게 아쉬웠던 걸까. 이 비를 보는 우리에게 행운이 찾아들 것 같은 생각이 나만 든 건 아니었을걸?
난 물담배를 쇼핑센터 근처에서 120파운드 부르는 것을 80파운드로 깎아 이미 하나 샀지만 여기서 75파운드에 하나 더 샀다. 하나는 내 집을 위해 하나는 아버지의 집을 장식하기 위해서....
물건값은 만만치 않지만 대부분 엉성했다.
이 것이 바로 도끼역에서 구입한 샤카라 맥주. 이게 더 맛있는 것 같다. 호텔에서 딱 두캔씩만 마시고 잤다.
방마다 전화기가 있는 고급 호텔이 아닌만큼 모닝콜이 가능한지 물었다. 가능하단다. 전화기가 없는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노크해 준단다. ㅡ,.ㅡ; 우리는 택시 두대를 불러 달라고 부탁한 뒤 대당 45파운드라는 말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2008년 1월 10일(목)
새벽 두 시가 되니 노크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씻고 세면 후 택시서비스를 재확인하니 택시기사가 이미 와 있었다. 가는 도중 택시 이용료를 두고 시비가 또 붙었다. 공항까지의 픽업서비스가 50파운드라며 우겼다. 그까짓 5파운드(875원) 줘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괘씸해서 단돈 10 피아스트로도 주기 싫었다. 어제 분명 45파운드라고 얘기를 들었고 아침에도 재확인을 하고 나왔으니 내 앞에서 거짓말 항 생각 말라고 못을 박았지만 그는 단념하지 않고 호텔로 전화를 걸어 바꿔 줄테니 통화해 보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아래의 사진은 바로 그때 찍은 사진이다. 전화가 걸리자 내게 준다.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가 전화를 건 곳이 Sun Hotel 이 아닐거라는건 뻔히 아는데 전화는 받아서 무엇하리. "당신이 전화를 건 곳이 썬 호텔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믿냐. 정 싫으면 우릴 여기서 내려달라고 했더니 집요하던 그도 역시 꼬리를 내린다.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다. 열심히 살 생각은 안하고 호시탐탐 사람을 속여 울궈낼 기회만을 엿보고 있으니.... 이제는 더나는 마당이니 나도 이집션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돕질 않는군. ㅡ,.ㅡ;
13일간의 이집트여행을 마치고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면서 생각했다.
이 번 여행만큼 뒤죽 박죽인 여행도 없었지만 무척 흥미 진진했다.
미리 세워 두었던 계획은 순서도 뒤주기 박주기로 바뀌고 없던 계획이 새로 생기고 있던 계획도 과감히 포기하는 드문 경험을 했다.
전같으면 세워 둔 계획 자체가 시간과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짜 둔 것이라 그 계획을 기본으로 하고 변경도 일부분만 했을 뿐 이렇게까지 뒤집어 본 적은 없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보는 것도, 하루동안 한 두 군데만 돌아보고 나서 쉬는 일정도 전에는 없던 여유였다.
계획에 그동안 나를 너무 묶어두고 강박관념을 갖게 했던 내 모습이 뒤돌아 보이면서 새로운 노하우를 얻은 것 같다.
감기에 걸려 여행 내내 고생한 것도 이젠 지긋지긋한 추억이 되었다.
감기를 달고 다녔지만 다행히도 몸에 열이 나거나 힘이 없거나 정신이 몽롱한 적은 없었다.
여행을 다니던 내내 몸살이 나거나 해서 괴로웠던 적도 없다.
다만, 처음에는 콧물때문에 고생, 조금 지나니 목이 쉬어 목소리가 안나와서 고생
(이건 정말 여행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나를 쉬지 않고 괴롭혔던 문제였지만 길믈 물어 보면서, 식당에서, 교통편 협상때 등 모든 현지인과의 접촉에 대화가 없을 수 없으니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중엔 기침이 쉬지 않아 고생이었다.(정말 가지가지 한다)
덕분에 이집트 감기약도 먹어보고 두 번 다시 겪고싶지 않은 감기 걸린채 여행다니기도 처음 겪어봤다.
한 편, 이집트 여행은 내게 있어 꼭 와봐야만 할 여행지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일강의 도도한 흐름의 감동,
거만하게 우뚝 솟은 기자의 피라미드들,
오랜 세월 한 인간의 위대함을 과시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해온 아부심벨,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며 감격했던 고대 신전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가는 곳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서민들의 집과 시장터는 물론
뿌연 모래먼지의 공기와 하늘까지까지 내게 있어 하나같이 소중하게 담아온 기억들이다.
하지만 이곳 이집션들의 행태는 너무나도 나를 피곤하고 힘들게 했다.
열심히 살려는 모습은 보기 힘들고 어떻게든 권모술수로 외국인에게서 돈을 뜯어 내려는 모습은 이들이 정말 그 위대한 문화유산의 후예들인지 조차 의심이 들게 했다.
나는 나 자신이 남의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인줄로 착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집션들에 대해 좋은이야기를 쓸 수 없는 나도 역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이땅 이집트는 만일 시간이 되돌아간다 해도 기어코 다시 찾아올 그런 곳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니 좋은 기억만 갖고 가자. 나 자신도 좀 돌이켜 볼 줄 아는 조금은 성숙해진 나를 갖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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