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9 우즈베키스탄

한여름의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5(부하라)

코렐리 2019. 9. 17. 08:48

2019.8.2.(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조식 시간 제공시간을 고려해 비교적 이른 아침인 07:30에 일어나 씻고 내려가 조식 후 쉬었다.

호텔이 아름다운 것만도 대박인데 음식 역시 대단히 훌륭하다.

 

 

 

아무래도 다음 도시로 가는 열차표부터 확보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미리 사 두어야 안전하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도착하자 영봉군은 속이 메스껍다며 화장실부터 가겠단다.

 

16:10발 열차표 두 장을 확보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음에도 영봉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화장실로 가봤다. 유료 화장실 입장 컨트롤 bar 너머로 영봉군이 화장실 문을 열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약간의 구토를 하고 나더니 걷는 것 조차 버거워했다. 화장실 나오는건 어찌어찌 나왔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심히 어지러웠는지 걸음 한자락 마저 버거워했다. 정문까지는 최소 200미터 이상으로 보였다. 걷자면 먼거리는 절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선 어쩌면 심리적인 요인으로 실제보다 더 멀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왼쪽 철책을 보니 의외로 문이 열려있었다. 정문에서는 가방 X레이 투과 검사를 하면서 쪽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지만 어쨌든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간신히 쪽문으로 나오고 나서 적당히 앉게 한 다음 택시부터 부르러 갔다. 역전 택시승강장에서 사정을 이야기 하고 획 돌아 영봉군이 있은 곳으로 와 태운 뒤 가장 가까운 큰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이 곳은 기차역으로 이동하면서 봐 두었던 병원이다.

 

사실 처음엔 더위를 먹었나싶어 호텔로 돌아가 쉬는게 나을거라 생각했다. 헌데 어지러워서 눈을 뜰 수가 없고 걷는 것 조차 힘겨워한다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란 판단이 섰다. 영봉군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이번엔 구토가 아니라 설사였다. 응급실에 들어가자 의료진이 와서 묻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충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의사들 중에도 영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영봉군이 화장실 가 있는 동안 나는 그들 앞에서 원맨쇼를 해야했다.

 

팔을 머리 위로 휘저으며 "어지러워 dizzy dizzy"

휘청거리며 걷는 시늉 후 두 팔을 들어 X 표시를 한 뒤 "Because of dizzy feeling, He can't walk even just one step by himself."

허리를 굽혀 입 앞으로 손을 대고 "웨엑! 웨엑 He just threw up. 웨엑!"

 

열심히 연기하고도 출연료는 한 푼도 못받았지만 효과는 있었는지 곧바로 검사에 들어갔다.

피를 뽑고 소변을 받아 오라는 둥...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게 뭐냐. MRI꺼정...

여행자 보험도 안들었는데... 갑자기 급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검사를 마치더니 영봉군이 누운 침대를 밀고 의료진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따라가봤다. 외부인은 통제되는 곳으로 들어가면서 나의 입장은 불허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 ㅠㅠ 중환자실이냐? 검사실이냐? 수술실은 설마 아닐테고... 07:00~08:00, 그리고 17:00~18:00간 면회가 가능하단 소리가 아닐까 지레짐작을 해봤다. 하지만 뭔가 설명은 줘야 할 것 같았다.

 

의사들, 간호사들 환자들, 보호자들, 방문객들이 부산하게 오가는 바깥 복도에서 하릴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두 시간 가까이 되어가자 나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폐쇄구역으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따금 드나들었다. 의사 하나가 들어가길래 무작정 따라들어갔다. 의사가 들어가다 말고 나를 제지했다. 들어가자마자 입구 오른쪽에 널찍한 방이 있고 젊은 의사들이 그 곳에서 휴식 내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뒤따라들어온 외부인을 내보내기 위해 나를 제지하던 의사를 무시하고 처음 만나 영봉군의 상태와 증상을 설명했을 때 열심히 듣던 의사가 눈에 띠었다. 나는 이 양반이 알아듣든 못알아듣든 상관 않고 따졌다.

"대체 내 친구가 어떤 병이 있는거고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설명이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니오. 이 친구도 자기 병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텐데 만나지도 못하게 하면 어찌하란 말이오."

젊은 의사는 당황해 했다. 아마도 나의 말은 전혀 못알아들어도 왜 거러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을 터였다.

그는 내게 잠깐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 저희들끼리 통화하더니 나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한국말은 당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젊은 의사는 내게서 전화기를 돌려받아 통화를 마친 뒤 그녀로부터 받은 문자를 네게 보여주었다. 뇌경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언어로 영어를 검색하고 그것을 다시 한국말로 검색해 내게 전달한 것 같았다. 뇌경색? 뇌경색 증상이 이런가? 데이터를 차단한 채로 로밍을 해 왔으니 인터넷을 검색할 수도 없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중환자실에 특별히 나를 영봉군에게로 안내했다.

무언가 약물치료를 받고있는 영봉군은 여전히 어지럽지만 전보다 많이 안정된 상태인 것 같았다. 곧이어 영어가 유창한 의사가 와서 상황을 설명한 뒤 몇가지 질문을 해왔다. 뇌경색(Stroke), 설사(diarrhea) 같은 단어를 못알아들으니 그가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라더니 영어를 왜이렇게 못해?"

ㅋㅋ 나 의사 아니다 이사람아. ㅋㅋ ㅠㅠ

어쨌든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치료하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바로 다음날 사마르칸트행 열차표 예매를 해 두었고, 계획대로 여행을 하자면 내일 오후에는 떠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내일 오후 3시에는 병원을 떠나 기차역으로 가야 하는데 그 전에 퇴원해도 되나요?"

그는 약간의 고민을 하는듯 싶더니

"그럼 내일 떠나기 전까지 집중치료를 해서 그 시간에 떠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돈 몇 푼 아끼자고 여행자보험을 들지 않은 것을 심히 후회하고 있었다. 걱정되던 병원비 문제를 거론했다.

"병원비는 어디가서 알아봐야 하죠?"

나는 의사로부터 놀랍고도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무료예요."

"예에?"

"외국인이 우즈베키스탄에서 다치거나 병을 얻어 치료를 받게되면 경비는 우리 정부가 부담합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다. 무언가 보답을 하고도싶었다.

그는 그러잖아도 대한민국에 유학을 가려던 참이었다. 이 곳에서는 유능한 의사였던지 그는 자기가 시기만 결정하면 국고로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마침 대학에 근무하고 있지만 내가 재직중인 대학에는 의과대학이 없어 원하는 대학을 물어보았다.

"인카대학을 원합니다."

"엥? 인카대학? 대한민국에 그런 대학은 없어요."

어지럽다며 눈을 감고 있던 영봉군이 그 와중에 이야기를 들었는지 인하대학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며 거들었다.

그제서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발음이 k와 h의 발음의 경계가 모호해 kh로 표기한 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Oistrakh), 구소련의 자곡가 아람 하차투리안(Khachaturian)의 이름이 내 기억속에서 이 상황과 포개져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결국 이들이 영문으로 인하대학을 표기한다면 Inkha Univ.가 될 터였다.

나는 연세대학교를 추천했고 시기를 결정해 내게 연락을 주면 유학허가 조건과 묵을 숙소 등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의사가 돌아가고 처음 만났던 젊은 의사가 내게 어줍잖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 있어요?"

이게 무신 소리고?

"뭐라고요?"

"한국사람 있어요?"

눈썰미 좋은 영봉군이 옆에서 또 거들었다.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는거 같은데?

아하 Be동사를 직역하면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이 곳에서 만난 많은 우즈베키스탄인들은 한국에 대해 선망의식을 갖는 것을 많이 보았고 어줍잖으나마 한국물을 할 줄 아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의사 마저도 그런 모양이다.

치료를 위해 영봉군은 남고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뒤 아직 다 둘러보지 못한 레비하우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보면 모스크형태의 한 건물로 들어섰다. 그 안 사각 안뜰에는 카페나 야외 레스토랑처럼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기념품 가게와 옷가게들이 즐비했다.

이 곳에서 이런 옷을 사가는 관광객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공을 들여 자수를 놓은 옷들 중 일부는 비교적 고급스러운 모양새였다.

이 집은 쫌 아닌 것 같고...

솜씨 좋게 만들어진 기념품들은 다른 관광지에 비해 값도 저렴했지만 기념품은 항상 여행의 마지막 도시에서 구입하는 만큼 하나도 사지 않았다. 일찍 사면 이동할 때마다 짐이 되기 때문이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저녁에 이 곳에서 전통무용 공연이 있다고 한다. 여행을 갈 때마다 그 곳의 전통공연을 항상 찾는 나인만큼 그냥 넘어갈 일은 없었다. 잘됐다. 예약을 하고 나왔다.

관광객을 유혹하는 기념품. 이제까지 다녀본 곳 중 기념품 수준이 일정 이상 되고 값까지 저렴하기로는 이 곳이 최고인듯하다. 자세히 보면 같은 인형인 것 같아도 얼굴이나 손, 하다 못해 칠이라도 모두 달랐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단 얘기다.

 

라비하우스의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을 어슬렁 어슬렁...

 

건출물을 보는 재미만도 쏠쏠한 곳이다.

 

페르시아식 모스크형태의 건물들로 보이는 건축무들은 시장(바자르)으로 변형되어 사용되거나 폐쇄된 곳이 많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침부터 하루 일정을 시작하자마자 영봉군 병원에 입원시키고 맥이 풀려 돌아온 뒤로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밥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위에 지친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저녁 공연관람을 겸한 식사시간은 아직도 멀었다.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인공호수에 면한 식당에 앉아 간단하게 샐러드로 식사를 간단하게 했다.

 

숙소에서 다시 휴식을 취한 뒤 공연장소로 시간 맞추어 갔다. 안뜰 한가운데는 공연을 위한 무대로 카펫이 깔려 있고 관람객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악단이 나와 전통악기를 연주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이슬람인들만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관객의 반응도 좋고, 한껏 상기된 분위기는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무용수들이 곧이어 사각 안뜰 한가운데로 몰려나와 전통무용을 선보였다.

 

패션쇼도 선보인다. 모델급의 무용수들이 옷을 번갈아 갈아입고 나와 선보이는 무대는 이국의 공주들이 펼치는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이 것도 볼 만하긴 했지만 이건 왠지 판촉행위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안에도 이런 류의 옷을 팔고 있으니 의심이 갈 만도 하다.

 

 

음식은 뜸을 들이며 하나씩 나온다. 설치한 테이블마다 직원들에게는 서빙구역이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과 제공 순서가 제각기 다르다. 적지않은 손님들을 한꺼번에 서빙하자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도 같다.

 

 

 

 

제공된 음식 중 하나인 우즈베키스탄식 만두.

 

만두소에는 양고기를 쓰는 것 같다. 제법 맛있다.

 

공연이 종료되고 관람하던 광객들은 뿔뿔히 저마다의 길로 흩어졌다. 해가 지고 조명을 밝힌 숙소의 운치도 제법 그럴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