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8(일)
느긋하게 자고싶은 만큼 잔다고 생각은 했지만 워낙 일찍 잔 탓에 09:30 정도가 되니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그래도 그 시간이면 웬만한 숙박객들은 구경 나가고 없는 시간이었다. 이 날은 디스크유니온 클래식 고음질 씨디 행사가 있는 날이다. 디지털 사운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만큼 씨디는 아무리 고가의 물건을 싸게 내놓아도 관심 밖이다. 늘어지게 잔 이유는 바로 이 때문. 그래도 혹시나 새로운 물건을 보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나가 보기로 했다. 디스크유니온 오사카점이 가까운 시장통에서 아점부터 때우기 위해 아래의 집에 들어갔다.
아래의 메뉴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아침식사. 사케(연어)구이와 나또, 그리고 미소시루. 일본인 친구 마사요시군의 부모님이 해주시는 아침식사를 얻어 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 똑같은 메뉴가 그땐 맛있었다. 이 날은 그냥 그렇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팔려나간 음반의 자리를 메꾸는 보충은 없었다. 엄청난 물량을 가진 디스크유니온이 음반이 없어서 그럴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오픈 행사 기간이 지나면 값이 원상복구될 모양으로 그래서 보충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음반 한 장 놓고 고민이 많았다. 벨벳언더그라운드와 니코의 음반. 일본반이고 오비아이도 없었지만 상태가 완벽한데다 앤디 워홀의 바나나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매니아들의 환장의 대상이었다. 행사반이라 값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가져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던 이유는 이 곳과 바로 위층 레코드점에서 더 가져올 음반이 있으면 사서 숙소에 가져다 놓고 다시 우매다로 돌아와 한큐 전철을 타고 교토에 있는 한 오코노미야키 전문점(내겐 추억이 있는 곳이어서 일부러 감)으로 가 낮술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거 하나 사자면 이걸 숙소에 갖다 두고 다시 돌아와 교토행 열차를 타는 것도 우습고, 갖고 다니자면 그래도 구경을 좀 다닐건데 만만찮은 부담이 될 터였다. 더군다나 이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결국 음반은 도로 내려 놓았다. 걍 가자. 근데 지금도 그 음반이 자꾸 생각이 나는건 어쩔수가 없네. ㅡ,.ㅡ;
한큐센 카와라마치행 표를 끊어 열차에 올라 탔다. 너무 일찍 도착해도 낮술 먹기 이르면 골아프다. 그래서 익스프레스 보다는 올스탑트레인 표를 샀다. 완행으로 탔는데 아 젠장 나중에 알고 보니 교토까지 가는 열차가 아니었다. 맛있게 자고 일어나 보니 열차 안에 나 혼자만 남았다. 열차간 문에 부착된 유리 너머로 보이는 다른 열차칸에도 사람은 눈씻고 봐도 없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개당혹. 열차는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드디어 열차가 이상한 곳에 멈춰섰다. 아, 젠장. 여기가 어딘진 모르지만 교토까지 가는 열차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기관사가 조종실에서 나와 열차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왜 여태 열차에 남아있냐고 핀잔할 줄 알았더니 급히 반대편 조종실로 돌진한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날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난 오히려 그들에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열차가 다시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열차가 다시 우매다로 가기 위해 반대로 돌아서는 중이었다. 나 혼자 내리고 사람들은 우르르 타고. 쪽팔렸지만 날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 남의 일에는 신경쓰지 않는 일본인들이라 한국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결국 반대편에 출발 대기중인 열차로 갈아탔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카와라마치에서 내리면 바로 시조도리 상가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다리 위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젖은 옛날식 집과 단풍이 이국땅임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준다.
안가본 곳이나 함 가보자. 교토엔 세 번째지만 웬만한 중요한 곳은 다 가봤으니 구석진 곳을 함 가 볼 참이었다. 가고자 했던 오코노미야키집은 오후 네 시에 도착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일단 시조도리 상가 를 거쳐 야사카진자 방향으로 걸어봤다.
이 날도 셔츠 하나 달랑 입었다. 일본의 따뜻한 날씨를 믿고 그랬지만 아침 숙소를 나설 때부터 왠지 조짐이 좋질 않았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있어 숙소에서 우산을 렌트하니 문제가 일차적으로는 해결됐지만 아우터를 입고 나올까 그냥 나갈까. 방으로 다시 갔다가 돌아오기도 귀찮고 전날보다 서늘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나왔더니 아무래도 비가 부담스러웠다. 야사카진자에 도착하기전 상가에 늘어선 가게에는 여자 머플러를 파는 곳은 몇 곳 보여도 남자용 파는 가게는 없었다. 아, 젠장. 하나 사서 걸치면 닥인데. 생각 같아선 굴비 보자기라도 있으면 두르고 싶었다. 어쨌든 진자 안으로 들어가 그 뒤에 있는 공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세 번째 오는 곳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
그래도 간만에 와서 들른 첫 행선지이니 대충 둘러 보고
뒷쪽 공원으로 넘어가 봤다. 전에 왔을 때는 개무시하고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기모노를 입은 처자들과 중국 관광객들이 같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한국인 처자들이었다. 알고나 사진 찍자고 한건지. 이 곳엔 기모노를 입었다고 해서 일본인으로 확신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 곳엔 기모노와 유타카 대여점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어 하는 기모노상도 있고, 영어 하는 파란 눈의 기모노상도 종종 보인다.
단풍이 들어 공원은 제법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여 왔으니 공원이 어디까지 연결되나 함 가보고 싶었다. 제법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공원이 끝나는 곳이라고 판단된 곳을 지나니
사찰로 통하는 단정하고 곧은 길이 나온다.
호기심이 발동해 안으로 들어가 봤다.
여기도 돈내고 들어가는 곳이었군. 여행가이드북에서는 보지 못한 곳이다.
표를와 안내 가이드를 샀다. 사찰 이름이 장락사다. 무슨 뜻이냐. 길게 즐거운 절? 오래 즐겁게 사는 절? 여기 들어가면 즐겁나? 스님들이 개그맨일 리는 만무하고.
나와 동시에 들어온 폭탄머리의 사내가 앞서 계단을 오른다. 여긴 왜 일케 폭탄 머리가 많냐.
여기가 본당인갭다. 부처님이 안보인다.
이 건물 외에는 바로 옆 낡은 종각과 자그마한 박물관 건물이 전부였다. 박물관에는 이 사찰의 큰스님들이었는지 청동으로 주조된 동상 몇 개가 안치되어 있었고 몇 몇 고문서와 옷가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뒤로 넘어가면 이런 것들이 계속 나온다. 스님들의 무덤인 것 같다.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이끼가 있는대로 낀 다리는 왠지 모르게 이승과 저승의 경계다리인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이 곳까지 올라오면 눈에 보이는거라곤 스님들의 무덤뿐인 탓이다. 운치가 있다.
다 끝나고 사찰을 나가기 직전 오른쪽으로 스님들의 거처인지 아담하고 아늑한 내부가 들여다 보이는 건물이 나온다. 사찰로 처음 들어설 때 왼쪽으로 보이던 이 곳이 스님들의 거처인가 싶어 분위기가 애매해 들어가면 안될 줄 알았다. 그런데 사찰을 나가며 호기심에 유심히 다시 보니 들어가란 소리도 없지만 들어가지 말란 소리도 없었다.
들어가 봤다.
스님들이 공부하기에 그만인 쾌적한 공간이다.
일본의 전통 가옥들은 큰 방에 미닫이 턱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미닫이 문을 달아 닫으면 여러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나뉘고 걷어내면 하나의 큰 방으로 바뀌는 형태인데 이 곳이 그렇다.
"ㄴ"자 형태로 지어진 가옥에 남는 여백의 공간에는 연못을 품은 정원이 자리 잡았다.
이 곳에는 북과 벼루가 놓여져 있어 방문객들을 위한 시설인 것 같다. 전에 교토에 왔을때 이 곳이 아닌 다른 절에서는 방문객들이 소원을 적어 걸어놓곤 했다.
방 한켠에 아무래도 과거 불가에서 순교한 성녀가 아닐까 싶은 형상이 놓여져 있다.
정원을 내다 보니 운치가 그만이다. 이 곳에 한참을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다다미 위에 앉아 비가 부슬부슬내리는 숲 한가운데 지어진 사찰 그 안에서 빗소리 들으며 물위의 파장을 보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금 앉아 있다 보니 일본인 노부부가 들어와 바로 옆에 앉으며 인사를 건넨다. 40분 정도 앉아 있었을까. 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나가려고 돌아서니 이미 서양인 여행객들을 포함해 열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들어와 있었다. 나도 놀랐다. 그저 조용하게 아무도 대화 없이 조용히 입다물고 있어 맨 앞에 앉아 있던 내가 인식을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 곳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게다.
한적한 곳에 집을 이렇게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아무리 크게 틀어도 누구 하나 잔소리 할 사람 없는, 정원을 내다보며 아무생각없이 하루종일 굴러도 누구 하나 잔소리 하지 않을, 심심하면 흙냄새 가득한 산길을 거닐고...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이 곳을 나와
다시 시조도리 쪽으로 나가다 보니
무언가 거창한 포스가 느껴지는 곳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봤다.
장례식장이다.
여행자가 갈 곳이 아니어서 가이드북 책자에 소개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장례문화를 엿보는 것도 중요한 문화 체험의 일부분이 되지 않을까.
게다가 이 곳은 상당한 운치와 포스가 느껴지는 곳이다.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계단을 오르면 화려한 금장의 문과 담벼락이 나온다. 이 곳의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
반대편 문으로 나가면 공동묘지가 보인다. 공동묘지도 우리에겐 익숙한 형태가 아니어서 그런지 들쭉날쭉 각기 다르게 생긴 비석이 묘한 운치를 낸다.
시간이 이제 네시가 넘었다. 버스를 타고 예정했던 오코노미야키 집으로 갈 참이었다. 슬슬 걸어 버스를 타기 위해 대로방향으로 나갔다.
버스를 탔다. 노선도를 보니 40분 거리는 되는 것 같다. 교토 반바퀴를 도는 코스다.
겐군진자마에에서 내려 전부터 꼭 다시 들러보고 싶었던 오코노미야키집 창남을 다시 찾았다. 다섯시 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어둠이 깔린 것은 흐린 날씨 탓도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립던 창남의 간판을 보니 한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사실 오면서 혹시나 문을 닫았거나 이사했으면 어찌하나, 마침 쉬는 날이면 어찌하나, 일이 생겨 누군가 알바나 지인에게 가게를 맡기고 주인장이 출타중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이 집에 대한 그림움과 열망이 컸던 탓일게다. 잡다한 걱정을 쓸데없이 하던 차였지만 기우였나보다.
사장님은 여전했다. 물론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우선 오코노미야키 돼지고기 옵션하고 생맥주를 주문했다. 이 집은 원래 기린맥주를 취급하는 집이라 무슨 맥주가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나오 걸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꽁꽁 얼려 얼음까지 머금은 잔에 거품이 섬세한 기린 생맥주라니 감동이 몰려온다. 주인장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이 분은 영어를 거의 못하시는데다 알바군이 오기 전이라 정신없이 바쁜 터라 말을 걸기도 머시기 한 상황이었다.
되지 고기 굽는 냄새가 요란하다. 내가 주문한 오코노미야키에 들어갈 고기인가 했지만 살짝 익자 작은 프라이팬에 담겨져 한움쿰의 모짜렐라가 연혀진 뒤 철판 위에서 뚜껑을 덮고 치즈가 녹아 늘어지니 그제서 완성된 다른 요리다. 다른 손님을 위한 요리였다.
이 집의 오코노미야키에는 주재료 중 국수가 포함된다. 국수를 굽지만 건조하지는 않다. 4년전 이 집에서 오코노미야키를 처음 먹어본 뒤로 다른 곳에서는 오코노미야키가 오코노미야키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주인장의 구수한 미소도 한 몫 했다. 그 뒤 여태까지 이 집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오사카에 왔으니 이집은 반드시 들러 볼 참이었고 드디어 온 것이다. 이유가 뭘까.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이 따스함은.
드디어 오코노미야키가 완성되어 나왔다. 군침부터 돌았다.
주인장이 직접 만든 소스. 주인장은 이 소스를 만들 때 한국에서 막 도착한 청양고추를 쓴다고 했다(4년전 왔을 때 이 곳 알바군이 해 준 이야기다) 이젠 상품화까지 한 모양이다. 레이블에 써있는 "개매워요"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장은 날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내가 이 소스를 마구 찍어먹는 모습을보며 놀란다. 뭘 놀라셔.
먹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한 청년이 근처 집에서 왔는지 트레이닝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채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젊은 친구가 돈도 많은지 샐러드부터 한접시 시켜 먹더니 비싸 보이는 큼직한 고기 요리 한 팬을 다 먹고 오코노미야키도 하나 주문했다. 술도 못먹는 친구가 먹성이 엄청나다. 조금 지나니 작은 키에 귀엽게 생긴 여학생 알바가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내심 반가웠다. 주인장과 옛날 이야기도 좀 하고 싶었다. 젊은 친구 두 명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알바생에게 물었다.
"영어 하세요?"
"도리도리 씨익~"
바로 옆테이블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내게 손바닥을 들어 흔들었다.
나는 그래도 대충은 세사람이 조합해 들으면 되겠지 하고는 일방적으로 떠들어봤다.
"4년 전에 이 곳에 처음 왔었습니다. 그 땐 길건너편 타니하우스에서 묵었더랬어요.(타니하우스란 말에 주인장이 '아~ 타니하우스' 하고 반응했지만 제대로 알아 들은건지 아님 지금 타니하우스에 묵고 있다는 말로 들은건지는 알 길이 없다.) 그 때 친구하고 같이 저녁때 처음 이 집에서 당신이 만든 오코노미야키를 맛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히 맛이 있었어요. 그래서 밤마다 다른 데 안가고 여기 와서 먹었죠. 한국으로 돌아간 뒤로 오코노미야키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만든 것만큼 맛이 좋지 않아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타니하우스에서는 하루 밖에 머물지 못했었습니다. 그 때가 일본에서는 연휴였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걸 모르고 미리 방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게스트하우스마다 남은 방이나 도미토리 공간이 없는거예요. 타니하우스 하루 잡은것도 운이 좋은거였어요. 그때 상당히 애를 먹었는데 당신이 정보를 주고 도와주려고 굉장히 애썼어요. 당신의 친절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오랫동안 다시 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일이 있어서 오사카에 왔습니다. 오늘 일부러 시간내서 왔습니다. 당신이 만든 오코노미야키 먹으려고요. 오늘 이거 먹고 나면 다시 오사카에 있는 숙소로 돌아갑니다."
반응을 보았다. 세 사람의 얼굴 표정이 모두 같았다.
"에~"
"ㅡ,.ㅡ;"
나는 아는 한도 내에서 한자로 이걸 표현하려고 노력해 봤다. 일어를 전혀 모르니 한자로 써서 중국어식으로 나열해 봤다. 아는 한자도 막상 쓰려니 생각나지 않는 글자도 많아 표현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대충 알 수 있지 않을까. 주인장이 알바생하고 둘이 같이 열심히 들여다 보며 토론을 했다. 그들이 같은 표정으로 날 봤다.
"에~"
"ㅡ,.ㅡ;"
4년 전엔 어느정도 소통이 가능한 알바생이 있어서 웬만한 의사표현은 주고 받았었는데... 그 친구도 그리워졌다.
아, 젠장. 그래도 왔으니까 좋은거잖아. 왔으니 주인장 얼굴 보면 된거고, 그 그립던 오코노미야키 먹으니 된거고, 이 가게에 와서 앉아 있으니 행복하면 됐지 뭘 더바래. 나는 옆에 앉은 젊은 친구가 먹던 고기요리와 같은 것으로 해 달라고 주인장에게 주문했다. 옵션으로 믹스하는 요리란다. 걍 똑같이 해달라고 했다. 내게는 작은 팬에 요리를 내놓았다. 먹는 양이 이 친구만은 못할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공기밥을 주문했다.
"밥주세요."
주인장과 알바생이 뭔소린가 해서 날 쳐다본다.
"에~"
나는 종이와 펜을 다시 꺼내 한자로 쌀"미"자를 써보였다. 그제서 공기밥 하나를 내온다. 아마 나 혼자 주절거린 말은 조금도 알아듣는 부분이 없었을거란 확신이 이때 들었다. ㅠㅠ
뭔가 부족하다. 맥주도 한 잔 더 마셔야겠고. 고기요리가 조금 남아 있으니 새요리 나올 때까지 먹고, 그릴드푸드 메뉴칸에서 하나 골라보는데 김치가 눈에 띤다. 어떻게 요리할지 궁금해서 시켜봤다. 그랬더니 걍 김치가 나온다. 이게 모야? ㅡ,.ㅡ; 양도 작은게 값은 또 왜그리 비싸던지... 헐. 그래도 며칠 안먹은 김치라 그런지 쌀밥과 함께 먹는 맛이 아주 좋다.
이 집 기린 생맥주는 유독 더 맛이 좋다. 생맥주라고 다 같은 생맥주가 아니다.
우선 회전이 빨라야 한다. 같은 생맥주도 맛이 없는 집은 장사가 되지 않아 회전이 더딘 경우다. 생맥주 캐그를 개봉해 연결하고 나면 이틀까지는 최상의 맛을 낸다. 그 담부턴 서서히 떨어진다. 장사가 잘되는집 생맥주가 맛있는 이유다.
또 하나는 노하우다. 필스너 타입의 맥주는 보통 25~30% 정도로 정확하게 거품을 조절해야 하고 같은 거품제조기를 쓰더라도 유별나게 섬세한 거품을 뽑아내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 내놓아야 맛이 있다.
실컷 배터지게 먹고 나니 대략 일곱시 정도 된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계산을 했다. 많이 먹은 만큼 금액도 많이도 나왔다.
익스프레스를 타고 오니 대략 우매다역까지 40~45분정도 소요된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다 보니 왠지 맥주 한 잔 더 하고 싶어졌다.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 비상금 3천엔 남겨두고 주머니에 1만3엔 정도 주머니에 넣고 나갔었다. 레코드 가게(이 날 레코드 가게에서 뭔가 더 사게 되면 카드로 긁을 작심을 하고 있었다) 들른 뒤 교토에 다녀온 뒤 숙소가 있는 히고바시역으로 돌아오니 동전 몇 개 남는다. 근처 편의점 들러 맥주 한 캔에 사발우동 두 개 사니 2엔 남는다. 나도 참 알뜰하게 잘 쓰고 돌아다녔다. 허허.
숙소로 돌아와 샤워 후 식당 겸 휴게실로 가봤다. 한국인 모녀 여행자, 그리고 일본인과 한국인청년이 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발우동에 물끓여 붓고 맥주를 들고 나니 자리를 만들어 준다. 한국인 모녀 여행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좋았다며 경험담을 늘어 놓았다. 일본인과 한국인 청년은 일본어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조금 지나니 홍콩인 여행자들도 몰려 들어왔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대뜸 오빠라고 부른다. 헐. 여자가 아닌 남자가 그렇게 부르니 기분 묘하다. 다음날은 적당히 자고 일어나 슬슬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면 여행 끝이었다. 술도 달근하게 마셨겠다. 잠자리에 드니 그 담부턴 생각 안난다.
2015.11.9(월)
떠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실컷 자고 일어났지만 시간엔 여유가 있었다. 혹시 모르니 한시간정도 더 여유를 갖고 움직이기로 했다. 전날 하나 남겨둔 사발 우동으로 숙소 발코니에서 아침식사 대충 해결.
우매다역으로 가서 다시 JR선을 타고 신오사카역으로 가니 역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발권창구가 보인다. 공항 논스톱 특급을 달라고 하니 여기까지 온 티켓을 요구한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확인해야 정산이 되기 때문이었다. 간사이공항까지는 1,360엔, 특급열차 이용 허락권이 별도로 970엔이었다. 도합 2,330엔.
곧 열차가 왔다.
마지막 남은 비상금 3천엔과 갖고 있던 잡전을 교통비에 쓰고 남은것을 합치니 330엔 남는다. 올커니 맥주 한 캔 값이다. ㅋㅋㅋ
공항에 도착해 자동발권부터 받고 출국심사를 받았다.
출국 후 맥주값을 보니 320엔. 출국직전 공항청사 자판기엔 큰게 220엔이었는데 헐. 어쨌든 동전은 10엔 남았고
어디 가서도 사용하기 거북한 잡전들이 17엔이나 남았다. 유니세프 동전박스도 이 날 따라 눈에 띠지 않는다. 아. 젠장. 어쩐다.
나를 태우고 돌아온 대한항공 여객기. 기내식은 콧구멍한한 샌드위치에 파인애플 한조각. 기내식도 별로지만 으쩜 이어폰도 안주냐. 하긴 마일리지로 공짜 탑승해놓고 뭔 말이 그렇게 많냐. ㅡ,.ㅡ;
이 번 오사카 레코드샵 순례에는 그동안 도쿄에서 그랬던 것 처럼 적극적으로 레코드샵 공략을 하기 보다는 여유있는 모드로 다녔다. 오사카 레코드샵에 대한 정보가 도쿄때와 비교하면 많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로 작용했다. 한 두군데 더 갈 정보는 있었지만 그동안 다닌 곳이 레퍼토리도 나와 맞지 않고 값이 비싸 의욕이 나지 않았다. 전부터 도쿄로 다니면서도 오사카 음반시장이 궁금하기는 했었다. 몇 군데 다녀 놓고 오사카의 음반 시장을 파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됴쿄 시장과 비교하면 레퍼토리가 부족하고 값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이 번 디스크유니온 오픈 행사 때문에 왔지만 그 오픈 행사 아니었으면 이 곳에 올 이유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나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어쨌든 오사카 시장 상황을 어느정도 들여다 본 것 만으로도 올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핑크 플로이드의 Atom Heart Mother 레드왁스반을 건지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기회는 다시 오겠지.
오사카 땅은 부자도 먹다가 망하는 곳이라고 했다. 허명은 아니다. 기막힌 맛집이 정말로 많다. 어쩌면 음식에 관한 한 적응력이 뛰어난 나의 성향도 작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오사카는 먹고 즐기기에 부족함은 없는 것 같다. 환율이 폭락하기 전이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그동안 그립고 그리웠던 남창에 들른 것도 이 번 여행에서 의미있는 일로 생각한다. 함께 왔었던 뜀도령과 함께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걸 원했던 그도 시간을 내지는 못했다. 나중에라도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또 가보겠지만 이 곳 간사이 지방으로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른때와 달리 음반을 많이 사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짐이 가벼웠다고만도 할 수 없지만 전에 비하면 그렇다. 수확이 나쁘진 않다.
그동안 갖고 싶었다가 원을 푼 음반도 적잖이 있었다. 이것들 때문에 행복한 시간 한참은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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