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15 여수

여수 여행과 27년지기와의 해후 1

코렐리 2015. 4. 29. 15:10

2015.4.18(토)

1988년 4월 11일 진해 해군교육사령부 육정문에서 처음 만난 시꺼먼 놈들. 강도높은 훈련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사 직전까지 갔던 시절 16주를 함께 개고생했던 그 놈들. 그 고생끝에 가슴엔 시뻘건 명찰, 팔각 잡힌 이마에는 허연 밥풀떼기 하나 달고 세상에 뵈는 것 없어라 함께 설치던 그놈들. 철없던 시절 이부대 저부대로 흩어서 서로를 그리워 했던 순진한 놈들. 제대한지가 언젠데 어쩌다 이 인간들하고 27년을 함께 했을까. 73회의 징그러운 놈들과 여수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어지간히 다닌 나지만 이 날 기다리느라 빠진 눈알 도로 집어 넣느라 애먹었다. 여수로 가는 이유는 16명의 멤버 중 순천에 사는 두 놈. 예쁜 구석 없는 영봉군과 승춘군 낯짝 보러 간다. 매 모임때마다 가족까지 이끌고 서울에 와 주는 고마운 놈들. 이 번엔 서울에서 간다. 몇 년 전 순천으로 갔으니 여수 구경하러 행선지를 바꿨다. 

KTX에 올라탄 영표군, 명수군, 을영군.

 

맥주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종환군, 을영군, 성대군, 영표군.

 

어디선가 구석기 시대 원시인 어린이들이 먹던 촌스러운 과자를 발굴했나보다. 맛동산? 선사시대 과자를 상했는지 확인도 안하고 먹으며 행복해 하는 평원군과 나.

 

무슨 놈의 고속철이 여수까지 세시간이나 걸리냐. 이거 타는거나 통일호 열차 안에서 달려가는 거나 도착시간은 비스므리 할게다. 그래도 도착하니 좋긴 하다. 

 

도착기념 촬영을 하는 서울 촌놈들.

 

폼 한 번 잡아 보고.

 

여수역을 나가면 바로 여수엑스포 전시장이 있고 그 주변에는 흐드리지게 꽃장식으로 땅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진작부터 와서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버스까지 빌려와 역 앞에서 기다리던 영봉군. 노란 유치원 미니버스에 주황색 티셔츠, 그리고 선글라스. 카리스마 완전 작렬이다. 유치원이 쉬는 날이다 보니 유치원을 운영하는 친구 와이프를 협박해 영봉군이 강탈한 차를 몰고 온 것. 동심의 순수한 영혼들이 타고 다니는 이 차를 시꺼먼 인간들이 타고 내리니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많은 의문점들을 가는 곳마다 남겼을 거이다.

 

"어머 얘, 유치원 차에 웬 느끼한 아저씨들이 타고 다닌다니?"

"선생님들인가?"

"얘, 미쳤어? 유치원에 남자 선생님은 본 적도 없거니와 저렇게 나이든 유치원 선생님 봤어? 봤어?"

"하긴 쓰고 있는 인상들이 꼭 병든 늑대들 같다 얘. 그럼 저 차는 어디서 났을까?"

"어디서 중고차 방금 하나 샀나보지 뭐. 볼수록 인상들은 드러운데 저 차 너무 안어울린다."

 

"여보, 저 차 우리 애 다니는 유치원 차 아냐?"

"어머, 맞는거 같은데? 어쩌다 저 차가 저 사람들 손에 넘어갔을까?"

"혹시 그 유치원 재정상태가 간당간당한단 소문 들어본 적 없어?"

"그럼... 사채업자들?"

"내일 저 유치원에서 우리 애 당장 빼."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그랬는지 안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동심을 싣고 달린다. 다리를 건너면서 하늘에 매달려 오가는 케이블카에 대고 한 마디씩 한다.

"여까정 왔는데 저거 타봐야 안돼나?"

"애들이냐? 애들이야?"

"그러시는 귀하는 유치원 차에 왜탔냐? 야, 차 세우고 넌 내려." 

"ㅠㅠ"

 

 

향긋한 썪은내를 바람에 실어 코끝을 자극하는 상쾌한 여수 어촌의 공기와 새파란 바다 품은 풍경. 굴양식장과 그를 배경으로 작업하는 어민의 모습이 풍경화에 다름 아니다.

 

갓김치를 좋아하면서도 갓이 이렇게 생겼구나 처음 본 나도 어지간히 촌놈인가 보다. 친구들도 촌놈들인데 뭐. 갓밭을 지나며 한 컷 담아봤다. 갓밭? 이거 말이 왜이렇게 어색하냐?

 

파노라마 사진으로 한 컷.

 

아직 개통되지 않은 다리도 여수의 반도를 돌며 창밖으로 내다 보인다.

 

도착한 곳은 향일암.

 

입구까지 가지 못하고 주차장에 대를 놓고 들어간다. 입구에 도착하니 주변에 먹거리 가게 일색이다. 한치인지 오징어인지 쥐만한 오징어를 쪄서 말리는건지 말려서 찌는건지 몰라도 무척 맛있어 보인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에서 모여 한 컷. 영봉군, 성대군, 영표군, 명수군, 을영군, 종환군.

 

계단 중간중간에 보이는 설치물들은 돌의 색이나 광택으로 보아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암자로 올라가며 노출된 네개의 똥꼬들.

 

출입문을 떠받치는 용.

 

영봉군. 유치원 버스기사가 맞는갑다. 노란 점퍼 좀 보게. 그땐 몰랐네.

 

암자에 오르려면 바위틈을 진입해 들어가야 한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오면 찡기기 꼭 알맞은 곳이다. 유치원 버스기사 외친다.

"어이, 늙은 어린이들 빨리 오세요. 꿈지럭 거리는 놈들 다 패버린다."

 

글쎄 이렇게 다니면 찡긴다니까. 본인들 굶어 살빠질때까지 기다리는건 둘째치고 이미 암자 올라간 사람들 발이 묶이는게 문제라고.

 

얼리리요? 종환이 덩치 좀 보게? 너 혼자만도 끼이겠다.

 

여유있는 척.

 

가는 곳마다 동전던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이 봤다. 이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 가도 분수만 나오면 동전을 던진다. 난 돈아까워서 안던진다. 그런데 여긴 던진는게 아니라 낑궈 놓는다. 여기다 백원짜리 동전 끼워 넣으면 아들 100명이라도 생기는가?

 

목적지에 올라 기념촬영 한 컷.

 

신도들의 기원을 담은 등이 아름답게 걸린 대웅전 앞마당이다. 기원딱지를 걸어 주시는 스님.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단청. 못을 사용하지 않는 고급 건축기법에 편안한 느낌을 주는 나무소재, 그리고 단청, 처마를 스치는 유려한 곡선. 내가 사찰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처마 밑 봉황과 용이 단연 눈에 띤다.

 

대웅전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스님이나 보살님한테 들킬세라 빨리 찍으려 했는데 누군가 방석을 들고 부처님 앞으로 가느라 내 카메라를 가려버렸다. 사진에서 방석을 든 채 등짝을 노출하며 주연이 되어버렸다. 이걸 확 죽여버릴라 어쩌고저쩌고 궁시렁거리며 다시 사진을 찍고 보니 을영군일쎄. 절도 하네?

 

전부터 여러번 와 보았는지 구경엔 관심도 없는 영봉군. 서울에서 온 촌놈들 구경시키느라 애쓴다.

 

크지 않은 대웅전 앞마당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 등. 밤이 되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뒷쪽으로 더 올라가면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더 나온다. 뒤로 넘어가며 높은 위치에서 처마밑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기와를 이용한 축대 장식.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 등들이 석탄일을 기다리듯 먼바다를 내다본다.

 

불공을 드리는 처자의 모습이 경건하다.

 

자축인묘 진사... 역시 동전이 가득하다. 암자의 짭짤한 부수입 되겠다.

 

조용하고 아늑하게만 보이는 스님들의 거처.

 

내려가다 보니 방앗간이 나온다. 참새들이 몰려들어간다.

 

한 잔 허고 가야지?

 

성대군, 영봉군과 함께 나도 한 컷 찍고.

 

무슨 참새들이 일케 시커멓냐. 막걸리로 건배.

 

사진이 후지게 나왔지만 이 굴전 맛이 아주 좋다. 살짝 물기를 말린 굴을 사용한 탓에 쫄깃한 맛의 굴전을 맛보게 된다. 저녁에 해산물을 쌓아놓고 먹자면 뱃속을 비워 두어야 하는데 자제하기 쉽지 않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려다 보이는 바다풍경.

 

우리는 영봉군 덕분에 여수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여수 시내로 돌아오다 들른 갓김치 전문점. 영봉군이 우리를 위해 1인당 3킬로씩 7개를 주문해 놓았다. 덕분에 아주 맛있게 지금까지도 호강중이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놓고 식당으로 이동중. 여기서부터 승춘군 합류. 순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승춘군은 아버님 농사를 거드느라 뒤늦게 합류한 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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