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4 중국 the 4th

상해로 개병대 모여라 1(소주)

코렐리 2014. 5. 1. 09:55

2014.2.20(목)

벌써 삼십년도 넘은 기억이지만 휴가 나온 사촌형은 비까번쩍하게 해병대 복장을 입고 작은집인 우리 집을 인사차 찾곤 했다. 복장부터가 위협적인 해병대란 군대가 있는지는 사촌형을 보고 처음 알게됐다. 그 해병대에 호감을 갖게 될 동기는 후에 엄친아가 제공했다. 집에서 어른들이 한사코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젊어서의 고생 사서 해 보려면 해병대 말고는 기회도 없을것 같다는 그의 논리가 결국 나를 역설득했고, 이녀석을 말려 달라는 그 어머니의 미션을 망각한채 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려하게 됐다. 이 얘기 들으면 누군가 나보구 귀가 엷은 놈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의 귓바퀴는 실제로 크고 앏은데다 귓구멍이 크기까지 하다. 신체적인 구조의 속설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내가 이 놈한테 넘어가 해병대 훈련을 받으며 이놈을 저주한 적이 여러번임은 부인하지 않을란다. 어쨌든 때는 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4학년을 맞았을 때였고, 여러가지 이유로 대학원 진학을 미루기로 하고 장교시험을 뒤늦게 알아보게 되었다. 육군은 끝났고 공군, 해군, 해병대가 아직 선발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해병대에 눈을 대고 있던 내게 아버지의 권유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결국 지원을 하게 되었다. 필기시험, 체력검정, 신체검사, 면접 그리고 신원조회를 마치고 최종 결과를 볼 때까지 나는 이등병 계급장의 무시무시한 위협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행이도 좋았다. 귀가 엷기로는 기억나는 다른 경험도 있다. 내가 해병대에서도 보병을 지원하게 된 계기다. 그 계기는 나의 친형이 제공했다.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포병에 체킹하려던 내게 "사거리 잘못 계산해 포탄이 민가에 떨어지면 모가지가 날아갈텐데 어쩌려구?" 기갑에 체킹하려 했더니 "철덩어리로 만들어진 수륙양용차(LVT)나 전차는 여름이면 쪄죽고 겨울이면 얼어죽는다"는 말로 위협했다. 결국 보병을 지원하게 됐다. 참고로 우리 형은 군면제자였고 그가 했던 얘기들은 전부 개뻥이었다. 멍청했던 나는 형이 군대 다녀온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판단했고, 형은 기왕 고생하는 군대 경험이니까 평생 30여명을 지휘해 볼 경험은 이 때 말곤 기회가 없을거라는 계산에서 나를 유도했다고 한다. 그덕에 딱총들고 개전방에서 개고생하며, 보병을 권유한 형을 원망했던 것도 부정하지 않을란다. 하지만 제대한 뒤로 해병대에 자원한 것을 보병에 지원했던 것을 단, 한번의 후회도 없음을 어쩌랴. 젠장, 어쨌든 나는 1988년 4월 11일 진해 교육사령부에 입교했고 반 죽을 고생 끝이었던 그 해 7월 16일 163명의 동기생들과 함께 팔각모에 허연 밥풀떼기 하나 달고 진해교육사령부 육정문을 나섰다. 해병대 다른 기수들과 비교했을때 오늘날 이상하리만치 활성화되지 못한 우리 동기회에 대한 기대를 접고 마음에 맞는 30여 동기들끼리 기수의 이름을 따 73회를 조직해 끈끈한 우정을 과시해 온 것은 작지않은 세월동안이었다. 혈기넘치던 스물 넷다섯 젊은 시절에 만난 이 친구들 어느새 갱년기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각계각층에서 중견리더로 자리를 잡았으니 세월의 흐름이 어찌 느리다 할 수 있을까. 작년에 바로 그 임관 25주년을 맞았고 나는 외국을 싸돌아 다니느라 참석하지 못했지만 73회는 그 25주년을 조촐히 자축했다. 그 후속 행사로 금년에는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후보지는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중국 상해가 거론되다가 최종적으로 상해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누적된 회비로 경비를 충당하게 되었으니 별도의 경비가 들어가지 않는 만큼 안가면 손해여서 거의 모두가 함께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틀의 휴가를 내기가 어려운 친구들이 많아 갈 수 있는 인원은 8명에 불과했다. 패키지 단체여행을 싫어하는 나지만 끈끈한 우정을 과시해 온 동기들과의 첫 여행인만큼 기다림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행선지와 여행사 선정에 을영군이 애를 많이 썼다. 을영군, 성대군, 승춘군, 영표군, 종환군, 재혁군, 평원군 그리고 나. 2014년 2월 20일로부터 3박4일간의 여행이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뭉쳤다. 집집마다 피가 끓어 드높은... 여봐라 길비켜라. 상해는 개병대 73회가 접수한다. 음하하 ---> 방금 떠든놈 일루와 퍽! 쌍코피 줄줄...

 

09:15분 탑승 항공기인데 06:40까지 오란다. 07:00까지 가면 뒤집어 쓰는딩 잠 설쳐가며 일찍 갈 필요 있나? 어쨌든 조금 여유 있게 도착해 보니 친구들은 이미 가족을 대동하고 공항에 대부분 모였다. 나와 평원 그리고 재혁은 4일간 홀아비. ㅋㅋ. 군바리 근성이 아직 남았나? 줄 잘들서는데?

 

우리를 태우고 갈 항공기.

 

기내식. 중국의 항공인데 한국 기내식이다. 그냥저냥 먹을만하긴 한데 맥주는 차라리 칭다오나 옌징을 주면 좋을뻔했다.

 

어? 도착한겨?

 

이미 버스가 대기중이고.

 

우리를 4일동안 안내해 준 가이드. 동포 2세인데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고 꼼꼼한사람이었는데 이름이 생각 안나넹.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는 우리를 소주(쑤저우)로 데려갔다. 그 중 가장 먼저 들른 곳이 한산사(한샨쓰).

과거에서 내리 3번을 낙방한 장계가 좌절한 채 귀향길에 올라 한산사의 처량한 종소리가 결국 "풍교야박"이라는 시를 쓰게 했고 이는 가장 유명한 한시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 종은 이제 없고 지금 매달려 있는 애는 20세기 초에 새로 제작한 거라나. 청나라 황제 강희제도 시에 매료되어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높다란 목탑부터 눈에 들어온다.

 

풍교야박이란 시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작이기에 근런 야그가 다 나오냐. 함 보자 보자.

풍교야박: 달이 지자 까마귀 울고, 서리는 하늘에 가득한데, 강가의 단풍나무와 고깃배의 불을 보며 잠 못이루니, 소주 성밖 한산사의 자정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나그네의 뱃전에 부딪누나. 크~~~ 감동의 쓰나미가 혼미한 정신까지 홀라당 쓸어가는구만. 벌러덩.

 

시에서처럼 멀리 소주 성밖 한산사가 아닌 그 한산사 안으로 들어왔으니 화제를 돌려 불당 안으로 들어가면. 불당 안의 거대 황금색 불상이 온화한 자비의 미소를 띠우며 사바세계 중생들을 품어안는다.

 

옆에서도 함 찍어 주시고. 외모가 깨끗하신 걸로 보아 장계로 하여금 풍교야막을 읊게 헸던 당시의 그 범종소리를 들었던 부처님은 아니신 것 같고... 난 너무 정곡만 찌르고 다니는게 문제라니깐.

 

밖에서부터 눈에 들어오던 그 목탑에 오르면 그다지 경내 규모가 크지 않은 한산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용마루와 지붕이 다채롭게 장식되어 있고 금복주 할배도 벽에서 미소 짓는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유원(리우위엔).

 

명대인 1525년 서태시의 개인정원으로 지어졌으며 원래 이름은 동원이었으나 청대인 19세기 말 소주(쑤저우)에 있는 모든 정원의 장점을 결합해 재건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물과  건물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어 그 안에 육신을 담은 채 주변을 둘러보는 이로 하여금 평안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실내는 귀족적으로 꾸며져 있지만 상해의 서늘한 날씨와 맞물려

 

분위기가 존장 썰렁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추웠던 탓이다.

 

수다쟁이 우리 일행들이 그 분위기 다 깨서 훈훈해졌지만 말이다.

 

단체사진 한컷. 좌로부터 성대군, 재혁군, 을영군, 영표군, 나, 평원군, 종환군, 승춘군. 이번 여행 참가자 전원인 여덟명이다. 으따 짜식들 파릇파릇하던 20대 중반이던게 엊그제 같구만 이젠 전부다 느끼해져 분냐. 세월 참 야속하다 안그냐 잉. 그래도 썪은 내눈엔 아직도 느덜이 멋지게 보인다. 암! 박수 짝짝짝....!

 

이 곳 유원은 중원, 동원, 서원, 북원 으로 나뉘어 있어 계속 이동하며 전혀 다른 정원을 보는 재미의 쏠쏠함이 있다. 

 

사진을 올렸지만 대충의 기억만 남을 뿐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다녀오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패키지 여행의 단점이자 한계다.

 

나가는 길 정원인 이 곳에도 적지 않은 분재가 놓여져 있는데 그 중 가장 특이하고 괴이쩍은 모양새의 한 분재. 생긴건 늙었는데 키가 작으면 이건 워치게 해석해야 돼는겨? 애늙은인가? 아저씨 몇살이셈?

 

소주의 운하를 건너 뛰면 섭섭하다. 다음으로 들른 소주의 운하 뱃놀이.

 

이 곳에서 모터 동력으로 움직이는 배를 타고 이동한다.

 

운하에 면한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운하를 가르며 엿보인다. 빨래 너는 여인, 여유롭게 담배 피우는 노인, 창 안으로 다림질하는 아낙네, 자전거 손질하는 남정네,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차례로 비쳐진다. 이 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쉬지 않고 배가 들락날락하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럽지나 않은지... 노부부의 한가로운 일상이 평화롭다.

 

운하는 제법 폭이 넓고 빼곡하게 늘어선 집들은 왠지 서구적이다.

 

나도 한 컷. 여기저기 카질하는 중에 여행사의 강사장님이 찍어 준 사진.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 이 날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그랬지만 우리 말곤 손님이 없거나 우리 같은 단체 여행객만 받는 어정쩡한 식당만 다녔다. 보아하니 우리가 다닌 식당들은 대부분 깨끗하게 실내를 꾸몄지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하기엔 음식의 자체가 따라주질 못하니 여행사들을 상대하는 그런 식당들이었던 것 같다. 하긴 유명 식당으로 가자면 돈도 많이 들테고 함께 모여 먹도록 자리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테니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점심때 갔던 식당에서도, 이 곳에서도 남자 종업원은 하나도 없는게 영표군은 어지간히도 이상하고 궁금했던지 왜 그런지 서빙아줌마한테 물어봐 달란다. ㅡ,.ㅡ; 뜬금없는 질문이라 웃어넘기려 했지만 입국심사때 심사관과 내가 옥신각신하며 실갱이하는 걸 본 영표군이 짐짓 진지한 얼굴을 하며 날 쳐다봤다. 할 수 없이 한 아줌마 붙잡고 물어보니 이곳 항주엔 원래 그렇다는 뻔한 답만 돌아왔다. 호기심은 과학과 기술 진보의 원동력. 호기심 많은 영표군에게 갈채 짝짝짝...! 영표군! 놀리는거 아니다!

 

유명한 음식점을 골라서 다니거나 사람 바글거리는 곳을 아무 생각 없이 쑥 들어가는 재미는 일단 포기다. 갠적으로 그래서 피하는 패키지여행 아니던가. 하지만 음식은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어차피 보러 갈거라고 생각한 탓에 바로 옆 식당으로 들어갈때 대충 무심하게 봤던 탑이 행자의 무관심이 못내 섭섭했던지 어두워지면서 불을 밝히고는 나봐라며 봐줄만한 자태를 나름 뽐낸다. 이거 보고싶었는데 일정에 없어 그냥 지나쳤다. ㅡ,.ㅡ;

 

다음코스는 온천. 이 곳에서 즐긴 야외 온천이 여행의 최대 백미 중 하나였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음이 아쉽다. 깊은 산중에 들어온 착각을 일으키는 울창한 숲을 따라 요리조리 좁게 난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저러한 약초를 넣은 탕이 나오고 다시 그 곳에서 사방으로 뚫린 숲속 오솔길 중 하나를 또다시 따라가면 새로운 테마의 야외탕이 거미줄이나 개미집을 연상시키듯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다. 밖은 아직도 추웠지만 수영복 하나만 입은채 돌아다니기가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온천물이 뜨거워 한 번 담그고 나면 몸에서 나는 열을 식히기에 오히려 그 추위가 용이했기 때문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하나씩 즐기는 테마의 온천은 그 온천란 것에 관심없던 나를 다시 소주로 끌어들일지 모를 일이다. 야외 숲으로 조성된 정원에 테마별로 갖가지 야외탕을 설치하고 각종 약초 등을 넣은 테마 탕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재미를 춥다고 미적지근한 실내탕 안에서 물온도에 궁시렁던 바보들은 몰랐을게다. 푸하하...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홀리데이 인.

 

성대군의 아들 인회군과 함께 썼던 방이다. 최고급 호텔이라고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배낭여행 다니며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몰리는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만 전전하며 가끔은 쥐벼룩에 헌혈하던 나다. 이 정도 럭셔리한 호텔방이 얼마만이더냐. 감격에 겨워 쓰러질 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에게 한 말도 우습다. "이그 이 촌놈아."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