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13 부산

2013 부산영화제 2

코렐리 2013. 10. 10. 17:11

2013.10.6(일)

전 날 잡은 숙소는 모텔이었다. 찬공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창문이 큰 곳을 원했는데 계산을 마치고 방으로 들고 보니 창이 아주 작은데다 담배 절은 냄새까지 가세해 호흡기까지 괴롭혔다. 그래도 숙소를 구한게 어디냐며 잠을 이뤄 보려고 했지만 나중엔 육지절단의 욕망을 일으키는 모기새끼까지 앵앵거리며 덤비기 시작했다. 인간인 나도 담배냄새에 질식할 판인데 얘는 그 와중에도 피를 빨겠다고 덤비니 그 집념 높이 살만 하다. 이래 저래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어쩌다 잠들어 아침 8시에 맞춰 둔 휴대폰 알람이 몽롱한 정신을 수다스럽게 깨웠다. 씻고 나와 다시 걸어 영도대교를 되건넜다. 바닷가에서 늘상 봐 온 사람들은 바다내음이 새로울게 없을테지만 기름 섞인 내음이라 할지라고 내게는 새롭고 감흥마저 있다. 자그마한 부두에는 어선들이 원전 공포때문에 조업을 포기하는 어민들의 배들이 정박되어 있어 한가한 분위기마저 보인다.

 

 

다음 영화를 보기 위해 해운대역에서 내린 나는 아침을 어디서 해결할까 승냥이 걸음으로 근처를 돌아봤다. 돼지국밥집이 눈에 들어온다. 돼지국밥 좋지. 어, 웬 사람이 이리 많어? 소 뒷걸음질에 개구리 잡았다. 아침은 여기서 해결.

 

사람 많을 이유 있었다. 국물은 진하고 고기는 부르러워 아침식사로는 더하기도 어려울만큼 풍부하다.

 

식사후 바로 근처 메가박스부터 찾았다. 도착하고 보니 딱 영화 시작할 시간이다.

 

이 날 본 영화는 이스라엘 영화 "카스바(Rock the Casbah)"다. 모로코 여행중에 도시마다 방문했던 곳이 카스바였다. 도시 내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모로코에서는 카스바라 불렀다. 과거 십자군과의 전시에는 카스바가 방어를 위한 최후의 보루 노릇을 했다. 그 카스바가 바로 이 카스바인가 모르겠다. 카스바는 아랍어인 것 같은데 이스라엘어로도 같은 것인지 아니면 배경이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의 명칭인 만큼 그 아랍어가 맞는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 제목이 카스바래. 불만있어?

 

이 영화는 이스라엘의 통제하에 놓인 예루살렘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군의 수색활동으로 시작된다. 수색의 목적은 무장세력에 대한 색출. 여기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강압적이고 사생활까지도 침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주민들이 이들에게 수시로 돌을 던지는 상황이 교차하며 서로간의 대비되는 입장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침입 군인과 사생활을 침해당하는 주민간 서로를 동정할 수 밖에 없는 묘한 전개까지 벌어진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감독은 가급적 두 민족간의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그래도 이 영화는 이스라엘 영화다. 아무리 노력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측 입장이 아무래도 더 들어 갔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들 군인들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람자로서의 주관만 가질 수 있다면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주장에 비교적 치우치지 않은 영화로 봐도 좋을 것 같다. 복잡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단편적으로나마 볼수 있는데다 영화적 재미까지 있어 강추할 만하다. 도대체 여긴 누구의 땅인가. 이들에겐 절박한 삶의 터전이 문제로 걸려 있지만, 우리가 판단하기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따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영화를 보고 외벽에 달린 엘리베이터를 탄 채 내려오다 근처에 사찰이 하나 눈에 띠어 들러봤다.

 

모든 건물과 설치물들로 미루어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닌듯하다. 최근에 복제한 것으로 보이는 10원짜리 탑도 세워져 있고...  

 

같은 곳을 쉬지않고 왕복으로 걸으시는 스님의 모습은 진지한 수행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야 자동으로 놓고 찍으니 촬영실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철사로 얽어맨 난간만 아니면 그나마 보기 좋은 사진이 나와 줄듯도 한데...

 

이 곳을 나와 해운대 방향으로 걷다가 발견한 시장통. 이 곳을 걷다 보니 외국인들이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집이 눈에 띤다. 그러잖아도 곱창이 아우성 치는 점심시간.

 

이집이 나름 유명한 파전집이란다.

 

나도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고래고기를 함 먹어보기 위해 주문해 봤다. 혼자 오신 다른 분과 합석하느라 대화가 트였다. 서울에 가족을 둔 60대 가장으로 가족과 떨어져 부산에서 일을 하신다고... 주말이라 심심해 막걸리 생각에 오셨단다. 덕분에 고래고기만 시켜 아쉬웠는데 그 분이 주문하신 파전까지 맛 볼 수 있었다. 졸지 않고 영화를 봐야 하니 막걸리는 딱 한잔만. 파전은 맛있지만 고래고기는 피하지방이 워낙 두텁고 많은데다 살코기는 기름이 거의 없어 퍽퍽하다. 기름은 돼지고기의 얕은 풍미나 코 끝을 자극하는 쇠고기의 미각 같은 감동은 전혀 없이 그냥 기름이라는 생각만 든다. 에이 걍 이런 맛이었구낭.

 

바닷가로 나가니 부산국제영화제 홍보 설치물이 눈에 들어온다.

 

부산에 오자마자 입수하고 싶었던 영화제 안내 자료를 여기서 얻을 수 있었다. 부산의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도 비치하면 나 같은 사람들도 쉽게 자료를 접할 수 있었을텐데. 어쨌든 표도 이미 다 구했고 영화관 위치까지 다 파악한 상태이니 필요도 없어졌지만 기념으로 한 부씩 챙겨왔다.

 

무언가 행사가 있는지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를 위한 간이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두기엔 다음 영화 시간에 맞춰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 해운대 바다도 봤으니 출발.

 

다음으로 CGV 센텀시티로 이동했다. 이 번에 볼 영화는 불가리아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아일랜드의 다큐영화 "소울 푸드 스토리(Soul Food Stories)". 인구 2,000명인가 밖에 안되는 토프차라는 한 작은 마을에는 기독교도와 무슬림 그리고 몰락한 공산주의 신봉자와 공산주의를 경멸하는 민주주의자들이 한데 뒤섞여 살아간다. 얼핏 생각하면 유혈사태라도 생길 것 같지만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딛고 서려 하기 보다는 일치하지 않지만 인정하려는 모습을 서로 보인다. 공산치하의 당원들도 오늘날 더이상 원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감독은 아일랜드인으로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그는 음식에 관한 다큐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음식 그 자체보다는 서로 다른 마을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단 2주간의 로케이션으로 촬영을 마쳤다고 하는데 이들에게는 아일랜드인 부부가 방문자의 입장으로 출연한다.  이 영화가 과연 감독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내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이 영화엔 뭔가 핵심이 없다. 2주간의 촬영으로 그는 이 마을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도 의문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모호하다. 우리의 문화와 다르면 다를수록 열광하는 나라면 이 다큐에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도 하지만 1시간에 불과한 이 다큐를 보는 동안 졸음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으니... ㅡ,.ㅡ;

 

영화가 끝난 시간은 오후 3시경. 기차 시간은 저녁 8시. 싸돌아 다니기에 결코 적은 시간은 아니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대티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감천 문화마을로 가봤다.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부산역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그 마을 종점에서 탔다.

 

바닷가 절벽과 언적을 넘어 다니는 이 버스 코스야 말로 관광 코스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언덕을 오르내릴때마다 내려다 보이는 바다풍경과

 

언덕 자체의 분위기는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임에랴.

 

자갈치 시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근처 극장에서는 야외 특설무대를 마련해 영화 주인공들을 그 위에 세웠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 앞을 메워 길을 지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 배우들이 누구인지 짐작만 할 뿐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 무대 뒤편을 통해 시장으로 들어갔다.

 

자갈치시장 길건너 쪽으로는 포장마차가 골목을 따라 쭈욱 늘어섰다. 

 

국제시장이란 곳을 가봤지만 무언가 특색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저 눈에 띠게 예쁜 가게들이 좀 있고 장신구를 사기 위해 배회하는 외국인들이 좀 보인다는 정도 뿐 국제시장이란 이름이 무색하다.

 

깡통시장이란 곳도 가봤다. 위스키나 양담배 등 과거엔 판매가 금지된 미군부대 물건들 같은 것들만 잔뜩있는 시장인데 역시 굳이 찾아가 볼 정도는 아닌듯하다. 시장을 돌다 보니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시장의 한 분식집을 열심히 취재한다. 

 

이 집의 명물인지 비빔 당면이란걸 판다. 잡채 재료로 쓰거나 전골에 넣는 것만 보다가 이런 특이한 것을 보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침 저녁도 아직 안먹은 때라 함 맛보기로 했다.

 

비벼서 입에 넣어 보니 기대했던 맛 그대로다. ㅡ,.ㅡ; 넌 도대체 국적이 뭐냐?

 

KTX 열차 안에서 책을 보며 올라오니 잠깐새 서울에 도착한다. 생애 두 번째 가 본 부산. 첫번째 감흥보다 좋은 이유는 아마도 부산영화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주말을 끼고 하루나 이틀 휴가만 미리 냈어도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 부산여행었지만 그래도 아쉬우나마 즐거운 여행 즐긴 셈이다. 일단 영화제에 처음 발을 들여 맛을 들였으니 이제 매년 찾게 되지 않을까. 이젠 헐리우드 영화도 한국영화도 식상하지만 서울에서는 그 외에 대안이 그리 많지 않다. 새로움을 찾는 나로선 이 번 부산 영화제가 너무나 좋았고 아무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운도 따라주고 시간 낭비도 거의 없었으니 다음 축제도 기다리고 노려볼만하다. 부산영화제여 내년에 다시 보자. 그뗀 작심하고 갈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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