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5(토)
전부터 벼르기만 했다. 그런데 한 번도 못가봤다. 이 번엔 꼭 가봐야지 또 별렀다. 금요일엔 한 잔 푸지게 먹고 토요일 아침 11시까지 잤다. 부시시 일어나 신문을 들척였을 때 눈에 들어온 부산영화제 소식. 헉! 이게 모야. 이미 하고 있었단말야? 이것도 모를만큼 바쁘게 살았나 보다.
차표 예매했나? --- 아니.
영화 티켓 볼 것들 예매는 했나? --- 아니.
숙소 예약은 했나? --- 아니.
아~~! 멘붕.
만일 진작 좀 알았다면 휴가도 하루 내서 2박3일 동안 볼 영화 표도 6~9개 예매하고, 열차표도 예매하고, 게스트하우스 예약도 하고 했을텐데....
궁즉통이라 했다. 덮어놓고 가보기로 했다. 차표 못구하면 나간 김에 레코드점에나 구경 가고, 차표는 구했는데 영화표를 못구하면 여행이라 생각하면 되고, 숙소 못구하면 찜질방이라도 가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뭐 방법 없겠어...?
덮어놓고 얼굴만 대충 씻고 작은 가방 하나 꾸려 모자 눌러쓰고 나갔다. 열차 좌석은 없을게 뻔하니 고속 터미널로 갔다. 13:20발 부산행 차 좌석이 하나 남았다. 기냥 사서 기냥 탔다. 길은 밀리지 않아 여섯시 정도에 부산터미널에 도착했다. 도착시간 좋고.
터미널 내에 PC방이 있는지부터 찾았다. 어쭈 기냥 나오넹? 출발이 좋다. 자리 잡고 앉아 표부터 구했다. 오늘은 어떤 영화이든 관계없이 무조건 야외극장을 선택하기로 했다. 프랑스 영화 "나와 엄마 이야기(Me, myself and Mum)"가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된다. 검색해 보니 표가 있다. 뭔가 슬슬 잘풀린다.
다음날 영화표 이리저리 뒤져봤다. 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전 10시 이스라엘영화 "카스바(Rock the Casbah)" 표가 딱 한장 남았다. 냉큼 집었다.
오후 두시 불가리아 소재 아일랜드 다큐 "소울푸드 이야기(Soul Food Stories)" 이 표도 거의 동나간다. 무조건 집었다.
이 번엔 게스트하우스 숙소정보를 검색해 12개의 전화번호를 확보했다. 운 좋으면 이 중 하나 정도는 방이나 도미토리 공간 하나쯤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피씨방을 나섰다. 피씨방을 나선 시간은 저녁 7시. 서둘러 영화의 전당인 센텀시티역을 바라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게스트하우스 열 두군데 모두 전화해 봤지만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ㅡ,.ㅡ;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영화 시작전 극장에 골인하는 일이었다. 역에서 나와 12번 출구로 나가 길을 찾았다. 사전에 지도를 확인해 봤지만 시간이 촉박해 보험 들기 위해 길을 묻기로 했다. 백화점 앞 벤치에 앉은 한 커플에게 물었다. 내가 잡은 방향이 맞았다.
바삐 길을 가는데 한 외국인이 말을 걸어온다. 자기도 극장에 가는 중이라고.
뉴질랜드에서 온 패트릭이란 이 친구는 부산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3년 생활했고 앞으로 2년 더 한국에서 머물 생각이라 했다. 한국영화를 예매했단다. 함께 서둘러 가는 동안의 짧은 대화였지만 호감 가는 친구였다. 이 친구 덕에 야외 극장도 금방 찾았다. 젠장 입구는 반대편으로 돌아야 했고 티켓오피스도 반대편으로 가야했다. 8시가 넘어 이리뛰고 저리 뛰어 10분정도 늦었다.
3장의 표부터 받았다.
땀범벅이 되어 10분 정도 늦었지만 아직 시작도 안했다. 곧이어 영화관계자들이 무대로 올랐다. 빈자릴 찾느라 이들의 멘트에는 무슨 말이 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대부분 차리가 찬 가운데 빈자리 찬기는 구우일모였다. 부산영화제를 위해 건립된 영화의 전당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 예술품이었다.
프랑스 영화는 따분하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 준 영화. 강추할만 하다. 자신을 여자로 여기는 상류사회의 한 청년이 가족관계를 통해 성정체성을 찾아 간다는 이야기다. 쉬지 않고 관객을 웃게 하지만 실없는 코미디 영화가 아닌 진지한 영화다. 내가 본 프랑스의 코미디 영화는 하나같이 실없었는데... 허 이거 편견을 또 한 번 깨주는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음악들을 배경에 사용해 이를 즐기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지금 당장 기억이 나는 음악만 해도 합창 장면에서 사용한 퀸의 We Are The Champion,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는 장면에 삽입한 수퍼 트램프의 Don't Leave Me Now, 승마 장면에 넣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동성애자 클럽에서 죄의식과 도덕 사이에 갈등하는 장면에 어울리던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등인데 이 외에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의 한계가 여기까지 뱉어내고 종료하넹.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아름다운 영화의전당 건축물을 뜯어봐 가며 이 곳을 벗어난 나는 부산역에 들러 KTX 표부터 사기로 했다. 좌석이 전부다 없.... 이거봐라? 담날 8시차에 좌석이 하나 남았다. 음하하 숙소만 빼고 일단 다 해결됐다.
이제 남은 일은 자갈치 시장 가서 회를 먹고 나서 숙소를 찾는 일.
한 집에 자리 잡고 앉은 시간은 밤 11시.
굶주렸다가 부두쪽 창살 너머 바깥을 내다보며
씹는 회맛은 그야말로 일품. 광어회와 제철 맞은 전어. 여기다 부산소주"C1"
매운탕에 공기밥까지 시켜 배터지게 먹은 다음 여사장님에게 숙소정보를 얻었다. 영도대교를 건너면 관광객들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 방 구하기도 쉽고 성수기 적용도 없어 값도 저렴하다는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문제는 문닫는 횟집을 나서자마자 비가 마구 쏟아진데다 토요일 술한잔 걸치고 집에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 도통 택시 잡기가 어렵기까지 했다. 나는 30분 넘게 택시를 잡으려고 노력하다 포기하고 우산을 사서 쓰고 걸어가기로 했다.
이건 또 무슨 조화냐. 편의점에 가 우산 사서 쓰고 나오니 곧 비가 갠다. 돈쓰고 짐만 늘렸군. ㅡ,.ㅡ; 40분 정도 걸어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모텔에 자릴 잡았다. 에구 피곤해...
영도대교를 넘어 길을 가던 중 옛날 부산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 눈에 띠어 한 컷 담아봤다.
개막작인 "바라:축복(Vara:A Blessing)"은 너무나도 보고싶었지만 표는 고사하고 시간도 맞이 않아 포기. 오지중에서도 오지 국가인 부탄의 스님이 인도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그래서 더욱 보고싶다. 서울로는 상륙 안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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