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31(화)
쿠스코 도착 첫 날. 낯 선 공간의 새로운 환경에 당황했던 나는 여독까지 겹쳐 혹사당한 영혼 껍데기의 히스테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찌감치 침상으로 내던져졌지만 머잖아 시차라는 괴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눈꺼풀이 가벼워진 통에 버거운 몸부림을 치던 나는 새벽 한 시 반쯤 계속 잠자기를 잠정 포기했다. 어둠 속에서 뜀도령을 살펴봤다. 뜀군 역시 유난히 몸을 자주 뒤집는다. 생각해 보니 저녁도 안먹었다. 늦은 점심에 과식까지 한 터라 전 날 밤 아홉시에 눈꺼풀을 붙일 때는 밥생각이 도통 없었던 탓이다.
"배 안고프냐?"
"고파요."
자나 안자나 떠보기 위해 던진 말에 대한 대답이 맛있게 잠자는 사람으로 보기에는 대답이 지나치게 신속하고 생기가 있었다. 정신도 멀쩡해 보였다. 그럼 그렇지. 나만 그럴리가 있나. 내가 사 온 것은 아니지만 염치좋게 뜀군이 준비한 전투식량을 떠올렸다.
"먹자."
불을 켰다. 문제는 전투식량에 부을 뜨거운 물이었다. 혹시나 카운터로 내려가 봤다. 카를로스라는 이름의 직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나의 질문에 귀를 귀울였다.
"혹시 뜨거운 물 제공이 가능한가요?"
그의 답변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더운물 서비스는 어렵다는 예상된 내용이었다. 전투식량 설명서에는 찬물을 부을 경우 1시간 후에 먹으라 했다. 말하자면 익은 쌀이 아닌 불려진 쌀을 먹는 것이었다. 시키는대로 물을 붓고 한시간을 기다려 양념을 넣고 비벼 먹기 시작했다. 전투중에야 이보다 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 절박하진 않았던지 은근히 불평하는 곱창을 달래가며 주린 배를 채워 넣었다. 머리로 몰렸던 피가 이 번엔 다시 위장으로 몰려가 어느정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저지대인 한국으로부터 뜀군이 가져온 커피믹스 포장이 고산지대의 기압차로 터질듯이 빵빵해졌다.
어둠을 몰아내던 태양이 아침이면 원망스러웠었다. 이 분이 그때 그 태양이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반가웠다. 일어난 시간은 06:30 특별하게 할 일이 없다 보니 대충 씻고 나서 TV 잠깐 보고 아침에 나갈 작은 짐을 꾸렸다. 07:30쯤 식사하러 아래층의 중정홀로 가봤다. 각종 허브차와 말로만 들어봤던 코카잎 차가 놓여져 있고
이들이 흔히 먹는 빵과 버터, 잼 그리고 오렌지 주스를 가져다 준다. 민트티를 한 잔 우려 가벼운 아침식사를 마친 뒤 코카차도 한 번 마셔봤다. 상큼한 풋내가 난다. 여기서 뭔가 추출하면 환각작용을 하는 모양이다. 정신 차리고 살아도 쉽지 않은 세상을 몽롱하게 젖어 정줄놓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그러는건지 뭔지... 삼천포군.
호텔 문을 나서면 그 골목에는 예쁜 간판과 대문이 보인다.
내가 대문을 찍는동안 뜀도령도 같은 사진을 찍었지만 뜀군이 찍은 이유는 "자물통도 네개씩이나 채워 놓은걸 보면 여기가 치안은 어지간히도 불안한 모양이군" 이었고 난 그냥 예쁜 대문과 간판에 느낌이 좋아서였다. 같은 사물을 보고 하는 나름의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판단이 재미있다.
아르마스 광장의 한켠. 교통을 정리하는 여경관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쿠스코 근교를 돌아보는 데 필요한 세트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information center를 찾아 길을 나섰다. 아래 사진은 라 메르세드 성당.수도원(Iglesias y Convento La Merced)
센터는 문을 반쯤 열어놓고 있었는데 이 안에선 정보를 제공할 뿐 세트입장권은 판매하지 않아 그들이 일러주는 대로 쿠스코 시청으로 갔다.
시청입구.
이 곳에서 표를 구입했다. 쿠스코에서 입장료를 절약하자면 세트입장권을 구입하느 것은 상식이다. 구입한 표와 매뉴얼. 사각 표를 따라 빙 둘러쳐진 사진을 방문시마다 펀치로 뚫어 이미 다녀갔음을 표기한다.
이 곳에서 판매되는 물 산 루이스. 물과 비상식량, 그리고 책자와 자료를 챙긴 우리는 오얀타이탐보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지도를 보며 출발지를 찾아 갔다.
찾기는 그리 어렵지도 멀지도 않았다. 찾아가는 길에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주변 환경이 이국적인 모습으로 가득하다.
이 곳이 버스 출발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오얀타이탐보행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하지만 이 곳이 시외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라는 것은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모를 만한 곳이었고 버스 자체도 소형인데다 아무런 표식도 없어서 궁예가 써먹던 관심법을 알지 못하면 죽었다 깨나도 눈치채기 어렵다.
우린 비교적 일찍 도착한 셈이어서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은 우리 외에 일본인 몇 명 뿐이었다. 조금 지나니 유럽인들이 둘둘삼삼 모여들어 버스는 금새 자리가 찼다. 1인당 요금 10솔. 개중엔 버스 안에서 생이별을 한 채 떨어져 앉아 가끔 애틋한 눈으로 서로 돌아보고 눈맞춰가며 이따금 한숨도 지으며 가는 연인들도 있었다. 청승맞은 신파극 관람료가 공짜다. 버스를 타고 출발하기 전까진 그래도 내가 묵던 곳이 가장 고지댄 줄 알았다. 하지만 버스가 출발하자 주구장창 경사진 길만을 올라댔다. 워디까지 올라갈껴?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 평지를 달리면서 나는 바깥 경치에 넋을 잃었다.
"웨머~~! 겡치 작살이구마이~~!"
뜀도령도 연신 감탄하며 카메라를 수시로 내밀었다.
동영상도 찍고 정지영상도 수시로 찍어 본다. 피곤하네 어쩌네 하지만 맹세컨대 장거리 가는동안, 그리고 돌아오는 동안 단 한순간도 차 안에서 졸았던 적은 없었다. 한순간도 조금의 공간도 놓치지 않고 바깥 경치를 만끽하려는 욕심이 나로 하여금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고만고만 비슷한듯 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그만큼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신이 내려준 위대한 자연과 인간이 다듬은 단정한 경작지를 코딱지만한 카메라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커 보였다. 어찌 요따위 콧구멍만한 2차원 공간에 그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가 있을까. 나의 표현력도 한계지만 카메라의 기능 역시 한계다.
나를 질투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진과 동영상만 보고 감이 오지 않은 탓이라 생각한다.
쿠스코로부터 88km를 달려 오얀타이탐보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전 11시. 1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게 소요된 시간은 산길을 꼬불꼬불 오르락 내리락 비포장 도로까지 털털거리며 달린 탓이다.
이 곳이 마추픽추로 가는 페루레일 오얀타이탐보역이다. 이 날 일정은 숙소로부터 가장 먼 이 곳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로부터 역순으로 유적지를 하나 하나 방문해 숙소로 돌아가는 방법을 취했다. 그러나 이 일정이 완전 잘 못된 것임을 알게 된 것은 뜀도령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마추픽추로 가려면 쿠스코에서 가는 것보다 이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땐 유적지를 찾느라 뜀도령의 이 말을 흘려들었다. 내가 본 1권의 가이드 책자에도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데 드는 비용과 오얀타이탐보에서 가는 경비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눈여겨 보지 못한 탓이었다.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은 나의 잘못이지만 그 값이 그 값일거라는 나의 지레짐작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국내에서도 저 아래 지방에서 수원역으로 오는거나, 영등포역으로 오는거나 서울역으로 오는거나 요금이 같고, 이집트에서도 카이로에서 출발한 침대칸 열차가 룩소르에서 내리는거나 아스완까지 가서 내리는거나 상당한 거리차에도 불구하고 요금이 같았다. 그러나 여기선 절대 아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결국 상당한 요금차이가 있어 적지 않은 시간을 걸려 새벽에 이 곳으로 후에 다시 와야 했다. 그렇다면 이 날은 숙소로부터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유적지를 방문해 마지막에 이 곳에 도착해 묵고 담날 이 곳에서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를 다녀온 뒤 쿠스코로 돌아 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럴려면 물론 그 전날 기차표 예약은 미리 해야 했다. 나름 조사는 철저하게 한다고 하던 나도 이로 인해 구멍이 뚫렸다. 그래도 나는 항변하고 싶었다.
"공부할 시간이 넘 없어서 가이드북 1 권 간신히 봤고 나름의 정리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으니 넘 구박하지 말라고. 씨붕!"
사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직장에서 만날 야근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탓이었다. 여행자료가 허용되는 한 가이드북만 최소 너댓권 이상을 보던 나지만 1권 간신히 그것도 대충 봤으니 그 내용이 충분할 리 없었다.
각설하고, 오얀타이탐보 유적지에 관하여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내용을 빌자면 다음과 같다.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에 있는 오얀타이탐보는 잉카제국 시대의 숙소라고도 하고 요새 유적이라고도 한다. 탐보란 케추아어로 여관이라 한다. 이 유적은 같은 이름의 마을에 있는데 경사가 45도는 될법한 사면에 계단식 밭 옆의 300단의 계단(150미터)의 계단을 오르면 광장이 나온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정면에 보이는 것이 계단식 밭이고 중앙 계단과 왼쪽 계단이 보인다.
우측으로도 계단식 밭이 보인다.
이 계단이 왼쪽 300계단이다. 오르기에 만만치만은 않다.
쌓아 놓은 돌들은 그 사이에 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꼭데기까지 올라가면 광장이 나오는데 주변엔 야생화가 아름답게 주변을 장식한다.
정상 광장에는 더욱 놀라운 건조물이 방문자를 경이의 세계로 몰고 간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용도인지 알 수 없는 석벽이 나오는데 이는 높이 4미터, 폭 10미터, 깊이 1미터라 한다. 태양의 신전을 만들다 말았다는 설과 종이라는 설(뭐? 종? 무슨 종? 울리는 종? 부려먹는 종? 동식물의 종? 마늘종? 뭔종? 이런 무책임한 설이 있나)이 있다고 한다. 거석을 깎아 쌓아올린 다른 곳의 돌과는 달리 거석을 평평하게 깎아 세운 뒤 그 사이에 가는 돌을 깎아 끼워 넣었는데
그 섬세함으로 보자면 지금 보기에도 경악스러울 정도다. 꼭지처럼 툭 튀어나온 부위는 무슨 용도인지 무슨 의미인지 징하게 궁금하다. 이 돌은 다른 돌들과 색깔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다. 건너편 강가에서 가져온 돌이라나 뭐라나. 근데 바퀴도 없고 문자도 없던 사람들이 이런 거석을 어떻게 이런 고지대까지 끌어 올렸는지 지금도 수수께끼란다. 요술인지 마술인지 부렸겠지 뭐. 하지만 생각할수록 진실이 뭔지 디따 궁금하다.
석벽과 남아있는 출입문에 눈을 두자면 지금까지 반복되는 말이지만 놀랍고 또 놀랍다.
어떨떨한 나.
이 와중에도 도닦는 뜀도령. 득도(得道) 했는가? 득도(得盜) 했다구? 수고혔네.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찍은 주변 경관 사진 좌
중
우
건조물 틈새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건지 마추픽추보다 지명도가 작아서인지 방문자는 많지 않다.
기념품점 수는 방문자 수를 훨씬 상회한다.
내려다 보이는 유적의 일부분
이 곳은 창문도 없고 물을 공급하는 수로도 없어 주거지 건물이 아닌 식량창고로 추정된다고. 들어가 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무조건 왼쪽 끝까지 가봤다. 계단식 밭이 훨씬 멋지게 보인다.
내려가 보면 주거지인지 특수용도인지 알 수 없는 건물 터가 남아 있다.
수로 만큼은 지금까지도 온전하게 남아있어 아직도 상당부분 그대로 쓰이고 있단다.
기념품 가게를 지나며 본 마스크 모자. 무슨 축제때에 이런 보자를 쓰고 춤을 추던데 뭔지는 나도 모르겠고. 어쨌든 이런 모자는 가는 곳마다 판다. 뜀도령이 하나 산 것 같은데...
이 번엔 마을 광장으로 나와봤다. 다음 장소로 가기 전에 식사부터 할 참이었다.
광장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고목나무에 나들이 나온 가족의 모습이 한가롭고 평화롭게 보인다.
그러잖아도 찾아가고 싶은 재래시장을 맘에 드는 식당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이들의 살아있는 생생한 모습이 보인다.
건물 안으로 형성된 시장을 구석구석 둘러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치차라는 술을 맛봤다. 50밀리 페트병 하나에 1솔이다. 사서 맛봤지만 왠지 비위생적일거라는 선입관인지 아님 뭔지 모르지만 약간은 찝찝한 느낌과 맛이다. 막걸리 비스므리 하지만 막걸리보다는 못하다. 어쨌든 이들의 전통주도 맛 봤다.
중간 식사를 즐기시는 아주머니. 감자스프다.
이 곳엔 전통의상을 입은 상인 아주머니들이 많다.
열심히 구경중인 뜀도령도 카메라에 잡혔다.
근처에 주민들이 드나드는 식당을 찾아냈다. 다른 곳은 손님도 거의 없었지만 이 곳은 비교적 손님이 있는 편이었다. 손님 없는 식당을 두려워하는 나였기에 손님이 있는 식당을 찾았고 관광객이 우리 뿐이어서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진짜 그들의 식당인 셈이다.
내부는 일케 생겼다. 겨울임에도 파리 몇마리가 허공을 돌며 왱왱거린다. 파리야 너 본지 오래다. 추억의 파리채도 함 휘둘러 보고 싶었다.
감자스프 함 시켜봤다. 양이 푸짐하지만 역시 스프라 왠지 2프로 부족하다. 감자와 양파를 주재료로 하고 이따금 파슬리 가루도 보이는데 먹을만은 하다.
스프는 역시 스프였다. 이걸로 식사가 될 줄 알았던 나는 생선과 밥을 또 시켰다. 이 곳에서 풍부한 옥수수는 어딜 가서 뭘 먹어도 잘준다.
12시 20분쯤 식당에 들어가 13시쯤 식사를 마친 뒤 다음 목적지인 모라이와 살리네라스로 갈 교통편을 알아보려다 자동차로 하는 불법영업 택시 운전자를 만났다. 모라이와 살리네라스까지 모시겠다며 꼬셔오는걸 사양하고 우르밤바까지만 가기로 했다. 우르밤바까지 10솔에 해결했다. 기사는 우루밤바까지 가도 교통편이 없을거라고 했다. 그걸 뭘로 믿나. 어쨌든 우루밤바의 버스터미널로 가서 모라이 가는 버스가 있는지를 물었더니 마라스까지 가서 갈아타란다. 그럼 그렇지 없긴 왜없어. 버스비 1인당 2솔.
이게 바로 그 버스표다. 마라스를 향해 추훌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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