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일본 the 3rd

또왔냐 간사이 5(오사카)

코렐리 2011. 8. 16. 18:39

2011.7.19(화)

짧은 여행 마지막 날이다. 체크아웃을 하려고 내려가니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카운터 바로 옆 위에 달린 TV를 가리키며 여자월드컵 일본팀 선수들이 우승하고 공항을 통해 돌아 오는 모습의 생중계를 보라며 즐거워 했다. 전 날 나라로 가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나설 때 이 양반은 여자 월드컵우승한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던지 당일 새벽 축구 본 이야기를 내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했다. 1대0으로 뒤지고 있던 일본팀에 맘졸이던 중 잠깐 사이 깜빡 잠들었는데 그새 일본팀이 골을 넣어 동점이 되었다던가. 본인은 1분을 버티지 못하고 졸았다가 명장면을 보지 못해 아쉬워 했던 이야기와 함께 승부차기로 결국 3-1로 이긴 경과까지 소상하게 종이에 써가면서까지 이야기하고 즐거워했다. 사실 난 여자월드컵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관심도 없었다. ㅡ,.ㅡ; 지금은 자랑스러운 일본의 건아들 아니 참, 여걸들이 입국하는 모습을 보라며... ㅡ,.ㅡ; 어쨌든 우리는 체크아웃을 하며 그동안의 친절을 치하한 뒤 길을 나섰다. 교토를 떠나며 다시 본 역전 탑. 너도 안녕이다.

 

역 안에서 전 날 아침을 먹었던 집을 다시 찾아 먹었던 메뉴도 모리소바. 간절한 냉면 생각을 이걸로 대체했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교토역도 비교적 큰 곳이라 오사카 가는 차편 탑승구를 찾느라 약간 헤맸다.

  

오사카로 가는 지하철 내부.

 

이 날 계획은 도톤보리 한 군데 들러 구경하고 공항으로 가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었다. 사실 몇 년 전 오사카에서 감동받았던 곳은 도톤보리 한군데 뿐이었다. 오사카 하면 아직도 내겐 상업의 도시, 야쿠자의 도시라는 인상부터 떠오른다. 바로 옆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교토와는 달리 왜 그리도 불친절하던지... 남바역에서 내린 우리는 지하철 역무원에게 물어 도톤보리로 나가는 길을 물었다. 나가는 길이 14번 출구였던가...?

 

오사카는 예로부터 쿠이다오레(먹다 쓰러짐, 먹다가 망함)의 도시로 불릴만큼 먹거리와 맛을 중시해 온 곳이라 한다. 하긴 이 상업도시에서 돈벌어 먹는데 쓰지 뭐에 쓰겠나. "교토는 입다가 망하고, 오사카는 먹다가 망한다"고도 한단다. 도톤보리가 바로 오사카의 먹자거리 중 특히 유명하다. 지하철역에서 도톤보리방향으로 나가긴 했지만 거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감각이 문제였다. 오래전에 와보긴 했는데 무지 가까운 도톤보리를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

 

오호라, 저눔의 복생선 4마리가 이정표 노릇을 했다. 이 곳은 오사카의 상업지구 중에서도 간판이 특이하고 재미있는 것이 많아 관광객들이 반드시 가보는 명소 중 하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움직이는 거대 게딱지 간판. 가니도라쿠의 간판이다. 사실 가게보다 간판이 더 유명한 집이다. 게요리 전문점으로 지금 운영하는 사람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집 여기 말고도 지천에 깔렸다.

 

한국같으면 간판 규격과 설치에 관한 규정이 까다롭고 규제가 많은데다 저마다 눈에 뜨일려고만 하지 디자인이나 뭐 이런거는 뒷전인 것이 우리 간판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곳이 요란스럽긴 하지만 일본은 어딜가나 간판 자체가 예술작품처럼 예쁘고 주변 조화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보곤 한다. 하지만 제한이 있느건지 없는건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 곳에서는 건물 전체를 간판으로 덮어버린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에서도 간판에 대한 규제는 있을 테지만 여기서만 유독 허용되는 무제한의 표현 이유는 관광지로 유지하기위해서가 아닐까.

 

주인장이 자신의 얼굴을 본떠 만든 인형을 세우고 북을 치게 만든 가게 구이다오레타로 라는 가게도 있는데 그 인형이 건물 위로 올라갔다.

 

없어진줄 알았던 설치인형은 형태가 달라져 다시 세워 놓았다. 하긴 오사카의 명물이 없어질 리가 만무하질 않은가.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북을치던 작동형태가 깃발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형태로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엉성함이다.

 

풍선을 이용한 재미있는 간판도 보이고

 

 

이러한 잡다한 간판과 설치물이 이 곳의 볼거리다. 다코야키 전문점의 움직이는 문어간판. 아까의 게도 이 곳의 문어도 다리만 움직인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데는 기깔나게 효과적이다.

 

초밥을 손에 집은 초밥집의 간판. 이상하게도 일본에서는 초밥을 먹을때 바에 앉아 먹을 때는 맨손으로 먹어도 되지만 테이블에 앉아서 먹을 때는 반드시 젓가락을 이용해야 한단다. 왜그런지 몰라.

 

킨류라멘. 용가리가 지붕에서 설치는 이 라멘집은 워낙 작아 테이블이 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집은 맛집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번이 두 번째 방문이지만 인연이 닿질 않는지 아직도 못먹어봤다. 돼지뼈와 족발로 우려낸 라멘국물에 특유의 비법을 가진 소스를 뿌려주고 면은 직접 뽑는다고 한다. 지나고 나니 함 먹어볼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도깨비 풍선간판.

 

뜀도령처럼 까칠한 인상의 간판. 아마도 이 역시 주인장이 자신의 얼굴을 본 떠 만든 것이 아닌지... 주인이 못됐나봐...

 

고짓집 간판. 왠지 70년대 한국 분위기가...

 

뜀도령은 어디로 갔을까.

 

돈키호테 도톤보리점.

 

전국 체인으로 운영되는 돈키호테는 생필품, 잡화, 악세사리, 화장품등 없는거 빼고 다 파는 집이다. 이 설치물은 관람차라고 하는데 난 안타봤음. 상업지구인지 놀이동산인지 분간 안가지만 이얼마나 고객을 끌어들이는데 있어 기발한 아이디어냐.

 

도톤보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다코야키점 "본가"다. 몇 년 전 이 곳에 왔을 때 이 곳의 하천인 "도톤보리가와"의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아주 작지만 유명한 다코야키 전문점이 있었다. 그 곳은 터 자체가 없어졌다. 그 집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바로 그 근처에 바로 이 "본가"라는 집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다코야키를 절대 먹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다코야키 안에는 큼직한 문어 쪼가리 한 개씩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문어가 비싸 말린 문어다리(오징어 다린지 문어 다린지 알게 뭐야)를 잘게 잘라 물에 불려 쓴다. 그게 다코야키냐? ㅡ,.ㅡ;

 

먹음직하게 구워진 다코야키

 

본가에서 10개씩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풀빵 반죽보다 흥건한 반죽을 쇠틀에 붓고 문어 조각을 하나씩 넣은 뒤 다시 덮어 붓고 나서 아래쪽이 익으면 꼬챙이로 돌리면서 뒤집는다. 이걸 나무접시 위에 얹고 달작지근 짭짤한 검은 소스를 뿌린 뒤 가쓰오부시를 덧뿌린다. 가쓰오부시는 다코야키의 열에 시달리며 꼼지락 꼼지락  춤춘다. 반죽이 워낙 질어서인지 먹을 때 가장 먼저 씹히는 표면은 약간 뭉그러지는 듯한 느낌이든다.  그 안에선 싱싱한 삶은문어가 물컹 씹히고 그 안에선 단물이 쭉 하고 터져 나온다.

 

맛있게 잘 먹고 여기서 우산 잃어버렸다. ㅡ,.ㅡ;

 

너절하지만 재미있는 간판도 있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간판도 있다. 그 중 특히 유명한 것이 제과회사 그리코의 마라토너 간판이다. 간판에 사용되는 네온은 4,460개이며 7색이 사용되었다. 높이 20미터, 폭 11미터에 이른다. 1935년에 처음 등장한 간판으로 5번째 엎된 버전이라나.   

 

이런 간판들이 몇 개 모이니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한 쪽에 미니어처도 해 놓았다. 간판을 가진 회사 입장에선 광고효과 톡톡히 보겠다. 거기에 놀아나느라 한 컷.

 

나도 한 컷.

 

이젠 공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급행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 사진은 건너편에 앉은 처자의 둥글고 서글서글한 인상이 너무나도 편안해서 슬쩍 도촬로 찍었는데 하필이면 그 순간에 자냐... ㅡ,.ㅡ; 

 

탑승구로 이동.

 

우리가 탈 JAL비행기다.

 

떠날때는 비가 오고 있었지만 구름위로 솟아오른 뒤 보이는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다.

 

기내에서 마신 기린맥주의 맛이 지금도 그립다. 기린맥주는 거품의 부드러움과 특유의 향이 거의 예술에 가깝다.

 

내려다 본 서울은 어쩜 이렇게도 녹지가 없는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한심하고 답답한 생각이 새삼 든다. 일본인들 말로 순전히 공구리로 아도쳤다. ㅡ,.ㅡ; 

 

 

 

 

이제 4박 5일의 짧은 간사이 지방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 번 여행은 이미 다녀 온 곳을 다시 가는 입장이었기에 못 본 곳을 보자는 것이 아니고, 일본을 조금은 더 깊숙히 들여다 보고 조금은 더 이해하는 계기를 갖는 것이 이 번 여행의 목표였다. 얼마나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으며 얼마나 더 이해하고 돌아왓는지는 스스로 돌이켜 보기가 쉽지만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안동과 경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다시 한 번 가보려고 노력하지만 국내에서의 여행경비가 해외여행을 뺨치니 그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어쨌거나 일본의 경주가 교토이고 일본의 안동이 나라 아니었나 생각해 보지만 억지로 그렇게 두드려 맞추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렇게 연상이 된다.

나라의 고즈넉함과 고풍스러움은 이 번이 처음 방문이었기에 머릿 속에 굉장히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가장 일본적인 일본을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4년 방문시에 시간이 없어 나라에 들르지 못했을 때는 교토가 그랬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어쨌든 느낌일 뿐이다.

 

이 곳을 다니면서 한류가 정말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처럼 일본에서 활성화 되어 있을까도 나름 유심히 봤다.

내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전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이다. 어느 곳을 가도 한류라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한국 식당, 한국의 상품, 한국과 관련된 또는 연예인들의 사진 같은 물건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저 본 것이 있다면 묵었던 여관과 게스트하우스의 50~60대 주인장이 한국 드라마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 장근석이 TV쇼프로에 출연한 것, 한국계 일본인이 경영하는 오코노미야키 전문점에 막걸리를 취급한다는 것 뿐이었다. 이걸 갖고 한류를 논할 수 있을지 나로선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문화가 뿌리깊게 들어와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게 뭐냐고 물으면 대답은 거의 자장면과 탕수육을 거론한다. 가는 곳마다 중국요리집이 있고 장이모우나 첸 카이거 같은 거장들의 영화가 한국에서 판친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걸 우리가 새삼스럽게 중류라 이름한 적은 없다.

일본문화 역시 우리 문화속에 이미 오래 전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이자카야식 선술집에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일본영화 매니아들은 수입되지 않은 영화들을 어떻게든 다운받고 구워서 보며 열광한다. 이걸 우리가 일류라 이름한 적 없다.

 

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과 중국에서의 한류는 이들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비하면 오히려 미미하다. 한류는 자의식이 강한 탓에 남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우리가 과장된 대중매체의 자찬을 우리가 액면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실제보다 확대해석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믿고있다. 일본에서 내가 이 번에 보고자 햇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한류의 실체였다. 겨우 4박5일 보고 이런 말을 하는데는 어패가 있겠지만 세 번째 일본여행을 하면서 나름 열심히 보기는했다.

 

말이 나온 김에 유럽에서의 K-팝 열풍도 한 번 짚고 넘어가 보고 싶다. 티켓이 모자라 공연연장을 해달라는 시위까지 했다는 언론 보도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개중에는 시켜서 정해진 내용대로 인터뷰를 했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가진 현지인들은 도대체 뭔지? 그렇게 매니아가 많다면 왜 진짜 매니아를 찾아 인터뷰하지 못하고 꼼수를 두었을까. 3,000여명의 시위자들은 유럽 전역에서 왔다고 했다. 그 숫자가 과연 많다고 할 수 있을까?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이 공연 티켓을 놓친 이들의 심정이 어떨까. 시위할 만 하다. 하지만 유럽 이곳저곳에서 3,000명이 와서 시위를 했다면 2,3만원대 저가 비행이 가능한 이들이 국내여행 다니듯 국경을 넘는데 과연 많다고 할 수 있겠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많은 수가 우리 교포였을 가능성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비근한 예로 아시아 전역에 남미음악 매니아들은 얼마나 될까. 한국만 해도 의외로 많다. 빅토르 하라, 아타우알파 유판끼, 메르세데스 소사, 부에노 비스타 소셜클럽 등 그 이름만 대면 자지러지는 매니아들 한국에도 많다. 그들의 음반값도 7~8만원짜리는 저렴하다 싶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아시아도 유럽처럼 하나의 경제권 통합과 함께 여행이 상호 자유롭고 헐값의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면 남미 뮤지션이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면 같은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두고 한류라... 이건 좀 사실을 너무 심하게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영국에도 한국의 락그룹 산울림에 열광하는 매니아가 적지 않음은 락매니아들 사이에선 오래 전부터 유명한 이야기다. 산울림의 음반이 영국 내에서 우리 돈으로 수십만원에 거래되었다는 전설까지도 있다. 그저 극소수의 매니아들이 수면위로 올라왔을 뿐인데 이걸 두고 한류라 할 수는 없질 않은가. 이집트에서 만나 잠시 같이 여행을 다닌 한 일본인 친구의 말로는 일부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한류는 완전히 종료되었다고 말한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 뒤로도 계속되는 한류 열풍 소식은 과연 우리가 허상을 보도록 대중매체가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싶기만 하다. 후지TV의 한류편중에 대한 항의시위는 한국문화의 일본 유입 자체를 싫어하는 극우파의 극성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한류열풍이란 말에 흐믓해 하는 이들에게 찬물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정말 한류를 이끌어 활성화시키길 원한다면 우리는 진실을 좀 더 직시하고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그저 문화가 일부 유입되는 이 정도에 만족하며 한류 운운한다면 더 이상의 문화 수출은 어렵지 않겠나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행 후기를 쓴다는게 한류의 허상에 대해 주장하고 있으니 난 역시 삼천포의 달인인가 보다.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비교를 해 본다는 것 역시 이 번 여행의 주안점 중 하나였다.

한국의 건축문화와 일본의 건축문화를 나름 비교해 본다면 오래 전부터 기와를 지붕에 얹었던 사실, 일본의 직선문화와 달리 유려한 곡선이 건축에 적용되었다는 점, 단청의 우아함, 자연을 끌어들이는 정원문화 등만 보아도 우리가 더욱 고급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자기 기술과 문자를 건네 주었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하는 하나의 증거라고 믿는다.

반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장인정신을 갖고 보존하는데 있어서는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몇 수는 위라고 생각한다. 수백년된 축제를 아직도 활성화하고 관광상품으로까지 개발하는 모습은 우리가 본을 받아도 한참을 본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전통의상을 입고 즐기는 문화에 있어서도 일본인들은 우리 한국인들보다 역시 몇 수는 위인 것 같다.

 

도시의활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대로 우리의 그것에 비하면 일본의 분위기는 상당히 침체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싶다. 그들에게서는 고요함이 읽혀지고 뭔가 부산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 것이 선진국의 여유로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침체는 곧 쇠퇴를 의미한다고도 생각된다. 같은 직장 대외협력부서에서 일하는 한 후배는 일본의 대학과 업무협력을 하는 것 자체가 지지부진하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일본의 대학들과 교수, 학생, 학술 교류에 있어 그동안 여타 국가 대학들과의 대외협력 노하우가 있으니 이것을 토대로 당사자들간의 상황에 맞게 바꿔 처리하면 금방 끝낼 업무도 그들은 반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이미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언제 MOU를 체결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상대편이 놀란다고 한다. 그들이 준비한 내용을 보면 우리가 준비한 내용과 별반차이가 없다는 사실에는 우리가 놀란다고도 한다. 나는 후배의 말에 의아했지만 이 번 일본 원전사태의 대응에서 일본인들의 리더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의 리더십은 이미 방향을 잃었고 복종에 익숙한 일본 국민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도로가 끊겨 현지 주민들이 물자부족으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다던 상황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헬기 공수를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교범(manual)에 없어서 못한다는 답변은 거의 충격적이다. 한국에서였다면 언론과 민의의 뭇매를 맞고 결정적인 정권교체의 빌미가 되었을터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침착성과 질서 유지는 놀라움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 것은 한국인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미덕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일본문화에 관심하는 한국인은 무척 많다. 일본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내지는 질투심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쉽지 않다. 일본문화에 관심하는 이유는 가까운 나라지만 우리의 문화는 저 먼 나라와 다시 비교하는 것보다 문화적 공통점을 찾기가 오히려 쉽지 않다. 완전히 문화가 다르기에 일본문화에 관심하지 않나 싶다. 문화매니아를 자처하는 나로서도 일본 문화는 다른 어떤 곳과 비교해도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르고, 일본문화에 관심하는 나의 개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문화를 일부 동경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이는 이들이 우리보다 경제적, 정치적 위상이 우리를 크게 앞지르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젠 우리도 그것이 부럽지 않을만큼 그 위상이 많이 높아지고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다. 상당부분 우리가 일본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앞서 있었고 지금도 추월해 가고 있다. 아직도 많은 것들은 우리가 배우고 취해야 할 바인 만큼 싫다고 배척하기 보다는, 부럽다고 마냥 바라만 보기 보다는, 그들에게서 배우고 취할 것이 무엇인지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할 때가 이젠 되지 않았을까. 정치적으로도 서로 멀어져 가고 있음이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 때문에 최근 두드러지고 있지만 그래도 협력과 상생만이 두나라의 살 길이 아닐까 싶다. --- 이게 여행 후기의 결말이냐? 내가 봐도 웃기지만, 붓가는 대로... 아니 키보드 잡히는대로 타이핑 하다 보니 횡설수설... ㅡ,.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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