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여행/군바리시절

후보생의 추억(첫 번째 상륙)

코렐리 2008. 5. 29. 14:17

후보생으로 입교한 후 훈련 11주차 토요일이이었던가?
해군 용어로 "상륙"이라 불리던 토요일날 외출이란걸 처음으로 나갔다.

상륙 나가기 전 내무실과 복장 점검이 이어진다.
점심식사후 잘 손질한 그린셔지 근무복은 손댔다간 손을 베일 정도였고
눈이 부실 정도로 금속제 벤젠계급장(육각형의 사관후보생 계급장인데 화학구조식인 벤젠구조와 닮아 그렇게 불렀다)을 닦아 달고 정모를 쓰니 자세가 난다.
내가 나가면 진해의 아가씨들이 뿅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면서....
구두는 파리가 앉았다가 미끄러져 뇌진탕 걸릴 정도로 닦고
오른쪽 주머니엔 보급손수건, 오른쪽 뒷주머니엔 휴지를 잘 접어서 꼽아 넣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내무실 앞에 도열한다.
신경질적이고 이빨을 잘 드러내곤 하던 쥐똥 하용문선배가 점검을 돌았다.
빨리 나가서 제과점 빵도 실컷 먹고 담배도(사실 난 끊을 참이었지만 결국 동기들이 피우는 통에 유혹을 못참았다) 실컷 피우고 맥주도 한 잔 하고 여자 구경도 실컷하고.....
아~~~~!
그런데 점검시간이 자그마치 1시간 30분.
복귀시간이 오후 5신데 도대체 언제 내보내줄껴 이 씨비옹아?
마음은 닳을대로 닳아 조급하고 꼼짝도 않고 서있는 발바닥에서는 불이 나도록 뜨겁고.
여기 저기서 얻어 터지는 소리, 꼬나박는 소리, 얼굴잡아 뜯기며 고통스러워 얼굴이 일그러져 "우웨어어어"하는 소리...

결국 고문끝에 무용관 앞에 도열했다.
저벅 저벅 교육사령부 육정문을 향해 걷는 집단이동의 발걸음이 이렇게 가볍고 힘이 느껴지는 경우를 그 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진해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순진했던 우리는 빵, 과일, 맥주, 담배를 사들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진해 시내에 훈육관과 구대장들이 순찰을 돌며 흠주나 흡연등 사관후보생답지 않은(좇까고) 행동을 하는 사관후보생은 "과실보고"와 함께 곧바로 귀대하는 최악의 불운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나와 함께 했던 멤버들은 서울에서 필기시험, 면접, 체력검사, 신체검사, 신원조회 등을 받으며 만난 앞 뒤 주변 수험번호 애들과 함께 진해로 내려갔었던 터라 그들과 함께 했다.
김순영, 장호수, 나와 해군이었던 김우진, 서영호, 장익수와 함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밖에서 훈육관과 구대장이 우스워진 대부분의 동기들이 좇빨아라 하고 여기서 쐬주 한잔 저기서 맥주도 한잔 거기서 양주도 한잔하다가 일부는 걸려서 돌아온 동기들도 몇 몇 있었던 모양이다.
엄청나게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빵은 2개가 목구멍으로 못넘어가고 달콤할 것 같던 맥주는 왜 그리도 쓰던지 한 잔을 제대로 못넘기고 그저 담배만 연거푸 5대는 피웠던 것 같았다.
여관방은 너구리 소굴이었다.
남은 것을 수습해 보니 빵 10여개와 과일 몇 알 그리고 맥주 서너병.
시내구경을 위해 여관을 나와서 구두방 아저씨한테 드리니 무척 고마워했다.
여기저기 구경하며 이거 사먹고 저거 사먹고...
진해음식은 맛이 없었다.
냉면맛은 전국 공통이 아닐까 해서 가 보았더니 역시 되게 맛이 없었다.

시간이 다되어 정문으로 돌아 오니 대부분 복귀 후 비상소집과 뼁뼁이 구를 걱정에 잔뜩 긴장하여 굳은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기 저기서 오바이트 하는애, 노래 부르는애...
휘청거리며 술가져 오라고 소리치는 놈도 있었다. 이놈에게 해군구대장 손원일이 "얌마! 여기가 어디라고 추태야?" 하니까 그 멍청하게 생긴 해군후보생 녀석 "내가 그걸 모를까봐? 고려대학교지 어딘 어딥니까?"---> 제대로 차려자세도 취하지 못해 비틀거리던 얘때문에 동기들이 더 심난해 했지만 얘는 뭐가 그리 행복한지 열맞춰 무용관(후보생 숙소 중 하나) 앞으로 가면서도 연신 춤을 추어댔다. 심난한 가운데 한 동기가 "야 저새끼 뒤통수라도 한 대 쳐서 정신 좀 차리게 해!" 라며 경계하자 "야! 즐거운 애를 왜 때리냐? 우리도 같이 하자!" 하는 나의 말은 절도있게 연병장을 향해 이동하던 행군은 금새 웃음바다가 되면서 일시 뭉그러졌다.  
그래도 두어시간 구르고 나니 과식해서 거북했던 배가 엄청 가벼워지고 마음까지도 편안했다.
"30분 남았는데 총각집에서 한잔 더 빨고 가면 되지 뭘 고민이야?"하다가 해군 훈육관 정운채 소령에게 걸린 해군 후보생 애들은 쫌 더 특별하게 굴렀던 것 같다.
그날의 잠은 다른 그 어느때보다도 달콤하고 행복한 것이었다.
우리의 청춘을 그곳 진해에서 3개월이나 보냈었다.
잊을 수가 없다. 진해에서의 첫 상륙외출. 그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