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즐겁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진정으로 즐겁기를 원한다면, 나의 여행도 즐거워야 하겠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과 자의적, 타의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대상과의 즐거운 만남도 필수적이고 그러려려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외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부정식인식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외국에서 추태를 부리는 일부 한국인들을 들여다 보면 그들이 가진 낮은 준법정신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 최소한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호칭을 달고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여행자 수가 갈수록 증가하는 오늘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 쉬지 않고 많은 현지인 또는 타국의 여행자들에게 목격된다면, 본인 스스로는 물론 한국인 전체, 더 크게는 국가적 이미지에도 크게 타격을 입을 수도 있건만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등산복이나 패딩 점퍼를 입은 사람들은 99.9% 한국인이다. 젊은 사람들도 실수를 많이 하지만 그래서 중년 이상의 한국인은 말하지 않아도 표가 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나의 이 추태가 한국인의 작품임을 광고까지 하는 셈이다.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되면 기내에서 담요를 제공한다. 이 담요는 항공사의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담요를 챙겨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항공사에서는 담요를 구입하는 경비만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절도행위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담요를 가방이나 배낭에 집어넣고 내린다. 게다가 기내에서 쓰던 그 담요를 기차여행이나 그 외의 장소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꺼내 쓰곤 한다. 다른 외국인들한테서는 보이지 않는 이러한 행동들이 유독 한국인에게 보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기내 담요를 승객들에게 주는 것으로 잘 못 알고 가져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것은 오해다. 최근에는 항공기가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스튜어드와 스튜어디스들이 일일이 담요를 수거하는 진풍경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물론 무단으로 담요를 챙겨가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한국의 한 항공사에서는 “사용 후 기내에 두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 담요는 기내용입니다. 가져가지 마십시오.“ 같은 경고 문구까지 표기했다고 하니 이런 짓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캄보디아에서 여행 중에 목격한 것으로 한 한국인의 부끄러운 행동이 흔적으로 남아 지금도 돌이켜 생각하면 화가 나고 부끄럽기까지 한 일이 하나 있다. 씨엠립에서 앙코르톰에 설치된 바이욘의 미소들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감자기 스콜이 쏟아져 내렸고 나와 일행은 황급히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지붕이 있는 작은 공간이 눈에 띠어 그 곳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 곳에서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멀쩡한 유적 기둥에 한국인 이름 석 자가 한글로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흔적 남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지만 남의 소중한 유산에 어쩌면 이런 추악한 짓을 할 수가 있을까 화가 치밀었다. 씨엠립에는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외에도 수많은 유적과 유산이 있다. 나는 5일 동안 한 군데도 빼먹지 않고 샅샅이 보았지만 낙서는 딱 두 건만이 내 눈에 띠었다.
하나는 방금 언급한 한국인의 이름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한자어였다. 이 두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동이 캄보디아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음은 물론 한국과 한자어권 나라들이 두고두고 비난을 받게 만들고 만 것이다. 나의 행동이 한국 전체의 얼굴이 될 수 있으니 이제는 선진국의 시민답게 지킬 것은 지키는 일류 문화시민이 되자는 말을 하고 싶다.
여행자 호텔에는 대부분 호텔 프론트에 게스트북이라는 것이 있다. 여행자들의 사랑방인 프론트에는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자신이 얻은 현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적어 두곤 한다. 당연히 게스트북에는 영어, 한국어, 일어, 불어 등 각국의 여행자들이 적어 놓은 정보가 빼곡하다. 나도 십분 활용했고 내가 얻은 정보들을 남겨 본 적도 있다. 이 게스트북이 얼마나 내용이 풍부한가에 따라 호텔 지명도도 올라가고 내려가기도 한다. 당연히 이러한 게스트북은 호텔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에 속한다. 요르단의 한 호텔에서는 한국인들이 남긴 최근 정보가 하나도 없는 게스트북도 본 적이 있는데, 군데군데 뜯어간 흔적이 있었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요르단의 한 여행자 호텔에서는 게스트북이 아예 없어진 경우도 있었는데 이 호텔의 한국인 여주인은 한국 학생들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다. 여주인의 말로도 한국인 여행자들에 대한 현지 업자들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경우를 보고 들으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낮은 예의 수준도 문제다. 인도 뭄바이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인도의 과일들은 맛이 뛰어나면서도 값이 무척 저렴하다. 나의 일행들 중 한 두 사람이 포도를 산 뒤 뭄바이에서도 유명한 한 식당을 찾았다. 그 곳은 비교적 고급식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약간은 늦은 시간이라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시크교도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비롯한 손님들이 조용히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6명의 일행이 식당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끝내자 일행 중 한 사람이 포도를 꺼내 화장실로 가 세면대에 포도를 씻어 봉지에 다시 담아 테이블에 내어 놓은 채 음식을 기다리며 먹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특이한 행동에 크게 놀랐지만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주변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식당 내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종업원들의 눈초리는 경멸에 가까웠다. 나는 한두 개 먹고 말 분위기도 아니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봤다. “이 곳은 고급 식당이니만큼 아무래도 일반 식당과 달리 조심스러운데 다른 곳에서 사온 음식을 꺼내 놓고 먹으면 결례가 되지 않을까요?” 했더니 뭐가 문제냐는 반응들이었다. 더 이야기 했다간 일행간의 분위기가 식어버릴 것 같아 그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음식이 나오고 포도 봉지가 테이블에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나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나도 같은 결례를 한 적이 있다. 이스탄불의 호텔에서 아직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을 기다리기 지루해 나는 먼저 나온 일행과 함께 매점에서 맥주 한 캔씩 사들고 들어와 호텔 소파에 앉아서 마시고 있었다. 호텔 바 직원이 총알 같이 달려와 여기서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생각도 못했는데 본의 아니게 나도 실수를 했다.
이것은 생각 없는 행동이 부른 실수였고 나의 무지에 의한 실수담도 있다. 교토의 한 유명한 라멘 집에서의 일이다. 늦은 점심때라 손님은 거의 없었다. 라멘을 주문하고 나서 라멘과 건어물 덮밥 세트메뉴가 있음을 라멘이 이미 나오고 있을 때에야 알게 된 나는 혹시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말없이 건어물 덮밥을 추가로 갖다 주었다. 문제는 반찬이 두어 젓가락이면 없어질 아주 적은 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반찬을 더 달라고 했다. 그러나 딱 고만큼 더 갖다 주었다. 갖다 주던 그녀의 얼굴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먹고 나서 더 달라고 하면 알아서 많이 주겠지 했더니 주인의 표정이 좀 달라지며 또 딱 고만큼만 더 갖다 줬다. 그 이상은 나도 더 요구를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반찬 인심은 한국의 문화일 뿐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문화였던 것이다. 그 뒤로는 그 집 그 주인만 생각하면 미안해진다.
나의 지인이 이야기하는 일본에서의 실수담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역시 유명한 라멘 집에서였다고 한다. 테이블은 두 개밖에 없고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이외의 다른 손님들은 길게 벽을 따라 만들어진 카운터 같은 곳에 서서 먹었단다. 친구와 함께 라멘 한 그릇씩을 맛있게 해치운 그녀는 국물 맛이 너무 좋아 감탄하면서 국물 좀 더 달라고 했단다. 한국에서라면 솜씨를 인정한 셈이니 주인을 기쁘게 해 주었을 테지만, 일본에선 절대 아니었단다. 순간 라멘을 먹던 손놀림들이 멈춰지고 주인을 비롯한 수 십 개의 눈들이 자신들에게 쏠렸는데 그 눈은 “뭐 저런 희한한 동물이 다 있나” 하는 경멸과 놀라움의 눈초리들이었다고 한다. 그 땐 몰라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진다고 했다.
또 한 지인은 자신의 친구의 경험담을 내게 전했다. 그녀의 한 친구가 유럽 배낭여행 도중 다른 친구로부터 여행 전 선물 받은 가방의 고리가 끊어져 고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때마침 자신의 가방과 같은 상표의 매장이 눈에 띠었단다. 반가운 마음에 “쇠고리가 끊어졌는데 A/S가 가능한가요? 했더니 매장의 직원이 가방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란다. 대뜸 하는 이야기가 저희 제품이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하더니 똑같은 물건으로 바꿔 주더란다. 배낭여행을 마친 그녀가 그 가방을 선물했던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가방은 짝퉁이었다고 한다. 그 가방의 상표는 루이뷔통이었고, 본의 아니게 짝퉁과 진품을 바꿔 온 그녀는 그게 그렇게 비싼 가방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 매장의 직원은 그 일로 곤욕을 치르지는 않았을까. 루이뷔통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반문이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그 때는 한국에서 루이뷔통 열풍이 불기 전인 90년대 초반이었다.
고의적인 행동이 아니라, 이러한 실수들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므로 개개인이 국제화되어 가는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도 싶다. 하지만 알고 실수를 안 한다며 더욱 좋을 일이다.
어쨌든 남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거나,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고의로 현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기술한 사례처럼 무지에서 오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문화를 공부하고 조금이라도 더 이해를 한 뒤 여행을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한국인 여행자를 무시하는 편견적인 태도를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면 여행 중 기분 좋던 하루가 망가져 버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물론 나도 경험한 바 있다. 이때는 당당히 맞서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거나 태도 정정을 요구하는 용기는 반드시 발휘해 자존심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이 즐겁자면 행선지 결정, 가겠다는 결단, 꼼꼼한 정보수집, 철저한 준비, 여행 후의 마무리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현지인, 다른 여행자들에 대한 존중을 통해 남들에게 제공하는 기쁨과 즐거움은 곧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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