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10 제주

제주 가족 여행2(중문→쇠소깍→산굼부리→수련원→서울)

코렐리 2010. 4. 7. 11:42

 2010.4.4(일)

아침에 일어난 우리 가족은 짐을 싼 뒤 차에 다시 싣고 숙소에서 멀지 않은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갔다. 동생이 조사한 집이다.

 

아침 식사로는 결코 저렴하다 할 수 없는 메뉴다. 오분작 뚝배기는 제주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 하나다.

 

상 위에 깔아 놓은 반찬은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가족이 주문한 메뉴는 잘은 미역과 향긋한 성게알을 넣어 끓인 국과

 

오분작, 가리비, 새우와 조개 등이 들어간 오분작 뚝배기로 갈라졌다. 오분작이란 것은 자그마한 전복처럼 생긴 놈이다. 찌개 맨 위에 떠있는 오분작이 보인다. 전에 맛본 적 있는 성게국은 역시 맛이 아주 좋다. 미역의 향과 성게의 향이 어우러져 기막힌 향을 낸다. 향이 반찬 향에 가려 죽어버릴 것을 염려해 국과 밥만 먹고 반찬은 따로 먹었다. 오분작 뚝배기도 맛을 봤지만 된장 향에 해물 향이 살짝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내겐 역시 성게국이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면세점을 가봤다. 동생은 캠코더에 관심이 있었고 나는 마음에 두고 있던 루믹스 카메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바로 앞은 유채꽃이 황홀하도록 만발했다. 샛노란 유채꽃밭과 저멀리 초록으로 테두를 형성한 나무군, 그리고 새파란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이걸 보기 위해 일부러 4월 초로 맞추어 왔으니 처음으로 보는 이 아름다운 유채밭이 감흥에 젖게 한다.

 

면세점에는 가전제품점이 입점해 있지 않아 기대했던 캠코더와 카메라는 보지 못했다. 덕분에 돈벌었다. ㅡ,.ㅡ; 다음으로 들른 곳은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매우 독특한 모양새의 바위들을 보고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락그룹 레드 제플린의 5집 음반인 House of the Holy 재킷에 나오는 기괴하고 기이한 풍경. 이 것이 실존하는 땅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안 뒤로 역시 우리 나라 제주도에도 있다는 사실을 이날 알았다.

 

 

들여다 볼수록 신기하고도 아름답다.

 

동생이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 취해 본 오버포즈. "짜식 저거 뭐하노?" 뒤에 오시는 아저씨가 그러지 않았을까. ㅍ

 

다음 코스로 도착한 쇠소깍. 순 우리말로 여겨지는 이 지명의 이름이 특이하고도 예쁘다. 어감으로 듣자면 쇠로 깎아서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뜻처럼 머릿속에 연상된다. 바다로부터 쇠소깍으로 흘러들어오는 물과 여기서 운행되는 제주 전통뗏목을 내려다 보시는 울 노인네들.

 

시냇물이 흐를 것처럼 보이는 이 곳으로 바닷물이 유입된다. 바위절벽 위로부터 가지를 늘여 내려뜨린 이 곳은 신선이 떠다녀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은 풍경이다.

 

나는 이 곳에 마음의 배를 띄워 노를 저었다. 배 위에는 탁배기가 담겨진 호리병과 나물채반을 얹은 작은 술상이 놓여져 있고, 젓다말고 방치해둔 노는 수면위에 떠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채 훈훈한 봄바람에 저리로 밀려난다. 노란 저고리에 자줏및 치마를 두르고, 머리에는 윤기있는 가채를 곱게 얹은 홍진이가 술상 건너편에 마주앉아 우아한 자태로 술잔을 들어 권하니 꿈이라 한들 어찌 깨고 싶으리. 이른봄의 차운 바닷바람에 얼핏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내 턱을 괴고 앉은 이 곳은 배 위가 아닌 쇠소깍의 나무난간이더라. 허무함에 주변을 둘러보고 나니 누구 말마따나 잔을 들어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 먼 소리여 이거. 내가 해놓고도 읽어보니 쉰소릴쎄. ㅡ,.ㅡ;

 

남자들은 구경하고 노는데에, 여자들은 먹을것을 사서 택배로 부치느라... 여동생은 시부모님 댁에 보낸다고 한라봉을 한 박스 사서 부치고, 어머니는 조생귤 한박스를 집으로 부쳤다. 나는 그 틈에 껴 조생귤 하나를 집어 맛봤다. 달다 달어...

곧이어 들른 대여섯명의 갱년기 손님들이 귤은 2000원어치 사고 저마다 진열대에 놓인 귤을 하나씩 까서 먹어대니 까칠한 주인아저씨 한마디 하신다.

"귤은 2000원어치 사시면서 하나씩 까서 맛보시면 이거 해도해도 너무하시는거 아닙니까?"

먹다말고 썰렁해지자 일행 중 아저씨 한 분이 가로되

"하나 먹었다고 너무하시는거 아니오?" 하자

주인 아저씨의 두번째 까칠한 멘트가 그냥 날아가 꽂힌다.

"한사람에 하나씩이면 그게 어디 합이 하납니까?"

일행중 영리한 한 아주머니 왈

"난 줘서 먹었어... 줘서 먹었다니까!"---> 방어본능 투철하신 아주머니 이거 3절까지 하셨다. 호호홍! 열라 우껴.

 

다음으로 들른 곳은 성읍 민속마을. 이 곳에는 주차장이 있고 곧바로 민속마을 현수막이 붙어있다. 여기엔 햇볕차양이 달린 뚜껑없는 모자를 쓰신 아주머니가 나타나 어서 오시라며 친절한 썪소를 날리신다.

이 아주머닌 뭐지? 의문의 눈초리로 화답하자 이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이 가슴에 패용한 신분증을 들어 보이며

"저는 제주도청에서 허가받은 성읍 민속마을 안내원입니다. 저는 단지 우리 마을을 안내하는 것으로 족하고 일체의 안내 수수료가 없으니 안심하시고 저를 따라 오시면 마을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에 공짜 썪소는 없게 마련인데 상식을 깨는 이 소리는 먼소리다요? 그래 공짜래는데 뭐... 일단 따라 다니기로 했다.

제주 사투리가 섞인 아주머니의 야부리는 구수하다 못해 친근하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띠는 항아리와  짚을 엮어 나무에 둘러 묶은 정수시설에 감탄했다. 조상 대대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아줌마는 이 것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설명이나 눈길도 없이 획 지나 똥돼지 사육장으로 갔다.

 

지금은 사라진 똥돼지다. 지금은 먹고살만하니 사람의 똥을 먹여 키우는 두야지는 사라졌다지만 얘는 아직도 똥돼지 연기를 해야 하니 기구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표정만 봐도 개로 태어날걸 잘못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돼지우리 담벼락 바로 앞 네모진 구멍은 인간이 똥을 누는 구멍이란다. 바로 옆 대나무 막대기는 똥먹자고 달려드는 돼지를 쫓기 위한 물건이란다. 남자들은 똥누다 잘못하면 돼지한테 딸랑이를 떼인다는 말을 하는데 도대체 진담인지 농담인지... 농담치곤 썰렁하고 사실이면 끔찍하다.

 

이 곳은 양반이 살던 집이라고 한다. 아직도 이 집에는 그 후손들이 살고 있어 소박한 세간살이가 들여다 보인다. 이 집은 건물이 세 채인데 "ㄷ"자의 형태로 배열된 형태는 양반이 살던 집인 증거라나... 가족 사진도 한 장 찌익고.

 

쇠똥을 연료로 쓰던 전형적인 옛 제주의 부억. 아궁이가 초라한 이유는 화력 좋은 쇠똥으로 인해 수시로 불이 나곤 한단다. 다른건 몰라도 솥만은 건져야 하기에 들고 날기 쉽게 아궁이가 대충 발달한거라나. 믿거나 말거나... 어쨋든 간단한 안내를 마친 아주머니가 오미자차 한 잔 마시라며 데리고 간 곳간 같은 장소에는 오미자 액기스와 말뼈를 갈아 환으로 만든 상품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냉오미자차를 한 잔씩 돌리시더니 아줌마는 "안사도 되니 말씀이나 좀 들어보라"며 약장사를 시작하셨다. 이 아주머닌 사람 심리를 잘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노인네들이 계시고 아이를 낳은지 오래되지 않은 엄마가 있는 것으로 보고 하는 얘긴지 칼슘이 부족한 노인과 아이를 낳고 뼈를 강화시킬 필요가 있는 여인네들에게 특히나 좋다는 말을 누차 강조하고 오미자도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으니 안사도 된다는 말 속에는 보이지 않는 시퍼런 날이 서있고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안사기 쉽지 않을 터다. 아줌니 장사 잘하시넹. 까칠한 내가 여기 넘어갈 리 없다. 동생은 오미자 액기스 하나에 말뼉다구 환약을 두 통이나 샀다. 얼레꼴레 나는 안샀네. 염려마셈. 나눠먹잔 소리 안할텡께로. 암!

 

장사 잘하시는 아줌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마을 안쪽 깊숙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온통 현무암밖에 없는 제주에서 성벽을 쌓으려니 그 역시도 현무암이었다. 이까짓 성벽 잠깐이면 기어 오를만큼 울퉁불퉁 암벽타기 연습장처럼 만든 성벽이 전쟁나면 차라리 없는것과 마찬가지겠다. 그래도 맨바닥에 막대기로 금이나 그어 놓고 여기는 성안쪽, 그쪽은 성바깥쪽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단 낫겠지.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맨 지붕은 뭍에서 흔히 보는 초가집과는 사뭇 다르다. 말똥과 흙을 섞어 벽을 바른 선조들의 지혜는 살균력과 보온성에서부터 표가 난다. 아버지는 무릎이 좋지 않으신지 준상이도 타지 않은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니 영 안쓰럽. 

 

천연소재의 물감과 천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제주 특산물은 갈옷을 사고싶어 하셨다. 감으로 옷을 물들인 갈옷의 색깔은 곱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이 곳에서 옷과 가방 등 몇 개 물건을 구입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뱃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밥먹을 시간이 되긴 되었다.

 

성읍마을 안내인 아주머니의 추천대로 주차장에 딸린 식당에서 식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문제였다. 짜고치는 고스톱에 왠지 속는것도 같고... 하지만 여기서 유명한 집으로 가자면 시간도 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볼거리도 더 남아 있었다. 아주머니가 추천한 곳은 아주 큰 식당이었다. 관광버스가 수시로 손님들을 싣고와 식당으로 밀어 넣으면 와글거리며 몰려온 손님들은 단체로 먹고 나갔다. 약간은 늦은 시간이라 썰물처럼 관광객이 빠져나간 이 식당으로 들어가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때의 손님이라곤 방 한켠에 여덟명 정도의 남자 손님들이 전부였다. 우리도 방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아기가 있어 굳이 방으로 데려가 누였건만 먼저 와 있던 남자 손님들은 아랑곳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마시며 즐겼다. 다 견딜만 한데 수시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사극에 나오는 이방 어르신 목소리에 다름 아니건만 의식적으로 크게 웃어 젖히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기도 신경쓰이고 무척 불쾌하기도 했지만 이미 자리에 주저 앉아 음식을 주문까지 했으니 다른 곳으로 갈 처지도 아니었다. 우리는 최대한 밥을 빨리 먹고 일어나는게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음식이 나오고 익는데 걸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고도 길게 느껴졌다. 음식이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지경이니 음식맛은 기억도 안난다. 고기가 푸석푸석하던 것은 기억난다. 남의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할 줄 모르는 아저씨들께 한마디. "쳐드신거 두고두고 탈이 나서 죽을때까지 설사나 하소서."  

  

식당을 나오니 홀로 담벼락 아래 포기를 갖춘 유채가 너무나도 예뻐 한 컷 담아 보았다.

 

산굼부리로 방향을 잡고 가족의 이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가던 길은 산 가운데라 그랬을까 변화무쌍했다. 유채꽃이 도로에 만발하더니

 

이번엔 키작은 풀포기들이 도로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어라? 이번엔 빼곡한 나무들까지?

 

짜잔~~~! 여기가 어딜까... 산굼부리의 입구인 영봉문일쎄. 문봉영인가?

 

 

산 속이라 봄바람은 기대할 수 없었다. 보통 찬게 아니다.

 

 가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내려다 보는 이 곳은 휴화산인 산굼부리 분화구.

  

 

바람은 차고 날은 우중충해 저마다 옷깃을 있는대로 여며도 뼛속으로 파고드는 한기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걱정스러운지 제수씨가 준상이의 유모차를 들여다 본다.

 

여기에선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둘러볼 공간이 크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모두들 추위를 피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으라고 일부러 둔 것인지 구멍뚫린 바위가 정원석으로 놓여 있어 저마다 사진 한 컷씩 다 찍었다. 대표로 엄마 아부지사진 하나 올려본다.

 

이번엔 숙소로 이동한다. 일찍 들어가 짐풀어 놓고 저녁 먹을 참이다. 소나무숲에 뚫린 도로를 따라 가다 보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이 펼쳐진 목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그가 이시도르 목장인가??? 아닌가? 아님 말구.

 

곧이어 도착한 곳은 울 핵교 수련원. 어느 대학도 이렇게 시설 훌륭하고 기막힌 산책로를 가진 수련원은 갖지 못했을게다.

 

우리가 배정받은 객실 주방.

 

응접실.

 

작은 침실. 큰침실도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이런 객실 2개를 배정받아 짐부터 풀었다.

 

 저녁먹으러 나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동생 내외와 함께 가 본 수련원 후편 산책로. 사진 아래에는 유럽산 기러기 한마리가 곱게 앉아 있었다. 작년 여름에 왔을 때는 없던 애였는데... 있으면 한 쌍일텐데 나머지 한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다음날 안 사실이었지만 여기엔 암수 한쌍이 있단다. 수련원으로 내려온 수컷을 직원이 키우는 깐돌이(개)가 물어뜯어 털이 많이 뜯겼단다. 다음날 다시 가서 보니 그 땐 두 마리가 있었는데 수컷의 너절한 날개가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켰다. 깐돌이 녀석도 보통 개구쟁이는 아니다. 깐돌이 녀석 사진은 여기에 없지만 주인보다 객들을 더 좋아하는 녀석이라고 한다. 주인은 맨날 사료만 주지만 객들은 구워먹던 고기나 먹고 남은 회를 던져주니 주인 알기를 장기판의 졸 정도로 안다고 푸념이다.

 

지금이면 한참 운치가 있을 갈대숲 사잇길은 최근 큰 비바람이라도 있었는지 여기저기 쓰러져 볼품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즐길만하다. 나무로 깔아 놓은 산책로는 계절을 불문하고 걷기에 너무나 좋다.

 

저녁을 먹기 위해 횟집으로 갔지만 여기에도 고등어회는 없었다. 고등어는 지금 제철이 아니지만 거 왜 그리도 먹고 싶던지. 어쨌든 모듬회로 만족했다. 내 동생이 잘 아는 형님이 잘 안다는 아우님의 소개로 온 집이다.(머가 이리 복잡하냐) 그 아우님이 그 형님을 봐서 대접하고 싶다며 계산은 하지 마시고 그냥 가시라고 신신당부다. 고맙긴 한데 넘 미안하다. 우리는 누차 우리가 알아서 먹고 가겠다고 했지만 그러면 섭섭하다며 만류다. 여기서 더 사양하면 오히려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빚지는 느낌.... ㅡ,.ㅡ; 어쨌든 감사합니다. 아쉬운대로 다른집 가서 고등어 회를 더 떠다 동생과 관리 직원들하고 함께 한 잔 더하고 잤다. 

 

낯선 곳에서 3일째 되는 밤이지만 보채지 않은 조카가 대견하다. 종종 이놈이 보고싶어 개화동 아버지 집에 한 번 더 가곤 한다.

 

2010. 4. 5(월)

가족여행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의 강행군에 모두가 피곤했던지 모두가 늦잠을 잤다. 나가서 아침 먹기도 늦은 시간이고 그렇다고 굶을 수도 없었다. 나는 여동생과 함께 아침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사러 나갔다. 근처 제주대학교 4거리에는 벗꽃이 만발했다. 제주도엔 이미 가는 곳마다 이렇게 벗꽃이 만발해야 맞지만 금년 차가운 봄날씨는 모든 것이 늦게 열리는 이유가 된 모양이다.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숙소에서 쉰 뒤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고기국수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 유명한 고기국수집 근처에는 거대한 하루방 형상이 세워져 있는데 너무 거대하다 보니 친근한게 아니라 괴물같다.

 

바로 여기다. 삼대 국수회관.

 

 

두야지 사골로 우린 뽀얀 국물에 제육을 함께 담은 국수는 값도 저렴하고 맛도 일품이었지만 간단하나마 늦게 먹은 아침이 뱃속에 남아 쑤셔 넣으려는 나는 말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각기 흩어진 비행시간을 최대한 단축해 모두 거의 동시에 떠날 수 있도록 수배해 보았다. 자리들이 남는지 없던 자리들이 마구 생겨나 거의 비슷한 시간에 가족들이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개화동 아버지 집으로 모두 모이자 하나같이 하는 얘기는

"야, 역시 집이 최고다."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아버지는 집을 좋아하고...

2년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 터키여행을 보내 드렸더니 어머니는 좋아라 하시고 아버지는 집에 있고 싶어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생각했을까. 나야 모르지.

어쨌든 가족이 모두 함깨 여행한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어머니를 보고 그동안 왜 그리도 무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던 뜻깊은 가족여행. 다음번엔 경주와 안동을 바라고 가족여행을 또 계획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