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중에 고대유적을 방문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그 자체를 여행의 전부로 간주한다면 무리가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니 그 중요성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고대유적을 보는 여행자들의 눈을 살펴보면 저마다 제각각이라 이 것 또한 재미가 있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판단하는 기준도, 이를 보는 심미안의 여부도, 빠져드는 흥미도도 저마다 다르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위대하다, 아름답다, 도대체 어떻게 세웠을까 하는 등의 판단과 감상의 느낌 그리고 발동하는 호기심의 정도 차이가 제각각 표현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기왕에 돈을 들여 여기까지 왔다면 보더라도 제대로 보는 것이 보람있는 여행의 핵심이다. 유적지를 방문하기 전에 역사를 공부하고 각 건물의 명칭과 기능, 건축양식 등에 대하여 사전에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자료를 챙겼다면 사전 공부 내용과 실제를 하나 하나 확인하면서 보는 재미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고 시간적으로도 적잖이 소요된다. 맛있는 음식을 맛도 모른채 빨리 먹어 치우기 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과 조화를 따져가며 조금씩 맛을 음미하는 것이 제대로 먹는 방법인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만난 한 배낭여행자는 자신이 방문하는 도시마다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죄 다 둘러본다고 한다. 그는 또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에 대하여 표기된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읽어 본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본전을 뽑고서야 나오는 그는 카이로에 있는 국립박물관의 그 어마어마한 유물들을 보면서 무척 실망했다고 한다. 그 많은 유물을 주체하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설명이 미흡했다며 유물에대한 이해나 역사의 흐름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을 입수해 유적지의 기원과 그 배경에 관한 역사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수시로 읽곤 했다. 이와 같이 하자면 몇가지 조건사항이 있다.
우선 영어 자료를 국어책보다 더 쉽게 읽어나갈 만큼의 어휘력은 물론 독해실력과 속독기술까지도 필요하다.
또 하나는 이 것을 읽고 끄덕거릴 수 있는 사전 역사지식이다. 세 째는 아침 먹고 박물관에 들어가 점심도 굶어가며 문닫을때까지 개기는 열정이다. 물론 나는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그는 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ROTC를 제대한 뒤 대학원에서 한 개 학기를 마친 그는 휴학과 동시에 1년간의 배낭여행에 돌입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그가 여행을 시작한지 5개월째 되는 시점의 중동땅에서였다. 그가 그렇게까지 자료를 탐독하는 이유는 그동안 얻은 지역별 역사와 그 역사 흐름의 파편들을 프라모델 조립하듯 끼워맞춰 그가 가진 지식의 연결고리를 맞춰 정리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그에게 완벽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공부가 취미인 학자들의 이야기가 될 테지만 최소한의 사전공부를 해두는 것과 현지에서 꼼꼼하게 둘러보는 것은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고 지식을 확장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적인 건축양식에 대한 공부까지는 어니어도 기본적인 스타일만이라도 미리 알고 현지에서의 확인을 해 보면 역사와 유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쿠푸와 카프라의 피라미드)
예를 들어 일본의 고대건축물을 보는데 있어서 한국의 고전건축과 나름대로 비교해 가며 보는 방법은 어떨까. 한국의 건축물들은 기와의 양쪽 끝에 우아한 곡선을 갖는 반면 일본의 기와는 직선의 단순한 형태로 건설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마의 형태도 확실히 다르다. 창호지를 바른 문은 비슷한 형태이지만 한국의 문살은 다양하고 변화를 주어 미적 표현이 뚜렷하고 일본의 창호문은 일정한 격자형태를 띠고 있어 나름 단정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는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식별이 가능하다. 이러한 점 마저도 간과하고 대충 둘러보는 여행을 한다면 여행에 들이는 경비를 제대로 건지지 못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건물의 간단한 역사와 배경도 물론 알고 가는 것이 좋다.
반면 공부는 고사하고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심지어 여행 가이드 책자 조차도 한 권 없이 배낭여행을 떠난 사람들도 만난 적이 있다. 터키에서 만난 이들은 은행원들이었는데 그들이 가져온 배낭 속에는 지도 한 장 없었다. 황당하게 느낀 나는 무슨 생각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느냐고 물었더니 현지에서 자료를 구해 참고하려고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어디를 어떻게 다녀야 할지 막연하다는 것이었다. 희안하게도 가져올 것이 무에 그리도 많았는지 배낭 하나로 부족해 트렁크까지 끌고 욌던 그들은 내가 이제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가장 용감하고 겂없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챙겨간 가이드북, 나름 꼼꼼하게 정리한 계획서를 본 그들은 내가 구성한 팀에 합류하고 싶어했다. 사람이 많은 팀을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 나였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구성한 팀에 그들도 합류하여 일원이 되었다. 그들은 준비없이 와서 그나마 두 사람이 다녔다면 우왕좌왕하다 볼 일 다봤겠다며 팀에 합류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사전에 공부한 적도 없고 갖고 있는 자료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휙 둘러보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네팔 포카라에서 만난 한 대학생에게 현지 정보를 얻기 위해 카트만두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카트만두와 그 주변은 그다지 볼게 없으니 이틀이면 충분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정말로 그런가 의아했지만 실제로 가 본 카트만두와 그 주변의 도시들은 볼거리로 넘쳐나 삼일동안 다니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그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내 소신과 달리 가는 곳마다 택시로 이동을 했지만 몇 몇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세 곳의 소도시는 포기해야 했다. 나는 포카라에서 만난 그 학생이 사전 준비나 현지에서의 꼼꼼한 관람하고는 전형적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름들은 이 건물이 왜 여기에 서 있으며 개개 건물의 용도와 명칭, 양식의 영향을 미치고 받는 관계를 모르는 만큼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휘익 한 번 둘러보면 끝이다. 봤으니 됐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들이 전자의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닌다면 지루하고 심심한 여행을 하게 되고 전자의 사람들은 자리를 뜨자며 재촉하는 후자의 사람들을 힘겨워 할 수 밖에 없다. 두 비교 대상은 서로 여행하는 방식이 극단적으로 다르고 서로 다른만큼 만족도의 차이도 매우 크다.
그외에 경비 면에서도 한가지 거론해 볼만한 것은 입장료 문제다. 빠듯한 경비로 여행하는 학생들의 경우 비싼 입장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실제로 이집트 주요 도시들의 유적들을 빠짐없이 보자면 수십만원이나 되는 돈이 입장료 경비로 들어간다. 특히, 인도 타즈마할이나 요르단 페트라의 경우 입장료가 상당히 비싸다. 그러나 인도나 요르단까지 여행을 가서 가장 중요한 유적을 보지 않고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입장료가 비싸다고 보지 않고 나온다면 비행기값이 아깝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이집트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인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유적군의 경우를 보면 입장료는 40파운드로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일단 표를 사서 들어가면 각각의 피라미드 입구에서 별도의 입장권을 구입해야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입장료가 100 이집션 파운드로 한화 17,000원이 넘게 들고 쿠푸, 카프라, 맨카우라의 피라미드 세 곳의 내부를 모두 들어가 보자면 5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게다가 비밀의 배 안에까지 들어가자면 그보다 더 들어간다. 처음 피라미드 입장권을 구입하면서 생각보다 값이 싼 입장료에 의외라는 생각을 했지만 피라미드 내부 입장료가 별도로 징수되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고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에 놀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입장료가 비싸다며 내부 입장을 꺼렸다. 사실 내부에 들어가 봐야 경사진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아무것도 없는 사면벽의 석실 하나가 전부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들어가서 그 통로와 석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만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고 여기까지 와서 내부를 보지 않고 돌아가면 두고 두고 궁금할 것이 틀림 없다. 게다가 내부를 보지 않고 돌아왔다면 제대로 봤다고 말하기도 사실 어려운 것도 문제다. 나는 3개의 피라미드 내부 모두가 대동소이하다는 전제하에 절충책으로 3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규모가 큰 쿠푸의 피라미드만을 들어가 보았다. 물론 내부에도 중요한 볼거리가 있다면 3대 피라미드의 속을 모두 들여다 보았을 터였지만 방으로 통하는 급경사의 통로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면벽실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었다. 석벽 이외에는 부조도 없고 아무런 기물도 없는 곳이었지만 사진도 찍을 수 없고 카메라도 입구에 맡기도 들어가야 했다. 사진을 보는 것으로 입장을 대신하는 사람이 많을 것을 우려했는지 안내 책자나 유인물에도 피라미드의 통로나 석실 사진은 눈씻고 봐도 없다. 안보면 두고 두고 궁금해 하며 후회했을테니 하나라도 보고 온 것만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네팔여행 마지막 날로 기억된다.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관람하러 갔던 우리는 500루피나 하는 입장료를 보고 놀랐다. 사실 500루피라면 8,500원에 해당되는 돈이니 유적지 입장으로서는 그리 바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팔 다른 곳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입장료였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외국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가격을 한화로 환산해서 가격이 싸고 비싼 정도를 가늠하는 습관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8,500원의 입장료가 놀랄 정도로 비싸다고 생각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동안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나중엔 현지 물가에 습관이 들어 생기는 함정이 그러한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입장료가 얼마가 되더라도 네팔 최대의 사원인 만큼 반드시 들어가 볼 참이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들어가지 않을테니 보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 잠깐 그를 설득했다. 90만원이나 되는 항공권을 구입해 여기까지 온 사람이 그깟 1만원도 안되는 입장료를 아끼자고 중요한 유적지를 포기한다면 이 곳에 온 의미가 무엇인지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는 두 말없이 함께 입장했다.
(새벽 안개 속의 타즈마할)
물론 여행경비에서 입장료는 피할 수 없는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유적지 방문보다 쇼핑에 치중하는 여행도 나름 테마여행이라 할 수 있으니 나름 보람있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있겠지만 중요 유적지나 전통문화를 즐기는데 입장료를 아끼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여행 전에 국제학생증이나 국제교사신분증(물론 교사에 한함)이 어느 정도나 해당 국가에서 소용이 될지를 확인해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유적 방문 경비를 절약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실제로 학생이나 교사들의 경우 이집트 여행에서 차지하는 입장료 경비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이러한 방법은 소용이 없겠지만.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 사전 공부를 위한 시간 투자와 현지에서의 유적 관람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경비는 아끼되 유적 관람 경비만큼은 아끼지 않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레바논의 한 유적지에서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바알벡에 도착해 로마유적으로 들어가자마자 거대함에 매료된 나는 한참을 보고 또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이곳을 본데 또 보고 본데 또 보는 철저한 복습(?)을 했다. 내가 입장한 시간은 문 닫기 한 시간 정도 전이었고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관리인이 남은 관람객이 없는지 둘러보는 동안 나는 일부러 바커스 신전 안에서 머물러 있었다. 관리인이 일부러 사람이 있는지 들어와 확인해 보기 전에는 눈에 띨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워낙 없었던지라 대충 둘러보고 나갔는지 이젠 관리인도 없고 나만 남았다. 나야 원래 혼자서도 잘해요 스탈이니 내 세상이 따로 없었다. 주피터 신전과 바커스신전을 보며 마냥 즐거워했던 나는 이 곳을 실컷 보고도 살짝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 별수 없이 나갈 땐 너무나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퇴장 시간에 뺀질거리고 안나가던 노땅의 철없는 행복은 여기서 나갈에서야 조낸 황당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통로를 따라 저 멀리에 있는 출구로 가서 보니 강화유리 벽면과 굳게 잠긴 문이 나의 출로를 차단한 것이다. 안되면 쉽사리 다른 길을 찾는 나는 출구에 미련을 버리고 입구로 되돌아가 보았다. 역시 잠겨 있었다. 입구 밖에는 일단의 서양인 여행객들이 모여 있다가 나를 보더니 뭔가 도움을 주려고 했다. 어쩌다 갇혔냐는둥, 문 닫히는 시간을 몰랐냐는둥, 나올 방법이 있겠냐는 둥 잔소리 일색이었다. 나는 출입문과 연결된 강철재 철책을 쳐다 보았다. 출입문은 물론 철책 모두 위쪽이 뾰죽하게 창모양으로 되어 있어 월책 도중 주저 앉거나 그 위로 엎어지면 본전도 못뽑을 상황이었다. 그래도 용감한 척 하고 월책을 시도했더니 어떤이는 내가 관리인을 찾아 연락해 볼테니 위험한 일을 시도 하지 말라는둥, 지금 하는 일은 별로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둥 역시 잔소리 일색이었다. 짐짓 자신있게 월책을 시도했던 나는 신고 있던 묵직한 운동화로 인해 딛고 있던 좁은 철창간의 간격이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결국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포기했다. 좀 있으니 누군가 영양가 있는 소리를 했다. 반대편으로 돌아오면 관리인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있는데 아마도 그 곳은 밖에선 못열어도 안에선 열릴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가 말한 곳으로 가면서도 유적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그가 말한 곳으로 가보았다. 과연 쪽문이 있고 안에서는 열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오는데 드디어 성공했다. 이 와중에도 여기서 못나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고 혼자서 미로찾기놀이 하는 기분이었지만 하마터면 반갑잖게 숙박비를 절약할 뻔 했다. 역시 유적 관람의 즐거움에 빠져 덤으로 겪었던 에피소드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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