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3(화)
이스탄불 에센레르 오토갈에 도착한 나는 지하철을 타고 여유있게 공항으로 가 티케팅을 완료하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실제 예정했던 시간보다 지연되어 24:00가 다 되어 이륙했다. 항공기는 단거리인 관계로 소형이고 좌석은 조금 더 불편하다. 의외인 것은 인천으로부터 타고 왔던 항공편은 텅텅 비어 있어서 완전히 누워서 왔는데 이건 빈자리가 전혀 없다. 항공기 안에서 이스탄불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지형이 울퉁불퉁하면서도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고 저마다 개성 강한 건축물들이 조명을 통해 선명하게 보인다. 역시 아름다운 도시다. 좀 있으니 밥준다. 주길래 또 먹었다.
맥주를 달라고 했더니 TUBORG 라는 생소한 맥주를 준다. 국적이 궁금해서 뒤져 보았지만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다. 터키에서 만든 맥주인 것 같기는 한데 터키 내에서 이 맥주는 못본것도 같고... 어쨋든 쓸만한 맛이긴 하지만 약간은 싱거운 느낌이 있다. 에페스가 먹고싶기는 한데 따서 준걸 바꿔달라고 하면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할까봐 다소곳이 착하게 않아 입다물고 먹었다.
02시가 넘어 암만에 도착했다. 환전부터 했다. 100유로를 내주었더니 93요르단 디나르를 준다.(1JD=2천원정도)이 시간엔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공항버스가 없다. 세르비스를 타면 21요르단 디나르를 요구한다. 흰색 승용차 모양의 세르비스는 합승택시의 개념으로 운영된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운임이 정해져 있고 이 것을 타고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어 내면 된다. 공항에서 합승택시를 같이 탈 사람을 구해봤지만 대부분은 누군가 데리러 오기 때문에 혼자서 타고 가야 했다. 혼자서 21요르단 디나르를 다 지불하고는 암만시내 다운타운으로 가자고 했다. 이 곳에선 로마극장을 '보따라지 로마니'라고 한다고 한다. 가자고 했더니 이내 알아듣고 40분정도 소요된 끝에 로마극장에 내려 주었다.
새벽 세시가 넘은 시간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간이 경찰서에 가서 가고자 했던 낸시 호텔을 물으니 모르겠단다. 근처인건 확실한데... 그 시간에 이따금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긴 하고 문이 아직 열려 있는 가게도 있고 해서 물어불어 찾아보니 로마극장 바로 건너편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낸시 호텔이 보인다. 근디 Nancy 가 아니고 Nansy가 맞는건가? 어쨋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중요한건 묵고자 했던 호텔을 찾았다는 것이다.
계단을 타고 오르니 계단 끝에 미닫이 유리문이 보인다. 어슴프레하게 누군가 호텔 프론트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자는 사람이 있었다. 한참을 두드리니 그제서야 부시시 일어나더니만 잠겨있던 유리문을 열었다. 얼굴은 시커멓고 머리는 산발인 사내가 개기름이 낀 부시시한 얼굴로 빤히 쳐다본다. '방 있냐'고 물으니 있단다. 다 좋은데 '있으면 어쩔래?' 하는 표정으로 사람을 빤히 쳐다만 본다. 있으면 내가 더 이상의 질문을 하기 전에 '따라 오라'거나 숙박부에 성명을 적으라거나 먼 소리를 해야 맞는거 아닌가? 게다가 입에서는 담배 절은 냄새가 마주보기도 싫게 만들었다. 도미토리를 원한다니까 보여주는 방이 2인실이다.
다시 도미토리를 강조했더니 도미토리가 뭔지 모르는 눈치다. 엥? 있는걸로 알고 왔는뎅? 내 보기엔 투숙객도 없는 것 같고 방문 이곳 저곳이 열려 있었다. 얼핏 다른 방을 들여다 보고는 '이게 도미토리 아니면 뭐냐'고 물으니 시원찮은 영어로 계속 No라고만 한다. 어이 없어했더니 '당신 영어 몰라?' ㅡ,.ㅡ;
더 실갱이 하기도 싫어 방값으로 15JD를 내고 나니 참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제 새벽 4시가 거의 다 되어서 날이 밝으면 시리아로 넘어갈텐데 뭐했다고 3만원짜리 방에서 자냔 말이다. ㅜ.ㅜ
두시간 반 자고 자고 일어나 게스트북을 보려고 씻지도 않은 얼굴로 방문을 열고 나오니 한국인 여주인이 보인다. 나는 반가운 생각에 인사하고 나서 간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관광업을 하는 남편은 투어를 인솔해 갔고 최근 경기가 아주 나빠 투숙객도 없고 해서 손님에게 밤샘 지킴이를 부탁했던 거라고 한다. 그제서야 미숙한 손님 응대, 영어도 잘 못하는 놈이 호텔업을 하니 이상하다는 생각도, 뻔히 도미토리가 있는걸로 아는데 투숙객도 없구만 도미토리를 왜 안내주고 헛소리만 하는지 이해가 갔다. 여사장은 미안하다며 원래 도미토리를 원했던거라는 말을 듣고 8JD에 해주겠단다. 내 입장에서야 고마운 일이었다.
아침이 되니 호텔 프론트 바깥에 있는 널찍한 테라스에 아침식사를 준비해 준다. 아침식사는 나 혼자다. 나와 간밤에 본 그 어줍잖던 호텔지배인(?)만 제외하면 투숙객이 없었던 모양이다. 안주인은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투숙객이 오지 않는 것을 걱정했다. 그 뒤로 나름 돌아다니며 이 호텔에서 받은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날이 무척 화창하다. 빵맛이 좋고 홍차에는 허브까지 같이 넣어주는데 맛이 좋다.
테라스에서 내다본 암만 새내 다운타운의 모습. 길 건너편에는 도서관이 보이고 이 도서관 너머로 로마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프론트로 돌아온 나는 게스트북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2008년도분이 없었다. 주인에게 2008년도분은 뜯어져 있고 안보인다고 했더니 누군가 집어갔다고 한다. 게스트북 도난 사고는 여기 저기서 발생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이해가 안간다. 게스트북은 그 호텔의 가장 소중한 자산에 속한다. 게스트북에 유익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호텔의 지명도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배낭여행을 다니는 사람 정도라면 이미 적잖은 교양을 쌓은 사람들인걸로 아는데 남의 소중한 자산을 그렇게 죄의식도 없이 베껴가기 귀찮다고 홀라당 뜯어 가냐? 안주인도 말하기를 여행업을 하는 남편의 다른 여행업자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여행객의 나라별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들을 이야기 하곤 하는데 자기 앞이라 말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한국인 여행자들에 대한 평은 무척 않좋다고 한다.
여사장과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시리아로 가는 길을 묻고 호텔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한 노인의 옷차림과 인상이 왠지 전형적인 아랍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 장 찍기를 청했다. 옆에서 구두 수선을 하던 사람이 영어로 통역해 주니 이 노인은 또 아랍어로 뭐라고 묻는다. 당신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찍느냐는 거였다. 내가 기자라도 되는건 아닌가 생각했던 모양. 난 그저 여행자일 뿐이고 수염과 머리에 쓴 수건이 인상적이어서 한 장 담아가고 싶은 거라고 했더니 선뜻 포즈를 취해준다.
낸시호텔의 안주인이 일러준대로 세르비스를 타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가다 보니 방향 감각도 잃어 다시 물어서 갔다. 가다 보니 정육점도 보이고
시샤 가게도 보이고
극장도 보인다. 미국을 싫어하는 나라인걸로만 알고 있었지만 널린 극장프로는 미국영화 일색이었다. 의외넹?
세르비스 승강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약간은 후미진 곳에 있었고 그 곳이 승강장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이야기해줘서 알 정도로 무언가 특징도 없었다. 흰색 승용차처럼 생긴 택시(세르비스)가 몇 대 몰려 있을 뿐이었다.
알고 있던 것보다 세르비스 합승금액이 올랐다. 바가지인지도 모르지. 어쨋든 11JD 란다. 세르비스에 올라탔더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려준다. 여기서 다시 합승허용 기준인 4명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세르비스는 승용차의 형태든 미니버스의 형태든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어디에서도 사람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대개는 30-40분이내에 모두 찼다. 같은 관광객이 아닌 보따리장사로 보이는 현지인들과 4명이 채워졌다.
어쨋든 이 곳으로부터 4시간여에 걸쳐 다마스쿠스로 가서 팔미라-->알레포-->하마-->홈즈를 둘러본 뒤
레바논으로 넘어가 트리폴리-->비블로스-->베이루트-->바알벡을 둘러본 뒤
12월 30일 아침에서야 다시 요르단으로 돌아왔다. 2개의 국경[레바논-시리아국경(입국세 20유로 또는 24달러 재징수), 시리아-요르단국경)을 넘어서 페트라까지 가는 것이 당일 일정으로 하루 종일 이동만 하다시피 했다. 레바논 바알벡으로부터 다마스쿠스까지가 약 3시간, 다마스쿠스에서 암만까지가 3시간(암만에서 다마스쿠스로 갈 때는 4시간이었는데 어쨋든 1시간 세이브했다), 암만에서 페트라가 있는 와디무사까지가 3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래의 사진은 국경을 다니는 암만의 세르비스 사무소. 바로 여기서 출발하고 여기서 내려준다.
2008. 12. 30(화)
요르단 암만을 떠나 시리아를 거쳐 다시 레바논을 방문한 뒤 요르단으로 되돌아 오던 날 아침으로 건너 뛴다. 레바논 바알벡에서 아침 6시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은 뒤 7시에 미니버스를 탔다. 운이 좋게도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버스가 온 탓에 기다는 지루함이나 시간 낭비가 없어 좋았다. 다시 차우라에서 세르비스로 갈아탄 뒤 다마스쿠스 알 수마리아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10:30 정도였다.
전날 바알벡에서 만나 여기까지 동행했던 러시아 처자인 타냐의 팔미라행 교통편을 함께 알아봐 주려던 참에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암만으로 가지 않겠느냔다. 나는 잠깐 타냐보구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해놓고 원하는 세르비스 요금과 도착장소를 물었다. 700SP(100유로 = 6400시리아파운드)란다. 바가지 씌운 요금은 아닌 것 같아 곧 돌아올 테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타냐에게로 갔지만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삐졌나보다. 어제 저녁부터 경수와 하던 이야기 중에 타냐와는 좀 떨어져서 다녔음 좋겠다고 말한 것과 불편한 점등을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어감으로 눈치를 챈건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타냐와는 작별인사 없이 헤어졌다.
여기서 다시 11:00경 시리아와 요르단의 국경을 넘는 세르비스를 탄 나는 암만에 오후 2시가 좀 넘어 도착했다. 나는 하루라도 절약하기 위해 오늘 당장 페트라가 있는 와디무사로 가야 했다. 요르단에 도착하자 마자 곧바로 택시를 타고 페트라 유적이 있는 와디무사행 버스를 타기 위해 와하닷 버스터미널로 갔다. 택시비 겂나 비싸다. 얼마 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6.5JD나 나온다. 혹시라도 와디무사행 버스를 놓치기라도 할까봐 택시를 탔던 거였다. 도착해서 보니 그래도 여유가 있는 시간이었다. 3시차가 막차란다. 표부터 사려고 했지만 표는 없다. 시간이 없으면 빵을 사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대기중인 버스도 아직 없으니 시간이 남아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밥부터 먹었다.
치킨 반마리에 샐러드를 시키니 빵이 딸려 나온다. 그런대로 먹어줄만하다. 여기에 밥을 Half 추가시켰다. 이거 먹는데 든 비용은 3.5 디나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14:30분경 와디무사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이미 자리가 다 찼다. 버스가 중형버스였고 버스가 오자마자 모두 찬 것 같다. 그럼에도 아직 출발시간이 안되어서 그런가 출발대기중이었다. 그 버스는 15:00 출발예정이었는데 내가 넘 여유를 심하게 부렸나? 젠장.
바로 옆 한 택시기사가 와디무사행 버스를 놓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얼마냐고 물으니 1인당 10JD란다. 버스는 5JD이니 그리 크게 비싼 것도 아닌 셈이다. 나를 포함해 4명이 곧 합승객으로 모여지고 와디무사를 향해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와하닷 터미널을 떠났다.
가다 보니 저녁노을이 참으로 볼만했다. 택시 앞자리에 여유롭게 앉아 장거리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가다가 일케 생긴 휴게소에서 잠깐 쉬어 갔다. 이 곳에서 마신 터키시 커피(Turkish Cofee) 맛이 일품이었다. 누군가 이 곳을 지난다면 이 곳 커피코너에서 꼭 한잔 마셔보길 권한다.
저녁노을은 오랜 시간동안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어 장거리 여행이 심심하거나 지루하게 느낄 틈도 없었다.
저녁 8시쯤 택시에서 내리자 호텔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그 호텔을 알고 있어서 가는 길을 일러준 대로 찾아갔다.
도미토리가 엄청 싸다. 도미토리는 3JD 아침식사는 2.5JD 저녁 부페식은 4JD였다. 2층침대가 7개 들어가는 방이었다. 이 곳에 영국인 청년 2명(Mart와 Adrian), 일본인 3명(사사키, 마사요시, 료헤이), 홍콩인 1명(췽킨홍), 중국계 미국인 여자 1명, 까칠한 인상의 백인 할머니 1명, 역시 국적을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젊은 백인 처자 1명이 이 방에 묵었다. 까칠한 인상의 할머니만 제외하곤 모두가 서글서글한 인상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마트라는 청년은 내가 어떤 여정을 거쳐 이곳에 왔으며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를 관심있게 묻고는 자신이 얼마나 값싼 비행기를 타고 왔는지를 자랑삼아 이야기하면서도 그 대신 밥이 제공되지 않아 가방속에서 수시로 뭔가 때맞춰 꺼내 먹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더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래도 여행은 호강할려고 하는게 아니니 이런게 있다면 우선 이용하고 볼일이라고 맞장구 쳐줬더니 디게 좋아할 만큼 순수한 청년이었다. 항공사 이름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울 나라에도 이런거 있음 좋겠다. 애드리언이란 친구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이 별로 없다. 사사키가 밖에 있다가 들어와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네서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주고 받는 이야기는 여행자들끼리라 그런가 거기서 거기다. 그 뒤로 췽킨홍, 중국계 미국인 처자(이름 모름), 마사요시, 료헤이 등과도 인사를 나누고 금방 친해졌다. 방에 화장실 겸 샤워실이 안 쪽 좌우로 1개씩 모두 두 개가 있다. 그런데 웃기는건 잠금장치가 없다. 문도 자바라식으로 되어 있어 밀폐도 안된다. 샤워할 때 안에서 물소리가 나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게 아니면 알 수 없다. 물론 노크라는 문화적인 방법이 있긴 하지만 다들 밖에 나간줄 알고 아무생각없이 열거나 급해서 혹 열었는데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아임 소리" 한마디면 될 것 같다. 똥싸다 남에게 보이면 조낸 쪽팔릴거 같은디... 그런데 마사요시란 친구는 바지를 갈아입을때 누가 있거나 말거나 휙휙 잘도 갈아입는다. 이성에게 빤쯔 보여주기 민망해하는 내가 보고는 좀 특이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샤워하러 들어가면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상태이고 젖은 타일바닥에 바지 끝을 적시지 않으려고 노력해가면서까지 입고 들어가 입고 나왔다. 그런데 으잉? 국적을 모른다고 전술한 그 처자도 팬티에 티셔츠 차림으로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그 태연함에 놀랐다. 나 넘 순진했다보다. ㅡ,.ㅡ;
점심을 늦게 먹은 관계로 속이 그들먹해서 저녁식사는 건너 뛰었다. 다들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거나 호텔 제공 부페식으로 갔다. 밥생각이 없는 저녁때 할 일도 없고 해서 바로 나는 마사요시와 함께 아라비아 카페로 가서 차와 시샤를 즐겼다. 내일 점심거리도 샀다. 페트라 안에는 값이 저렴한 식당이 없어서 미리 사갖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그런데 바나나 2개와 포장 과자하고 물 1리터들이 한 병 샀는데 6.5 디나르나 받는다. 나와 마사요시는 그 값에 놀랐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내고 나왔다. 역시 이곳 와디무사는 페트라라는 관광지때문에 물가가 살인적이었다. 각자 돈내고 나왔지만 엉성한 카페에서 차한잔에 시샤하고 나왔는데 7JD나 된다. 시리아 기준으로 보자면 어이없는 값이다. 어쨋든 담배를 끊은지 7년이 다되어가는 내가 중동지역 여행 내내 저녁이면 저녁마다 아라비아 카페를 찾아 시샤를 즐겼다. 난 항상 타바코는 사용하지 않고 과일향이 첨가된 숯만을 사용했다. 지금도 시샤가 그립다. 작년 이집트 여행때 사다 놓은 시샤가 있는데 과일향 숯만 좀 사갈까 하다가 이 것도 혹시 중독성이 있는게 아닐까 싶어 생각을 접었다. 사진은 시샤를 즐기고 있는 마사요시군.
잠을 자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나가기 전 카페의 주인이 우리에게 사기를 쳤다. 손님도 거의 없는 이 카페에서 내일은 연말파티를 추최한단다. 따라서 내일은 1인당 5디나르에 시샤와 차를 무제한 제공한단다. 오늘은 일단 속아넘어 가고 어차피 낼도 저녁이면 특별하게 할 일도 없으니 다시 올텐데 5디나라라면 더 좋지뭐. 우리가 돌아오자 저녁먹고 일찍 돌아와 심심했던지 사사키가 어딜 다녀오느냐고 묻는다. 아라비아 카페를 다녀왔노라고 하니 얼마들었냐고 묻는다. 이야기해 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는 가격이 싼 호텔과 레스토랑 정보에 정통해 있었다. 자기 같으면 그런덴 안간단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멍하니 있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 나하고는 생각이 좀 달랐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구입한 물과 빵을 보녀주면서 뒤늦게 이야기해준다. 이거 사느라고 든 돈은 0.8디나르였다나? 놀란 마사요시와 내가 어디서 샀냐고물으니 물은 "오리엔트 수퍼마켓"에서 샀고 빵은 아래 사진의 레스토랑에서 샀단다. 이날 나는 절실히 느꼈다. 역시 정보력이 최고다. 이 방 투숙객 중 일부는 암만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담날 페트라로 간다. 나와 마사요시, 사사키, 료헤이, 췽킨홍은 해뜨기 전에 와디무사로 가기로 하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08. 12. 31(수)
05:30분쯤 일출을 본다며 모두들 새벽부터 불을 켜고 부시럭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일어나 씻고 전날 챙겨 놓은 작은 가방을 챙겨들고 함께 나섰다. 해뜨기전 어스름한 시야속에 찬공기를 가르며 차량이 다니는 대로 내리막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페트라 입구까지 걸어 30분정도 걸렸다. 입장권은 1일권, 2일권, 3일권을 판다. 1일권은 21JD(22유로정도?)로 엄청난 값이다.
전날 호텔 게스트북을 보니 한글로 개구멍이 어디에 있더라는 한 젊은 남정네의 글이 있고 두 쪽 더 넘기니 개구멍으로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젊은 처자의 한글 권유가 또 있었다. 언제부터 CCTV가 설치되어 있었는지 한국 학생들이 찍혀 페트라는 제댈 보지도 못하고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훈방조치 되어 쫓기듯 이 곳을 떠났더라는... 먹는 것 조차도 케밥같이 최저가의 음식만 먹고 호텔도 가장 싼 곳만을 전전하는 돈없는 학생들에게 4만원이나 되는 돈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세상 구경도 하고 공부도 해가겠다고 왔으니 여기서 이 역시 보지 않을 순 없어 모처럼 걸었던 모험이 실패로 끝났으니 안쓰럽다. 그들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는 할 것 같다. 나같은 직장인이 그랬다면 어글리 코리안이네 어쩌네 해가며 욕을 했겠지만 그들이 한 실수는 밉지가 않다. 아마도 돈없는 학생들이니 그들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으리라 믿고싶다. 하나의 교훈과 추억으로 기억하되 악몽으로 기억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하루면 모두 다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나름 조사결과에 확신을 갖고 1일권을 구입했다. 모두가 그걸 알고 있는지 1일권을 구입했다. 좌로터 췽킨홍, 료헤이, 사사키, 마사요시 그리고 나.
조금 걷다 보니 인디아나 존스에서 보았던 듯한 그 절벽협곡이 나온다. 아직 일출은 없는 것 같다. 결국 이날은 흐린 관계로 일출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워낙에 일찍 일어난 우리 외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에겐 일종의 선물었다. 다른 사람들을 배경에 넣지 않은 사진들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일출을 포기한다 쳐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 곳을 다니다 보면 가로방향의 흔적 등으로 미루어 이 곳은 과거 물이 흘렀던 곳이라고 한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인데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셀라가 이렇게 바뀐 것 같다. 이곳에 갈 때는 대개 동쪽에서 좁은 시크 계곡을 따라간다. 페트라에서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이후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아랍족의 하나인 나바테아인이 이 도시를 점령하고 자신들의 수도로 삼았던 BC 312년 이전에 도시가 어떠했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의 통치 밑에서 향료교역의 중심지로 번창했다. 106년 로마인들이 침입하여 나바테아인을 몰아낸 뒤에도 페트라는 로마 제국 치하의 아라비아 지방에 편입되어 계속 번영했으나 무역로가 바뀌자 상업이 점차 쇠퇴했다. 7세기에 이슬람 제국이 침입한 뒤 역사무대에서 사라졌다가 마침내 1812년에 스위스의 작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여행중에 발견되었다. 1958년부터 시작된 조사에서 영국고고학대학 예루살렘 분교와 미국동양학대학의 조사단은 로마 통치 이전의 페트라에 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여러 바위 유적지 중의 하나인 앗데이르는 정면을 기둥으로 장식한 모습이 인상적이며 3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페트라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무덤인데, 많은 무덤이 정교한 겉모양을 가지고 있어 지금은 거주지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직접 보고 온 나로선 마지막 문장엔 고개가 갸웃... 어쨋든 영화에서도 등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는 바로 그 유적의 첫번째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짜릿~~~!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우리는 각자 가지고 온 카메라에 이 곳을 정신없이 담기 시작했다. 담고싶은 만큼 담고 나서 내가 단체사진을 제의했고 모두가 다시 모였다.
독사진도 하니씩 찍은 뒤 사사키가 지금부터 혼자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각자 다니고 호텔에서 저녁때 보자고 제의했다. 모두가 그게 좋겠단다. 우리는 흩어졌다 다시 한 둘 모였다가 또 흩어졌다가 또 한 둘 만나 언젠지 모르게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도 서로에게 구애되거나 배려같은거 없이 다녔다. 이런 취향마저도 나와 잘 맞는다. 때로는 마트와 애드리언도 만나고... 넘 재밌다. ㅎㅎ
난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이각도 저각도에서 보며 정신없이 이 멋진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보면 볼수록 놀랍다. 멀쩡한 바위벽을 기냥 다짜고짜 파들어가 만들어낸 이 거대한 건축물은 어디에서 그 유래를 또 볼수 있을지 모르겠다. 듣보잡(경의를 표하고자 하니 잡은 빼자)이다.
안에 들어가 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깥에서 보는 규모와는 다르게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저 횡뎅그렁한 공간 하나 나온다. 안에 절대 사람이 거주했을리 만무한 그런 공간이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공간은 안에 없다. 신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곳을 떠나 조금 더 가니 파들어가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밋밋하게 깎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을 보니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님 말구.
바로 이 곳을 지나며 왼쪽을 보니 삐딱선이 보인다. 몇 몇 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지만 이 길로 가는 사람들은 별로 안보인다. 남들 안가는데 한 번 가보자 싶어 일단 계단을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안가본 데 없이 다 다닐 작심이었다.
한 참을 오르니 정상이 나온다. 여기서 페트라 전체를 함 내려다 보자.
전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정상이다싶은 곳에서 길도 없는 왼쪽으로 틀어 올라가 봤다. 그나마 이 곳을 오르는 몇 몇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가니 나는 그 반대로 가 본 것이다. 반대편 전망은 어떤지 궁금했다.
다시 길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한 현지인 처자가 악세서리를 팔고 있길래 내려가는 다른 길이 있는지 물었다. 생각 외로 썩 훌륭한 영어로 어느 방향에서 왔냔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더니 반대방향의 전망대 오르길 권유하더니 그리로도 내려가면 다른 유적을 볼 수 있을거라고 말해준다. 고맙단 인사후 올라가 보았다. 그 가파른 길을 나귀 타고 오르는 현지인이 눈에 들어온다. 당나귀는 우리 생각에 한 번 고집피우기 시작하면 요지부동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렣게까지 혹사를 당하니 나라도 그러겠단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서 당나귀를 타는 값은 결코 비싸지 않다. 이 곳 페트라를 빠짐없이 보자면 다리를 무척 혹사 시키기 때문에 혹자는 정 힘들면 나귀를 타고 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작은 짐승 위에 옿라타 혹사시키는건 왠지 내키지 않았다. 워낙에 걷기 좋아하고 유독 단련된 나의 두 다리가 있잖은가.
이 곳 전망대에는 그래도 몇 몇 사람들이 보인다. 온통 바위산이라 크게 볼 것은 없지만 적잖은 노력으로 올라온 등반이 내려다 보기에 족히 흡족하다. 셀프 타이머를 이용한 셀카 한 컷.
영화에서 본 시나이 산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왔던 길과는 반대편으로 내려가다 말고 전날 사놓았던 바나나와 비스킷, 물 등을 꺼내 아침식사를 하며 역시 셀카 한 컷 이 때 쯤에야 구름 사이로 볕이 들기 시작했다. 일출은 오래전 물건너 갔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바위산 아래 까마득한 절벽을 내려다 보며 아침을 먹는 기분은 별천지에 온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곳을 내려가는 길이 아니고선 결코 보지 못하고 넘어갔을 유적들이 적잖이 보인다. 내 기억에 이 곳이 귀족의 무덤이었던 것 같다.
과거에는 폭포가 있었던 곳인가보다. 물자국이 보인다.
여기서 더 내려가다 보니 고양이들이 몇 마리 눈에 띠는데 먹을것을 바라는지 내 주면을 배회했다. 내가 가진 것 중 고양이들이 먹을만한게 없어 미안했다. 혹시나 해서 점심꺼리 중 하나인 바나나를 조금 떼어 내줘봤지만 개라면 몰라도 역시 고양이는 이게 뭔가싶어 와 봤다가 이내 가버린다.
이 곳에는 병사의 무덤이라고 명명된 두 유적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반대편 무덤 안에서 내다 보며 찍은 사진.
여기까지 오면 산에서는 일단 다 내려온 셈이다. 여기서부터 내가 올라오기 전 그 길을 찾자니 쉽지는 않았었다. 산 위에선 길이 보였지만 여기서 안보였고 감만 잡혔다. 발 속에 모래를 퍼담아가며 30분 정도를 걸으니 그제서냐 일부 건너뛴 처음 그 길을 찾았다.
나는 계속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건너뛴 길은 돌아갈 때 보면 된다. 이 곳 페트라는 중간까지 보았고 담날 다시 와서 본다 해도 왔던 똑같은 길을 다시 와서야만 다음 유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장담하지만 1일이면 모두 다 보고 시간이 남는다. 각설. 아래 사진의 장소가 있는 곳으로 나오자 나는 다시 이 곳에 도달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또 걸렸다.
발품 적잖이 팔게 된다. 이 곳을 보고 나면
아래의 길이 나온다. 이 곳이 과거 중심가였는지 기둥과 신전터가 있다.
신전터로 올라가는 계단. 신전터에는 그야말로 터 외엔 남은게 없다.
바로 그 길 끝에 위치한 미상의 건물 흔적. 이 주변엔 음식점이 몇 군데 있다.노천에 울타리를 치고 조금은 럭셔리한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놓은 음식점은 이용객이 별로 없었다. 마을 내에서도 음시가값이나 물값이 살인적이었으니 여기는 학살수준이겠지. 글쎄 유럽인들이나 일본인들이라면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지난 여름 그리스에서 식사 한 끼에 35유로 안팎이 깨졌던걸 생각해보면... ㅡ,.ㅡ;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물흐름의 자국으로 보이는 곳이 많다. 기암괴석이 많이 눈에 띤다.
아찔한 절벽도 보이고
조금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니 절벽사이 계단이 나온다.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끝이다 싶은 곳이 나올때까지 무조건 걸어서 오르고 또 올랐다. 도대체 끝이 어디인지 끝이 있기는 한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한참 오르다 보니 마트와 애드리언 그리고 사사키가 위에서 볼거 다 보고 만났는지 셋이서 내려온다. 조금만 더 가면 끝이란다.
그 산 꼭데기에 이런 것이 하나 더 나왔다. 처음 보았던 것보다는 약간 밋밋한 모양새지만 규모는 더 큰 갓 같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사진과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보았던 그 건물은 처음에 본 그것이고 이 것은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다.
규모로 보자면 아래쪽 출입구 턱높이를 설명하는게 좋겠다. 어떤 유럽인 여자가 용케 올라가긴 했는데 내려오자니 너무 높아 무척 난감해 하고 있었다. 내 도움으로 간신히 내려온 그녀는 자기가 방금 내려온 그 턱을 다시 올려다 보며 내가 거길 뭐하러 올라갔었나 하는 눈치로 한숨을 쉬었다.
날은 여전히 구름끼고 흐렸다. 길 건너편에는 카페가 있어 적잖은 수의 유럽인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췽킨홍과 료헤이 그리고
마사요시를 다시 만났다.
이 곳에서 벗어나 조금 더 들어가니 세상의 끝이라고 표기된 곳이 나왔다.
그냥 길이 끊어지고 저 멀리 바위산들로만 이루어진, 태양마저도 저버린 우중충한 황량한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왠지 아웅다웅하며 저잘났다며 서로를 밟고 올라간 인생의 끝이 마치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러 이 곳에 올라온 의미를 두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야에는 구름낀 하늘 아래 바위산만이 있고 나와의 교감을 일으키는 것은 요르단기를 일직선으로 세워 펄럭거리게 만드는 센바람뿐이었지만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를 나나름대로 되새겨보게 되었다. 마사요시와도 또 헤어졌다. 레스토랑이 몰려있던 곳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다리가 완전히 지쳐 있었다. 기념품과 사진첩을 파는 곳으로 들어가 대충 둘러보고 이 곳에서 발굴된 유적을 전시해 놓은 곳을 보고 나오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상수도 파이프가 있었고 그걸 내눈으로 봤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대단한 문명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잠시 쉬고 나니 또 하나의 샛길이 보였다. 남들이 안가는곳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에 그리로 들어가 보았다. 가다 보니 뚫린 길 자체가 물길이었던 듯하다. 자갈이 길따라 울퉁불퉁하게 깔려 있어 마치 물마른 물길로 보이는데 그나마 길도 철조망을 철조망 너머는 잡나무만 무성해서 더 갈 곳도 없었다. 다시 되돌아간 나는 이젠 다 보았곻 더 볼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입구로 되돌아 가면서 중간에 끊어먹은 길로 가면서
그 때 보지 못한 것을을 마저 감상하며 쉬엄쉬엄 걸었다.
처음 만났던 그 건물로 돌아와 보니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찍기에 바빴다. 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불황만 아니었다면 정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그를 탓하는 것이 아니고 심각한 세계경제불황을 수시로 일깨우게 된다.
출입구 밖으로 완전히 나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바로 근처에 경찰인지 뭔지 몰라도 왠지 고전적인 복장을 한 사내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경찰 같기도 한데 다른데서 본 경찰은 현대화된 복장이었는데 잘 모르겠다.
이 곳을 나온 것이 오후 두시경이니 8시간을 이 페트라 안에서 보낸 셈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방엔 나 한사람뿐이었다. 샤워를 하고 쉬고 싶은데 더운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돌아다닐땐 몰랐는데 난방 없는 이 방이 이상할 정도로 한기가 몰려왔다. 씻지도 못한채 침낭 안으로 들어가 이불까지 덮고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버텼다. 한시간정도 지나니 나머지사람들이 한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만 그런줄 알았더니 다들 추운지 담요를 뒤집어 썼다. 얼핏 잠들었다가 깨나니 아무도 없다. 차라리 리셉션에 가면 춥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에 가 보았더니 그 좁은 리셉션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담배들을 어찌나 피워대는지 너구리 소굴이었다. 동거자들(?)도 모두 그 곳에 있었다. 나는 심심풀이로 게스트북을 뒤적여 한국인들이 쓴 글들을 보았다. 한국인들은 어딜가나 흔적 남기길 좋아했다. 하지만 그 곳에 적힌 정보들은 나도 뻔히 알거나 별로 도움 안되는 정보들이었다. 나도 몇 자 끄적였다. 페트라에 들어가 먹을 점심을 준비하는데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사라는 훈수였다. 젊은 친구들만 하는 짓에 동참하고 보니 나도 회춘하나보다. ㅋ. 저녁이 되어 샤워를 하고 나서야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셉션에서 한국인 친구를 한 사람 만났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이라 헌 번 더 쳐다 봤더니 피는 물보다 진한건지 역시 같이 쳐다 본다. 한국인이죠? 했더니 예 맞아요. 반갑습니다라면 대답한다. 이 곳 페트라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이었다. 이집트에서 넘어왔단다. 최재승이라는 이 친구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에 위업이 되었고 출근 전 배낭여행이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저녁부페 시간이다. 그는 저녁부페 예약을 하지 않았는지 은근히 고민하다가는 나가서 값싼 펠라페를 먹겠다며 영국인 친구들과 함께 나갔다. 나는 일본인 과 홍콩인 친구들과 함께 만찬을 즐겼다.
저녁 식사후 나는 전날 약속대로 마사요시와 함께 아라비아 카페로 가기로 했다. 사사키에게 의견을 물으니 좋단다. 우리는 셋이서 나갔다. 가서 보니 송년파티는 고사하고 손님도 우릴 빼니 없다. 웃기는 소리가 따로 없다. 어제 송년파티가 있으니 꼭 낼 다시 오라고 우리에게 영어로 말했던 그치는 없고 영어라곤 거의 못하는 종업원만 있었다. 혹시나 해서 그친구에게 파티는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지 어깨를 들썩인채 양손바닥을 보이며 못알아 듣는다는 시늉이다. ㅡ,.ㅡ;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사요시와 나는 시샤를 주문했고 사사키는 차만 마셨다. 걍 앉아 있기 맹숭맹숭해서 테이블에 놓인 카드를 집어 들었다. Four Card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나도 해본지 오래되어 기억을 되살린 뒤 같이 해보는데 이 친구들 전혀 방법을 모르는 듯 했다. 하다 보니 나도 했갈린다. ㅡ,.ㅡ; 그냥 하자니 역시 맹숭맹숭해 셋이서 잔돈을 있는대로 긁어내 서로 주고 받으며 했다. 물론 노름은 아니고 걍 동전만 오가는거다. 동전이 모자라 바꿔달라고 했더니 영어를 모르는 이친구 안된단다. 왜 안되냐고 했더니 계속 No만 연발하며 눈만 휘둥그래진다. 다른 한 팀에서 카드를 하던 한 사람이 돈이 오가는 것은 불법이란 안된다는 거였다. 노름이 아니라고 했더니 역시 알지만 하지 않는게 놓겠단다. 이해가 안갔다. 우린 모자라는 동전 대신 바닥에 떨어진 파손 카드와 홍차 택을 동원해 부족한 동전을 대신했다. 10시쯘 되니 문을 닫아야 하니 나가 달란다. 어이가 없었다. 어제 이야기와 다른 것은 파티뿐 아니라 문닫는 시간도 약속했던 새벽 세시가 아니었다. 기분이 나빴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이 얼빠진 친구는 왜 팁을 안주냔다. 부아가 나려고 했다. 당신 서비스가 뭐 좋은게 있어서 팁을 요구하느냐고 물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입구쪽에 한때 앉아 있다가 나간팀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폴리스가 어쩌고 저쩌고 했다. 말인 즉슨 너희들 돈 갖고 노는거 경찰이 보았지만 내가 무마시켰는데도 그냥 가냔 소리같다. 악당도 아니고 이건 완전 듣보잡! 더러워서 약간 쥐어주고 나가려 했더니 사사키가 주지 날라고 말린다. 드디어 어제 파티 어쩌고 저쩌고 하던 인간이 들어왔다. 나는 이사람 서빙이 맘에 안들고 팁을 줄 이유는 더더군다나 없다고 고함을 쳤다. 오히려 문제가 뭐냐고 묻는데 어이가 없다. 문제는 없지만 당신의 종업원이 문제를 만들고 있더라는 일갈 후에 나와버렸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정의 마지막인 요르단은 인상이 좀 좋게 느껴지질 않는다. 돌아온 우리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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