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중국어학연수

중국어학연수10-1(청더)

코렐리 2010. 8. 20. 17:55

2010.7.4(일)

일찍부터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는 바로 이 곳 청더에 볼거리가 많고 주어진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06:30 일어난 나는 씻고 옷을 입은 뒤 작은 가방 하나 꾸려 어제 갔던 바로 그 죽 전문점으로 다시 갔다. 새벽에 비가 한바탕 억세게 쏟아부었지만 숙소에서 나올 때는 이미 그쳐 있어 비교적 쾌적한 날씨였다. 죽과 만두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한 뒤 음식점을 나온 시간은 07:45분이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이내 그쳤다. 그 덕에 아침 출발은 쾌적하고도 시원했다.

 

나는 오래된 사찰인 푸닝쓰(普寧寺)로 가기 위해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6번 버스를 타고 다포어쓰(大佛寺)에서 내렸다. 다포어쓰(대불사)는 정식 명칭인 푸닝쓰(보령사)의 또 다른 이름인데 이 곳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상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푸닝쓰보다는 다포어쓰로 더욱 알려져 있다. 표값이 상당히 비싸다. 80위엔. 은근슬쩍 학생증 내밀어봤지만 단기유학생은 짤이 없다.

 

정문을 통해 입장하면 가장 먼저 정면에 보이는 비정. 안에는 당연히 비석이 설치되어 있다.

 

비정 왼쪽에는 종루가 있는데 매일 아침 108번 타종한다고 한다. 108번뇌의 숫자다.

 

오른쪽으로는 고루가 자리잡고 있다.

 

비정을 지나면 정면에 천왕전이 있다. 여기엔 당연히 사천완상이 있다. 이를 넘어 가면 다시 대웅보전이 있다. 중앙 앞쪽에 향로가 놓여져 있고 막대같은 향이 활활 타는 향로는 뿌연 연기가 쉬지않고 뱉어낸다. 수많은 관광객이 보이지만 대부분은 중국인들이다.

대웅보전 좌측으로 돌면 티벳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마니차가 길게 배열되어 있다. 네팔여행의 그리움이 살짝 떠올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돌려봤다. 대웅보전에는 3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는 코끼리나 사자 등에 올라탄 18나한상이 배열되어 있다. 대웅보전 좌우에는 서배전과 동배전이 있는데 서배전과 동배전에는 보살상이 각각 모셔져 있다.

 

이 곳을 지나 다시 왼쪽으로 돌면 또하나의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이 곳에는 각종 문양의 설치물과

 

싣다르타의 탄생으로부터 득도하여 부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그림이 배열되어 있다.

 

아래 사진의 좌측 실루엣은 대웅보전이고 오른쪽 지대 높은 곳에 위치한 누각이 대승지각이다.

 

대승지각을 향해 계단을 타고 오르다 보면 비교적 높은 지대에서 대웅보전의 뒷태를 감상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청나라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지만 꼭데기의 금동탑은 티벳불교의 양식이다. 

 

올라가서 뒤돌아 보면 정문으로부터 대웅보전 좌우로 빼곡히 배열된 건물들이 보인다. 최초 건립 당시에는 이 건물들이 그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았을테지만 좌우의 이러한 소규모 건물들은 기념품 등을 파는 매점 등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 곳 최대의 볼거리는 바로 대승지각과 그 안에 모셔진 관음보살상이다. 보살상의 규모가 하도 어마어마해서 아래 사진의 누각 내부공간을 거의 모두 채우고 있다. 누각 위에 설치된 다섯개의 금빛 탑은 티벳 양식이라고 한다. 기와와 단청은 단연 청나라식이다. 보살상의 높이는 22.28미터이며 허리 둘레만도 15미터에 이르고 무게는 110톤이라 하면 그 규모를 대충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믿는다. 이곳의 보살상은 세계 최대의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쓴 이 보살상의 팔은 일일이 세어 보니 좌우로 각각 16개로 총 32개나 되었다(나 너무 한가한 짓 한거 아닌가? ㅡ,.ㅡ;) 일부는 합장하고 일부는 금강저를 쥐고 있고 일부는 연꽃을 쥐고 있다. 불상 좌우에는 불제자인듯한 두 명의 목상이 경배하는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도 물구하고 몸과 팔을 표현한 인체의 곡선은 유려하기 그지없다.  보일듯 말듯 스치는 온화한 미소와 반쯤 감은 자비의 눈이 이미 보는이로 하여금 온화한 위엄을 느끼게 마련인 것이 불상인데 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인해 압도되는 신비스러운 체험까지도 하게 된다. 누각 내부의 불상과 보살상들은 촬영이 엄격이 금지되어 있어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으니 아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승지각 주변에는 티벳불교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의 탑과 법전은 만다라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대승지각 앞에는 티벳전통의상을 입은 악사들이 불공드리러 오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연주를 했다. 진드감치 앉아 감상하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들어오는 불공자들때문에 짧게 짧게 연주하니 앉아 감상하기에는 감질나는 상황이었다.

 

대승지각의 뒷모습은 앞모습과 달리 하단부에 티벳양식을 기초로 하였다.

 

대승지각 뒤쪽으로도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들고 있는 향이 몽둥이처럼 무식해 보이지만 이정도 굵기와 크기면 앙증맞은 정도다.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찍은 대승지각의 모습. 여기선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푸닝쓰는 청나란 건륭 20년에 착공해 4년의 시간 끝에 완공한 사찰이다.

 

모두 둘러보고 입구로 되돌아 가며 한 컷.

 

대웅보전 옆에 설치된 마니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줄을 지어 돌려본다.

 

이 절의 신도들인지 무언가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곳을 나와 푸타오종청즐미아오(普陀宗乘之廟)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근처에서 내려 조금 걸었다.

 

지도를 보고 푸타오종청즐미아오(普陀宗乘之廟: 이하 보타종승)와 쉬미푸쇼우즐미아오(須弥福壽之廟:이하 수미복수)는 아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 두 곳을 방문하기에 더 없이 좋았다.

 

우선 먼곳부터 보기 위해 보타종승부터 가 보았다. 이 곳 역시 표값 장난 아니다. 역시 80위엔.

 

이 곳도 푸닝쓰와 마찬가지로 들어가자마자 비정부터 눈에 띠었다.

 

안에는 3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곳에[는 중국어, 만주어, 티벳어, 몽골어 등 4개국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 뭔소린진 모르겠고...

 

비정을 지나면 곧바로 눈에 들어 오는 티벳양식의 오탑사(五塔寺) 그러잖아도 가고싶어 환장하는 티벳에 대한 갈망을 자극한다.

 

이 번엔 청조 양식의 문이 보인다. 보타종승은 건륭제 60세, 황태후 80세를 기념하기 위해 건륭 32년인 1767년부터 4년에 걸쳐 축조된 사찰이다. 청더에서 피서산장과 함께 가장 많이 찾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다.

 

이 문을 통과하면 강렬한 주주빛의 다홍타이(大紅臺)가 눈에 들어온다. 사각의 큰 건물에 두 개의 거대 탑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전형적인 티벳식 건물에 청나라식 탑이 가미된 형태다.

 

가까이 가니 바람에 희미한 바람에 살랑거리며 나부끼는 타르초가 눈에 띤다.

 

건물 자체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건물은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을 본떠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높이 18미터, 총면적 10,000제곱미터의 기저부 위에 높이 25미터, 폭 60미터의 7층건물로 세워졌다. ,

 

다홍타이와 타르초를 배경으로 한 컷.

 

이 곳은 건륭제가 달라이 라마를 위해 지은 곳으로 봐좌는 특히 달라이 라마 8세를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역시 촬영 통제로 사진 없음) 당시 달라이 라마는 13세로 티벳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건륭제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이 곳은 뭔지도 모르고 함 들어가 봤다. 차이션디엔(財神殿)은 제목 그대로 재물을 관장하는 신인가 보다. 들어가니 관리인이 합장하고 나서 재물신에게 헌금을 내라고 한다. 그런다고 재물이 들어올까. 어차피 큰 돈을 내지도 않았지만 왠지 삥뜯긴듯한 기분은 뭐지? 재물신님! 삥뜯어간거 두 배 이상은 갚아주는거요?

 

이곳은 다홍타이 내부로 좌 우로 같은 공간이 대칭으로 설치되어 있다.

 

안에서 기념품도 팔이고 있지만 구매욕을 자극하는 물건은 없었다. 하긴 어지간히도 기념품같은거 안사기로 악명이 높은 나니까, 통과.

 

내부에 무대 비스므리하게 생긴 것이 설치되어 있고 그 무대를 향해 관광객들이 앉아 있었다. 무언가 공연이 이루어질건가 싶기도 하고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기다리다 보니 황제와 황후의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내관과 궁녀들을 앞세우고 나타나 춤아닌 춤을 추며 위엄없는 위엄을 나타냈다. 왠지 어설프고 엉성한 공연에 앉아 쉬며 거저 보는 공연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건륭제도 이 곳에 앉아 공연을 봤다고 하는데 황제 앞에서 이런 엉성하고 지루한 공연을 하지는 않았겠지. 게다가 황제나 입는 황색 용상까지 입었다면 능지처참감인가 아님 구족을 멸할 역모인가... 

 

나는 남은 공간을 마저 둘러 보았다.

 

이러한 공간은 사진을 찍어도 누구 하나 찝쩍거리며 시비거는 사람은 없지만

 

 

내부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간덩이 콩알만한 내가 그나마 슬쩍 찍은 사진이라곤 아래의 실내 사진과이 고작이다. 비와 태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인지 탑이 건물 내에 아래의 사진처럼 내부에 설치되어 꼭데기층을 찌르고 있다. 이게 두개였던가 네개였던가??? 

 

 

 

 

 

황금색 지붕도 화려함의 극치를 더한다.

 

옥상으로 나가니 수미복수도 내려다 보인다.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