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산고 끝에 [라이선스LP 연대기] 출간을 앞두고...
음악에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던 1978년. 중학교 2학년이던 이 시절부터 돈만 생기면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보상도 없을 충성심을 황학동 중간도매상 주인장들에게 바쳤다. 이 때 생긴 개버릇은 고스란히 평생을 쫓아다니며 정신력 약한 나를 조종해 온전히 음반들한테 그 큰 안방까지 바치고도 수납된 음반들의 동지를 채워 줄 공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도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무슨 미친 짓인가 자문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오리지널 음반이 귀하던 70년대의 시절.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의 검열로 인해 커버도 바뀌고, 금지곡도 도려내고, 심지어 타이틀곡까지 빠진 기형의 음반을 살 때마다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었다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늘어날 때 마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오던 원반은 라이선스 값의 4~5배나 되니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집벽에 시름하던 동병상련의 여러 친구들 중 하나는 돈을 모으고 모아 내가 라이선스 4~5장 사는 동안 원반 1장씩 착실히 모아 원반만 20장을 가진 친구도 있었고, 반대급부로 내가 라이선스 한 장 사는 동안 4~5장을 사서 빽판만 200장을 보유한 친구도 있었다. 내게는 절충책인 라이선스로 계속 매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로하여금 잠시동안 수집벽을 멈추게 한 것이 36개월간의 해병대 학사장교 복무였다. 1991년 제대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주춤했던 수집벽은 미친듯이 부활했다. 취업해서 돈도 벌겠다. 제대하며 퇴직금도 받아 제법 묵직하겠다... 이 무슨 미친짓인가 자문하는 횟수는 청소년시절과는 비할바가 아니었다. 이 때는 원반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위 벌크판들이 미국으로부터 마구 쏟아져 들어와 주머니 궁한 청춘들의 알량한 주머니를 먼지하나 안남기고 털어갔다. 원반이었던 만큼 스크래치가 있어도 마냥 좋았다. 수집을 한참 하다 보니 이 것들이 허접해 보이기 시작했다. 상태 좋은건 너무 비싸고 싼건 허접하고. 갈등끝에 라이선스로 시선을 돌리면서 그간에 느끼지 못햇던 라이선스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버 만듦새와 마감재질이 전세계 어디와도 달랐다. 라이너 노트를 꼬박꼬박 인서트 형태로 넣어주는 것도 일본 빼면 한국이 유일했다. 금지곡이 마구 빠지고 커버 조차도 흔하게 바뀌는 것은 대한민국 뿐이었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버전이었다. 선진국에서 일찌감치 CD 대중화 시대로 들어서는 통에 레코드 생산을 중단했던 것과 달리 대한민국은 늦게까지 레코드를 생산한 덕에 오직 대한민국만 생산한 LP도 적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해외 컬렉터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되었다. 이들이 죄 가져가기 전에 챙겨두겠다는 사명감 아닌 사명감도 있었다. 시대에 따라 커버 재질도, 음반 두께도, 이너 슬리브도, 심지어 인서트도 종이 재질이나 규격도 마구 바뀌었다. 이거봐라? 보통 재미있는게 아니네? 같은 음반도 버전만 다르면 마구 사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엔 CD가 대중화되면서 이삿짐 틈에 끼지 못하고 주인들로부터 버림받은 서러운 처지의 라이선스와 가요 레코드들은 청계천 복개 전의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마구 쏟아져들기 시작했다. 내게는 행복한 보물창고였다. 주말이면 벼룩시장이 날 불렀고 나는 저렴한 유혹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굴복하며 이 번에는 벼룩시장 주인장들에게 충성을 바쳤다. 과거에 희귀했던 음반이 마구 쏟아져 흔한 물건으로 돌변해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고 추파를 보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어찌 환장하지 않으리.
이런 미친 인간이 나 말고 둘이나 더 있었다. 책이 출간되면 어차피 실명까지 탈탈 털릴테니 이름까지 까말리자면 모 대기업에 다니는 김주희 부장과 음향 관련 회사를 다니던 윤준호란 인간이 그들이다. 케미까지 더럽게 잘맞았던가 보다. 주희군이 책을 쓰자 했고 기왕에 말나온 김에 나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라이선스 아카이브를 국내 최초로 쓰자 제안했다. 음악 지식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준호군이 팀에 들어온 것도 이 때였다. 어린시절 칼싸움하고 총싸움하며 부대를 둘로 가르고 부대 이름까지 짓던 유치한 근성이 남아 있었는지 셋의 모임을 "컬렉터즈"라 지었다. 이게 뭐냐 좀 웃긴다. 각기 보유한 라이선스를 서로 비교하며 버전을 정리하면 할수록 새로운 버전이 마구 나왔다. 벼륙시장과 중고샵들을 돌며 또샀다. 또나왔다. 또샀다. 또나왔다. 이제는 서로 안가진 버전을 서로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탈고할 때가 되니 여기저기 필요한 음반들을 마구 제공하기 시작했다. 허락도 없이 그들을 우리 팀의 준회원으로 마구잡이로 집어넣고 그들이 가진 음반을 마구 사진에 담았다. 그들 덕 크게 봤다. 어차피 감사의 글에 들어가니 실명 탈탈 미리 털려도 괜찮지 않을까. 이진욱 PD, 김상만 감독, 하형욱 부사장, 전정기 대표, 김장순군, 김건영군, 닥터 오유장 외... 사진을 찍고 교정해 주느라 중로동을 마다하지 않은 사진작가 이욱주군에게도 역시...
아카이브 활동 처음 시작할 때였다. 비틀스 서전트 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을 정리해 봤다. 버전은 무려 여덟개. 이걸 정리해 디카로 커버 앞뒷면, 레이블, 인서트 사진을 일일이 찍고 한데 모아 그 사진을 토대로 셋이서 각자 원고를 써봤다. 이걸 조립하고 날려 다시 정리했다. 고맙게도 메이저 출판사인 서해문집이 웃기지도 않는 이 기획(?)에 다른 곳보다 먼저 반응을 보여줬다. 원고를 쓰면서도 수집은 계속되었다. 얘네들 왜이러는지 주변인들이 이상하게 봤다. "형, 있는거 또 사는거지? 사재기 해? 라이선스 좀 작작 사!" 다발총 같은 같은 잔소리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 돈이면 오리지널을 산다는 주변의 한심하다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의 라이선스 아카이브가 세상에 빛을 보는 그 날 까지 앞만 보고 정진할 뿐이었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도 무려 6년이나 이 작업을 더했다. 계속 지연되다 보니 우연하게도 금년이 대한민국 라이선스 최초 발매로부터 정확히 50년 되는 해였다. 기다려 준 서해문집이 고맙다.
중요한 뮤지션과 중요한 음반들을 세 사람의 옥신각신 끝에 100여 뮤지션, 340여 앨범을 골랐다. 지면 문제로 이는 일부 축소해야 했다. 편집이 시작되었다. 인문사회 쪽에 강점을 가진 서해문집에게는 생소한 책이었을테지만 그럼에도 세련된 레이아웃에 나는 넋을 잃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멋진 레이아웃은 처음 봤다. 메이저 출판회사의 간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열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가 어렵게 짜넣은 목차까지도 홀라당 뒤집었다. 이거 보충해라 저거 보충해라 누가 작가인지 햇갈리기 시작했다. 우린 우리대로 라이선스 아카이브라는 정체성을 위해 고집을 피웠다. 절충안으로 나온 현재의 내용은 최초 우리가 내놓았던 것보다 퀄리티가 무척 좋아졌다. 메이저가 괜히 메이저가 아니라는 생각이, 전문가들이 괜히 전문가들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그동안의 고집을 상당부분 꺽게 만들었다. 이제 마지막 조판교정도 끝나간다. 8월 5일이 출간 예정일로 잡혔다.
2021. 06. 23. 책 표지 디자인과 알라딘 북펀딩을 위한 소개 이미지 디자인이 나왔다. 우리의 고집으로 일부 수정했지만 표지 디자인에 우리 세사람의 작가는 크게 만족감을 표했다. 막내라는 원죄 때문에 제 멋대로였던 세 사람의 문체를 뜯어 통일하고 막판 교정에 있어 우리 3인과 출판사간의 가교역할로 아직까지도 크게 고생하는 준호군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21. 06. 28. 오후3시경부터 알라딘 북펀딩을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책정한 책값이 너무 비싸 나는 겁부터 집어먹었다. 48,000원이나 되는 책값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 보다 반응은 시작부터 좋았다. 2021. 07. 02.로 4일째인 현재 340명이 참여했다. 우리의 원고를 사전에 검토한 뒤 흔쾌히 추천사를 써 주신 대중음악 평론가들인 최규성님, 성시완님, 남무성님, 송명하님께 감사 드린다. 욕심 같아선 나름 어렵게 구성한 7년간의 피땀흘린 정보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 주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북펀딩은 2021.07.18.까지. 7년간의 아카이브를 사장시키기엔 그동안의 노력이 아깝다. 다음편이 빛을 볼 수 있을까. [라이선스LP연대기] 바로 너한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