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방문
2008년 1월 10일(목)
카이로에서 이집트 배낭여행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꼭두 새벽에 일어나 4시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넘어 갔다. 뱅기 안에서 조금이라도 자 두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아 가급적 눈을 감고 휴식이라도 취하려고 노력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에겐 9시간의 암스테르담 체류가 가능했다. 무비자 방문이 가능한 곳이어서 입국은 무척 간단했다. 사실 유럽지역은 그리 나를 매혹시키는 땅이 아니었다. 가 본 곳도 없지만 따분하고 거기서 거기인 건물들만 즐비한 곳에서 볼게 무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혹시 그리스나 스페인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지만...
나는 내가 없는 사무실에서 업무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하는 오버적 직업의식 때문에 사무실에 전화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항청사내 한 매장으로 들어갔다. 전화카드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이집트에서 아깝게 남은 전화카드로 출발전 전화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카드를 새롭게 구입해야 했다. 공항청사 내 아래 사진의 매장에 들어갔다. 장사가 어지간히도 잘 되는지 사람들은 카운터를 향해 두 줄로 서서 물건값을 지불하고 있었다. 한 쪽에 직원인지 주인인지 모를 여인이 두 줄 이외의 다른 곳에서 무언가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리로 가서 전화 카드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쌀쌀맞은 말투로 줄을 서라고 했다. 알고 보니 손님들의 두 열 중 한 열을 담당하고 있다가 잠깐 자릴 옮겨 무얼 가질러 온 모양이었다. 한 열이 더 생기나보다 생각하고 얼른 가서 물어 본건데 졸지에 질서도 모르는 새치기맨으로 오해를 샀다. 나는 두 열 중 한 열을 골라 맨 뒤에 섰다. 내가 선 열에는 그녀가 아닌 다른 여인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네덜란드인이 아닌 외국인인 것 같았다.
전화카드를 달라고 했더니 아래의 물건을 내주고 7유로를 받는다. 거의 만원돈. 종이로 되어 있는 물건인데 바코드나 자기테이프도 없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걸로 전화가 걸려지나? 어쨋든 주는걸 받아 가게를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공중전화기를 이용해 전화걸기를 시도해 보았다. 공중 전화기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어디에 넣어봐도 맞지 않았다. 이상해서 돌아와 이런 형태 말고 다른 형태는 없냐고 물어 보았다. 없단다. 다시 나와서 전화걸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전화카드가 아닌것 같았다. 다시 들어가 외국인 여종업원에게 "이게 전화카드 맞냐"고 했더니 이건 전화카드가 아니고 버스카드란다. 젠장. "전화카드를 달라고 했는데 왜 이걸 주냐"며 "전화카드로 바꾸어 달라"고 했더니 뭐가 문제인지 처음에 내게 쌀쌀맞게 줄을 서라고 말했던 그 여자에게 버스카드를 들고 가서는 뭔가를 물었다. 곧 두 여인이 같이 오더니 까칠한 인상의 쌀쌀녀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그 여종업원에게 영어로(영어로 말하는걸 보니 종업원이 홀랜드인은 아닌 모양이다) "큰 단위의 전화카드로 바꿔주라"는거다. 자그마치 10유로짜리를 내주며 돈을 더 내란다. 그래서 이렇게 큰 단위는 필요가 없으니 작은 단위로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없다는거다. 없기는 왜 없겠나 '큰 단위로만 바꿔 주라는 말은 작은 단위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은근히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돈으로 환불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 번 샀으니 환불은 불가능하단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전화카드 달라고 했지 언제 버스 카드를 달라고 했었냐? 난 이 물건 어디에 쓰는지도 모른다. 너희들의 실수를 왜 나한테 책임지우느냐. 내가 전화카드 달ㄹ고 했던 말은 당신도 역시 들었지 않으냐" 고 따졌다. 여기에 잠시 들른 사람이 10유로짜리가 왜 필요하겠나. 난 "단지 전화 한통만 하면 되는데 이런 낭비를 나보고 감수하라는 말이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쌀쌀녀는 "그냥 가져 가던지 10유로짜리 전화카드로 바꿔 가든지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하고는 "당신때문에 뒤에 줄선 사람들이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데 어떡게 할거냐"고 묻는게 아닌가. 그게 왜 내 탓이란 말인가. 정말 어이가 없고 야비한 여인이었다. 노란 놈이 와서 물건을 사니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열이 받지만 어쩔 수 없어 결국 돈을 더내고 전화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당신 아느냐? 당신은 정말 이상하고 아주 나쁜 여자"라고 소리 치고는 나와버렸다. 나오면서 뒤돌아 보니 저도 나한테서 욕을 듣고 나니 불쾌했던지 외국인 여종업원에게 실책을 추궁하며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버스카드를 팔 때는 구입한 날만 사용이 가능하도록 날짜가 찍혀 나오기 때문에 이걸 다시 팔지 못하면 그날 그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저희들이 잘못해 놓고 그 책임을 나에게 떠 넘기려 하면 되겠냐 이 웬수들아! 전화를 걸고 사무실에 별 일 없다는 확인을 한 뒤 가게 안에 보이는 그녀를 원거리에서 찍었다. 원래 그녀를 선명하게 찍을 생각도 없었고, 조명 아래에서 원거리를 당겨 찍으면 당연히 흔들릴 터였다. 그녀는 뒤가 캥겼던지 손을 흔들어 나보고 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래의 사진에서 붉은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외국인 여종업원이고 오른쪽에서 손을 흔들어 오라는 시늉을 하는 여인은 쌀쌀녀였다. 내가 미쳤냐. 널 보러 또 들어가게? 환불해줘도 넌 다시 안본다. 쌀쌀녀는 바람같이 쫓아 나와서는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했다. "내걸 왜 당신이 달라고 하냐"고 했더니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쥐더니 힘껏 뭔가를 눌러 놓곤 들어가 버렸다. 기껏해야 카메라 밧데리만 빠졌을 뿐이었다. 사진이 흔들렸을게 뻔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못했는지 몰라도 그녀는 두고 두고 신경이 쓰일게 틀림 없다. 미안해서 어쩌나....
우리는 암스테르담 시내로 가기 위해 공항 청사 내의 기차역으로 갔다. 여기에서 기차 타고 중앙역까지는 20분 거리.
열차비가 적잖이 비쌌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좌석은 무척 편안하게 되어 있다. 지정 좌석은 없다. 걍 빈자리에 앉아 가기만 하면 된다.
아까 쌀쌀녀와의 실갱이 땜시 기분 잡쳐 있다가 열차 안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완전 우거지상으로 나왔다. 억지미소까지 지어가며 다시 찍었다. 미소짓지만 기분 잡친 상태였음.
객실 내에는 모니터로 다음 역이 어느 역인지를 표시해 준다. 종착역인 담광장(중앙역)이다.
열차는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가 탑승한 곳은 2층이었다.
중앙역의 역사는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역사 건물은 고전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트램(전차) 1일권을 구입하기 위해 information center를 찾았다. 아 이런 젠장. 전차 1일권을 사고 보니 버스카드라며 쌀쌀녀와 실갱이 했던 그 표였다. 그런 줄 알았으면 굳이 실갱이를 하지 않는건데... 그 표는 1일 최고 15회까지 탑승할 수 있는 표였다. 우리는 인원수대로 5장을 샀다.
또 한번 어이가 없는 일이 발생했다. 표를 하나씩 들고 다녔는데 처음으로 전차를 탔을 때 몇 명이냐고 묻는거였다. 다시 말하면 한 장으로 몇 명이든 함께 탈 수 있었던거다. 결국 두 장만 사면 될걸 다섯 장이나 산거다. 우 쒸! 이런건 가이드 책자에도 안나온다.
처음으로 들른 곳이 담광장이다. 담광장에는 고전적인 건물이 하나 서 있는데 이게 왕궁이란다. 자그마한 나라지만 왕궁까지도 자그마하다(?). 아무리 입구를 찾아 보아도 입구는 눈에 띠지 않는다. 원낙 작아 밖에서 보는 것이 전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내부 공사중이라 관람이 불가능하단다. 7유로 벌었다. 열었다면 안들어가자니 찝찝하고 보자니 볼 것도 없는데 비싸기만 하고... 쩝
날씨가 무척 차다. 게다가 바람까지 분다. 이집트에서 열흘 이상 지내다가 오니 적응이 안된다. 나는 트랜치코트라도 입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등산재킷이라 떨면서 다녔다.
왕궁 건너편에 설치된 위령탑. 역광이라 어둡다.
왼쪽으로 보이는 홀랜드 최고급 백화점의 전경. 건물만 고전적이고 내부는 전혀 럭셔리하지 않다. 한국의 백화점이 얼마만큼 호화롭고 단정하게 디스플레이를 잘하는지 이 날 알았다.
여기서 조금 걸어 보았다. 가다 보니 아래 사진 왼 쪽의 동상이 무슨 동상인지 모르겠지만
사진에 다시 담아 보았다. 역시 역광이라 어둠속에 실루엣만 찍혔는데 그런대로 볼만하게 나왔다.
이 곳이 램브란트하우스. 안에는 램브란트의 생가를 재현해 놓고 소박한 주방과 침실, 그리고 작업실 등을 공개하고 있는데 그의 진품그림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지만 당연히 사진촬영은 불가능했다. 당시 사람들의 체구가 작았을까. 2인용 침대가 무척 작다. 2층에서 인상적인었던 것은 램브란트의 그림 중 하나를 옆에 두고 꼼꼼히 봐가며 모작을 그리는 과정을 볼 수 있었으며 제작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다큐먼터리를 찍는 것 같다. 모작이 완성되면 해외 전시에 사용되겠지. 국내에서 3월 16일까지 전시되었던 고흐의 모작들처럼... 계속해서 층을 올라가 3층의 한 방에서는 에칭과정을 보여준다. 이 고에서는 램브란트 생가의 집안과 작품들, 그리고 모작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꼭 한 번 쯤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램브란트 생가를 나온 우리는 워털루광장의 벼룩시장을 찾았다. 가는 동안 도시를 관통하는 운하를 수 없이 만날 수 있었다.
이 것이 네덜란드라는 도시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이나라 사람들은 앞날이 걱정스러울테지만...
나는 벼룩시장을 하도 좋아해 황학동 벼룩시장과 동대문운동장 벼룩시장을 뻔질나게 다녔는데 이 곳의 벼룩시장은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여기서도 무식하고 흉칙한 물건을 많이 팔았다.
한국 같으면 이런건 못팔거 같은디...
모형 골바가지같은 조잡한 물건은 여기에서도 자주 본다. 쌕쌔기 비디오와 씨디등은 여기서도 한 켠을 차지하고 당당하게 팔린다.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엘피판이 나왔지만 횡재는 고사하고 빈약한 레퍼토리의 알량함이여.... 엘피를 파는 가게를 여기 말고도 두 군데를 더 가보았지만 한국에서 흔한건 여기서도 흔해 터졌고 한국에서도 귀한건 여기서도 없었다.
물건이 잡다하기도 황학동과 똑같다. 골동품은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고물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런 운치있는 물건은 여기서도 많지 않다.
벼룩시장 운하건너편의 시계탑이 운치있지만 한편 왠지 애들 장난같은...
우리는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하고 다리도 아파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담하고 예쁜 카페가 하나 눈에 띠어 그리로 들어 갔다.
맥주부터 한 잔씩 마시고... 하이네캔을 주문해 마시려고 했는데 이 곳엔 그런 맥주가 없고 잔맥주가 있었는데 이거 하우스 맥주는 아닌 것 같고... 이거 자그마치 한 잔에 5유로나 한다.
가게는 좁고 길쭉하지만 아담하고 예쁘다.입구의 오른쪽 방향.
입구의 왼쪽 방향. 싫어할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 조심스레 찌건는데 눈치들은 못챈것 같다.
추운데서 떨다가 따뜻한 카페로 들어와 마시는 맥주는 무척 맛이 좋다. 바로 옆에는 우리 일행 중 유일한 청소년인 진솔이. 회계를 맡아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 수로 많이 했는데 맛있는 것도 제대로 함 못사줬넹.
나는 5유로짜리 머시룸 수프와 15유로짜리 생선 커틀렛을 주문했다. 수프 맛이 최고였다. 게다가 함께 나온 바게뜨 빵도 정말 맛있었다. 사실 이거 하나만으로도 한 끼 식사는 그런대로 될만큼 푸짐했다. 그 다음에 나온 생선커틀렛의 양을 보고 나는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야채샐러드는 따로 안시키길 정말 잘했다. 샐러드도 같이 나온다. 감자튀김은 왜 그리도 많이 주는지 깔려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맛은 역시나 최고였다. 갓 튀겨나온 생선 커틀렛은 표면은 엄청 바삭거리고 속살은 신선도가 높고 야들야들했다. 야채 샐러드도 맛있고 감자튀김은 제대로 된 케이준 스타일이었다. 커틀렛과 야채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난 뒤로부터는 부담스럽게 뿔룩이 나온 배를 부여잡고 감자튀김 대군과 힘에 겨운 씨름을 해야했다.
먹고 나니 몸에서 열이 나는게 한결 다니기가 좋아졌다. 배는 터질 지경이지만 추운 이거리를 걷다 보면 금방 꺼지겠지...
다니다 보니 별 희안한 택시가 다 있다. 이거 어디 춥고 고생스러워서 해먹을 짓인지 모르겠다. 공짜로 태워줘도 안탄다.
이번엔 트램을 갈아타고 하이네캔 공장으로 갔다. 하이네캔 공장에 가면 15유로짜리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들러 보려고 작심하고 있었다. 공장을 찾은 김에 한 컷.
이거 무슨 날이냐? 두 번째 퇴짜를 맞는 순간. 이건 꼭 들러보고 싶었는뎅. 지금은 프로그램을 중지했고 2008년 여름에 다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댄다.
공장 건물은 건너편에도 있었다. 어쩌면 프로그램 이용이 불가능한 것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몰랐다. 여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면 혹시나 시음을 너무 마니 해서 은근히 취한다면 아무래도 고흐미술관의 관람 자체가 시간이 부족하거나 관람 자체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수 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 코스인 고흐미술관 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주변을 둘러 보았다. 가까운 곳에 청소년인지 청년인지 대여섯 명이 옷깃을 여민채 추위에 위축된 어깨를 감싸거나 각기 팔짱을 끼고 모여 있었다. 고흐미술관 가는 길을 물어보는데 담배인지 뭔지를 피우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대마초인 것 같다. 한국 외엔 거의 없는 대마금지법으로 인해 내게는 생소한 물건이지만 이 곳에서는 그냥 담배처럼 보인다. 어쨋든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도보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었다.
이 건물은 시립 미술관이다. 이 곳에도 들러보고 싶지만 그러자면 고흐미술관을 못들른다. 그래서 우리는 시립 미술관에는 미련을 두지 않고 고흐 미술관으로 기냥 향했다. 여기도 하드락 카페가 있넹?
운하 다리를 건너며 한 컷. 태양광이 약해서 이 곳에서의 역광 사진은 무척 어둡고 우중충하게 나온다.
다리 건너 좌측 안으로 운하변을 따라 이어진 길. 걸어보진 않고 예뻐서 지나가며 찍었다. 주택단지인 것 같다.
시립 미술관의 뒷편.
시립미술관의 뒷편 전경
고흐미술관은 공원에 바로 인접해 있다. 오른쪽의 사각건물이 고흐미술관. 고흐의 거의 모든 진품들을 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흥분이 되었다.
바로 이 건물이다. 주변의 건물들이 하나같이 고전적인데 생뚱맞은 현대식 건물이 주변 경관미학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무지하게 싸잡히는 말많고 탈많은 건물이다. 안에서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얘기지만 고흐의 작품들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무척 섭섭하다.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독창작인 화풍, 힘이 넘쳐 꿈틀대는 표현, 밝은 채색, 시각적 외곡 등이 나의 감성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입장료는 10유로. 놀라운 물가수준에 비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로 입장료가 싸다. 이 좋은 작품들을 3시간 이상을 두고 감상하면서 그 값이면 감사했다. 작품들을 보던 당시 서울에서도 시립 미술관이 고흐전을 열고 있었다. 진품은 단 두점이고 나머진 모두가 모작이라는 사실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전시실 한 켠 안내판에는 두 개의 작품이 한국에서 전시중이어서 볼 수 없다는 멘트가 적혀 있었다. 야릇한 기분이 든다. 그 두 점도 마저 볼 겸, 다시 보고싶은 생각이 들어 서울로 돌아온 뒤에 한국전시회를 꼭 가보려고 했는데 술먹기도 바빠 맨날 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의 이틀 뒤면 전시 종료다. 꼭 가야징.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안네 프랑크의 집. 여긴 솔직히 갈데가 없어서 들렀다.
안네 프랑크의 집 입구에 서 있는 동상. 이 자그마한 동상 바로 뒤에 보이는 집이 그 집인줄 알았다. 안네 프랑크의 집은 왼쪽길로 더 들어 가야 했다.
안 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운하위에 떠있는 아담하고 예쁜 집도 보인다. 안네프랑크의 집에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볼게 없었다. 그래도 입장료는 7유로나 받는다. 안네프랑크가 살던 집안에 몇 장의 사진이 붙어 있고 집 구조를 볼 수 있는 미니어쳐를 놓았을 뿐 아무것도 없고 각 방마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볼거 있다고 사진촬영도 금지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녀가는 사람들은 쏠쏠하게 많다. 그나마 시간에 쫓겨 우리는 대충 보고 서둘러 트램을 타고 중앙역으로 가서
공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탔다.
열 시간이 채 못되는 짧은 시간동안의 체류였지만 그런대로 볼 것은 다 본셈이다. 이 곳 저곳 을 다니며 구석 구석 많이도 다녔다.
유럽은 전술한바 있지만 나의 취향상 식상한 땅이다. 다만 그리스와 스페인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그저 암스테르담만 잠깐 들렀을 뿐인데 유럽의 왠만한 곳을 다 다녀본 듯한 느낌은 또 뭘까.
그렇다고 암스테르담 방문이 형편없는 경험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온갖 매체를 통해 이미 봐온 터라 그리 호기심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고흐미술관에서 본 고흐의 진품들은 영원한 추억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 틀림없다. 아를르의 방, 해바라기, 자화상 등을 직접 보는 감흥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쌀쌀녀와의 실갱이를 생각하면 꼭 그리 유쾌한 것도 아니지만 유럽의 일부를 다녀왔으니 그걸로 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