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7-08 이집트

이집트여행7(룩소르)

코렐리 2008. 2. 11. 17:32

2008년 1월 4일(금)

아침 식사 전 사무실에 전화해 보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다녔다. 전화기는 여기저기 많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고장에 파손에 이미 뜯어가고 없이 부스만 달랑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10개정도를 찾아서야 간신히 가용한 전화기를 찾아냈다. 전화기 근처 가게에서 30파운드짜리 전화카드를 달라고 했다. 가게를 지키던 청소년은 어이 없게도 30파운드짜리 전화카드를 40파운드 달란다. 기가 차서 다른 곳에서 사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30파운드만 내라며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어디론가 가게를 비우고 나가더니 잠시 후 카드를 가져 온다. 아마도 자기네 가게에선 전화카드 취급을 안하고 다른 가게에서 받아다 차익을 남기고 팔 생각이었던가보다. 이집트에서 한 두 번 접하는 일도 아니지만 만일 아침에 시간이 넉넉했다면 괘씸해서라도 다른 곳에서 카드를 샀을테지만 여행중 시간 허비를 싫어하는 나는 그냥 거기서 카드를 구입했다. 사무실에 전화하니 마감 임박한 문건 하나를 처리해야 한단다. 후배 직원이 대신 자료를 파악해 처리할테니 염려  놓고 여행 잘 하란다. 무척 고마웠다. 술 한 잔 사주마고 고맙단 말을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통화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젊은 사장이 아침식사를 직접 준비해 준다. 미역국에 오징어 볶음과 김치까지 준비해 내오는데 제법 맛이 아주 좋다. 김치도 직접 담갔다는데 외국에서 먹는 김치 치고는 맛도 아주 좋은 편이다. 식사를 마친 뒤 나일강 서안의 유적지들을 돌아볼 택시를 대절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1일 적정 택시 대절료는 80파운드정도. 모두들 바가지를 씌울려고 하는데 적정가를 알고 있으니 몇 몇 택시 기사들과 협상을 한 뒤 올라 탔다. 그 기사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나일강을 건너기 위해 페리를 타야 하는데 자기 친구가 그걸 하고 있고(나눠 먹을려고?) 그 값을 부담하라는 거였다. 남쪽으로 40 km만 이동하면 나일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나오고 그 값까지 감안해서 80파운드인데 쓸데없이 페리를 타고 건너 그 부담을 우리에게 지운다? 헐! 우리가 총알 맞았냐. 그냥 내렸다. 다른 택시 기사들과 협상 끝에 한 택시기사와 90파운드로 합의를 보았다. 가다가 나일강을 건너기 전 기름을 넣더니 나보고 기름값을 내란다. "당신 택시에 넣은 기름값을 왜 나보고 내라고 하냐" 고 물었더니 "원래 승객을 위해 넣는거니까  승객이 내는거"란다. 세상 어느 나라에 택시 기름값까지 승객이 내던가? 우리가 바보로 보였던 모양이군. 이젠 그런 일에 화가 나기 보다는 한심하다는 생각만 든다. 어이가 없어 대꾸하기도 싫어 "협상 내용에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냥 내려서 다른 택시를 찾겠다"고 했다. 적잖은 거리를 이미 이동한 데다 절대 섭섭하지 않은 요금으로 협상을 했으니 우리를 포기할 상황은 아니다. 우리야 손해날 일은 절대 없었다. 사기를 쳐서 더 뜯어 내려는 생각을 포기한 그는 할 수 없다는 듯 계속 운전했다. 아레 사진이 바로 그 택시 안이다.

 

처음으로 들른 곳은 람세스 3세 장제전. 이제까지 다녀 본 유적지 중 가장 감동을 준 곳 중 하나이다. 전체적인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하더라도 설치물 하나하나는 엄청나게 크기도 했지만 선명하고 깊은 부조에 예술적으로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관문의 오른쪽

 

왼쪽.

 

첫 관문에 새겨진 화려한 부조들

 

앗! 엑스트라 등장으로 사진 삑사리!

 

천정 일부. 풍뎅이가 날개를 편 모습. 신전마다 심심찮게 보이는 풍뎅이는 행운의 상징이란다.

 

안에 들어서면 아래 사진과 같은 광장과 기둥이 나온다.

 

동영상 펌 : 뜀

 

기둥을 비롯해서

 

건축물 하나하나의 규모가 엄청 컸다. 물론 크다고 해서 다 멋있는건 아니지만 아름다운 데다가 규모까지 크다면 감동은 몇배나 더 큰 법이다.

 

두 번째 광장이었던 것 같다. 독사진 한 컷.

 

기둥마다 하나씩 설치된 거대석상. 대부분 파손되어 없거나 일부만 남았고 가장 온전한 것이 바로 아래의 사진의 석상이다.

 

 

채색도 엄청 많이 남아 있어 볼거리로 손색이 없다. 룩소르 서안에서 시간 부족으로 다른걸 포기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 곳만은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설치물 모든 곳에는 여백 없이 부조가 새겨져 있고

 

상형문자는 특히나 깊게 파들어 갔다.

 

워낙 높고 커서 정면 촬영은 거의 어렵고 대부분 올려 찍은 사진들이다.

 

 

 

 

 

 

 

람세스 1세 장제전을 떠나 귀족 무덤군으로 갔다. 이 곳은 3개의 귀족무덤을 한 묶음으로 한 장의 표를 구입한다. 우리는 1개의 표만을 구입해서 세군데 귀족의 무덤만 돌고 나왔다. 그동안 웅장한 건축물들만 보다가 소박하고 예술적으로도 크게 볼 것이 없는 자그마한 지하무덤들을 보니 지루한 느낌이 든다. 첫번째로 들른 라모제의 무덤.

 

지하 무덤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래의 사진 두 장은 사진촬영 금지구역인지도 모르고 라모제의 무덤에서 찍은 것들이다. 한 쪽 구석에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그려져 있었다. 사진촬영 금지 표시도 전혀 없다. 사진을 찍으니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사진 찍으면 안된다'는 경고를 주는게 아니라 박시시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박시시를 내 놓으면 사진 찍는 것을 눈감아 주겠다는 소리다. 갑자기 사진촬영금지 표시가 없는 이유가 의심스러워졌다. 나는 "사진촬영금지 표시도 전혀 없고 우리가 그 사실도 전혀 모른 것은 당신들 잘못이며 벌금도 아닌 박시시를 당신한테 왜 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여전히 손내민다. 외면했다. 상종해봐야 피곤만하다. 사실 귀족의 무덤은 매우 소박해서 찍을만한 것도 없다.

 

위 사진과 아래의 사진 두 장은 그나마 가장 볼만한 것들이었다. 아래 두 장의 사진은 길게 연결된 벽화였다. 두 세장만 더 찍으면 완전한 한 폭의 그림을 담아 올 수도 있었음이다. 

 

두 번째로 들른 우세르헤트의 무덤 

 

세 번째로 들른 카엠헤트의 무덤. 그저 찍을 수 있었던건 입구와 그 안내판 뿐이다.

 

귀족의 무덤을 나와 핫셉수트여왕의 장제전으로 가기 위해 나오는데 화장실 찾기가 어려웠다. 귀족의 무덤군과 같이 겹쳐져 존재하는 마을 입구에 화장실이 있었다. 무척 더럽다. 화장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자 한 남자가 따라 오며 "이보슈! 내 화장실을 썼으면 돈을 내고 가야지!" 한다. 설사 그가 그 화장실의 주인이라고 해도 치사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들은척을 안했더니 계속 날 부르며 따라다닌다. "이게 당신 화장실인지 알게 뭐냐"고 했더니 그제서 따라다니길 포기했다. 이집션들이여....

이 번에 들른 곳은 람세움(람세스 2세 장제전)이다. 아래 사진은 그 입구.

 

람세스 3세 장제전을 보고 막 와서 그런지 좀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규모가 작아 둘러 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요 소요되지는 않는다.

 

단 하나 람세스 2세의 무너진 좌상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사진에 보이는 부분은 머리와 어깨부분. 

 

우리는 다시 대절 택시를 타고 핫셉수트 여왕 장제전으로 갔다. 주변 경관은 황량하다. 사실 핫셉수트 여왕 장제전은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고 사진으로 본 모습반도 멋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핫셉수트 장제전은 의외로 밋밋했다.

 

비깥쪽 벽에는 아무런 부조가 없다. 뜀도령의 설명으로는 당시 이집트에서는 여자가 왕이 될 수 없었는데 핫셉수트는 이복아들을 섭정하다가 야욕을 드러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는데 여자는 왕이 될 수 없었기에 가짜 수염까지 달고 전제정치를 휘둘렀다고 한다. 후에 핫셉수트가 죽자 복권된 왕은 핫셉수트에 관련된 건축물을 철저하게 파괴했다고 한다.

 

기둥에 하나씩 세워진 석상은 핫셉수트 자신인 것 같다. 현재는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자그마한 광장이 나오는데 그 곳에 부조는 달랑 이것 뿐이었던 것 같다.

 

 

 

 

이 번에는 왕가의 골짜기로 이동했다. 이 곳도 역시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검색대를 지나 표를 구입했다. 표를 구입하고 나면 골짜기까지 적지 않은 거리이기에 엉성하게 생긴 열차 모양의 간이 차량을 타고 들어간다. 그 표값으로 1파운드씩 더 받았다. 70파운드의 표값은 수많은 무덤 중 3개의 무덤을 볼 수 있는 티켓이었다.

여행가이드 책자에서 보고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는데 책을 본지 두달이 넘고 보니 그걸 깜빡하고는 한 장만 달랑 사서 들어갔다. 그리 가장 꼭데기에 설치되어 있는 중요하지 않은 무덤 세군데 즉, 

 

세티 2세의 무덤

 

타우세르트/세트낙트의 무덤을 거쳐

 

 

시프타의 무덤을 보고 나서 네번째 무덤인 람세스 3세의 무덤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이 표는 더 이상 사용이 불가하다는 말에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 번 들어갈 때마다 펀치로 구멍을 뚫어 주니 이 표로 몇 군데를 들렀는지는 금새 확인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무덤 3군데 또는 여섯군데만 들르겠다고 계획을 세워놓고 그새 그걸 잊고 있었으니 거의 치매 수준이다. ㅡ,.ㅡ

 

 

할 수 없이 다시 열차를 타고 내려가 표를 더 사와야 했다. 다시 레일 없는 열차를 타고 매표소로 표를 사러 내려 갔다. 바로 열차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very similar"라며 내가 가진 가이드 책자를 보며 신기해했다. 나는 그가 중국인인줄 알았다. 생긴게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짧은 머리에 눈이 큰게 완전 중국인같았다. 나는 순간 중국에서도 별 수 없이 일본 번역본을 보구 있었구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부인과 아이들이 일본말을 하고 있었다. 생긴것도 영락없는 일본인이었다. 순간 나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다닌 대부분의 여행가이드가 일본책자의 번역본이었다. 한국엔 없으니 무리도 아니지. 이집트 책자도 역시 일본 책의 번역본이었다. 그는 자기 가방에서 가이드 책자를 꺼냈다. 내 책자에 갖다 대고 비교를 했다. 일본 원본이었다. 가운데 그림이 내가 가진 것은 표지 그림이 아부심벨이고 그가 가진 것은 투탕카문의 그림이었다는 것, 그리고 글자가 내가 가진건 한글이고 그가 가진건 일어였다는 것 빼곤 책의 색깔이나 모든 디자인이 완전히 똑같았다. 전부터 원망하던 거였지만 표지라도 좀 새로 디자인할것이지 들고 다니기 완전 쪽팔리게 만드나 말이다. 내가 좀 더 솔직한 사람이었다면 "It is a translated one in Korean"이라고 답했을테지. 그러나 나는 일본인 앞에서 그걸 인정하기 싫어 "Yes, it is very similar to yours as you said. it is strange" 하고는 슬그머니 책을 집어 넣었다. ㅡ,.ㅡ;

 

곧바로 더 쳐다보지도 않고 매표소로 갔다. 투탕카문의 무덤은 반드시 봐야 하는데 투탕카문의 무덤만 별도로 80파운드를 받고 있었다. 70파운드에 세 군데만 보는 것도 비싼데 무덤 하나에 80파운드라? 이거 참... 할 수 없이 그 무덤이 그 무덤이라고 판단한 우리는 투탕카문 하나만 더 보고 나오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투탕카문의 무덤은 매우 작고 볼만한 것은 투탕카문의 미이라와 크게 그려져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벽화 하나, 그리고 큰 석관 하나가 볼거리의 전부였다. 

 

아래의 사진들은 최초 투탕카문 무덤 발굴 당시의 사진들이다.

 

입구에 안내문으로 설치된 이 사진들이 오히려 더 볼거리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비싸다며 안보고 그냥 갔다. 하지만 보고 나면 별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안보면 궁금해서 돌아버리는게 문제라면 심각한 문제지 않은가. 안보고 간 사람들 지금쯤 졸라 궁금해서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강추냐고? 글�쇼...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는게...

 

유적군을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본 멤논의 거상. 이건 길거리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어서 관람료는 공짜다. 나도 여기서 관리인 복색을 하고 구경하는 사람들한테 박시시나 함 뜯어봐?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짐을 들고 다시 그 샌드위치 가게 Snack Time으로 갔다. 룩소르 신전의 야경을 샌드위치가게 2층 발코니에서 다시금 내려다 보며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1시간정도 담소를 나누며 열차시간을 기다렸다. 전술한 바 있지만 룩소르에는 똑똑한 이집션 식당이 없어서(못찾았는지도 모르지ㅡㅡ) 또 찾아간 것이었다. 다시 카이로행 침대칸 열차를 타기 위해 룩소르역으로 이동했다. 열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자면 비싼 값을 내야 하는 고로 시장에 가서 맥주를 사고 그 맛있는 통닭을 파는 그 때 그집에서 통닭 두 마리를 샀다. 룩소르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맥주에 굶주린 우리는 회교도인 이집션들의 눈치가 보여 신문에 싸서 가리고 마셨다. 여기서 한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일본인이었는데 마사다케 에모토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35세인데 벌써 30개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어지간한 여행광이 아닌 모양이다. 그도 이걸 즐기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를 여기서 처음 본 것은 아니고 가는 곳 여러 곳에서 그를 보았는데 혼자서 다니고 있었다. 일행 중 루미아빠님 형수가 일어를 할 줄 알아 그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객실내부. 이 번 열차는 전에 탔던 열차보다 구형이라 훨씬 꾸지고 화장실도 지저분했다.

 

 

이 사진은 바로 그 마사다케 에모토라는 친구가 보내온 사진이다. 오른쪽 끝이 그의 모습이다. 그는 이 때 맥주파티에 초대해 준 것을 지금도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저녁식사를 가져온 우리 객차담당 외이터는 맥주를 사갖고 들어와 마시는걸 처음 보았는지 이런 방법이 다 있었냐며 신기한 표정이었다. 더 필요하면 자기한테 주문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갔다. 푸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