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여행6(아부심벨/아스완)
2008년 1월 3일(목)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호텔에서 챙겨준 아침식사를 챙겨 3시 5분경 체크아웃하고 3시 반에 맞춰 호텔 앞에서 투어버스를 기다렸다. 시간에 맞추어 우리를 태우고 갈 Thomas Cook 미니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짐을 싣고 버스에 올랐다.
콘보이 출발장소는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출발대기중인 차량 안에서 찍은 콘보이 대원들의 모습
바로 이 차가 우리가 이용했던 토머스 쿡 여행사의 차량이다.
도착까지 세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도착해서 보니 이미 해가 뜨고 있었다.
여기서도 입구에서의 검색은 철저했다. 테러가 염려되기 때문일까.
이 부분이 아부심벨 뒤통수 부분. 왠지 훅 불면 모래가 날아가고 내용물만 남을 것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 있던 바위로부터 아부심벨만을 떼어내 이동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일단 검색을 통과하고 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위 사진이고 반바퀴 돌아서
눈을 왼쪽으로 돌리면 바로 아부심벨이 보인다. 무너진 외쪽에서 두번 째 석상의 잔해는 그 자신의 발아래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발견 당시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옮겨진 현재도 발견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구성되어 있었다. 내 기준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왜 무너지기 전의 온전한 형태로 복원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정말 멋이 있을텐데 말이다.
네 개의 거상 모두가 람세스 2세라고 한다. 댐으로 인한 인공호수의 물이 바로 앞에 있다. 여기에 있는 이거 하나 달랑 보러 그 많은 관광객들이 서너시간을 투자해 몰려 오는 것이다. 피라미드를 제외하면 이 아부심벨 신전은 이집트에서 본 어떤 것들중에서도 가장 볼만한 유적이다.
입구 좌우측에는 람세스 2세가 전쟁에서 이겨 포로들을 끌고 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부조가 있다.
내부로 들어 가는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어디에도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시는 없었다. 아래 사진의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열주 대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10여개의 거대 석상이다. 아마도 역시 람세스 2세의 석상으로 보이는데 이걸 찍으려다 개망신을 당했다. 사진촬영 금지구역이라는 표시도 전혀 없으면서 사진 찍는다고 경비원의 질책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정말 개념이 없다. 나 뿐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려다 무안을 당한 경우를 그안에서 심심치 않게 보았다. 안쪽으로는 계속 연결된 홀이 있다. 신전 내부는 왕의 여러 조상과 함께 왕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여러 채색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이 신전은 1년에 어느 특정한 며칠간은 하루의 첫번째 햇살이 신전 전체를 꿰뚫으며 들어와 가장 안쪽에 있는 성소 제단까지 비치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주신전의 바로 북쪽에 있는 작은 신전은 여신 하토루를 경배하기 위해 건설되어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것이라고 한다. 10.5m 크기로 신전 정면에 세운 거석들은 왕과 왕비의 조상이라고 한다. 아래의 사진은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이 모두 담겨진 모습이다.
펌 : 뜀
아래의 사진들은 뜀도령이 찍은 사진들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전혀 없어 뜀도령도 멋모르고 신전 내에 들어서면서 사진기를 들이댔다가 제지를 당하는 망신을 똑같이 당했다. 그러나 그는 제지 당할때까지 이미 몇 장의 내부 사진을 찍어 놓았다. 그래서 퍼왔다.
이 곳을 떠나 아스완 하이댐으로 이동하면서 신전 입구 가까이서 눈에 띠는 마을은 이집트 전통 양식의 가옥들로 구성된 것 같다.
이 곳이 아스완 하이댐이다.
아스완 하이댐의 수력발전 시설
이 곳을 떠나 다시 이시스 신전으로 가기 위해 계속 이동을 했다. 아래의 사진이 인공 저수지의 섬에 있는 이시스 신전으로 가는 보트를 타는 장소이다. 이 곳에서는 승선자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1회 운행하여 다 보고 나올 때까지를 기다려 다시 태우고 나와서 얼마를 받는 식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유럽인 청년 하나가 혼자서 배를 타기는 뭐하니까 내게 다가와 팀에 합류하고 자기 몫을 내고 싶다고 했다. 좋을대로 하라고 한 뒤 이배 저배 대상을 바꿔가며 요금 협상을 시도해 보았지만 50파운드 이하는 어림도 없었다. 그새 그 유럽인 청년은 사람이 많은 쪽으로 팀을 변경해 그들과 함께 갔다. 현명한 처신이다. ㅎㅎ 신전에 들어 간 뒤 한 시간을 기다리는 조건으로 그렇게 정했지만 기다리는 그보다 적은 시간으로 협상을 했어도 같은 금액이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이 사공(?)이었다. 배는 거의 깡통 수준으로 철판 한 장으로 꼴만 갖춘 것으로 꽁무니에 모터 하나 달랑 달았다.
그리 오래진 않은 시간을 배타고 들어가니 신전이 눈에 들어온다.
배가 이 섬에 도착하면 반바퀴를 돌아 입구에 내려 주므로 바깥에서 돌면서 외곽의 반을 볼 수 있는데 안에서 곳곳을 보기 전에 아주 좋은 서비스(?)가 된다.
아스완 댐 공사(1904년에 건설된 Old Dam)로 인해 이미 수몰되어 물이 방류되는 8월에만 모습을 드러내던 이 신전을 하이댐 공사로 더 위험에 처하게 되자 역시 유네스코의 도움을 얻어 1972년부터 1980년까지의 공사를 거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필레 섬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필레신전이라고 불리지만 현재 이 신전이 있는 곳은 아길리카 섬이라고 한다.
이 신전은 호루스신의 어머니이며 오시리스 신의 아내인 이시스 신을 숭배하는 신전으로
내부에는 이시스 신과 파라오들에 관한 부조들로 가득하다.
기둥들의 조각들도 섬세하고
늘어선 열주들의 상단은 다른 신전들과 마찬가지로 문양이 제각기 달라 보는 이로 한여금 단조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이 신전은 BC3,4세기에 건축을 시작하여 수백년간 건설되었는데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AD 535년경에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안에 의해 성 스테판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제까지 본 많은 다른 신전들은 작은 부조를 많이 새긴 반면 이 신전의 부조는 크기가 다른 신전에 비해서도 무척 컸다.
아래 사진의 부조처럼 파고 들어간 부조가 아닌 볼록 형태의 부조도 눈에 띤다.
열주들에 새겨진 부조와 문자들도 보존상태가 무척 양호하다.
홀 내의 부조
이건 뭔지 모으겠다. 홍 가장 깊숙한 곳 중앙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래의 사진은 신전의 외곽
반대편 외곽으로 나오면 아래의 사진에 보이는 건축물이 나오는데 소신전인지 뭔지 모르겠다.
이 곳을 떠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 거대한 채석장에서 오벨리스크가 만들어졌었던 모양이다. 표를 구입해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기 전 한 컷.
이 오벨리스크가 만들어지다 말고 방치된 것은 제작중 금이 가서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돌 하나로 온전히 탑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오벨리스크가 금이 갔다면 더 이상 작업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이 오벨리스크 제작을 담당하던 책임자는 그 귀한 거대 석재를 그모양으로 만들어 냈으니 상당한 문책을 받지 않았을까. 너무 오버했나? ㅋ
그 다음 우리의 계획은 누비안 박물관이었다. 차에서 내려 운전기사와 안내인 2명에게 팁을 건냈는데 총 20파운드를 주었다. 두 사람은 너무 적다며 불만족스러워했다. 이 곳에서의 팁이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1인당 20파운드정도면 적당할걸 그랬나보다. 식당에서의 팁과 달라 이런 경우 얼마가 적정수준인지 몰라 투어 예약 전날 예행사 사무실에서 물어보긴 했지만 원하는 만큼만 주면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어쨋든 우리는 우선 아스완 역에서 룩소르행 기차표를 구하려고 아스완역으로 갔다. 표를 사고 밥을 먹기 위해 역을 나왔다. 아래 사진은 역에서 나와 왼쪽 으로 접어들면 금방 눈에 띠는 식당이다. 여러번 지나다녔지만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이 식당 안에 룩소르에서 만났던 대학생들이 눈에 띠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았다. 의외로 음식 맛이 좋단다. 그래서 그 곳에서 음식을 이것 저것 주문해서 먹었다. 양고기, 쇠고기, 닭구이 등 요리와 야채볶음 등을 먹었다. 터키에서의 양고기 요리는 대부분 심한 노린내가 났지만 이 곳 이집트의 양고기 요리들은 담백하고 맛이 있어 추천할만하다. 이 집 음식들은 의외로 맛도 좋고 값도 저렴했다. 대부분의 식사들이 15파운드정도였다. 굳이 가이드에 나와 있는 식당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여기에서 그 대학생들로부터 룩소르에서의 숙소정보를 얻었다. 김태호씨가 운영하는 룩소르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를 추천하며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밥을 먹고 나서 우리는 룩소르의 게스트하우스에 도미토리와 단독 방이 있음을 확인한 후 누비안 박물관으로 다시 택시를 타고 갔다. 아스완에서도 룩소르에서도 행선지 대부분 5파운드면 갈 수 있었다.
이 곳이 누비안박물관이다.
유적 대부분은 원시적인 가운데서도
미이라를 만드는 방식과
석상의 양식을 보면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아들이고 있었음이 눈에 보인다.
누비안 박물관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없는 시간을 쪼개서 가기에는 그리 방문의 가치가 높지 않은 것 같다. 어딜 가나 빠듯한 시간을 안배하여 배낭여행을 다나는 경우 박물보다는 현지인의 삶이 한 눈에 보이는 시장통이나 서민 주택가를 가보길 선호하는 나로서는 더군다나 그러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어쨋든 이곳을 시간여유가 있어 방문한다면 원시적 문명과 이집트의 문명이 혼재된 유물도 그런대로 볼만은 하지만
누비안들의 생활을 재연한 디오라마가 더 재미가 있다.
농기구들인가?
어딜 가나 교육의 중요성은 가장 중요시되었던듯하다.
마을 한부분을 재연한듯
이것은 가정집을 내부를 표현 것이다.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아스완 역으로 와서 완행 3등칸 열차에 올라탔다. 룩소르역에 도착하자 택시를 잡고는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전화로 확인을 하려고 했다. 공중전화를 찾아 다니는 동안 많은 택시기사들이 찝적대는 것을 모두 외면하며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런데 이 곳 공중전화는 불통률이 매우 높았다. 역 앞에서 공중전화기 두 군데를 번갈아가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했다. 전화가 되도 순간적으로 툭툭 끊겼다. 아주 짜증이 날 정도였다.열 번 정도의 시도 끝에 "룩소르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하면 왠만한 기사들은 다 안다는 답변을 간신히 들었다(사실 전화가 연결될 때마다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전화는 툭툭 끊겨버렸고 마지막엔 이 말만 듣고 전화는 다시 끊겨버렸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별일이 없는지 전화를 할 때도 한 통화를 위해 열 군데 이상을 돌아다녀야 했다. 전화가 고장이거나 전화가 안되거나 전화기를 뜯어가고 없는 경우까지 안될 사유는 무척 다양했다) 어쨋든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통화를 끝낸 후 일행이 기다리는 역전으로 다시 돌아가던 중 길을 건너려는데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택시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가게와 가로등 조명을 통해 보이던 그 이집션 운전기사는 재밌다는 듯 웃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화가 솟구쳤다. 아마도 우리에게 찝쩍대다 외면당한 택시기사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 곳 이집트에서는 특히나 배낭을 매고 있으면 이제 막 온 무지렁뱅이인줄 알고 택시비를 바가지씌우려고 어지간히도 불러댄다.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곧 이집션한테 화를 내면 뭐하나 하는 체념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 이 곳의 사장인 김태호씨가 총알처럼 달려와 맞아준다. 의외로 젊은 사람이었다. 젊은 사람이 이 멀고 열악한 곳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색적으로 보였지만 물어볼 기회는 없었다. 이 곳에서 같은 투숙자들과 적지 않은 정보를 주고 받았다.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이 왜 가는 곳마다 있고 왜 그리로만 몰려드는지를. 나의 경우 굳이 한국인보다는 보다 다양한 체험을 위해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원했고 나도 나름대로 적잖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다녔다. 그러나 이 곳 이집트처럼 한국인이 많지 않고 정보도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을 여행할 때는 이런 곳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까다로운 한국 대학생들을 가격과 시설면에서 만족시켰다면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취침전 파티를 하느라고 소주, 맥주, 와인이 총동원되었다. 문 뒤쪽으로는 거실로 통하는데 방바닥은 물론 거실 바닥이 타일이고 벽에 벽지가 아닌 페인트 칠이라는 점만 빼면 한국의 가정집같은 편안함과 안락함, 그리고 깔끔함이 있는 곳이었다. 내가 앉아 있는 방은 4인용 도미토리인데 1인당 10불이었다. 이 방에서 세명이 잤다. 셋만 자고 낯선 사람이 안들어 오면 40불이고 들어오던 말던 누군가 합류하는 것을 허용하면 1인당 10불(총 30불)이라고 하는데 어쨋든 요금대비 만족도는 아주 최상이었다. 진작 이리로 왔으면 좋을걸 그랬다. 누군가 간다면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