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여행4(룩소르→아스완)
2008년 1월 1일(화)
이 날처럼 여행중에 늦잠을 자 본 적도 달리 없다. 아침 9시에 일어난 것은 1월 1일 새해를 만끽하기 위해 늦게 잠자리에 든 것도 한 이유가 있고 후루가다의 일정을 포기했으니 시간적 여유도 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10시 10분경에 체크 아웃을 했다. 이것 저것 안내해 주던 여직원이 친절했다. 현지에서 본 이집션 중 가장 예쁜 인물이라 체크아웃이 끝나고 나가기 전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더니 선뜻 포즈를 취해 준다. 참고로 이 호텔 첫 날 1달러 다발을 세느라 고생했던 그 직원은 아님. ㅋ
우리는 일단 나와서 장거리 버스 승차장으로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와 지도에 나와 있는 장거리 버스 승차장 방향으로 걸었다. 지도상으론 룩소르 신전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무언가 국수 비스므리한 걸 만드는 소규모 공장이 있어 가다 말고 신기해서 물어 보았다. 파스타를 만드는 중이란다. 반죽을 깔떼기 모양의 통에 넣으면 아래로 밀려 내려가 세밀한 구멍으로 길게 파스타가 되어 나오고 가열된 채 회전하는 원판위에서 적당히 건조되고 나면 옆쪽으로 쓸어 내리는 방식이었다. 핏자의 뿌리가 이집트로부터 왔다는 설처럼 파스타도 이집트에서 건너간 것이 아닐까.
아래 동영상 뜀한테서 퍼옴.
이집트에서 콥트교회가 아닌 가톨릭 교회를 보니 반가운 생각이 들어 들러 보았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풍의 아담한 성당인데 내부는 정성을 들인 것이 역력하게 표가 난다. 예수와상과
마리아 와상
누구일까 성 프란체스코?
?
근처 어디에 장거리 버스 승차장이 있는 것 같아 세 사람에게 물어보니 대답이 삼인삼색이다. 멀끔해 보이는 신사에게 물어보니 '아스완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택시를 타고 어디어디를 가서 그 곳에서 타라'고 하길래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는 '그런 버스는 없으니 기차를 타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기차역 앞에서 아스완행 버스를 타란다. 뜸하게 있을 것 같아서 기차는 생각을 안하고 있었지만 생각을 바꿔 기차편을 알아보기 위해 룩소르역으로 갔다. 거기서 미스터 만도를 또 만났다. "어디가세요?" 아스완으로 가려고 한다니까 기차를 타라고 한다. 역으로 들어가니 만도씨가 따라 들어와 알아봐 준다. 눈앞에 정차중인 기차를 타란다. 그는 금방 떠날 기차이니 그냥 들어가서 그 안에서 표를 끊으란다. 우리는 만도씨의 친절함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서둘러 기차에 올라 탔다. 만도씨는 머리털 한오라기 없는 빡빡머리에 눈썹은 시커멓지만 귀여운 인상이었다. 어눌한 발음이지만 유창한 한국어가 무척 귀여웠다. 이집션이 한국어를 하도 잘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이 것 저것 물어보면 무슨 소린 이해를 못했다. 그 말들만 배웠던 모양이다. 어쨋든 다들 한마디 했다. 그의 친절한 안내 덕에 시간 허비도 없이 재미있는 기차를 탔으니 다시 룩소르로 돌아오면(아스완의 호텔예약이 있어 서둘러 떠나지만 룩소르에서의 일정은 아직 안끝났다. 역시 후루가다 일정을 취소하면서 하루를 룩소르에 더 배정한 탓이다) 그의 호텔과 식당을 이용해 보자는 거였다. 그러나 룩소르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만난적 있는 일단의 대학생들을 아스완에서도 만났다. 룩소르에서 김태호씨가 운영하는 룩소르게스트하우스가 가장 깨끗하고 저렴하다는 그들의 정보를 접하고 생각을 바꿨다. 만도씨. 미안. ㅋ
타고 보니 관광객은 하나도 없는 현지인들만의 3등칸 기차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현지인들과의 부대낌과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체험이다. 아주 재미가 있다. 조금 지나니 검표원이 점검차 객실에 들어왔다. 성인은 31파운드이며 학생은 Half라고 했다. 일행이 성인 4명에 학생 1명이니 139.5 파운드면 맞는 계산이 아닌가. 그런데 계산이 틀렸다며 151 파운드를 내란다. 어이가 없었다. 한참을 실갱이를 하다가 31 파운드의 half 이면 15.5 파운드가 아니냐며 계산기를 두드려 보여 주었더니 학생은 Half 이니까 27파운드란다.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희안한 하프도 다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는 하프의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
같은 객차에 탄 사람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들(특히 디지털 카메라)과 입은 옷 등에 대해 무척 신기해 하는 것 같다. 빈 좌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일행은 모여서 앉지는 못하고 흩어져 앉았다. 내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와 통성명했다. 아흐메드, 무스타파, 샤바니, 무함마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시원치 않은 영어로 축구 이야기를 한다. 이집트인들도 축구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2002년 월드컵 이야기를 했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사실 대화는 거의 어렵다. 열차 안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올라온 사람이 좌석에 앉은 사람들 무릎 위에 물건을 휙휙 던져놓고 회수하러 돌아 다니는 것은 우리네와 똑같았다. 그 중 하나인 줄줄이 매달린 심심풀이 씨나락. 씨나락을 까먹을려고 봉지를 치켜들고 있는 사람은 무함마드씨.
진솔이가 앉아있던 곳의 동승자들 중 한 사람이 내 모자를 신기해 하며 구경좀 하잔다. 써보더니 좋단다. ㅋ! 이 모잔 가는 곳마다 인기넹.
오른쪽 열차 밖으로 보이는 전원. 열차길이 농지와 사막을 경계짓는다. 열차 코스의 오른쪽인 나일강 방향은 이런 모습이 대부분이고
왼쪽인 그 반대방향은 곧바로 사막이거나 전형적인 이집트의 농가. 지붕 위의 야자잎인지 뭔지는 더위를 줄이기 위한 수단인 듯하다.
횡뎅그렁 황량한 사막
잡상인이 던져놓고 간 유아용 덧신.
아스완으로 가는 3시간 30분이 어지간히 지루했던가보다. 이런 사진도 찍고.
종착역인 아스완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서있던 사람들은 없고 빈자리가 늘어간다.
아스완역은 룩소르역에 비해 약간은 꾸지꾸질한 느낌이 든다. 화장실도 없다. 나중에 카이로에서 지하철을 타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여긴 남녀 차별이 넘 심하다. 왜 화장실은 남자화장실만 있고 여자 화장실은 없냐. 어쨋든 아스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이 가게방. 거기서 초컬릿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호텔을 찾아 걸었다. 카이로에서는 3파운드였는데 여기선 2파운드다. 살다보니 별 희안한 거지도 다본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입에 물자마자 두 명의 어린이가 손을 내민다. 미안하지만 걍 외면했더니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생까는 것도 한계가 있고 뒤통수가 가려워서 먹다 만 반쪽을 주었더니 꿰제제한 손으로 받아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어이가 없었다. 목표를 달성한 이 애는 같이 따라 다니던 친구를 방금 내가 했던 것처럼 생깐다. 의리 조또 없는 녀석 같으니. ㅡㅡ; 나일강을 따라 걷기만 하면 나오는 곳에 울 호텔이 예약되어 있었다. 나일강은 아스완역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을 두고 흐르고 있어 역전에서도 바로 보인다. 수 많은 요트들이 이 곳 아스완의 나일강 곳곳에서 수면 위를 미끄러지고 있어 마치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그 길을 따라 그리 멀지 않은 호텔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어차피 천천히 쉬면서 볼거리에 집착하지 않으니 모든게 여유로웠다.
타일로 만든 벽화가 눈에 띠어 한컷 담았다.
나일강을 따라 20분정도 걸으니 콥트교회도 보인다.
드디어 도착한 "올드 소피텔 카타락트" 호텔. 사진에서 보던대로 고전적이며 운치있는 호텔이었다.
로비 입구에는 카페가 있어 많은 투숙객들이 한가로운 오후 한 때를 즐기고 있었다. 프론트로 가서 바우처를 내밀었다. 컴퓨터를 조회하더니 계속 갸웃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그럴리는 없겠지 했던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BC여행팀을 통해 예약하면서 아스완의 소피텔 그룹 호텔은 "올드 소피텔 카타락트(Old Sofitel Cataract)"와 "뉴 카타락트 호텔(New Cataract Hotel) " 두 곳이 있는데 내가 원하는 곳은 "올드 소피텔 카타락트"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내가 사전 조사를 했을 때는 올드 소피텔 카타락트에 방이 없고 비싸긴 무척 비쌌다. 비씨여행팀은 예약이 가능하다며 방값을 알려 주는데 인터넷에 나와있는 것보다 훨씬 값이 쌌다. 그래서 혹시 뉴 카타락트 호텔이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네와 계약된 아스완의 소피텔그룹 호텔명은 정확히 "소피텔 카타락트"이며 의심스러우면 주소를 불러 줄테니 확인해 보란다. 두 호텔이 한울타리 안에 있으니 주소로 확인하는건 의미가 없었다.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Old Sofitel Cataract 가 아니라 같은 울타리의 바로 옆 New Cataract Hotel 이었다. 아마도 남아 있는 방을 검색한 것이 뉴 카타락트 쪽이었던 모양이었다. 올드카타락트엔 방이 없었다.
두 호텔 모두 같은 5성급 호텔로 표기되어 있기는 했지만 올드 카타락트는 훨씬 고풍스럽고 럭셔리했다. 쪽팔림을 뒤로 하고 같은 울타리 내 바로 옆 뉴 카타락트로 가서 바우처를 내밀었다. 내가 원한건 여기가 아니었는데 ㅜㅜ... 어쨋든 Nile view로 방을 배정해 달라고 했더니 나일뷰는 이미 다 나갔단다. 우리 여기에 뭐하러 온거지? ㅠㅠ
그래도 방에서 내다보면 나일강 줄기가 꺾어지는 돌출부에 세운 호텔이라 나일강 자락이 일부 보였고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환상적인 아스완의 나일뷰를 꿈꿨던 나는 실망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저녁은 올드 소피텔 내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 1902라는 레스토랑에서 럭셔리한 식사를 즐기고자 했다. 소피텔 투숙객은 상당히 할인이 되지만 아닌 경우 거의 배나 되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뉴 소피텔 투숙객은 그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까칠하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좀 억울해도 먹어보자싶어 예약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더니 예상을 뛰어 넘는 경비에 혀들을 내두른다. 나만 먹자고 우기니 여론을 따르니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나가서 먹기로 했다. 호텔을 나간 일행은 접근해 오는 마차꾼 중 하나에게 우리의 목적지인 아스완 문이라는 식당까지 얼마인지 물었다. 가고자 했던 식당은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인데 걷기도 귀찮아 마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이 인간들 적정가를 뻔히 알고 있는데 10파운드는 양반이고 20파운드네 30파운드네 불러댔다. 그냥 무시하고 다른 마부를 불러 5파운드를 주기로 하고 아스완 문이라는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나일강변에 부유물을 띠우고 그 위에 식당을 만든 곳이다. 도착해서 내리려고 했더니 조금 기다리라며 유턴이 가능한 곳까지 한참을 더가서 되돌아와 바로 입구에 내려 주었다. 돈을 주려고 했더니 언제 봤다고 마이 프렌드를 연방 외쳐대며 밥먹고 나오면 자기가 안내를 하며 에스코트 하겠단다. 바가지를 씌울 속셈임을 모르는 바 아니니 돈을 줘서 보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싶었다. 저쪽에서 기다리겠다며 움직이는 마차를 쫓아가 올라타곤 약속된 5파운드를 손에 쥐어 줘버리고 돌아와 식당으로 들어 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마부가 쫓아와서는 '당신이 준 돈이 잘못 되었다'며 내미는 돈이 50피아스트로였다. 피아스트로는 이집트 파운드화의 하위 단위 잔돈이다. 이집션들의 근성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러잖아도 겪어보고서 치를 떨고 있던 이 참에 이건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치졸하기 짝이 없는 수법에 어이가 없었다. 얼핏 실수로 착각할 수도 있는 상황을 굳이 만들자는 수작이었다. 아니면 귀찮아서 줘버리고 말게 하던지. 그러나 그 인간이 내민 돈은 비교적 새 돈이었고 내가 준 돈은 너절한 헌돈이었다. 돈을 꺼내 일행들에게 보여주며 "이곳 사람들은 어지간히도 돈을 험하게 쓴다"며 내주었던 그 돈은 어디로 가고? "사기치지 말고 그냥 가라"고 말하며 그가 입은 전통의상의 깃에 돈을 끼워 넣었다. 그랬더니 눈을 부라리며 나를 잡으려 했다. 나는 힐끗 쳐다보며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고는 움찔 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노려보고는 돌아서서 식당을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 갔다. 입맛 가지가지 가시게 만드는군...
전통문양의 천막으로 둘러친 채로 강물 위에 뜬 이 식당 끝 난간에 앉아 해지고 난 나일강을 바라보는 운치는 그만이었다. 운치에 비해 음식비는 저렴했다. 그러나 음식맛도 좋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짜잔! 이게 뭘까.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아스완 문'의 치킨 스프! 멀건 닭고기 국물. 스프는 스프 맞넹?!
나는 토마토 스프를 주문했다. 그나마 맛이 좀 낫다. 아래 사진 오른쪽 윗부분에 매운탕국물같은게 토마토 스프다. 배고파서 먹다 말고 생각나서 찍어봤다. 핏자. 쇠고기, 닭고기, 이집션 셀러드, 맥주 등이었다.
모래빵이 기본으로 딸려 나오니 여기다 조금 더 추가로 시켜서 먹는 것만으로 충분해175파운드의 돈을 지불했다. 나와서 여행사를 찾아 다녔다. 아부심벨 장거리코스 투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사들이 문을 닫은 시각이어서 이 번엔 택시를 수배하려고 했다. 택시들은 하나같이 아부심벨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스완에서 떠나는 아부심벨 투어도 단독으로는 갈 수 없고 콘보이와 함께 가야 하는데 여행사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아비도스나 덴데라행처럼 택시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택시 기사 중 한 명이 자기 친구가 투어를 한다고 하길래 얼마냐고 했더니 1인당 50파운드란다. 책자에서 보기론 1인당 70파운드 정도를 적정가(입장료 불포함)로 보고 있었는데 이 책은 몇 년이 지나도록 개정판을 내지 않은 탓에 실상의 물가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책에 나와 있는 내용보다 매우 저렴했다. 하자고 했더니 자기 친구를 불러 오겠단다. 친구란 사람은 대뜸 어느 호텔에 묵느냐고 물었다. 카타락트 호텔에 묵는 중이라고 했더니 놀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카타락트는 뉴 올드를 막론하고 아스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니 돈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었다.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150파운드로 올라갔다. 이런! 또 사기를 치는군. 다시 알아보러 다녔다. 1인당 50파운드를 부르는 사람을 또 찾아 냈다. 새벽 2시 30분에 호텔 앞으로 픽업을 오겠다고 했다. 새벽 3시가 콘보이 출발시간이니 그 시간에 맞춰 버스로 데려다 주기 위함이었다. 호텔 픽업서비스로 20파운드인가 돈을 일정액 주기로 했다. 우리는 다음날 새벽과 아침에 먹을 간식거리와 물을 구입하고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다음날 겪을 황당한 일은 예상도 못한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