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7 캄보디아

(씨엠립3) 앙코르톰

코렐리 2007. 7. 31. 14:38

점심을 먹었으니 이 여행의 압권중 하나인 앙코르톰을 볼 차례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때 30년간 지어진 불교 건축의 도시. 앙코르톰은 거대한 도시라는 뜻이다. 원나라 사신으로 왔던 주달관의 기록에 의하면 황금도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어마어마한 황금도금의 도시는 엄청난 예산을 감당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재촉했다고 한다. 앙코르톰 내 석조건축물 외의 민간 가옥들은 대부분 벽돌과 진흙 그리고 목재 등을 이용하였으므로 지금은 유실되어 남아있지 않다. 앙코르톰 내 45만평의 부지 중 절반은 왕궁과 신전, 나머지 반은 왕족, 귀족, 승려가 살았는데 최고 1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평민은 4대문 밖에 살았던 셈인데 도시전체 인구가 100만에 달했다고.

 

 

앙코르톰에는 서남북에 각 1개의 관문과 동쪽 승리의 문과 사자의 문으로 총 5개의 관문이 있는데 모두가 같은 형태이다.  관문 앞에는 다리가 놓여있고 다리의 난간은 머리 아홉 가진 뱀신 나가의 몸통을 잡고 줄다리기 하듯 당기는 신과 악마의 형상으로 되어 있는데 왼편은 신들(선하게 생겼고)이고 오른편은 악마들(고약하게 생겼고)의 형상이다. 이는 신화의 일부분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앙코르와트의 유명한 회랑부조에도 이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식사 후 남문으로 들어가면서 찍은 사진.

 

 

뱀의 허리는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허리를 부여잡고 당기는 신들과 악마들의 모습만 남아 있다. 다리는 앙코르톰을 둘러싼 해자를 건너기 위한 수단. 여기 있는 난간의 조각들은 보존을 위해 모조품으로 대체하였다고 한다.

 

다리 초입의 머리 아홉달린 뱀신 나가. 아홉 머리 중 가운데 머리만 온전하고 모두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이제까지 본 다리의 난간 중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된다.

 

차량이 진입하는 남문

 

이마 위에 나온 나무가 머리카락처럼 보여 재미가 있다.

 

들어가서 뒤돌아 찍은 남문 앞뒤가 똑같다.

 

관광객들로부터 바나나를 얻어먹는 새끼원숭이. 주는 족족 다 받아 먹는 위대한 애다.

 

툭툭이맨. 이걸 그냥 콱!

 

앙코르톰에서도 특히나 중요한 볼거리 바이욘 신전. 불쑥불쑥 솟은 탑들은 4면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 새겨져 있다. 전술한 바 있지만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 올려 윤곽을 잡은 다음 조각을 새긴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건축기법으로 만들어진 신비한 곳이다.

 

들어가면서 벽면인가 기둥에 새겨진 압살라 부조. 무척 섬세하다.

 

입구 상단의 부조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좌우에 보이는 대형 부조의 일부분. 조금만 떨어져 찍어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일부분만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듯 하다.

 

우측으로 돌아서 들어가니 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곳에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치니 할머니와 함께 있던 어린 소녀가 신기한듯 쪼르르 달려나와 한동안 따라 다녔다. 초컬릿이라도 있으면 줄텐데 군것질거리를 좀처럼 들고 다니지 않다 보니 줄게 없어 미안했다.

 

소녀를 만난 곳에서 위로 올려다 보니 그 유명한 바이욘의 미소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눈에 띠었다.

 

 

회랑 조각과 기타 주변은 나중에 보자싶어 일단 올라갔다. 바이욘의 미소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얼핏 보기엔 랜덤하게 설치된 것 같지만 구조상으로 대칭과 통일성이 강조되어 잇었다.

 

 

 

갑자기 스콜이 한바탕 스쳐갔다. 비를 피해 잠시 머문 곳에서 한 컷.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평안한 미소가 어딜가나 보이는 이 곳. 어디서도 본 적없는 건축기법, 고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곳. 순간순간 아무도 없이 혼자 있다는 착각을 갖게 만드는 이곳. 이 곳이 별천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가 별천지인가 말이다.

 

중앙 성소 입구에 새겨진 섬세하고 깊은 조각. 풍화에 많이 무디어진 이 조각이 처음 완성되었을 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다시 내려와 바이욘 신전의 외곽 회랑의 부조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부조는 전체 신전을 둘러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것인데 입구 우측으로 돌면 이 부조가 보인다. 서민들의 생활상은 이 곳 뿐이니 무척 유니크한 작품이다. 벽돌을 나르는 것인지 아니면 음식을 나르는 장면인지 모르겠다.

 

 

전체를 둘러봐도 전투장면만 나오고 다른 유적지의 부조를 보아도 신화와 전투에 관한 것들 뿐이다.

 

그러나 전투장면들 모두가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다. 수상전투씬에는 전함 아래에 물고기떼가 보이는데 당시의 기록에는 물고기가 하도 많아 배의 전진이 어려웠다는 뜀도령의 설명이 있었다. 물론 과장이겠지만.

 

당시의 황소도 전차의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코끼리가 등장하는 전투씬

 

이 신전 전체를 줄러싸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조각예술 전체를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지만 어떤 형태로 작품이 만들어졌는지를 담기 위해 길게 찍어 보았다.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중 또 다시 비가 쏟아졌다. 마침 가지고 온 우산을 잃어버렸다. 가방 윗뚜껑 틈사이로 나도 모르게 빠져 나온 모양이다. 잠깐씩 스쳐가는 비는 장난 아니게 쏟아지고 나면 거짓말처럼 화창해진다. 바이욘신전 안내표지판 위에 씌워진 처마 밑에 궁상맞게 비를 피해 있다가 찍은 사진. 비는 대충 피할 수 있었지만 엉성한 처마에서 굵은 빗물이 떨어졌다.

 

 

후면으로 넘어가니 무너진 곳도 많고 회랑의 부조도 일부 단절이 있었다. 이곳을 좌에서 우로 간 뒤 계속 부조를 감상하다가 움푹 패인 곳에 고인 물에 발이 빠져 휘청거렸다. 다행히 넘어지진 않고 발만 젖었다. 뜀도령이 어찌나 행복해 하던지. 마귀할아범 같으니.

 

 

어찌된 일인지 후면 우측 끝부분의 조각은 조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내가 해도 이정돈 하겠다 원. 이건 당시 아마추어들이 맡아 작업한 구역인가?

 

이 곳은 후면 우측을 돌아 전면을 향해 가던 중 찍은 것으로 이끼가 부분적으로 심하게 끼어 있었다.

 

 

이 부분은 다른 부분들이 획일 적 통일성을 강조한데 반해 상당부분 개개의 인물 동작에 자율성이 어느정도 부과되어 있고 그래서 그런지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되게 더욱 역동적이며 사실적묘사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왕의테라스

 

코끼리테라스

 

 

 

 

 

 

 바푸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