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 2007. 5. 27. 10:41

2006년 7월 21일(금)

마지막날 아침이다. 마지막날엔 항상 그렇듯이 나도 면도를 했다. 다들 나보고 면도한 얼굴이 낯설단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을 나섰다. 토프카프 궁전으로 가는 길은 운치가 있었다. 리유군이 주먹을 들어 올리는걸 보니 뜀도령 뭔가 맞을 짓을 한게로군.

 

토프카프 궁전은 오스만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다 한다.과거 이 곳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토프(대포)카프(대문)사라이(궁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1453년 이스탄불을 함락한 메흐메트 2세가 1460년대에 이 궁전을 지었고 그 이후 증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부지 안에는 술탄의 거실, 의회, 후궁들의 거처인 하렘(Harem)도 있는데 하렘은 별도의 티켓을 다시 구입해야만 관람이 가능하다. 일단 티켓을 구입하고 대문을 들어섰다.

 

입장권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장식물을 전시해 놓은 것인데

 

이 중엔 술탄의 문장도 있지 않을까. 이게 그거같은디. 아님 말구.

 

 

 

 

 

 

이곳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옛날엔 주방이었단다. 이 곳에 전시된 유물들. 이 곳에서는 사진촬영이 허용된다.

 

 

 

이 곳에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중국과 일본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이 것은 일본 도자기다. 우리 도공들을 납치해서 만든 작품이 여기에 와 있다니 어이가 없군.

 

 

 

 

셈세한 타일벽

 

 

 

보스포러스 해협도 내려다 보인다.

 

 

 

 

공공화장실 예쁘기가 짝이 없다.

 

술탄의 똥간도 별수 없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쭈그리고 앉는 수밖에.... 치렁거리는 옷을 치켜 올리고(내시나 후궁들이 해줬을테지만) 엉덩이를 드러내고 쭈그리고 앉아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전시실은 사진 촬영이 대부분 금지되어 있었다.

 

어느 한 전시실 한켠에서 사제가 코란을 낭독하고 있었다. 경건해보이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싶다는 생각을 한 순간 촬영금지구역이란 사실도 순간 잊고는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바로 경비원인지 경찰인제 제복을 입은 남자가 와서 경고를 했고 시선까지 집중되는 개망신을 당했다. 에그 쪼발려.

 

 

 

 

 

 

후궁들의 처소 하렘(Harem) 관람을 위한 세컨드 티켓.

 

이제부터 하렘으로 들어간다.

거대한 거울이 버티고 있다. 이렇게 거대하면서도 장식이 화려한 거울은 처음 보았다. 벽에 매달려 있는 것 조차 신기할정도로 부담스럽게 생겼다. 후궁들을 만나러 가는 술탄이 거울을 들여다 보고 터번도 한 번 매만지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토프카프 궁전 구경 끝.

우리는 시르케지역 부근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을 일만 남았다. 왠일인지 점심을 버거킹에서 먹자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이스탄불까지 와서 버거킹이라... 나는 되뇌르 케밥을 먹겠다고 했다. 그것도 마지막 식사인만큼 양고기 케밥으로.

 

 

먹어보라고 잘라주는 양고기 덩이를 떨어뜨렸다. 에고 아까브... 양고기 맛은 아주 담백하고 좋았지만 밀전병이 맛을 흡수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거킹을 먹으러 갔다. 나는 케밥을 먹으며 약간의 산책을 즐긴 뒤 버거킹으로 가봤다. 어마어마한 양의 프렌치 프라이를 먹지 못해 허덕거리며 제발 좀 먹어 달란다. 어이 없음. 사실 오후에는 아야소피아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어제 일정의 관광지가 워낙 다닥다닥 붙어 있어 시간이 남아 당겨서 보았으니 오후 시간은 남는 셈이었다. 발렌스 수도교같은 다른 관광지를 찾아 떠나는 방법이 남았지만 나는 이스티크랄 거리의 헌책방에 LP음반이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 무척 신경이 쓰였다. 프랑스나 영국의 고가 클래식 음반이 나온다면 뒤집어질 판이었다. 나는 책자와 지도를 내어 주고 발렌스 수도교를 가 볼 것을 권장하고 난 다시 이스티크랄 거리를 가보겠노라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들 그냥 그곳에서 쉬겠단다. 그래서 나는 예니 자미를 잠깐 들른 뒤(마침 예배시간이 걸려서 그들이 예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스티크랄 거리로 트램바이를 타고 갔다. 카파도키아로 가기 전 그 흑인 미인을 보았던 그 언덕을 올라 결국 서점을 찾아갔다.

 

겨우 300여장정도 가 있을뿐이라 실망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뒤져 보았지만 별볼일 없었다. ㅜㅜ 그래도 이 곳을 둘러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후회가 되서 두고두고 생각날 판이었으니 이스탄불 문화의 거리에 있는 고서점에 들어가 뒤져도 보고 주인과 대화라도 나누어 봤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지금도 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건진 음반이 없다는 것이 아쉬워 근처 대형음반매장에서 터키 전통음악 CD음반을 한 장 샀다. 다시 돌아와서 보니 모두들 시르케지역 주변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들을 고르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되어 공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창밖을 내다 보며 이제 모든 일정을 마쳐야 한다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트램바이 안에서 셀카 한 컷 찍었다. 아닌게 아니라 내 표정이지만 입가에 섭섭한 감정을 담고 있구만.

 

두바이에 도착해서 좌석을 배정받은 뒤 면세점에서 마지막 쇼핑을 했다. 아랍음악 3장세트 음반을 하나 샀다. 한국에는 없는 아이템인데다 거장들의 오래된 음원들이라 만족감이 컸다. 실컷 구경하고 나서 시간을 보니 비행기 이륙시간이 임박했다. 여섯 사람은 달리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우리때문에 기다리게 만들고 허겁지겁 들어오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쪽팔리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이륙 10분전쯤 간신히 도착했다. 티켓 리딩을 하는데 자꾸 에러가 나는 모양이었다. 문제가 있는지 물었더니 문제 없다며 볼펜으로 좌석번호를 긋고 나서 다시 써준다. 좌석표대로 찾아가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수기라 취소승객을 감안해 오버차징을 했던 모양이다. 꿈지럭거린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만세! 이코노미클래스의 세배 가까운 가격의 비지니스클래스였다. 럭셔리한 식사에 넓찍한 자리. 그리고 대우도 완전히 틀렸다. 이런 행운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싸에겐 죄도 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싸만이 이코노미석이어서 우리와는 따로 갔다. 스튜어디스에게 부탁을 해보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림도 없는 부탁을 했다.

동서양의 만남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나라 터키. 이 곳을 내가 실제로 다녀 간다. 가기 전에도 가슴이 설�지만 지금도 터키라는 이름에 가슴이 설렌다. 좋은 여행은 3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았다. 좋은 행선지, 좋은 일정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세가지가 충족되었으니 두고두고 남을 추억을 터키에서 만들어 낸 셈이다. 한 군데라도 안가 본 나라를 더 가보는 것이 목표지만 언젠가 터키가 내게 손짓을 계속 할테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