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 2007. 5. 27. 10:38
2006년 7월 20일(목)

 버스 안에서 잠을  자며 가는 길은 몹시도 긴 시간이었다.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출발했던 곳인 하렘 오토갈에서 하차하여 버스 아래쪽 짐칸에서 짐을 꺼내려던 우리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짐을 넣은 이후 많은 사람들의 짐이 그 안에 더 들어갔다. 그걸 차장은 아주 이쁘게 차곡차곡 수납했다. 우리 짐을 꺼내기 위해서는 남의 짐을 끄집어 내야 했는데 남의 짐들을 함부로 만지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차장이 와서 보더니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듯이 양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어이가 없었다. 결국 우리보고 에센레르 오토갈까지 가서 내리라는 말인 것 같은데 그럴 의향은 전혀 없었다. 가방을 꺼내자고 했더니 차장이 성질을 내며 거칠게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났다. 이상하게도 화가나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더니 막힘없이 유창한 영어가 나오는데 나도 신기하다. 짐을 꺼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집어 넣는 시간도 오래지 않았다. 나는 분명 그 차장에게 화가 넜지만 리유군은 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단다. 내 생각엔 리유군의 오버인 것 같은디... 어쨋든 이 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에미뇌뉘 부두로 다시 돌아왔다.

 

아스토크 호텔로 다시 돌아왔는데 꼭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짐을 맡기고 간단한 차림을 하고 다시 나섰다. 우리는 맥주를 한 캔씩 물고 Et-Is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아무 생각없이 맥주캔을 들고 들어갔는데 주인이 뭐라고 한다. 첨엔 별생각이 없이 남의 식당에서 실례였구나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근처에 아마도 사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가서 남은 맥주를 비우고 다시 들어갔다. 내부는 그리 분위기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음식 맛은 좋았다. 아침겸 점심식사였던 관계로 필라우(볶음밥)와 닭고기같은 간단한 음식을 시켜서 먹었다. 희준군의 볶은 고추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서 간 곳은 술탄아흐메트 자미(Sultanahmet Camii). 어이가 없었던 것은 카파도키아로 떠나던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생각없이 산책하다가 발견한 한 회교사원을 보고 정말 웅장하고 멋지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지도를 들고 찾아와 보니 그 때 그곳이 바로 이 술탄아흐메트자미였다. 더 웃기는건 그 건너편에 역시 회교사원인줄 알았던 건물은 아야소피아(성소피아 성당)였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강조된 이 절묘한 외형이 다시금 감탄을 하게 한다.

술탄아흐메트 자미(Sultanahmet Camii)의 큰 돔 지름은 27.5미터, 그 외 4개의 중간돔, 30개의 작은 돔으로 구성되어 있고 미나레(첨탑)의 높이는 43미터라 한다. 미나래가 6개라고 하는데 나는 4개밖에 못보았는데 뒤에 더 있었나?

 

첨탑이 인상적이다.

 

 

안에 들어가니 밖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안에 들어가니 회랑과 안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기둥은 모두가 아치형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장을 위해 긴 행렬의 맨 뒤에 가서 섰다.

 

술탄아흐메트 1세의 명을 받아 미말 시난의 제자 메흐메트 아가(Mehmet Aga)가 설계하여 1616년에 건설되었으며 오스만왕조 건축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메인 돔에는 26개의 작은 창이 다닥다닥 뚫려있다.

 

내벽 타일은 청색을 띠고 있는데 2만여장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린단다.

 

 

 

천정도 엄청 높아 장엄함을 더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겠다는 생각도 들어 넋을 잃고 봤다.

 

대형돔

 

여자들은 천을 두르고 들어가야 했다. 희준군은 두바이에서 구입한 아랍전통복장을 입고 들어갔는데 터키인들은 동양인이 입고 있는 것이 신기했나보다. 어떤 이는 '핸섬보이'라는 칭찬을 연발했다.

 

이 번에는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아야소피아로 갔다.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건축이 시작되어 콘스탄티누스 2세 시대인 360년에 완공되었단다.

 

 

 

그 뒤 화재로 몇 번 소실되어 537년 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6년만에 재건되어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이 세워졌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되어 성당이 자미로 바뀌어 메카의 방향을 표시한 구조물을 포함한 증개축이 있었으며

 

 

당시의 벽화들은 1700년대에 칠보로 덫칠되어 있다가 후에 복원되었단다.

 

 

 

보면 볼수록 신비감이 가득한 곳이었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구석구석 한참을 둘러 보았으니 이미 볼 것은 다 보았지만 왠지 덜 본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이 곳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층에서 본 기둥 중 하나. 기둥 하나만도 이렇게 섬세하다.

 

 

궁륭천장에는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화가 있었다.

 

 

이 안에서 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이 벽화를 디카로 찍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뜀도령이 찍은 것이 가장 낫다 싶어 올려 보았다.

 

성모마리아의 손모양이라 불리는 기둥에 나도 손가락을 넣고 돌려보았다. 남들은 이거 할 때 소원을 빌었다는데 나는 그냥 돌려만 보았다. 한바퀴를 떼지 않고 한 번에 돌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뭐 어렵나?

 

마지막에 보고 나온 현관 위 벽화

 

이 곳에서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지하궁전으로 갔다. 이스탄불에서도 이 곳 유럽지역은 가장 중요한 관광지가 오밀조밀 모여 있어 다니기가 무척 편리했다. 심지어는 내일 가기로 한 토프카프 궁전도 도보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에 있고 묶고 있는 호텔이 가까운 것도 큰 매리트였다.

지하궁전은 이름은 그러하지만 실은 지하저수지다. 발렌스 수도교로부터 여기까지 물을 끌어와 식수로 사용되었단다.

 

 

지하궁전은 예상대로 더위에 지친 심신을 식혀주었다.

 

바닥은 물로 채워져 있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다리가 여기저기 길을 형성하고 있었다. 종아리를 덮을 정도의 깊지 않은 물속에는 생선들이 떼거리로 날아다녔다. 

 

 

저 쪽 구석 기둥 밑에 거꾸로 박혀있는 메두사의 두통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가고자 했던 식당 모자이크(Mozaik)를 찾아갔다. 야외로 테이블을 내어 놓은 운치있는 카페였다.

 

길가의 카페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기분도 구웃.

 

 

 

대부분 스테이크류의 음식을 시켰다.

 

나는 거시기뭐시기라던가 하는 해물요리를 시켰다. 맛은 평범했다. 남들게 더 맛있어 보였다. 먹다보니 생각나서 먹다말고 음식사진을 찍었다. ㅋ. 에피타이저로 주문한 샐러드에는 양젖치즈가 가미되었는데 맛은 웨엑!

 

다음 코스는 그랜드바자르(Kapar Carsi: 카파르 차르쉬)였다. 터키어로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이었다. 밤새 버스 안에서 자고 계속되는 여름날의 지친 일정에 점심을 먹고 나니 식곤증이 왔다. 호텔로 돌아가 약간의 낮잠을 때린 후에 다시 가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도로 집어 넣었다. 저녁에 상점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랬고 저녁에 술탄아흐메트자미와 아야소피아를 다시 와보려면 지금 가야 했다. 가면서 보니 재미있는 건물도 보인다.

 

막상 가서 보니 사진에서 보던 운치는 없었다. 이 시장은 엄청나게 크다. 돌아다니다 보면 같은 입구로 나올 수 가 없을 정도라 한다. 15세기 중반 메흐메트 2세가 건설한 이치 베데스텐(Ic Bedesten)과 산달 베데스테니(Sandal Bedesteni)라는 2개의 시장이 중심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역시 바가지가 심했다. 무자비하게 깎으면 알고 깎는 것으로 알고 꼬리를 내리곤 한다. 뜀도령은 대단한 bargainer였다. 무조건 상대를 껴안고 Oh my friend thank you very much 하면 가격 협상은 끝이었다. 그렇게 깎았는데도 우리 6명이 가서 물건을 잔뜩 사 준 가게의 젊은 사장은 완전히 대박이 터졌는지 뒤통수까지 찢어지는 입을 다시 오므리느라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안살 것 처럼 버티다가 뜀도령이 깎아놓은 가격이 괜찮은 것 같아서 찻잔, 분말사과차, 전통과자 등을 샀다. 시큰둥하다가 기껏 깎아놓으면 가격협상에 기여도 없이 공짜로 따라서 산다고 뜀도령의 잔소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에그 디르브라. 올 때는 금방 찾았는데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어지간히 돌아서 간 것 같다. 덕분에 시장구경은 실컷 했다.

 

쉰다고 호텔로 돌아간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하긴 맥주 마시는게 쉬는거지.

 

술마시는 회교도들

 

 

마시다 보니 출출해졌다. 곯아 떨어진 광원군만 놔두고 에미뇌뉘 부두에의 자그마한 선상에서 파는 고등어케밥집으로 모두 나가 고등어캐밥을 따로국밥으로 사고(빵 따로, 고등어 따로, 야채 따로)

 

 

인근 식당에서 밥을 6개 도시락 포장으로 샀다. 반찬처럼 먹는 쌀밥을 한 포장씩 여섯 개나 사가니 주인은 어리둥절해했다.

 

호텔로 돌아와 광원군을 깨우는데 만사가 귀찮은지 안먹는단다.

 

희준군이 가져온 볶은 고추장을 꺼내 먹시 시작했다. 보기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이 상차림은 그래도 잊기 힘든 만찬이었다. 돌아갈 때가 되자 한국음식 생각이 간절했던게다. 소금간만 해서 구운 고등어와 필라우(볶음밥), 그리고 볶은 고추장. 여기에 에페스 맥주... 남기지 않기 위해 광원군의 몫으로 사 온 것까지 모두 먹어 치웠다. 광원이를 깨우다말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폼잡는 리유군. 이거 어디가서 오해받기 꼭알맞은 사진이군. ㅋ 뒤늦게 일어난 광원군이 아쉬워할 줄 알았으면 남겨둘걸 그랬나보다. ---> 라고 적을려구 그랬다. 그랬더니 이 글을 읽은 뜀도령이 당장에 딴지를 거는 답글을 올려 놓았다. 내용인 즉슨,

 

(까칠한 뜀도령 수정 들어감: 고등어 캐밥 사러가기전 맥주를 마실때의 일-맥주가 떨어지자 또한번 뜀과 assa군이 사러갔다오는 사이에 모두 잠들었고 저녁 8시 넘어서 겨우 깨워서 캐밥 사러감...글구,,,신한맨은 고등어캐밥 사가지고와서 먹는순간 벌떡 일어나서 맛있게 먹었음...고등어캐밥 못먹은 사람은 리유형임...메~~~~~~~~~~~~~~~~~~~~~~~~~~~롱 )

 

--->나의 답변 : 블로그 정리 게을러서 늦게 했더니 별 수모를 다 당하네. 잘라따! 쒸! 그 잘난 꼬릿글 저 하단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음. 지우면 주거! 영원히 보관하며 와신상담할거야.

 

저녁을 먹고 나서 야경을 보기 위해 술탄아흐메트지구로 나섰다. 건조한 여름저녁이라 시원했다. 역시 나와 볼 가치가 충분했다.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술탄아흐메트 자미.

 

야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조명을 받은 나무

 

아야소피아의 야경

 

노점상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자기는 한국을 좋아한다며 한장 찍어달랜다. 이 곳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그 때까지도 몰랐던 나는 메일 주소를 받아 왔다. 당근 발송실패.

 

가까이서 찍은 아야소피아 야경

 

아야소피아의 첨탑

 

늦은 시간에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