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 2007. 5. 27. 10:31
 

2006. 7. 18(화)

아침식사를 호텔에서 마쳤다. 이 곳 알티뇌즈 호텔의 부페 아침식사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침식사 후 다시 합류한 신한은행팀과 함께 오늘은 남부 쪽으로 가 볼 참이었다. 남부지역은 교통이 좋지 못한데다 볼거리들이 워낙 드문드문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행선지간 거리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당근 기동력이 있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코스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형태였지만 이 곳에서는 현지 여행사를 수배하여 이날 하루의 관광패키지를 구입했다. 예정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가이드 여직원이 나타났다.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마디 없고 차량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원래 담배를 끊은 상태였지만 내게 권하는 담배를 말없이 거절했다. 게다가 여직원의 인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까칠함이 드러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1시간 정도 늦어 버스가 도착하였고 도착 후 바로 출발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한참을 갔다. 미국인 청년 두 명과 터키 현지인 세 명이 일행이 되었다.

 

한참을 걸려서 데린쿠유의 지하도시 입구에 도착했다. 이 곳 지하도시에서 아랍인들의 침입을 피해 4만명의 가톨릭 교도들이 숨어 살았다고 한다. 어쨋든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쳐진 길은 미로였고 이런 좁고 답답한 곳에서 4만명이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기가 입구다.

 

지하도시로 들어서 차가운 공기를 접하니 무척 시원했다. 입구를 들어와 넓은 공간이 나오자 마자 여직원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이 장면이 대충 비가 오면 동굴로 스미는 물을 어떻게 모아서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찍고 보니 괴기영화가 따로 없다.

 

이런 통로를 가다 보면 크고 작은 공간이 계속 나온다. 공간이 나오면 그 곳은 주거공간이거나 공용공간이다. 곳곳에 비상시 바위를 굴려 통로를 막을 수 있도록 장애물을 설치해 두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우물

 

우리와 함께한 터키인 일행. 핑크색 꽃무늬 옷을 입은 아가씨는 여행사 직원이지만 오늘은 비번이랜다. 그래서 모처럼 놀러 온 언니와 형부를 데리고 왔단다. 이름이 생각이 안나넹. 광원이가 안보인다. 이 아가씨가 광원이를 좋아한 것 같은데... 

 

 

관광을 마치고 나온 입구 근처의 카펫 가게. 완전히 후지다사 제품이다. 어린 애들이 수공품인형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당근 안샀다.

 

다시 자리를 옮겨 우흐라라 계곡으로 갔다. 사진은 우흐라라계곡 입구 조금 못미쳐 보이는 절벽

 

그 곳에서 만난 어린이들. 초컬릿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었는데 마침 먹을게 아무 것도 없었다. 하긴 우리가 언제 군것질거리 갖고 다녔나.

 

근처 마을풍경

 

 

계곡으로 내려가는길 내려가는 계단이 무척 길었다. 내려가서 조금 걷다 보면 토굴성당이 나온다.

 

일행 중 미국인 청년 두 놈이 계속 칭얼거린다. 우리는 한참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천천히 구경하며 여유 있게 가는데 얘네들은 후딱후딱 가기를 원했다. 게다가 아싸가 벌레물린 발목에 염증이 생겨 걷기를 조금 버거워했다. 가이드는 가운데서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가이드에게 계속 징징거리는 소리에 나도 은근히 열받았다.

 

 

토굴성당 내부 천정벽화

 

바위에 동굴도 뚫려 있고

 

먼 꽃일까

 

 

 

 

 

 

시냇물 건너에 당나귀를 타고 있는 어린이도 만났다.

 

나 어릴땐 서울에도 이런 예쁜 하늘이 있었는데

 

계곡을 나와 Belisirama라는 곳을 거쳐 야외로 테이블을 설치한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가장 먼저 나온 샐러드와 수프. 보신탕 국물처럼 보이는 이 수프는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디따 맛있었다. 가이드책자에도 나오는데 Ezotlin Corbas 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스프를 코르바스라고 부르는 것 같다. 샐러드도 모양새보단 맛있고 빵은 누룩 없이 구운 것 같았는데 배가 고팠나 이 것도 코르바스를 찍어 먹으니 역시 맛있었다.

 

주요리로 나온 생선과 쌀. 역시 맛있다. 음료는 당근 에페스 맥주. 캬~~~~!

 

다들 더위에 조금은 지친 기색이다.

 

 

옆에 바로 그 미국 애들이 앉아서 함께 식사했다. 나는 일행과 즐겁게 대화하고 요란하게 밥을 먹었지만 걔네들하고는 단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안쳐다 보았다. 얘들 두 명도 우리와 같은 테이블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누구 하나 말한마디 건네지 않으니 썰렁함을 느끼는 눈치였다.

 

다음은 셀림이라는 곳으로 상인들이 임시 숙소로 사용하던 터라고 한다.

 

안가볼 수 없어서 들어가 봤다.

 

이 곳에서 내려다 보면 이런게 보인다.

 

 

내려와서 보니 이런 것도 있는데 이건 멀까.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 도착한 곳은 카라반사라이(Caravansarai). 이 곳이 길고 긴 행렬의 상인들이 머물다 갔다는 곳이다. 입구에서 폼잡고 서있는 리유군. 뭐가 못마땅한지 입이 나왔다. 왜그래?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같구만.

 

어두운데서 폼잡는구만. 안보인다네.

 

마징거가 남산에서 나오는 줄 알았디만 카파도키아에서 냐와야?

 

배경을 넣어 함께 찍어주려고 했는데 나무가 주연인지 아싸군이 주연인지 분간이 안가넹.

 

나도 개폼 한 번.

 

 

올려다 본 원 안의 하늘이 예쁘다.

 

이 구멍은 왜 뚫었을까. 휴식중에도 수시로 기상을 체크하기 위해서?

 

일정 끝나고 돌아가기 전 단체 사진 한장 찍고... 근데 여기 사람들한테 사진을 부탁하면 왜 중심에 사람을 두지 않고 이렇게 한 쪽으로 치우쳐 찍는지 원.

 

여자친구가 이 사진 보면 오래살지 못할낀디 우짜자고.....

 

아싸의 발목 염증으로 인해 심하게 부어 걷기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병원엘 들렀다. 일단 여행사로 돌아가 미국 애들과 터키인들을 내려 주고 나서 병원에 데려다 줄 것을 특별히 부탁했고 그들은 흔쾌히 응해 주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나와 가이드가 하는 말을 들은 미국 애들은 그제서야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행운을 빈다며 손을 흔들고 내렸다. 나의 요청으로 여직원은 진료시 통역까지도 해주었다. 아침에 여직원이 늦게 오고도 사과가 없어 기분 나빠하던 나는 오히려 그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친절하게 끝까지 아싸의 진료와 처방에 동행해 주었다. 우리는 너무 고마워서 팁으로 20불을 건넸다. 그녀는 무척 고마워했지만 그녀가 베풀어 준 친절에 비하면 작은 것임을 피력하였다.

 

초저녁에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맥주를 사다가 회식을 할 참이었다. 맥주를 사러 가는 길 역시도 이국적인 거리의 분위기가 즐거움을 주었다.

 

 

 

 

이 곳의 전통 때밀이 목욕인 하맘. 장소를 확인해 놓고 가보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볼걸 그랬나보다.

 

여기서 맥주도 사고

 

여기서 과일도 사고

 

나오다 보니 굵직한 체리가 너무나 맛잇어 보였다. 두 개로 나누어 진열되어 있어서 품질에 차이가 있는가싶어 어느게 더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뭔가 모르게 양쪽이 다르게 보였는데 짜식이 영어를 한 마디도 못알아 들었다. 결국 그게 그거인걸로 간주하고 이걸로 달라고 하니 봉지에 담기 시작한다. ㅡㅡ;

 

호텔쪽으로 돌아오다 보니 두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들을만했다.

 

우리를 이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에페스 맥주 만세! 이걸 다 먹고도 부족해서 더 사다 먹었다.

 

오늘 저녁 셀추크로 떠나야 할 광원과 희준이는 계속 우리와 함께 여행을 다니기를 원했다. 결국 셀추크의 호텔로 전화해서 해약한 뒤 이 곳 카파도키아에서의 숙박 하루를 더 연장하고 우리와 함께 이스탄불로 돌아가기로 했다.

맥주를 마시던 중 희준군이 기구를 꼭 타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학생 때 캐나다에서 300 US달러를 부르는 기구를 타 보고 싶어 집에 전화해서 돈 좀 부쳐 달라고 했다가 야단 맞은 적이 있단다. 그런데 그 이상을 불러도 타고야 말 이 상황에 150을 부르니 지금 안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되니 그럴 수 없다는 거였다. 나는 그까짓 기구를 탄다고 짜릿한 뭐가 있을거라는 기대가 들지 않아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니 모른 척 할 수만도 없고 값도 싸니까 일단 타보기로 했다. 카파도키아 오토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우리에게 150불을 부르며 꼬시던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했다. 생각해 본 뒤 전화를 주겠노라고 이야기 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영어에 가장 유창한 광원군이 전화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 하는 얘기가 기분 잡치는 소리였다. 150짜리는 물건너 갔고 200인가 얼마하는 회사의 자리만 남은데다 그나마 지금 확정해 주지 않으면 이 자리도 없고 더 높게 부르는 회사의 자리 외에는 없을거라는 얘기였다. 우리가 전화를 하니 좀 더 비싼 가격에 흥정을 하고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150짜리는 애초에 없고 미끼였는지도 몰랐다. 그는 우리가 가진 책자에 얼마로 기록되어 있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광원군이 좌중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단박에 기분이 상해 '나는 안탈테니 내일 이른 아침에 탈 사람들만 모여서 다녀 오면 어떻겠나' 했다. 결국 안타는 쪽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결국 희준군만 남은 외로운 신세가 되어 결국 포기했다. 광원군이 대변한 우리의 답변은 시원스러웠다. "우리도 당신이 우롱하는 가격에 농락당할만큼 바보는 아니니 그만 두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랬더니 그런것은 아니라며 극구 해명을 하더라나. 어쨋든 우리는 기구탑승을 잊고 맛있고 맛있는 에페스 맥주에 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