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 2007. 4. 19. 17:11

VIII. Conduct

1. 샤를르 뒤트와(Charles Dutoit)

 

음색이 이보다 더 부드러울 수 없고 이보다 더 유연할 수가 없다. 그는 필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음악이란 영혼의 울림이다. 음악을 연주할 때 연주자의 영혼은 물론 심성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그의 연주는 어떤 곡에서도 결코 시끄럽거나 차가운 법이 없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는 격렬한 현악기군의 연주로 인해 굉장히 시끄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연주하면 한없이 부드럽고 유려하다. 음악을 아름답게 연주하는데 있어 그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단지 한가지 흠은 그의 연주에는 긴장감이 없다. 그가 내한했을때 들었던 말러 교향곡 1번은 극적 긴장감은 전혀 없고 한없이 이완된 연주만을 들려 주었다. 언론은 그의 말러를 혹평했지만 나는 그동안 들었던 말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말러를 들었던 사실에 황홀해했다. 내가 그의 연주를 너무 좋아해던 탓일까.

 

2. 아타울포 아르헨타(Ataulfo Argenta)

 

아타울포 아르헨타의 녹음은 음악 매니아뿐 아니라 오디오 파일러들에게도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연주자다. 스페인 출신인 그의 음악은 색채감이 뚜렷하고 음이 매우 선명하다. 내가 아르헨타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녹음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르헨타와 뮌슈의 것이다. 뮌슈의 연주는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각 악기군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그의 연주는 그와 정반대로 굉장히 밝고 화려하다. 그 외에도 스페인을 소재로 한 음악만을 모은 에스파나, 팔랴의 삼각모자와 스페인정원의 밤, 로드리고의 아랑페즈 협주곡, 캄폴리와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등 그가 남긴 연주는 요절로 인해 극히 적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없는 명연주들이다.

 

3.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chelm Furtwangler)

 

당시에 유행해던 낭만주의적 성향의 즉물연주는 지금에 와선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의 연주는 아직도 빛을 발한다. 우선 그의 연주를 들으면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놀라게 된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스케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푸르트벵글러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은 그의 연주를 빼놓고 논한다는 것 자체를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특히 그가 연주하는 9번 '합창'은 장엄함과 숭고함마저 느껴지는데 나는 이 연주 외에 클렘페러의 것 외에는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연주에 중독된 나로선 막말로 다른 이들의 연주는 시끄러워서 못듣는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그의 베토벤 9번 연주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음질을 개선하네 어쩌네 하면서 이렇게까지 그의 음악을 망가뜨리고 왜곡시키다니...

 

4. 앙드레 클뤼탕스(Andre Cluytens)

 

프랑스 출신의 대지휘자 앙드레 클뤼탕스의 음반은 관현악 음악의 음반에 관한 한 가장 비싼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도 그의 음반은 몇 장 갖고 있지만 초반은 하나도 없다. 드럽게 비싸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라벨이나 비제 등 그가 연주하는 프랑스 음악은 그야말로 최고다. 대부분의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들은 프랑스 음악에서 강세를 드러낸다. 섬세하고 선이 가늘고 악기 하나하나의 개성이 드러나는 특징을 가진 프랑스음악에 대하여 자국의 감성을 갖지 않고서야 어찌 제대로 연주하겠는가 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클뤼탕스는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라는 사실 자체를 잊게 할 정도로 독일의 음악에도 강하다. 특히 그가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1번 같은 경우 최고의 명연주로 손꼽힌다. 최고다.

 

5. 에르네스트 앙세르메(Ernest Ansermet)

 

음악을 생산하는데 있어 자신의 개성보다는 건축미에 공을 들이는 것은 그가 수학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견고한 음악적 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명연주는 숱하게 많다. 그 중 차이콥스키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제는 그의 음반도 넘 비싸다는 것이다. 초반 몇 장은 나도 갖고 있군. 내겐 무쟈게 아끼는 물건이다.

 

6. 세르지우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푸르트벵글러 사후 베를린필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서 카라얀과 함께 거론되던 인물. 카라얀에겐 그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판단을 했을까 아니면 그가 두려웠던 것일까. 베를린 필의 수장으로 카라얀이 낙점된 뒤 카라얀의 철저한 봉쇄에 밀려 북독일에서 한 치도 내려오지 못한 불운의 지휘자. 게다가 고집불통이었던 그는 음반을 싫어해서 녹음을 극도로 꺼렸다. 데카 레이블에 그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 남아 있다. 그의 연주는 소박한 탓에 요란한 이 곡이 차분하고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체트라 같은 레이블에선 해적판으로나마 그의 음반을 출반했다. 그의 음악은 한없이 소박하다. 그가 죽은 후 숨겨져 있던 녹음이 대거 쏟아져 나와 음반시장을 장악했던 적이 있다. 나도 EMI에서 나온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구입했다. 그의 연주는 결코 요란하지 않고 장식음이 없어 한없이 경건하게 느껴진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4번은 최고다.

 

7. 예프게니 므라빈스키(Yevgeni Mravinsky)

 

인상부터가 고집불통 영감탱이다. 무척 표독해 보인다. 단원들은 므라빈스키 살아생전 혹독한 연습과 훈련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결과 그가 연주하는 레닌그라드필의 연주에서 듣는 금관악기군은 마치 한 개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정확하고 완벽하다. 나는 이제까지 그가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6번과 쇼스타코비치 5번의 경우 그 이외의 다른 어떤 대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차이콥스키 6번은 음의 진폭이 높고도 깊다. 러시아인의 감성이 아니고선 도저히 불가능한 연주지만 특히 므라빈스키가 아니고선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연주다. 게다가 1악장에서의 금관악기군의 격렬하고도 정확안 연주는 경악을 하게 만들 정도다. 쇼스타코비치 5번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날카롭고 차갑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5번의 연주는 몇 년 전부터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설이 흘러 나왔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은 작곡당시 즈다노비즘에 의해 감춰진 혁명에 대한 비관적 감성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므라빈스키가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이 하는 소리는 내겐 웃기는 소리로 들린다. 그의 연주에 환희는 이미 없었다. 날카롭고 차갑고 냉소적으로만 들리는 이 연주가 뭐가 어떻다는건지 원. 아 참, 그리고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은 그야말로 격정적인 연주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라이센스 엘피판이지만 내가 무척 아끼는 음반이다. 

 

그 외에도 카를 슈리히트(Carl Schuricht)와 엥겔브레슈트(D. E. Enghelbrecht) 역시 내가 좋아하는 지휘자들이다.

브루노 발터(Bruno Walter)의 인간미 넘치는 연주도 놓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