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여행/음악에 관한...

음악여행의 시작

코렐리 2007. 4. 13. 20:43

노래를 잘 불렀던 어린 시절

 

남들이 듣지 않는 이상한 음악을 듣는다고 사이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것도 음악이라고 듣느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래도 전교에 대화상대가 몇 몇 있었다.

모여서 정보를 주고 받다 보면 시간 가는줄 몰랐다.

공부는 뒷전에 두고 절판된 음반을 찾기 위해 도매점은 물론 외진 소매점까지 소득도 별로 없건만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대학에 다닐 때 담배(지금은 끊었지만)와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난 무인도에 떨궈 놓아도 담배하고 음악만 있으면 생존이 가능한 인간이다"

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지금도 나는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음악을 안듣고 넘어가는 날은 거의 없다.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때 담임 선생님은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아이들에게 많은 노래를 가르쳤다.

한 번은 "내게 바이올린이 있다면"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내게 바이올린 있다면 온세계를 다니며

여러분이 좋아하실 멜로디 들려드리죠

짤랑짤랑 은전을 던져 주면

그 것으로 바이올린 또 산다다오

내게 바이올린 있다면 온세계를 다니며

여러분이 좋아하실 멜로디 들려드리죠

 

이 노래는 후렴 마지막 "멜로디 들려드리죠" 부분에서 전창과는 일부 음을 달리하는 곡이었다.

아이들은 여기서 자꾸 전창과 같은 멜로디로 노래하였다.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게 그리도 햇갈리는지.

가르친 노래를 첨부터 끝까지 부르게 하는데 두 번인가를 바로 그 부분에서 연속으로 틀리자 선생님의 얼굴에는 짜증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세번째에 나는 내 노래에 나름대로 도취(?)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이 번에도 틀리지 않으려고 집중하고 있었던가보다.

 

세번째에도 "...멜로디..." 바로 그 부분이 틀렸고 선생님의 풍금소리가 멈춰지고 아이들 노래가 멈췄지만 눈까지 감고 불렀던 나만 그것도 모르고 "...들려 드리죠" 하고 마지막 다섯 음절을 끝까지 불렀다.

애들은 웃었고 선생님의 얼굴은 심각했다.

게다가 드러내길 싫어하던 성격의 소유자였던 나는 무척 당황했다.

"상철이 일어나!"

나는 애들을 웃긴 죄를 물리지 않을까 무척 겁이 났다.

"모두가 틀리고 상철이 너만 맞았어. 친구들 앞에서 다시 해봐"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풍금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면서도 혹시나 마지막에 틀리면 선생님의 핀잔을 듣고 애들은 웃게 되지 않을까 무척 두려웠다.

더 두려웠던 것은 선생님의 실망.

무사히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부르자 한동안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생님은 나를 한껏 치켜 세웠다.

"여러분 어때요? 상철이가 아주 노랠 잘하죠?"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음악가가 되라"는 말까지 해 주었지만 어린 마음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다.

그 이후로 숙기가 없던 나는 조회시간과 종례시간이 고역이었다.

노래를 좋아했던 선생님은 조회때 세 곡, 종례 때 세 곡을 모두함께 부르게 하고 나면 나의 독창을 반드시 시켰다.

당시 선생님의 나에 대한 애정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끔찍했다.

 

겨울이 되자 교내 콩쿨대회가 벌어졌다.

선생님은 매일 나를 연습시켰고 주말엔 과외수업(?)까지 이루어졌다.

출전곡은 눈내리는 밤이었다.

 

창 밖에 함박눈이 내리는 밤은

멀리 두고 온 고향생각 그립다

이웃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옛이야기 즐겁게 꽃피는 마을

밤깊은줄 모르던 고향생각 그립다.

 

가사에 문법상으로 조금 문제가 있는 이 곡은 당시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던 곡이었다.

이 노래는 하루 두 차례 즉, 조회와 종례때 친구들 앞에서 독창으로 불러제껴야 했던 바로 그 곡이었다.

당시 강당이 없었던 학교는 교실 한 개를 임시 강당으로 개조(?)를 했는데 무대가 제법 그럴듯했다.

교실은 출전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나와 자리를 가득 메웠다.

 

내 기억엔 각 학년 각 반 대표들이 한 명씩 나온 관계로 출전자는 총 12명이었던 것 같다.

내 차례가 되어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은 나의 노래에 만족감을 표했다.

하지만 1반 대표인 박정미가 출전하면서 나는 기가 죽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정미의 노래는 깔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긴장때문에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율동없이 밋밋하게 노래를 불렀던 나와 달리

정미는 무릎을 사뿐히 굽혔다 펴가며 약간의 율동을 취했고 얼굴표정은 생글 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우수상은 나의 짐작대로 정미에게 안겨졌다.

내가 장려상을 받으러 나갈 때 선생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다음날 안 사실이었지만 선생님은 그 심사결과에 매우 심기가 불편해했다.

우수상이 당연히 정미꺼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선생님은 우수상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을 언중에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내가 살던 아파트에 엄마들만 모이면 나에게 노래를 시켰다.

숙기 없는 나에겐 고역이었다.

만일 내게 노래를 지도해 주셨던 그 선생님이 일직 전근가시지 않고 좀 더 오래 계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노래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계속되었고 중학교 시절 변성기가 지나면서 내 성대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없는 목소리만 만들어 내게 되고 말았다.

음악과는 상관도 없는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모 대학교 직원으로 근무중이니 선생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이다.

지금도 내가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 노래방과 단란주점이다.

물론 지금 나의 직업과 일에 만족해하며 살고 있지만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성악과를 가고싶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코 코렐리, 마리오 델 모나코,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등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얼토당토 않게 질투심을 느끼곤 한다.

유명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성악과를 졸업해 노래 잘하는 교직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내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노래는 잊고 음악을 듣다.

 

노래를 잊고 살던 중학교 1학년의 어느날 아버지가 당시로선 귀했던 일제 녹음기를 들여왔고 나와 함께 방을 썼던 형은 큰 집 형으로부터 12개짜리 세트로 된 영화음악 테잎을 빌려왔다.

형이 음악을 들을 때 옆에 있었던 나는 음악들이 귀에 익으면서 영화음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방을 든 여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진홍의 날개,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랑의 엔젤러스, 남과여, 사운드 오브 뮤직, 내일을 향해 쏴라, 베를린 천사의 시 등이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곡들이었다.

 

그러다가 79년도에 처음 데뷔한 빌리지 피플의 YMCA 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라디오는 물론 음반가게마다 이 노래로 넘쳐났다.

가는 곳마다 들리던 이 노래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나도 역시 이 노래에 빠졌다.

이 것이 계기가 되어 비지스와 비틀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락그룹 KISS의 기괴한 분장과 의상 그리고 광란적인 스테이지에 매력을 느낀 나는 호기심에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나서 이 번엔 하드록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뒤로 딥퍼플,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산타나, 제프 벡, 에릭 클랩튼, 도어스, 반 헤일런 등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다시 알 디 메올라, 리 리트너, 밥 제임스 등 퓨전 재즈에 빠져 들었다.

록, 재즈, 소울 심지어는 라틴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녹여낸 이 음악장르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기타 위주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올맨 브러더스, 머디 워터스, 비비킹, J.J. 케일, 로이 부케넌, 조 패스, 스노위 와이트, 로빈 트로워, 마이크 블룸필드, 하울링 울프 등 기타 잘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찾게 되었고 동시에 블루스적 감성이 풍부한 음악을 찾게 되었다.

 

기타 음악을 찾던 나에게 또다시 새로운 전기가 왔다.

프로그래시브 락그룹 스카이의 기타리스트가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가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일단 내가 기존에 듣던 음악의 아티스트가 클래식과 관계가 있으면 그것부터 사서 들었다.

그래서 대학 3학년때 구입한 것이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중주, 이차크 펄만(바이올린), 존 윌리엄스(기타), CBS, 지구레코드 였다.

이차크 펄만은 현재 그리 좋아하는 연주자는 아니지만 나로 하여금 바이올린의 매력에 빠지도록 도와준 것만은 틀림 없다.

어쨋든 곧 군대를 가게 된 나는 클래식 기타를 듣기 시작해 영화음악 '금지된 장난'의 주인공 나르시소 예페스의 음반을 찾게 되었는데 그래서 구입한 것이

로드리고의 아랑페즈협주곡, 나르시소 예페스(기타), 가르샤 나바로(지휘), 도이치 그라모폰, 성음 테잎이었다.

끌로드 볼링과 장 피에르 랑팔의 퓨전재즈 음반을 듣고 장 피에르 랑팔의 모차르트 음반을,

재즈음반으로만 들었던 윈튼 마살리스의 트렘펫 클래식음악을 차례로 섭렵하게 되었고(그가 연주하는 말벌의 비행은 나로 하여금 그의 폐활량과 기교에 경악을 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재즈풍의 클래식음악인 거시윈의 랩소디 인 블루가 나를 클래식 음반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음악감상의 깊이를 갖게 되면서 장르의 이동이 발생하는 반면 지속적인 레퍼토리의 확장으로 연결되어 지금까지도 모든 장르를 다 듣게 되었다.

클래식, 블루스, 재즈, 록, 월드뮤직, 제3세계 전통음악, 가요, 한국고전음악 등을 모두 듣게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듣지 않는 장르는 있다.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내게 준 영화음악은 배신적 발언이 되겠지만 듣지 않는다.

경음악, 왈츠, 뉴에이지, 댄스뮤직 등은 듣지 않는 음악이다. 

또 CD음에 싫증이 난 나는 LP를 다시 찾게 되었고 "LP와음악사랑"이라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카페에 가입하여 지금은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 곳에서 나의 지식은 엄청 많이 늘었다.  

음악은 '신'이요 음악가는 '사제'라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건방지기 짝이 없는 소리를 읽은 적이 있지만 음악은 즐기는 것이지 숭배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음악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지 결코 지식을 가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