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7 영국

런던 레코드숍/펍 순례기 3

코렐리 2017. 10. 20. 16:52

2017.10.5.(목)

Guildford로 가기로 작심한 날이다. 늦잠부터 실컷 잤다. 8시 넘도록 자고 09:00에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부터 챙겨먹고10:30 숙소를 나섰다. 만날 똑같은 메뉴지만 선택의 폭이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막상 집어오는 음식도 만날 똑같다.

 

지하철 Jubilee선을 타고 Waterloo Underground St.에서 내려 1분 정도 걸으니 워털루역으로 연결된다. 도착 시간은 오전 11:00. 열차표부터 구입하기 위해 자동 발매기로 갔다. 열차표는 구입창구는 없고 전부 자동발매로 이루어진다. 적잖은 시간 헤맸다.


플랫폼 14에서 11:15발 열차에 탑승했다.

 

이 사진은 내가 왜 찍었던가...? 심심했겠지 뭐.

 

공장지대 주변엔 우리나라 연립주택 개념정도 되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런던 풍경을 실감하게 된다.

 

길포드로 가는 열차 안에서 한 것.

 

12:00경 Guildford Rail St.에서 하차했다. 기차역으로부터 가고자 했던 레코드 가게는 그닥 멀지 않았다. 도보로 11분 정도 걸렸다. 점심식사 시간이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은 조식 때문에 뱃속은 아직도 그들먹하다. 오직 디깅 생각만 머릿 속에 꽉 찼을 뿐..

 

지도를 따라 가면서 보는 유럽적인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돌바닥길이 인상적이네...

 

레코드 가게를 찾아가 디깅할 생각에 가뜨기나 행복한데 골목으로 들어갈 수록 운치가 있어 찾아가는 길도 즐겁다.

 

 

어렵지 않게 찾아낸 Ben's Collectors Recoprds. 벤이란 이름을 가진 주인장은 얼굴이 새빨갛다. 선하기 그지없는 그는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밉지 않고 무척 친절하다. 좋은 레퍼토리들이 많이 나온다. 반질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쓸만한 음반이 적잖이 나온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나서 그는 값을 확 깎으며 내게 물었다.

"이 정도로 해주면 행복해?"

말도 꺼내기 전 알아서 깎아주는데 더 깎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초기의 프레싱이다. 메트 넘버 1/2

 

이 것도 와이드 밴드 초기 프레싱.

 

쿼드로 버전.

 

초반중에서도 초반 구함.

 

두 번째 프레싱.

 

초반.

 

초반

 

초반인데 포스터가 엄따. ㅠㅠ

 

초반.

 

 

 

 

 

 

 

 

 

 

 

 

 

  

벤네 가게에서 가져온 음반 중 최고의 만족감을 주었던 그리고 전부터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핑크 플로이드 닥사이드 초반이다. 사진은 저녁때 숙소로 돌아와 마루바닥에 펼쳐놓은 사진. 커버가 낡은게 흠이지만 알판은 무척 깨끗하다. 포스터는 이게 1971년에 인쇄한 게 맞나 의아할 정도록 깨끗했다. 나중 이야기지만 이 포스터는 최근의 재발매반에서 꺼내 끼워 넣은 것이었다. 엽서 뒷면에 인터넷 주소가 희미하게 연속무늬로 들어갔는데 1971년에 인터넷이라니... 이건 또 뭐꼬? 물론 친절하기 짝이없는데다 욕심 조차도 없어보이는 벤이(그는 평판도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일부러 그랬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이걸 갖고 있던 불량식품같은  전주인넘이 초반에 포스터가 없는게 안타까워 최근 재발매반을 구입해 포스터를 끼워 넣었다가 팔면서 이렇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디선가 우연히 이 음반을 입수해 악의로 벤에게 팔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좋게 생각할란다. 어쨌든 나는 이 음반 때문에 길포드로 다시 가야했다. 바꾸던지 환불받던지...

 

이 곳의 유명 레코드 가게 중 하나인 Collectors Record Centers에 17:00경 도착했다. 벤의 가게를 나설 때 킹 크림슨 초반도 갖고 있다며 꼭 들러보라고 권유받은 가게였다. 자기도 가게를 열기 전에는 일을 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벤네 가게에서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허걱. 하필이면 오늘 쉴건 또 뭐냐. 오늘도 똥 밟았다.

 

어? 이 날은 쉬는 날이 아닌디? 이런 싸발통.

 

얼레리여?

 

이 곳에서 디깅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길포드역으로 돌아왔다. 역으로 오면서 수퍼마킷에 들러 샌드위치와 우유를 샀다. 이 곳에서 식사하기도 애매하고 런던으로 돌아가자면 적잖은 시장기에 시달릴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차분하게 앉아 맛있게 즐길 레스토랑도 흔치 한은 런던이고 보면 이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듯 하다. 게다가 초저녁에 맥주를 즐기자면 약간은 시장기가 돌아야 진짜 맛있게 즐길 수 있으니... 거친 밀빵에 터지듯 탱탱하게 씹히는 새우와 부드럽게 씹히는 연어를 주재료로 한 이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맛이 아주 좋았다. 17:59. 런던행 탑승.

 

이 날 저녁의 계획은 영국의 유서깊은 펍 Blackfriars로 가서 캐스크 에일을 마시는 일이었다. 같은 이름의 블랙 프라이어역에서 나가면 바로 보이는 삼각형 건물이 바로 그 문제의 펍이다. 이미 어둠이 깔린 뒤의 시간이었다.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 채로 맥주를 즐기며 저녁시간의 여유와 대화를 즐긴다. 퍼블릭 하우스라는 이름이 실감날 정도로 이들이 가진 느낌은 편안하고 여유롭다. 도로 사이의 자투리 땅에 세운 이 건물은 아주 오래된 건물이다. 도로가 이렇게 저렇게 마구 개발되거나 구획정리로 인한 파괴 없이 잘 보존된 결과다. 안으로 들어가봤다. 실내에는 수도원 풍경을 테마로 한 부조가 실내 전체를 장식하고 있으며, 불투명 유리, 고급스러운 원탁, 네모탁, 낮은 의자가 실내애 깔려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우선 가장 궁금한 탭부터 들여다 봤다. 5개의 탭 중 4개 운영중.

 

Fuller's사의 맥주 London Pride부터 1 파인트 주문했다. 가격은 대부분 5파운드 약간 못미친다.

 

한 잔 받아놓고 보니 역시 영국의 에일은 색깔부터가 아름답다. 아름다운 호박색. 거품이 무척 부드럽다. 잔이 윗부분이 잠깐 넓어졌다 좁아지는 형태다. 호프향이 비교적 적은 편이고 시큼한 맛이 강한 편이다. 피니시도 비교적 짧은편. 쓴맛이 적고 달달하다. 탄산기가 많지 않은 영국 에일 중에서도 아주 적은편이다.


펍 내부엔 사람들로 가득찼다. 인도계로 보이는 한 남자는 혼자 온 것 같은데 보통 수다쟁이가 아니었다. 펍의 여직원들도 그의 너스레이 기꺼워 웃곤 한다. 그의 수다가 주변 분위기를 유쾌하게 했다. 내게도 어디서 왔냐는 둥 영국이 어떠냐는 둥, 왜 왔냐는 둥 오지랖을 발휘했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한 여직원이 컵을 1열로 높게 쌓아 이동하는 장면이 보이는 데 그 높이는 묘기에 가까워 놀랄 지경이었다. 그녀의 노련함이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펍 바깥에서 손님들이 마신 잔을 놓아두고 가면 그 잔을 걷어오는것이다. 인상적이다.

 

우리네 한국인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적지 않은 안주를 먹는다. 이들은 다르다. 맥주는 벌꺽벌꺽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그저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마시는 음료다. 이러니 안주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벌꺽벌꺽 급하게 마신다. 한국인이 많이 오면 떼돈을 벌게 틀림없었다. 영국인들은 그저 요기로 피시 앤 칩스나 구운 고기를 먹는 정도. 안주 없이 먹으려니 쪼까 부담스럽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종료의 맥주를 맛보기 위해 반파인트씩만 마시기로 했다.


Nicholson's Pale Ale(4.0%) 반파인트 주문했다. 3파운드에는 조금 못미치는 가격이지만 1파인트 주문하는 것보단 조금 비싼 셈이다. 이 번 맥주는 호프향이 강한 편이다.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페일 에일이다. 거품 입자는 굵은편이지만 부드럽다. 거품은 영국 에일이 모두 그러하듯이 당연히 일찍 꺼진다. 색깔은 당연히 아름다운 호박색. 잔모양은 런던 프라이드의 잔과 같다. 호프향과 몰트향이 예술이다. 과일향도 상큼하게 진동한다.캐러멜향도 적절히 융합되고 오렌지맛이 느껴진다. 잔향이 길어 무척 마음에 든다. 쓴맛도 무척 상쾌하다. 아주 마음에 드는 맛있는 맥주다.

한국에서부터 맛들인 ESB는 언제나 만나게 될까. 의외로 흔하게 눈에 띠지 않는다.

 

 

Nicolson's Porter도 반파인트 주문했다. 3.4파운드 정도의 가격이 나온다. 적갈색의 액체 위에 앉은 거품은 기네스의 어미뻘 되는 맥주이므로 영국맥주 치고는 드물게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편이나 기네스보다는 매우 거친편이다. 맥주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런던에서 유행하던 포터 맥주는 영국에 크게 반감을 가져온 아일랜드에 수출되어 현지 맥주 시장을 초토화시켠 바 있고 이에 대한 대항마로 나온 맥주가 기네스 스타우트다. 결국 기네스 스타우트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맥주가 되었고 영국으로 역수출되어 포터 맥주를 대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개인적으로는 기네스 맥주는 거품이 어느 맥주보다도 섬세하고 향이 좋은것은 사실이지만 맛이 지나치게 드라이한 탓에 혀 끝에 닿는 맛이 도통 없다. 좋은 맥주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이유다. 내겐 포터가 오히려 맞는다. 포터 잔 역시 위의 잔과 모양이 같다. 포터인 만큼 쓴맛이 강하다. 탄산기도 캐스크 에일 치고는 매우 강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음 좋아좋아... 토스트맛이 나고 과일향은 비교적 적은편이다.. 맛은 전반적으로 좋은 맥주다.

 

검정색에 가까운 포터의 섹시한 자태.

 

회수된 빈잔. 우와~ 안주도 그닥 팔리지 않는 영국에선 맥주를 많이 팔아야 돈벌게 생겼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 후 10:00쯤 잠자리에 들었다. 이 날 구입한 음반들은 돌돌이에 대충 넣어놓고 가는 꿈의 세계는 향긋하고 맛좋은 맥주의 은근함이 뭍어 더욱 달콤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