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열기와 음악 속으로, 쿠바여행 9(트리니다드-->아바나)
2016.9.17.(토)
아침 09:00에 일어난 것은 잘만큼 잤기 때문도 아니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정원에서의 푸짐한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 전날과 같이 쿠바 샌드위치는 변함없이 나왔고 맛이 역시 좋다.
어쭈? 이거봐라? 이 쿠키는 부드럽게 씹히는데다 다른 비스킷 처럼 입안 구석구석에 타액으로 뭉그러진 것들이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잔존하지도 않고 부드럽게 다 넘어간다. 고급스러운 맛이다.
식사가 끝나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 집 딸을 처음 보게 되었다. 아하, 정원과 대문 사이 공간에 웬 모델 사진이 붙어 있나 했는데 바로 이집 여주인의 딸이었다. 생각보다 키는 작았지만 매력있는 여고생이었다. 영어를 곧 잘해서 안주인과의 대화에 통역 역할을 했준다.
사진에서는 무척 성숙해 보였지만 이건 화장과 연출이고 여고생은 그저 여고생일 뿐이었다. 나는 웬 모델인가 했는데 이집 딸이란 사실은 오늘 알았고 드디어 만나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고 너스레를 떨어봤다. 워낙 친절한 사람들이어서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었지만 워낙 조용한 사람들이어서 거절할 것 같아 묻지도 않고 접었다.
이 날은 아바나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 작은 도시는 느리적거리는 일정으로 소화를 했어도 이미 가 볼 곳은 다 가봤고 더 이상 가 볼 곳은 없었다. 좀 더 일찍 비아술 표를 구했다면 좀 더 일찍 떠날 수도 있었는데 비수기여서 버스표가 남아돌거라 생각한데다 버스터미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갈 일도 없고 미루던게 잘못이었다. 어쨌든 오후 4시까지는 시간을 때워야 했다. 친절의 끝판왕인 카사 여주인은 그 때까지 머무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환전하러 나갔다. 조식 후 바로 환전소로 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 있었다. 아바나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여행객들을 위해 환전소를 좀 늘리던지 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모양이다. 그 불편함은 고스란히 여행자들의 몫이다. 역시 사회주의 국가의 병폐다. 날이나 뜨겁질 말아야 말이지. 30분은 기다린 것 같다. 130 캐나다 달러 환전해 93쿡 받았다. 환전을 한 뒤 안다녀 본 골목이 있나 슬슬 돌아다녀 봤다. 11:30
야, 느덜은 뭐냐. 꿈에 나타날까 겂난다. ㅡ,.ㅡ;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가봤다. 종교는 아편이냐. 이미 혁명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혁명에 사용되었던 무기와 사진들이 대부분. 볼건 진짜 없다. 그래도 입장료(1쿡)는 받는다.
난 혁명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종탑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 보는게 목적이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종도 올라가면서 각기 다른 크기의 종이 여러개 설치되어 있다.
작은 도시여서 이 곳에만 올라가도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인다. City 라기 보다는 Town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이 친구하고 사진을 주고받기 했지만 역광이라 얼굴이 시커멓게 나온다. 그녀가 찍어준 사진은 그래서 통과.
맨 꼭데기층의 바로 아래층에서 내려다 본 시내
꼭데기에서 내려다 본 시내 1.
맨 꼭데기에서 내려다 본 시내 2.
다음으로 들른 곳은 한 골목만 돌아서면 나오는 카페 깐찬차라.
이미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곳의 뮤지션들의 음악이 카사 델 라 뮤지카나 트로바 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이 곳 트리니다드에서 본 공연 중 연주력이 가장 뛰어나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길게 벤치 처럼 긴 의자를 놓고 작은 테이블을 중간중간에 놓았다. 개개인의 대화보다는 공연에 집중이 되도록 한 배치였다.
트리니다드에 오면 반드시 마셔줘야 하는 칵테일 깐찬차라(3쿡). 꿀을 잔뜩 넣어 달달하다. 옆에 앉은 흑인풍의 풍성한 머리를 한 스페인 처자가 엄청 예뻤었는데 내가 칵테일을 주문해 받아들자 처음 마셔본다는걸 눈치 챘는지 묻지도 않았건만 마시는 법을 허락없이(?) 설명했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다 듣고 감탄하며 고맙다며 오버해 봤다. 이유가 있다. 넘 예뻐서 말 좀 섞었다가 친해지면 사진 좀 찍을려고 했는데 이내 제 두 친구들과 함께 일어서는데 일행이 있으니 잡을 수가 있나. 그래 잘가라. ㅡ,.ㅡ;
그녀가 가고 난 뒤 한자 셀카. 젠장~
행복하게 미소를 띠우며 시가를 피우는 한 아저씨.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허락 받고 한 컷 찍었다.
아저씨의 부인인지 연인인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살사 스텝에 의한 정교한(?) 춤이 아닌 막춤이다. 모두들 멋진 춤솜씨 과시하기에 바쁘건만 이 사나이는 그저 자신을 위해 즐길 뿐이다. 용기가 가상하다. 하지만 얼굴에 행복감이 가득한 이 양반의 표정이 그의 모습을 멋지게 보도록 만든다. 부럽다. 당신은 내가 본 중 가장 멋진 남자 중 한명이오.
관광객 중 한 사람이 일하다 만 사람과 사진을 찍는다.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의 기묘한 카리스마가 범상치는 않다.
아이고 알고보니 이 곳 출연의 뮤지션이었다.
이 사람이 노래를 과연 잘 할까? 엉성하나마 그럭저럭 부르나 보지. 전술한 바 있지만 이 곳 트리니다드는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한 쿠바의 3대 도시 중 음악적 카리스마가 가장 약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런 선입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설명하기 어렵도록 묘하게 느껴지는 4차원적 카리스마를 가진 이 남자 노래를 들어보고 경악을 했다. 이 곳 트리니다드 뮤지션 중 단연 최고다. 놀랍다.
그의 노래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들을 조합하기에 쉽지는 않지만 궂이 표현하자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공간을 뒤흔들고 그 공기를 가르거나 찢는듯한 파괴력이 있다.
공연도 끝나고 깐찬차라도 다 마셔 버렸고... 시간을 때울 다른 곳을 찾기로 했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기념품 가게. 12:50
이 곳에서 모자를 하나 사고 싶었지만 마음에 드는 모자는 없었다. 여자용 모자는 예쁜게 좀 눈에 띤다.
기념품은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짐 늘리는걸 막기 위해 가급적 마지막 날에 산다. 그런데 눈에 띠는 물건이 나온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토트백. 색깔도 인쇄도 디자인도 모두 마음에 든다. 남자가 토트백에 관심갖는 이유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앨피 매니아(LP Mania)들에게 주면 거의 미치는 물건들이다. 여기에 얼피를 담아 어깨에 메고 다니면 최고다. 세 개가 있는데 전부다 사고도 더 있는지를 물었으나 아쉽게도 더는 없다. 개당 8쿡. 도합 24쿡인데 20쿡에 깎아 구입.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부터 물색했다. 값싸고 좋아 보이는 식당 하나 발견. 아무리 식사시간을 넘겼다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으면 이상한거다. 날 더우니 다 귀찮다. 걍 들어가 앉으니 땀이 비오듯 흐른다.
보기엔 맛있어 보인다만. 싼게 비지떡인건가.
식당은 예쁜데...
맥주부터 한 잔 마셔 주시고(2쿡)
곧이어 나온 치킨에 밥. 그냥 아무 요리없이 덮어놓고 튀긴게 틀림없었다. 3.25쿡이면 엄청 저렴한 식사다. 하지만 이 돈 내고도 산티아고에서 내가 다녔던 식당이면 훌륭한 음식이 나온다. 내가 너무 많은걸 바랬나보다.
숙소로 돌아와 카사 여주인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계산을 했다.
당초 방값이 30쿡이었지만 깎아 20쿡으로 했다. 이틀 묵어 40쿡. 조식 2회 10쿡. 도함 50쿡. 훌륭한 식사와 훌륭한 숙소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다.
다시 터미널로 왔다. 버스는 와서 표를 바로 확보하는 것이 아니고 와서 예약한 뒤 떠날 시간 직전에 표를 받아 표값을 계산한다. 아바나까지 25쿡. 이 때가 15:00 조금 넘은 시간이니 16:00발 차를 타자면 시간이 남는다.
시간 때울 곳이 좀 아까 들렀던 곳이지만 깐찬차라가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았다.
결국 다시 가서 깐찬차라에서 칵테일 시켜 느긋하게 즐기며 시간을 죽이다 15분 정도 남겨두고 나왔다.
아바나에서는 보기 어려운 트럭 개조 버스.
터미널 대합실로 돌아오니 카스트로 사진만 잔뜩 붙어있다.
드디어 떠난다. 산티아고에서 이 곳 트리니다드에 오느라고 꼬박 12시간 걸린데 비하면 오프닝 게임 정도로 가볍게 느껴지는 거리지만 그래도 7시간이 걸린다.
밥먹기도 애매한 시간이었고 가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걸리고. 애매해서 군것질거리와 물을 샀다. 날이 더운 곳이어서 그런가 다이제스티브 바닥에 바른 초컬릿은 녹아 떡이 되었고 과자는 눅눅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럽게 맛없다.
바깥 풍경은 수시로 바뀐다. 자작나무처럼 생긴 나무 숲도 나오고. 가다 보니 바로 앞에 앉은 백인 청년이 매너도 없이 등받이를 갑작스럽게 뒤로 확 제꼈다. 아니 이 죽일롬 보게? 살살 해도 무매너인데 갑자기 확 제껴? 나는 등받이를 좀 세워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그는 미안하단 말도 없이 등받이를 반정도 다시 당겼지만 왠지 못마땅해하는 느낌이었다.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모른척 했다. 잠깐 자고 눈을 떠보니 백팩 옆주머니에 넣었던 3단접이 우산이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다시 집어 선반에 놓여진 백팩 옆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이게 다시 빠졌나보다. 이게 다시 뽑혔을 때 버스가 감속을 했는지 다시 떨어졌다. 정확하게 바로 앞 청년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내가 봐도 아플 것 같았다. 은근히 괴씸하고 은근히 미웠던 친구였지만 당황하고 미안했다. 괜찮냐 물으며 사과하자 그는 손을 내밀었다. 나와 손을 맞잡고 난 그는 다시 잠이 들었다.
바닷가도 나오고
해질 무렵엔 붉게 물든 하늘이 구름사이도 보이기도 한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22:40쯤이었다.
택시를 타고 전에 아바나에서 묵었던 그 아파트 카사로 갔다. 카사에서 내가 묵었던 호실은 알지만 주인이 사는 호실은 알지 못했다. 내가 묵었던 카사는 2층이었고 주인 가족이 사는 곳은 3층이라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걸 물어보려고 했지만 여주인이 전화받지 않고 그 아들이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영어로 말을 하니 대화는 불가능했다. 산티아고에서 하코보를 통해 간신히 통화를 했고 방을 이 날부터 이틀간 확보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열악한 쿠바의 통신사정은 내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3층으로 가봤다. 아무 집이나 벨을 눌렀다. 누군가 나왔다.
"카사 예약을 했는데 주인집이 어딘 줄 모르겠습니다. 주인 이름이 Mrs. 오달리스 인데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면 골아프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주인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도 싶었다. 우리나라에선 바로 옆집 거주자 이름도 모르지만 이들의 생활은 상당히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책으로 읽은 적 있는 나로선 그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 그가 영어를 알았다. 그가 집을 알려줘 초인종을 눌렀다. 그의 아들이 나왔다. 나는 그래도 오달리스 아줌마가 있을걸로 기대했다. 그가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게다가 지독한 허스키 보이스는 그의 말을 알아듣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대화를 시도하다 시도하다 나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나 니 말 모르겠다. 엄마 좀 만나야긋다."
"울엄마 없다. 먼데 갔다.
아~ 망연 자실. 그가 하는 말 중 간신히 알아들은 말이 있다.
"우리한텐 방이 없다. 내가 당신한테 이미 말했잖냐.(니가 언제 말했냐. 이상한 영어만 해놓쿠선). 내 이웃이 널 데릴러 올거다."
나는 어떤 카사인지도 모르고 선택권도 없이 끌려가긴 싫었다. 나는 내 스스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는 상관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에게 수고했다고 한 뒤 나왔다. 졸 돌아 다녔다. 외관상 좋아 보이는 카사 몇 군데 벨을 눌러 보니 대답이 없거나 방이 없단다. 샤워하고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미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다시 오달리스 아줌마네 아들한테 가볼까... 장시간 이동에 늦은 시간이었다. 너무 힘들어 자존심을 접고 다시 오달리스 아줌니 댁으로 다시 찾아가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그 새 어딜 간건지 누가 왔나 문구멍으로 내다 보고 삐져서 대답을 안한건지. 그러다 귀족이 사는 곳처럼 럭셔리해 보이는 응접실이 철창만 닫혀 다 들여다 보이는 곳이 있었다. 카사 운영 마크가 있어 물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어 물었다.
"방있슴까."
그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두 손을 포개 모으고 뺨에 댄 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자고 싶단 소리 정도도 못알아 먹을까.
그는 휴대폰으로 자기 의사표현을 해 내게 보여 주었다. 에스파뇰이었다. 아 젠장. 카사 직원이 영어도 못하냐?
좀 있으니 한 서양인이 나왔다. 그에게 에스파뇰을 아느냐 물으니 조금 한단다. 그래서 그가 통역을 해줬다.
방도 있고 하루에 40쿡이란다. 럭셔리하긴 하지만 넘 비싸다.
간신히 의사소통한 끝에 2일 묵을거고 박당 30쿡에 2일간 60쿡으로 협상을 시도해 봤다. 간신히 알아먹은 그가 잠간 기다리라 하고는 주인아주머닌지 지배인인지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데려왔다. 그녀가 흔쾌히 오케이 했다. 어차피 방도 남는 눈치. 이 집 응접실 사진 몇 장 올려봤다.
이 곳은 카사라고는 하지만 민박이라기보단 전문적인 여관인 것 같다. 이 곳 쿠바에서는 처음 보는 형태다.
방도 깔끔한게 좋긴 한데 창이 없고 습기가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습기는 있었지만 에어컨디션 성능은 최고였다. 내겐 가장 중요한 요소다.
냉장고엔 마실 것도 있고.
냉장고에 든 음료 값은 가게방과 비슷하거나 좀 더 싸다. 오우. 이런 감격 덩어리가 있나.
배가 고파 밖으로 나왔다. 뭘 먹었는지 기억 안난다. 사진도 없넹?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 마시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