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열기와 음악 속으로, 쿠바여행 7(트리니다드)
2016.9.15.(목)
비아술이 트리니다드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07:30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부터 구해야 할텐데 잠을 불편하게 잔 때문인지 피로감이 느껴지고, 건조해진 눈을 뜨기 쉽지 않다. 버스터미널에는 많은 숙박업자들이 몰려나와 호객했다. 난 스스로 맘에 드는 숙소를 찾아낼 심산이어서 그들과는 상대를 하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여학생들 학교 가는 모습도 눈에 띤다.
일단 마요르광장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왼 쪽으로 산 프란시스코 교회가 보인다. 지금은 혁명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골목 골목이 무척 아름답다. 내가 쿠바를 찾은 두 번째 이유다. 특히 이 곳 트리니다드 골목의 아름다운 풍경은 쿠바에서도 유별나다. 저 끝에 마요르광장이 보인다.
마요르 광장. 왼쪽 파란 벽의 건물은 건축박물관.
오른쪽은 로만티코 박물관. 사탕수수농장 부호였던 Burnet이 1808년에 지은 개인저택으로 1973년 이후 내부를 공개해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그 왼쪽의 종탑이 딸린 건물은 성 프란시스코 교회.
마요르광장을 찾은 이유는 위치상 이 도시의 중심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 곳을 기준삼아 방향을 잡기 위해서였고 염두에 두고있던 카사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가이드북의 지도를 본며 내리막길을 걷다 보니 간판도 없는 희한한 샌드위치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일레리여? 이건 또 뭐임?
"야, 너 누구냐."
"아 예, 전 맨 빵이고요. 제 품으로 파고든 애는 튀긴생선입니다."
그러잖아도 아침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황인데 반갑기 짝이 없다. 부드러운 빵 사이에 들어간 생선튀김이 아자작 씹히며 짭쪼름 싱싱한 생선살이 함께 씹힌다. 이걸 씹는 첫 순간 내가 내 자신을 보았다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을 봤을게다. 웃기지도 않게 생긴 이 생선 샌드위치 정말 맛있다. 다시 되돌아가 하나 더 살까 하다가 우선 카사부터 잡고 볼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골목이 그 골목... 두 번 다시 이 가게는 찾지 못했다. ㅠㅠ
묵고자 하는 숙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쉬지 않고 눈길을 사로잡는 골목풍경은 이 곳에 오길 잘했다는 뿌듯함으로 마음조차 흐믓하다.
배경과 으쩜 일케 잘어울릴까. 매력 넘치는 구식 자동차.
불균형하게 생긴 "H"자를 옆으로 뉘운 듯한 마크는 카사를 운영하는 집이란 표시다. 쿠바에서 카사를 구할 때는 집 앞에 이런 표시가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지만 안으로 들어가보지 않고서야 정원이 딸려 있는 집인지 마음에 드는 분위기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현지에서 알아볼 참이라면 일부러라도 여러 집을 방문해 볼 필요가 있다.
멋드러진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가고자 했던 곳은 몇 번을 갔던 곳 다시 가고 근처를 배회했지만 지도가 정확하지 않아 찾을 수 없었다. 백팩을 맨 체 이리저리 지도를 들고 다니고 있으니 어디선가 새로 도착한 듯한 행색이 분명했을테고 몇 몇 카사운영 주민들이 한 번 보기나 하라며 자신들의 집을 봐주길 요청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오른쪽 눈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한 번 보기나 하란 소리다. 몇 군데 들러 봤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정원이 전혀 없이 답답한 방만 있는 경우만 세 집을 봤다. 같은 돈 내고 답답하게 생활할 이유가 없었다.
정원과 방을 보자면 덮어놓고 방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문이 큰 집만 찾아 다녔다. 대문이 크면 정원도 크리라는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덮어놓고 벨을 눌러 방문한 집 중 하나. 정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정원에 면한 주방 겸 식당은 으쩜 이렇게 깔끔하고 예쁘냐. 문제는 방이 있기는 하지만 에어컨이 고장이었다. 이들은 영어를 하지 못해 에어컨이 나갔단 소릴 하지 못한건지 일부러 안한건지 몰라도 방을 배정받은 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부터 작동해 봤다. 작동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어떻게 된건지 물었지만 에어컨디션이 고장이란 것을 확인하는데는 한참동 안의 의사소통 시도 끝에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다른 집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시늉을 했다. 따라가 봤다.
따라간 곳은 바로 이 집.
완전 대박이었다. 방금 들른 집보다 최소한 정원은 훨씬 멋졌다.
정원 끝에는 응접실 겸 식당이 개방형으로 설치되어 있고 그 곳에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나를 안내해
그 곳에 있는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내게 내주었다. 쿠바에는 창문이 없는 방이 많다. 벽인지 담벼락인지 알 수 없는 길다란 벽면을 따라 구역이 나누어져 있어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으로 방을 배치하는 통에 방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정면에 보이는 벽면은 이웃집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벽이므로 당연히 창문이 없었다. 좌 우 벽은 옆 방과의 경계를 가른 벽이다. 그러면 창문 없는 방이 된다. 그런데 내가 안내 받은 방은 창이 두개나 달렸고 발코니까지 딸려 있으니 대박이었다. 방 배치가 2층에 있기 때문이었다. 묵기로 결정했다. 이 때 시간이 08:00. 이 곳에 도착해 30분만에 마음에 드는 카사를 구한 셈이다.
깨끗한 욕실.
발코니로 내다 본 이 집 정원의 끝.
이 집 정원이다.
어디서 봐도 정말 아름다운 집이다. 숙박비가 40쿡이었는데 30쿡으로 네고를 시도하니 손님도 어차피 없었고 흔쾌히 수락했다. 아침식사는 불포함이어서 아침식사는 하지 않겠다 하니 이 집 어르신이 무척 실망하는 눈치였다. 주인장 가족은 스페인계 사람들로 인상이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에어컨 틀어 놓고 샤워를 마치고 나니 개운하기 짝이 없다. 빨래는 비눗물 푼 물레 담가두고 빨기를 미뤘다. 밤새 버스 안에서 청한 잠이 부족했는지 다시 피곤함이 몰려온다. 신체가 느끼는 피로가 감당되지 않는지 하품을 할 적마다 맥시멈으로 벌려진 입은 더 크게 벌려지고려고 하니 더 많은 산소 흡입을 몸이 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오는 하품 억제 안되고 벌려진 입 그만 벌리고 싶은데 더 크게 별려지고... 이런 일이 쉽없이 계속 반복된다. 일단 더 잤다.
시간이 아까우니 09:00에 잠자리에 들면서 12:00가 되기 전에는 일어나고자 했지만 정작 일어난 시간은 13:00나 된 시간이었다. 점심도 먹고 환전도 해야 할 참이었다. 아무생각 없이 밥먹고 싶은 집이 나올 때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비교적 럭셔리해 보이는 레스토랑을 하나 발견하고 들어가 봤다.
음식값이 아바나나 산티아고와 비교해 비싼 편이었다. 10쿡짜리 돼지고기 요리하고.
쌀밥하고
오늘의 스무디.
오늘의 스무디는 망고였다. 맛있네... 환상적인 맛이지만 식전에 마시기엔 너무 묵직해 좀 부담스러운 편이지만 식사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느긋하게 즐기기에 더없이 좋겠다.
얇게 저민 돼지 뱃살에 허브를 넣고 돌돌말아 천천히 구운 두야지 고기. 맛은 있지만 천천히 구운 고기여서 껍데기가 무척 건조하고 질기다. 하품하다 나도 모르게 머리근육 좌우 턱연결 근육에 무리가 깄는지 씹는데 어려움이 느껴진 것은 이 때 처음이었다. 이게 왠일이냐. 파프리카, 마늘, 껍질째 요리한 콩, 파인애플로 구성된 야채는 토마토 소스와 함께 조리해 비교적 입 안에서 감도는 풍미가 아주 풍부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맛을 제공한다. 밥은 인도 커리를 섞어 볶은 것 같은데 짜다. 맥주는 가는 곳마다 찾는 나이지만 날이 워낙 더우니 맥주는 덜 찾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들른 화장실은. 허걱. 이게 화장실이냐. 넓디 넓은 운동장 같은 방 저 끝에 변기 있고, 그 반대쪽 끝에 비데 있고. 똥싸고 비데 있는데 까지 이동하려면 그림 참 흉하겠다. 젠장. 안해도 될 생각까지 꼭 해서 낭만에 초쳐먹는 나는 뭐냐.
욕조도 있다. 개인 저택을 개조한 레스토랑인 모양이다.
식사를 마친 뒤 나온 시간은 15:00 정도. 계속 돌아다녔지만 환전소는 보이지 않았다. 길을 가는 한 유럽인에게 환전소를 물어보았다. 마침 자신도 환전하러 가는 길이니 따라 오란다. 곧 카데카스가 나온다. 그가 도어맨에게 뭔가를 묻더니 그냥 지나쳐 계속 간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환전이 안된단 말만 한다.
어디로 가느냐 물으니 은행으로 간단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은행. 이 곳에 도착하고서야 환전할 돈만 가져왔고 여권을 가져오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숙소에서 적잖이 먼 거리였다. 나는 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환전을 부탁했다. 그는 자신의 환전을 마친 뒤 내 환전을 뒤이어 해 주었다.
고마운 친구였다. 그가 내게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당신에게 신세졌으니 맥주 한 잔 사겠다고 했다. 그에겐 일행이 있었다. 그의 일행이 곧 왔는데 그들은 현지인 부부였다. 넷이서 맥주바 안으로 들어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유럽인은 스위스에서 휴가차 온 41세의 알렉스란 친구였고 현지인 부부인 하코보(37세)와 요르단카(34세)는 현지에서 몇년째 교제중인 친구들이었다. 알렉스는 벌써 5년째 휴가 때마다 이 곳 트리니다드에서 보내는 중이었고 이들은 그동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알렉스군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했고 하코보와 요르단카 부부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밖에 몰라 그들과 내가 하는 대화에는 알렉스의 통역이 필요했다. 나는 이들에게 이름을 밝히고 도밍고라는 스페인식 이름의 카톨릭 세례명을 알려 주었다. 이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데 발음상 애매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때문이었다. 이후 이들은 나를 도밍고라고 불렀다.
이들과 금방 친해졌다. 알렉스가 내게 물었다.
"오늘은 뭐하냐."
"도시 구경할거다."
"낼은 뭐할거냐."
"양꼰해변 갈거다."
"어? 그럼 나도 같이 갈까?"
"아, 좋지. 거긴 물품보관소도 없고 샤워시설도 없어서 부담스럽던 차였는데 일행이 있으면 좋지. 교통비도 절약되구. 교대로 짐을 보면 수영도 가능하고."
즉석에서 하코보 부부도 함께 가기로 했다. 맥주값은 약속대로 내가 계산했다. 총 8병. 12쿡. 나올 수 없는 계산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알렉스와 나에겐 외국인이므로 1병에 2쿡, 하코보 부부에게는 현지인이므로 1쿡. 이렇게 해서 희한한 계산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하코보 부부는 맥주를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고 알렉스와 나만 남았다.
알렉스가 네게 물었다.
"어디 갈거냐"
"카사 델 라 뮤지카 갈거다."
"거 좋지 같이 가자."
우리는 카사 델 라 뮤지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구형 자동차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니 알렉스가 찍어 준다며 포즈르 취하란다. 한 컷. 짠~
숙소에서 가까운 수퍼 마킷. 갖추어 놓은 물건은 우리나라 보다는 한참 적지만 이들에겐 우리의 이마트 이상이다. 물이나 음료수 또는 맥주 같은 것들은 이 곳에서 샀다. 없는거 많지만 물자가 귀한 나라인 만큼 비교적 없는게 없는 편인 셈이다.
포즈를 취한 알렉스군.
나도 한 컷.
마요르 광장 거의 도착할 무렵에 나오는 카페. 이 곳은 지붕이 없는 야외카페다. 밤이면 음악이 크게 나오고 미러볼이 도는 나이트클럽으로 운영된다. 이제까지 본 중 가장 희한한 카페요 나이트클럽이었다.
마요르광장에 면한 카사 델 라 뮤지카. 광장에 도착하자 마자 보이는 계단 자체가 카사 델 라 뮤지카다. 계단 중간 좌측에 무대가 있다.
이 곳은 대낮부터 교대로 출연하는 뮤지션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4시에 도착하니 이미 공연이 한창이다. 쿠바에서 음악여행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 아바나, 산티아고 그리고 바로 이 곳 트리니다드다. 볼거리만 놓고 보아도 그 세 도시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 자체의 아담한 분위기와 이국적 풍경으로는 이 곳 트리니다드가 가장 뛰어나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이 곳이 가장 약하다는 것은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내내 든 느낌이었다.
앉아 있다 보면 이 계단 오른쪽에 면한 카페에서 주문을 받으러 온다. 알렉스군과 내가 주문한 쿠바 고유의 칵테일 중 하나인 다이끼리.
1시간 동안의 음악 공연이 끝나자 알렉스군은 숙소에 가서 쉬고 돌아오겠담서 저녁 9시에 함께 저녁식사를하자는 제안을 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슬슬 걸어 주변 구경을 시작했다. 알렉스는 이미 다 뻔히 아는 곳들이니 다녀 봐야 식상할게 틀림없었다.
마요르광장에 면한 로만티코 박물관과 Iglesia de la Santisima Trinidad. 이 광장엔 벨라스케스, 고야, 수르바란, 엘그레코, 라파엘, 무리요 등의 스페인 화가들과 보슈 같은 파랑스 예술가의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 마드리드의 국립 미술관에서 몇 년 전 원본을 보았던 그림들이다.
다락방 같은 곳에도 카페가 차려지고 음악 연주가 이어진다.
깐델라리아 성모교회를 가보기로 했다.
마요르광장 뒤로 넘어가니 허름한 집들이 많이 나온다. 그 곳에서 만난 어린이들.
순진한 미소가 마냥 웃음짓게 만든다. 한 노파가 자신이 만든 공예품을 들어보이며 말없이 호객한다. 무관심이라 손사래를 쳐서 정중히 거절하고.
깐델라리아 성모교회. 헐 사진에서 봤을 때는 그래도 앞쪽 벽이나마 온전했었는데 이게 뭐냐. 종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아편이라 한다지만 역사적인 건축물이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한다니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19:20쯤 숙소로 돌아가 샤워 후 에어컨 을 틀어놓고 더위에 지친 몸을 쉰 뒤 20:43쯤 숙소를 나서 약속 장소인 카사델라뮤지카의 계단 우측 레스토랑으로 가기 위해 길을 다시 나섰다. 기념품 가게에 주인을 기다리는 인형과 그림들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몇 개 만이라도 사올걸 그랬나보다.
도시의 중심부인 만큼 마요르광장과 바로 옆 카사 델 라 뮤지카는 항상 여행객들로 붐볐다.
알렉스가 늦는지 정시가 되어도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더 늦으면 자리가 없겠다 싶어 레스토랑에 그나마 하나 남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조금 지나니 알렉스가 나타난다. 건강을 위해서인지 다이어트를 하는지 알렉스는 가벼운 식사 두 가지를 주문했다.
나는 랍스터를 주문했다. 헐. 이 곳은 요리를 제대로 하는 곳이었다. 쿠바에서 먹어본 중 최고의 요리였다. 이 곳 쿠바의 랍스터 요리는 그저 그릴에 구워 약간은 푸석푸석한 랍스터가 대세인데 이 집은 소스를 넣고 졸여 육즙 이탈을 최소화 했는데 그 맛이 쿠바에서는 결코 기대한 적 없는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식사 후에 알렉스가 맛이나 보자며 시가를 사왔다. 두 개짜리 한 세트를 사왔는데 랩으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도 않는 랩의 끝자락을 찾다가 인내심의 한계가 왔는지 티스푼으로 두 개의 시가 사이를 마구 긁어댔다. 성질머리 하고는... 아뿔싸. 포장을 해체하기는 했는데 그 중 한개는 반 가까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불 붙여봐야 빨리지도 않을 터였다.
굳이 자기가 상한 시가를 피우겠다고 했지만 내가 상한 놈을 잡았다. 나도 은근 멀쩡한 놈으로 피우고 싶었지만 그래도 사 온 놈이 먼저지. 이 친구도 담배는 피우지만 시가는 처음이었던지 끝을 잘라내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었다. 웨이터를 불러 가위라도 빌려 달라고 했더니 시가 전문 가위가 있었다. 헐. 우리는 둘 다 신기해서 얼빠진 얼굴을 하고 봤다.
불을 붙였다. 가이드북에서 피우는 법을 읽어 봤으니 잘난척 하고 읽은대로 설명을 했다.
"너도 이거 처음 피워보는거지?"
"첨이다. 왜?."
"이건 불 붙일 때, 시가를 돌돌 돌려가면서 골고루 불을 붙여야 하고 빨 때는 폐부 깊숙히 빨면 안되고 입 안에서 향을 즐기기만 해야 된다고. 끌 때는 이건 빨지 않으면 저절로 꺼지니까 바닥에 눌러 비빌 필요가 없이 그냥 재털이에 내려 놓으면 된다고."
"피워 봤어?"
"가이드북에서 본거야."
"ㅡ,.ㅡ;"
나는 손상된 시가 부분을 잘라내고 짧은 놈이나마 불을 붙여 빨아봤다. 불을 붙이기가 그리 썩 쉽지는 않다. 막상 해보니 뜨거운 김이 씩씩 들어오는데 그 열기가 부담스럽다. 빨다 보면 파편이 수시로 입안에 든다. 향이 좋아? 아 젠장 메워 뒈지겠구만. 그래도 이 체험 여기 아니면 어디서 해보냐.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열심히 빨아봤다. 쿠바 내수용 최고급품은 개당 350달러나 하고 돈 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피운다니 안해도 될 쥐롤이로세.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커피까지 마신 우리는 바로 옆 카사 델 라 뮤지카로 다시 갔다. 밤이 되니 출연 뮤지션이 낮에 실망을 안겨 주었던 뮤지션들보다는 훨씬 나은 이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무용수들까지 나와 화려하게 무대를 수놓았다.
낮공연보다 낫다고는 하나 아바나와 산티아고에서 본 공연들에 비하면 수준은 눈이 이미 높아진 내겐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음악을 즐기러 여기까지 왔으니 아쉬운대로 즐기자고 생각하니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알렉스도 음악을 좋아하는지라 어깨를 들썩이며 이따금 내게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지만 내가 더했던 가보다. 반대편 내 옆에 앉아 있던 시커먼 놈이 말을 걸어왔다. 약간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녀석의 옆에 앉아 있던 여친까지 대화에 합세헸다. 애네들하고 대화가 조금 깊어지는가 싶으니 왠지 알렉스 눈치가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건지 은근 삐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들에게 알렉스부터 소개했다. 이들은 스페인에서 온 커플이고 시커먼 놈은 제이콥, 참한 여자친구는 산드라. 이들은 대부분이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며 꼭 가보라며 아바나의 명소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그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공원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가보겠다고는 했지만 그건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경우에 한한 대답이었다. 가우디 공원은 이미 봤는데 흉내낸 공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스페인 본토에서 온 사람이 이걸 뭐하러 봤을까 싶었다.
그 공원 이름이 Fuster라던가 뭐라던가.
내가 쿠바에 온 첫번째 목적이 음악이라고 했더니 나를 대충 신기하게 본 제이콥은 공연이 끝나자 동굴나이트에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얘들과 놀면 재미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알렉스의 눈치부터 살폈다. 그닥 내켜하지 않는 건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둥 마는 둥 약간은 뚱한 표정이었다.
"이 시간에 더 갈데도 없잖아. 갈데는 카사 델 라 트로바 한 군데 뿐인데 건 내일 가도 되잖아. 새 친구도 생겼는데 가자구."
알렉스도 결국 흔쾌히 함께 가기로 했다.
출발 전 웨이터에게 부탁해 한 컷. 좌로부터 나, 알렉스군, 제이콥군, 산드라군.
이 곳 트리니다드의 명물인 동굴 나이트 클럽. 아얄라.
입구를 통해 들어가니 벌써부터 쿵작쿵작 난리가 났다.
알렉스군, 산드라군 입장~
제이콥군도 입장~
바에 가서 음로수부터 하나씩 집어들었다. 나는 맥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관광객들. 눈으로만 봐도 나같은 노땅은 없다. 그러나 서양인들에 비해 외모가 덜 늙는다는 아시아인의 장점은 그들에 비해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는 점.
스페인에서 디스코클럽 디제이를 하고 있다는 제이콥 군은 마카레나가 나오자 반 미치는듯 엄청 좋아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고 이 곡만 틀면 장내 춤객들이 거의 미친다며 거의 자기 자신도 미친다. 나도 같이 미친 척 해 봤다. 섬세하게 여친을 챙기는 제이콥군. 이름의 스페인식 발음이 뭐냐니까 하코보란다. 알렉스의 절친 하코보군과 같은 이름이었넹? 산드라는 스페인식 발음으로도 산드라란다.
알렉스군과 한 컷.
동굴 내 바(BAR).
알렉스군이 지치지도 않고 노는 날 보고(사실 나도 내 체력이 이 정도 되는 줄은 평소엔 몰랐음. 노는덴 나도 체력이 남아도나 보다.)
"아까는 뭐? 12시면 집에 들어가 잔다메? 여태 이러고 놀고 지금 몇신 줄 알아? "
"1시 거의 다 돼 가는데?"
"미친거지?(crazy but not mad)"
"그런지도 몰라."
"몇시에 갈거야?"
"1시반에 가자."
"좋아."
산드라의 얼굴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만 보니 먼저 가자고 제안해 해 놓고 한시간 놀고선 신나게 노는 우릴 보고 가잔 소리 하기도, 먼저 간단 소리 하기도 미안한 모양이었다.
"제이콥군. 산드라군이 피곤해 보이는데. 먼저 가지 그래."
아마도 내가 먼저 가란 소리 한게 고마웠을게다. 마지못하는 척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짜식이 이멜 주소 가저 가더니 연락도 음네?
어쨌든 나는 알렉스군과 좀 더 놀다 나왔다.
참 자알도 논다. 알렉스군과는 다음 날 양꼰 해변으로 가기 위해 처음 맥주를 함께 마신 그 카페 앞에서 다음날 오후 1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쭐레쭐레 아무생각 없이 숙소로 돌아가 대문을 열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허걱... 어머나니나니나...열쇄가 읍따. ㅡ,.ㅡ; 급당황 급황당.
이게 왠일이냐. 아바나에서도 한 번 이 꼴 당하더니 이게 웬 날벼락이더냐. 이미 새벽 1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잃어버렸을만한 곳을 곰곰히 생각해 봤다. 카사 델 라 뮤지카의 폭이 낮은 계단에 앉아 음악을 듣다가 주머니에서 동전 몇개가 흘러나와 다시 주웠던 일이 기억났다. 앗 거기다. 나는 그리로 다시 가봤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내가 앉았던 위치로 추정되는 곳과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업따 ㅠㅠ... 나는 알렉스군과 함께 밥을 먹었던 레스토랑으로 가봤다. 이미 문을 닫았고 야외 테이블에서 먹었으니 우리가 먹었던 자리를 가로등 조명을 통해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역시나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두 곳 외에는 열쇄를 흘릴만한 장소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혀 없었다. 다시 카사로 돌아가 벨을 눌러 민폐를 끼치는 방법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문앞에 서서 대문에 붙은 벨을 눌렀으나 아무리 눌러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벨을 누르면 그래도 소리나 진동 등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뭔가 느낄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문을 두드리고 고함을 쳐도 워낙 큰 집이어서 주인장이 잠자는 침실에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좌절! 좌절만하고 자빠져 있기엔 날이 너무 혹독하게 더워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웃집과는 담벼락 간격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바로 옆집 창이 워낙 높아(이 곳 트리니다드의 집들은 바깥을 내다보는 창문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아 거의 담벼락을 덮고 있는 지붕과 그 바로 밑에까지 올라온 창문 가장 윗부분은 그 간격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옆집 창을 덮고 있는 창살을 타고 올라 나의 숙소 대문지붕으로 올라가는게 어찌어찌 잘 하면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당한 높이여서 만일 그 곳에서 오르는데 실패했을 경우 운좋으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운나쁘면 돌바닥에 두통이 떨어져 뇌진탕으로 객사할 수도 있었다. 한잔 먹은데다 디스코 클럽에서 진빠지게 놀았으니 지친건 당연했고 혹독한 더위는 가뜨기나 녹초가 된 육체를 마구 짓눌렀다. 가만히 앉아서 어찌할까 생각해봤다. 다른 숙소를 잡아? 아 젠장 너무 늦은 새벽이나 그것도 만만찮다. 아래 사진은 숙소의 사진은 아니지만 올라가네 마네 하던 그 창살과 담벼락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올린 사진. 대문을 다시 바라보며 뭔가 방법을 고민하는데 어둠 속에서 대문 오른쪽 사람 손이 닿기 좋은 곳에 뭔가 동그란 물체가 보였다. 버튼이었다. 눌러봤다. 띠~~~~~ 헉. 이게 뭐야. 여태 시도했던 벨은 고장이고 이게 새로 설치된 벨이었던가 보다. 아이고 맙소사.
좀 있으니 스페인어로 누구냐고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집의 가장이었다. 곤한 잠을 깨웠으니 짜증이 날만도 한데 그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그래도 미안한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감으로 내 얘기를 대충은 이해했을게다. 그는 괜찮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미안한 소릴 했다. 방열쇄.... ㅡ,.ㅡ; 나는 검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어디엔가 넣고 쑤시는 시늉을 하자 그는 잠깐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한 뒤 예비열쇄를 들고 나왔다. 나는 인사를 하고 방에 와 에어컨디션부터 작동시키고 샤워한 뒤 냉기를 만끽했다. 방금까지도 심신이 녹아내려 미치기 직전까지였던 생각을 하면 천국에 있었던 셈이다.
이 번 여행엔 도대체 왠 일이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나의 멍청함에 한편으론 치가 떨렸지만 다음날 알게된 사실로는 죽일 놈이 따로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날 다음편으로 넘어간다. 씨근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