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5 미얀마

불교의 나라 미얀마 5(양곤/버고/짜익티요)

코렐리 2015. 10. 13. 11:27

2015.7.22(수)

계란, 빵, 과일과 커피. 아침식사로 일케 먹었다고 하면 푸짐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막상 내놓은건 맛도 걍 그렇고. 커피는 맛없고. 걍 주니께 먹는다만...

 

전 날 우리를 데리고 다닌 택시기사는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에 키도 작았지만 깔끔한 신사였다. 차도 깨끗이 관리하고 생화를 엮어 방향제로 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다시 예약했다. 그 차로 아침에 공항으로 이동. 비행기는 두 시간이나 늦어지고 더운 곳에서 짜증나는 기다림은 계속되고... 우리는 탑승구를 찾아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어봤다. 나중에 알았지만 안내받은 곳은 엉뚱한 탑승구. 창밖에 내려다 보이는 저 멀리의 바람개비 달린 잠자리비행기가 정작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임은 알지도 못한 채. ㅡ,.ㅡ; 직원들이 뭐라고 뭐라고 떠들며 다닌다. 뭐지? 신경 안썼다. 또 와서 뭐라고 또 떠든다. 뭐지? 알고보니 우리를 찾는거였다. 저멀리 보이는 비행기가 바로 우리가 탈 비행기였다. 헐. 우릴보고 뭐라고 뭐라고 하며 따라 오란다. 그제서야 뭐가 잘못됐단걸 알았다. 우리는 극구 변명했다. 직원들한테 이 표를 보여 주고 물었더니 거기라고 합니다. 그들은 별로 우리 애기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탈 잠자리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갈 버스에 올랐다. 직원들이 웃으며 우릴 안내한다. 걍 웃기만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오묘하다. 아 젠장, 우리 잘못도 아닌데 왜 쪽팔여야 돼는건데. 아, 쓰블...

 

 

 

어쨌든 우여곡절 끝. 양곤에 다시 돌아오고... 비도 같이 온다. 직원들이 승객들 내릴 곳에 늘어서 우산을 받쳐들었다. 허, 이건 또 웬 감동이냐. 친절하다.

 

택시 잡아 타고

 

전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로 다시 가는 중에 문자가 와서 들여다 보니. 도대체 왜 이런 문자를 날리지? 이란에서도 그러더니만. 이렇게 걸핏하면 겁을 주니 우리나라 빼곤 다 위험하다는 오해들을 하지 쯧쯔. 어쨌든 안전한 이 나라를 더 구경해야 하는 긴박하고 긴급한 용무가 있어서 말이지.

 

아침 탁발을 나선 비구니 모녀. 딸내미는 피곤한가봐. 한참 잠이 많을 시기 아니던가.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에 다시 방을 잡아 짐을 풀고 나섰다.

 

다시 와서 보는 시내 골목이 새로울건 없지만 식민지풍의 거리는 걸어다녀볼만 하다. 걍 좋거덩.

 

점심을 먹을 때가 됐다. 적당하고 깨끗한 음식점은 고사하고 음식점 자체가 안보이다 깨끗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카페 비비큐라...

 

젠장 들어갈 땐 몰랐는데 들어가 보니 한국의 비비큐 분점이다. 간판도 로고도 달랐는데 이건 모임? 근데 메뉴는 또 다르다. 모임?

 

한국엔 닭밖엔 없는데 이건 모임? 여기까지 와서 한국 상품을 먹다니. 그래도 한국 비비큐에선 없는 메뉴를 먹었으니 그걸로 걍 족하기로 하고...

 

식사 후 택시 타고 이동한 곳은 로카찬타 파야. 아래 사진은 거창하기 짝이 없는 입구. 나름 사잔데 개같다.

 

이 곳 최대의 보물이자 볼거리인 백옥 불상. 백옥으로 어마어마한 불상이 조각되었으니 캐낸 백옥 크기가 도대체 얼마만한거냐. 헐 여기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할 해부학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나보다. 부처님 장딴지가 일케 짧다는 얘기는 들어본 바 없는데 이건 뭐여? 생겨먹은 백옥의 크기를 그대로 최대한 이용하느라 그랬을까. 미얀마 예술을 논하기 곤란한 점이 여기에 있다.

 

사원 여기저기 걍 둘러봤다.

 

다음 방문지는 까바 에 퍼야. 이 곳이 입구다.

 

신을 벗고 들어서면 기념품점이 길게 늘어섰다.

 

끝까지 걸어가면 본당이 나온다.

 

화려한 오오라(Aura)와 황금 장식의 본존불이 보인다. 이 곳이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졌다는 곳이다. 이 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작은 부처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국 불교에서 보내온 불상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차욱타지 파야. 이곳이 입구.

 

이 곳에 거대 와불상이 있다.

 

양곤 최대의 와불상으로 높이 18미터, 길이 67미터다. 1907년 건설 당초에는 높이 31미터에 길이 72미터였으나 1966년 새로운 와불 조성을 시작에 1973년 현재의 형태로 재탄생했다.

 

부처님 위로 기어올라 갔다가 미끄러지면 영락없이 사망이다.

 

발바닥을 보니 드는 심술궂은 생각. 부처님도 발바닥 간지럼을 탔을까? 안탔을까? 난 그게 왜 궁금한거지?

 

숙소로 돌아갔으나 쉬기에는 너무 이른시간이었다. 근처로 더위를 뚫고 산책을 나왔다.

 

시장 구경은 언제 어디로 가도 즐겁지만 이미 파장이다.

 

파장 분위기의 시장 역시 내게는 즐거움의 장소다. 파장의 분주함은 내일을 위한 휴식의 기다림이 있고 그 휴식의 기다림은 이들에게 기쁨이니 이 역시 행복의 에너지가 분출되기 때문일게다. 

 

지금 보니 이 곳의 과일이 탐스럽다. 당시엔 더우니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처참하게 나체가 되어 인간의 난도질을 기다리는 닭시체들.

 

아래의 사진은 폐차 직전 방치된 차가 아닌 운행중인 버스. 난 이런게 타고 싶다. 타면 재밌을 것 같지만 목적지가 있어야 그 짓도 할게 아닌가.

 

도깨비 밭ㅇ망이 두리안. 지금 다시 보니 먹을걸 그랬나보다. 지금 다시 보니 왜 일케 맛있어 보이냐.

 

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른 카페.

 

내부 장식은 카페이름 그대로 공장을 컨셉으로 했지만 드 또한 묘하게 운치가 있어 미얀마에서 가 본 중 가장 럭셔리한 실내장식이 눈에 띤다.

 

이 곳에도 한류가 깊게 뿌리를 내렸는지 한국계 카페가 아닌것으로 아는데 걸그룹으로 보이는 한국 여가수들의 사진이 즐비하다.

 

어쨌든 지금의 계획대로 언젠가 네팔에 펍을 내면 참고 좀 해야겠다.

 

창고 같고 공장같은 컨셉이 요즘엔 국내외를 불문하고 대세인듯하다.

 

 

주문하면 헬멧을 내준다. 커피숍에서 진동신호기를 주듯이. 주문한 것이 나오면 회수해 간다. 벗겨가셈.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빙수도 아닌 것이 부드럽기도, 시원하기도 완전 끝장이다. 이 곳에서 더위를 식힌 뒤 숙소로 돌아가 하루종일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며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2015.7.23(목)

아침식사로 제공된 국수는 스파게티도 아니고 볶음국수인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국적불명. 주느까 먹는다만 맛은 없다.

 

 

숙소에서 짜익티요와 몇 몇 유적지를 다녀올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한 뒤 리셉션 쇼파를 보니 고양이들이 팔자좋게 늦잠을 자고 있었다.  뭔지모르게 이곳 고양이들은 좀 더 날씬한 느낌의 실루엣을 가졌다. 한국의 고양이들보다는 덜 예쁘다.

 

택시기사는 깔끔한 인상의 잘생긴 남자였다.

 

택시기사는 깔끔한 인상의 잘생긴 남자였다. 친절한 신사였지만 이 날 이 사람을 만난 것이 그리 운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바고에는 유적ㅇ이 몇 군데 있어 들렀다. 쉐탈라웅 파야. 이 곳에도 거대 와불상이 있다.

 

 

입장권.

 

와불상을 떠받치는 단 둘레에는 불교설화가 새겨져 있어 볼만하다.

 

 

다음으로 들른 나웅또지 먀탈라웅. 이 곳에고 60미터의 거대 와불상이 있는데 이곳의 와불상은 노천에 누워 있는 것이 다르다.

 

마침 비가 오락가락 하는 통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사방이 젖었다.

 

거대 와불상을 한바퀴 돌다 보니 노천에 있어서 그런지 죽은 쥐 시체가 젖은채 널부러져 있는 유쾌하지 못한 풍경도 눈에 띤다.

 

 

이 곳을 떠나 짜익티요로 향하던 중 택시기사가 휴대전화를 받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는지 놀라움의 신음소리를 터뜨린 그는 차를 도로 한쪽에 세우고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갑작스러운 모친 작고 소식을 듣고 급히 양곤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여러가지로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곳에서 짜익티요까지 가는 일과 돌아오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는 마당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도착도 못했으니 반액을 주는 것도 무리였다. 이 곳에서 가는 것은 100킬로 가까이를 더 가는 것도 문제지만, 돌아오는 교통편으로 택시를 새로 알아보고 협상을 하자면 이 것도 문제였다. 새로 만나는 택시기사에게는 양곤에서 다시 짜익티요로 돌아가는 경비까지 고려해 줘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짜익티요에 도착한다 해도 버스를 타고 양곤으로 돌아가자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사실도 문제고, 교통편을 새로 알아봐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내려 택시를 새로 타고 가기로 했다.

"당신이 겪은 일은 참으로 안되었습니다만 우리는 이 날 당신이 가고 나면 남은 일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약속했던 일정의 반도 안되었으니 정해진 요금의 1/3만 드리지요."

그에게는 그런걸 따질 여가가 없었던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망한 일을 겪은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예상도 하지 못한 급서였던게 틀림없었다.

이 날 하루종일 대절한 택시요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3에 해당하는 금액 내준 뒤 돈을 더 건네며 말했다.

"한국에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지인들이 방문해 가족을 위로하고 장례비를 돕기 위해 기부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말로는 조의금이라고 하지요. 이건 그래서 드리는겁니다."

기본적인 영어만 아는 사람이었던지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그 와중에도 눈을 껌뻑거렸다. 쉬운말로 줄여 말했다.

"이것은 택시요금이고, 이건 당신의 어머니께 드리는거요."

금액을 합쳐도 정한 약속의 금액에는 반이 채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제서야 알아들은 그가 고맙다며 입구까지는 마저 태워다 주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잖아도 막막한 상황이고 여차하면 오늘중 미얀마 최대의 볼거이인 짜익티요의 황금바위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거나 보더라도 숙소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던 우리로선 반가우면서도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짜익티요를 가기 위한 낀뿐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동안 뜀군과 나는 푹신한 가시방석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인상만큼이나 마음 씀씀이도 신사였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스님들과 몇몇 불교도들이 짜익티요로 가는 트럭 인원수가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비수기여서 사람 채워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거라고 생각해 조급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들은 여유롭고 느긋했다. 대략 30분정도 시간이 가자 인원 체크를 시작했다.

 

트럭에 올라타 인원이 모두 차는 동안

 

아낙네들이 비옷을 팔았다. 당시엔 비도 오지 않아 무관심했더니 올라가면 비가 온다며 하나 사란다. 웃긴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의 말을 무시했다가 겪은 후회는 보통 큰 게 아니었다. 트럭만이 오를 수 있는 급경사의 산길을 가는 동안 비는 엄청나기 쏟아지고, 트럭의 진행으로 트럭 머리에 밀렸던 나무가지의 복원력이 물머금은 이파리를 달고 수시로 엄습해와 승객들을 갈겼다. 잠깐 새 옷이 젖고 추위도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 젖었지만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비옷을 구하고 싶었다. 가다가 들른 휴게소에서는 다행이도 비옷을 팔았다. 하나씩 걸쳐입으니 그나마 나았다. 승객을 실은 트럭은 계속해서 경사가 급한 산길을 계속 달린다. 몸이 완전히 젖고 발 속은 이미 밀에젖어 쩔꺽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비옷을 입으니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가 덜 부담스러워졌다.

 

꼭데기에 도착하면 입장권을 판다.

 

표를 산 뒤에는 적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비는 비대로 오고 안개는 안개대로 자욱하게 사방에 번져 있었다. 사자상이 나오자 신발을 벗어야 했다. 젖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차라리 홀가분하다.

 

사원을 보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자재와 공사 장비 등이 인부들에 의해 고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동이 이따금 이루어졌다. 더 이상 보수공사를 할 수 없었던지 시멘트를 담았던 버켓과 자루 등을 들고 철수하는 노동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지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흠뻑 젖다 보니 몸이 약근은 으스스하게 떨린다.

 

드디어 눈 앞에 말로만 듣던 황금의 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바위를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유리방도 있어 그 안에서 내다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잠시 비를 피해 그저 이거 하나 보겠다고 온 바위를 쳐다보고 있자니 묘한 생각이 든다. 

 

뜀군의 기념촬영.

 

이거 하나 보자ㅇ고 왔는데 봤다고 달랑 그냥 돌아가기도 섭섭하다. 바위 보는 일 말고는 할 일도 없는데... 안개 때문일까. 더욱 신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참으로 묘하다 떨어질듯 위태위태하게 벼랑에 자리잡은 황금의 바위. 오랜 세월 희한하게 그 자릴 지키고 있다니. 은근히 놀랍다.

 

트럭은 맨 앞자리가 최고다. 그나마 비를 덜 맞을 수 있고 휘어졌다가 엄습하는 나무가지들로부터의 가격(?)에도 거의 안전(?)한 위치다. 트럭에 오른 우리가 맨 앞자리에서 이제 엉덩이를 중앙에 붙이려는 찰라 한 웃기지도 않는 아저씨 트럭 아래서 그 자리에 비닐 가방을 휙 올려 놓고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며 앉지 말란다. 별일 아니라 할 수도 있지만 밉살맞은 태도에 꼭지가 확 돌았다. 뜀도령도 꼭지 돌긴 마찬가지.

내 말이 고울 리가 없었다.

"어이! 뒤로 가시는게 어때?(Hey you! why don't you go behind to sit."

뜀도령의 입에서 바람이 새나왔다.

"이 씨~!" ㅋㅋㅋ

잠깐 나와 눈싸움을 하는듯 하더니 이내 뒤로 올라탄다. 죽여버릴라.

자리를 차지한 뒤의 뜀도령.

 

방금 열받은 것도 잊고 새새거리는 나. 자알 논다.

 

처음 트럭을 탔던 그 곳으로 돌아오자 돌아가는 교통편이 문제였다. 한 젊은이가 다가왔다.

"버스터미널로 갈거요?"

"그런데요."

"내 오토바이 타고 가시오. 당신 친구는 내 친구 오토바이에 타고."

터미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갈길도 먼데다 비도 많이 오고 빨리 가는게 상책이었다. 얼마인지를 물으니 기억은 안나지만 비싸지 않아 타고 가기로 했다. 여전히 비옷을 입은 채 오토바이 뒷좌석에 붙어 있자니 얼굴을 후려치는 빗방울은 주변경치 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나마 깊숙히 눌러쓰고 있던 모자가 고개를 있는대로 숙인 자세로 비를 어느정도 피할 수 있었다. 버스표를 알아보려는데 다른 이가 양곤에 가려면 빨리 저 버스에 타야 한다면서 자기 오토바이에 타라고 손짓했다. 뜀군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그 버스를 추적해 앞질러 세웠다. 경황없이 버스에 올라타니 오토바이 운전자가 따라 올라와 돈을 내란다. 아차, 다른 사람이었지. 우리 기준엔 그리 많지는 않은 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쨌든 터비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양곤행 버스를 탔으니 운이 좋았다. 

 

좌석이 남아있지 않아 중앙 통로에 간이 의자를 놓아주어 그 곳에 처량하게 앉았다. 이런 탑승도 가능하다니. 어쨌든 안태워 주면 다음차가 언제인지 몰라도 기다리기 싫은 것은 분명했다. 숙소로 돌아가 샤워하고 쉬고 싶은 생각만 굴뚝 같았다.

 

뜀군의 셀카질에 참여한 나. 이 때 젖은 모자는 비에 쫄딱 맞은데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얻어타면서 얼굴에 쏟아지는 빗물도 피하고 날아갈지도 모르는 모자를 머리에 붙잡아 두기 위해 더욱 눌러 썼더니 형태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비싼 모잔데. ㅠㅠ

버스가 가다 말고 휴게소에 멈춰섰다. 온 몸이 있는대로 젖어 은근한 한기가 엄습했다. 우리는 휴게소 매점의 젊은 처자에게 컵라면이 있느냐고 물었다. 영어를 자기가 못알아 듣고선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별 희한한 물건을 다 찾는다는 듯 웃으며 날 빤히 봤다. 안 쪽으로 보니 국수를 말아 파는 곳이 눈에 띠었다. 얼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척 싸다. 대신 양이 적다. 50% 정도.

 

국수 한그릇씩 먹고 나니 한기가 가라 앉는다. 젖은 몸에 대한 불쾌함은 여전히 남는다.

 

주전부리로 구입한 과자. 한국에서 먹던 촌스타일 샌드쿠키와 맛이 아주 흡사하다.

 

미얀마의 뮤직비디오. 시골에서의 연인들의 사랑놀이 영상이 촌스러움의 백미다. 뭐라고 쓰였는지 가사의 내용은 알아먹을 길은 없고. 

 

늦은 시간에 도착한 양곤의 뻐털. 저녁은 아직 먹지 않은 상태. 터미널을 나오며 입구에는 오뎅 같은 꼬치를 파는 좌판이 있었다. 못보던 음식이다. 이거봐라? 여 잠깐 앉아봐? 약간의 고민끝에 숙소로 돌아가 개운하게 샤워한 뒤 숙소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빨리 샤워하고 젖은 옷 갈아입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지만 아무래도 위생상태가 심히 곤란했던 탓이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갈아입은 뒤 근처 식당으로 다시 갔다.

 

맥주를 뺄 수 없지.

 

미얀마 생맥주 한 잔 마셔 주시고.

 

냉장고에 못보던 맥주가 보인다. 그냥 넘어가면 뜀도령은 뜀도령이 아니고 난 내가 아니지. 한 병 주문해 봤다. 걍 먹어 봤다는거지 감동은 없다.

 

해사도 낮은 메뉴판의 사진을 보고 볶음밥인가 싶어 주문했던 닭밥.

 

이거 달짝시큼한게 똠양꿍을 연상시킨다. 맛있다.

 

닭밥이 섭섭해 추가주문한 볶음밥. 이것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