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낭만의 이란 9(이스파한→카샨)
2014.9.11(목)
전날 팽후군과의 약속대로 나갈 준비를 마친 뒤 아침식사를 위해 7시30에 정원으로 나갔다. 전날 배정받은 도미토리 방에서 문만 열면 바로 정원이고 그 곳이 동시에 식당이기도 하다. 팽후군은 15분이 지나도 코빼기 조차 안보였다. 조금 지나니 내가 앉은 테이블로 일본인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앉았다. 그가 먼저 내게 인사했다. 조금 있으니 그의 동료인지 한 처자가 와서 앉았다. 엥? 알고 보니 이 처자가 바로 나와 같은방을 썼던 그 처자였다. 무척 친하게 보이길래 함께 왔느냐 물었더니 이 곳에서 만났단다. 청년의 이름은 태츠오, 처자의 이름은 아추코. 도쿄 근교에서 도쿄 소재의 대학에 다니는 태츠오군은 싹싹하고 역시 도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아추코군은 간드러지게 상냥한 전형적인 일본인이 처자였다. 겨울에 도쿄에 갈 일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이자카야 골목인 오모이데 요코초에도 갈 계획이라 하자 테츠오군은 자신도 오모이데 요코초에 꼭 가고 싶다며 도쿄에 오거든 연락을 달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내주고 내 이메일 주소를 받아갔다. 태츠오군과 일정이 맞지 않는지 나와 일정이 맞음을 확인한 아추코군이 동행을 제안했다. 어제 도착했지만 본격적으로 시내 볼거리를 찾아 다니는 것은 이 날이 첫날인 모양이었다.
호텔을 나선 우리는 우선 남쪽으로 가는 버스에 무조건 올라탔다. 페르시아 숫자여서 버스 번호는 알아볼 수도 없었다. 헤맬 가능성도 있었지만 헤매는 것도 여행의 한 재미다. 시오세 브릿지로(Si-o-Seh Bridge)로 십중팔구 갈거란 판단이었고 일단 올라탔다. 그 곳에서 아르메니안 카테드랄(대성당)인 Vank Cathedral이 멀지 않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걷기에는 그리 녹록한 거리는 아니었다. 누군가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다. 아르메니안 교회를 간다고 했더니 그곳에 간다며 내릴 때 알려 주겠다고 했다. 대충 올라탄 버스인데 운도 좋았고 이들은 역시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골목을 찾아 돌아야 했다. 함께 내린 한 젊은이가 교회 근처에 가게를 갖고 있어 우릴 데리고 자신의 가게까지 데려가 방향을 일러주고 그는 가게 문을 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추코군이 차 밑으로 기어들어간 고양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거의 바닥에 업드린 채 고양이를 꼬드기는(?) 아추코군.
이 곳이 바로 아르메니안 교회인 반크 대성당(Vank Cathedral)이다. 탑도 높고 담벼락도 높아 담치기 하자면 제아무리 닌자라도 고생깨나 하겠다.
정문 바로 앞 동상과 분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인으로 추대된 수도사인것 같은데... 동상 아래 뭔가 표기된 내용을 보긴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상에서 상당한 포스와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시계탑과 정문이 합쳐진 독특한 입구가 인상적이다.
돔과 종탑, 그리고 벽에 벽감처럼 파인 뾰족한 아치 등에서 이슬람 건축양식의 분위기가 강하다.
얼핏 봐서는 이곳이 교회인지 아닌지 알수도 없을 정도로 현지 양식을 따랐지만
왠지 모르게 유대교회인 시나고그의 분위기도 살짝 풍긴다.
측면입구로 들어가 보았다.
천장과 벽, 그리고 기둥을 장식하는 복잡하고 섬세한 문양은 영락없는 페르시안 양식이다.
벽화를 보면 그제서야 아르메니안 교회에서 볼 수있는 양식의 프레스코화임을 알 수 있다. 이 곳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이 벽화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를 연상시킨다.
작품 자체를 놓고 보자면 아르메니안의 예술을 너무 낮게 보는 태도일지 모르지만 그다지 수준높은 작품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모여져 이루는 조화로 놓고 볼 때 이 성당의 아름다움이 배가된다는 측변에서 봤을때는 함부로 낮게 평가할수만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레스코화 대부분의 내용은 이승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십자가에 이르는 인간적 고통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프레스코와 문양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도 아름답지만 이슬람 사원의 그것에 비하면 무척 소박한 편이다.
이 번엔 바로 건너편 건물에 차려진 박물관으로 가봤다. 양피지로 만들어진 성서도 여러본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
이 곳 박물관의 압권은 아주 특별한 성서에 있다.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은 그 성서를 보기 위해 대기중인 사람들.
이 성서 구절이 머리카락에 새겨진 만큼 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때때로 종교적 신앙은 놀라운 인간의 위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머리카락에 새겨진 성서 자체도 놀랍지만 손으로 엉성하게 쓰여진 글자체가 아니라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장식적 문자들의 배열에 경악한 입은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이 곳 방크 대성당에 오면 놓치지 말고 봐야할 중요한 볼거리다. 현미경 사진을 찍을 수 없음이 아쉽고 또 아쉽다.
밖에 나오니 이 성당의 신부로 보이는 이와 이 곳을 방문한 이슬람 사제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카톨릭교, 개신교, 그리고 불교의 최고 지도자가 신년 행사에 만나 어께를 나란히 하는 모습은 봤지만 이슬람과 카톨릭의 사제가 친구처럼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흐믓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넷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톨릭 신자입니다. 카톨릭 신부와 이슬람 사제가 함께 하시니 보기에 너무나도 좋고 마음이 흐믓합니다. 실례일지 모르지만 두 분의 사진을 찍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두 분이 의아하면서도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디에서 왔어요?"
그러고 보니 내 소개도 없이 좀 무례했나보다.
"저는 한국에서 왔고 세례명은 도미니코입니다."
그들은 나와 아추코군을 위해 포즈를 취해 주었다. 곁에 있던 소년이 냉큼 두 사제 사이에 끼어 미소를 짓는다. 두 사람 모두 인상이 참으로 선하다. 모든 종교가 이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하며 살면 좋겠단 생각 간절하게 든다.
전날 이맘스퀘어를 실컷 싸돌아 다녔지만 아직 알리 카푸 궁전(Ali Qapu Palace)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맘스퀘어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걸었다. 가다 보니 교회 하나가 더 나온다. 베들레햄 교회?
함 들어가 봤다.
규모는 카테드랄보다는 당연히 작지만 돔에 새겨진 문양의 아름다움은 방금 들렀던 카테드랄보다 더한 것 같았다.
문양은 더욱 밝은 색채로 그려졌다.
우리는 이 곳에서 잠시 머무른 뒤 버스를 타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이맘스퀘어를 찾았다.
이맘 스퀘어난 나로선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아추코군에겐 첫 방문. 이맘스퀘어에 면한 알리 카푸 궁전을 들어서면서 포즈를 취한 아추코군.
밝게 채색된 천장의 문양.
타일로 장식된 나선형 계단.
반즘 올라가면 널찍한 테라스가 나오고 이맘스퀘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데 그 아름다움은 이 곳을 방문한 여러 사람들의 감탄사를 통해 확인된다. 스퀘어 내의 정원은 물론 스퀘어에 면한 이맘 모스크의 출입문과 돔이 무척 아름다워 보는 이의 눈을 한참동안이나 사로잡는다. 그늘진 이 곳엔 바람까지 물어 잠시 더위도 잊을 수 있어 좋다.
테라스에서 다시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좌우에 여인의 그림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몸매는 물론 얼굴도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당시의 미인상인 모양이다.
이 곳 궁전은 그동안 보아온 모스크와 교회에서 본 문양과 비교했을때 무척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낸다.
실내가 밝은 색으로 채생된데다 벽 위로 뚫린 창문의 채광량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해 조명 없이 낮에 생활하기엔 그만이었을듯 싶다.
이곳의 압권인 음악실.
이 곳이 왜 음악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항아리라고 생각했던 벽의 입체 문양은
아랍어로 "오드"라 불리는 기타의 원형인 악기인듯하다. 페르시아어로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쨌든 아래 사진은 설정샷이고 아추코군이 찍어준 사진.
방이 참으로 아름다워 동영상으로 담아봤다.
이 곳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데는 규모가 크지 않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침 알리 카푸 궁전과 자메모스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바스타니 전통식당'을 찾았다. 안네 드니 가운데 분수가 놓여져 있어 적잖이 감동적이다.
우리는 분수에 면한 테이블(우리말로 하자면 평상쯤 되겠다.)에 자리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식다 분위기 못지 않게 음식도 고급스럽다. 음식 앞에서 흐믓해 하는 아추코군. 음식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추코군이 주문한 음식은 다진 고기를 큼직하게 미트볼로 크게 두 개로 나누어 빚어 찐 것 같다. 그 위에 토마토를 주재료로 한 소스를 뿌리고 그 위에 노란 무엇(치즈였나?)을 뿌렸다. 내가 주문한 것은 역시 다진 고기를 애채와 함께 길게 빚어 화덕에 구워 내왔다. 다진고기를 주재료로 한 요리들이어서 씹는 감촉이 부드럽고 맛도 아누 좋다. 고급 식당이지만 우리 돈으로 2만5천원이나 들었나...?
이 곳을 나와 나는 이스파한에서 자메모스크를 들른 뒤 카샨으로 이동할 참이었다. 아추코군에게는 이맘 모스크부터 들러볼 것을 권한 뒤 나는 이맘스퀘어를 떠나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버스 번호와 노선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무작정 북쪽으로 올라가는 버스에 올라탄 뒤 사람들에게 물었다. 내가 탄 버스는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 함께 내린 한 청년이 같은 방향이라며 그 곳에 가는 버스를 알려주겠단다. 따라갔다. 버스가 오자 내게 일러주어 다시 올라탔다. 그 청년이 나를 가리키며 버스기사에게 뭐라고 뭐라고 일렀다. 버스기사는 내게 하차 할 곳을 일러 주었다. 그 곳에서는 교토편이 없어 동쪽으로 적잖이 걸어야 했다. 가다 보니 바자르에 면한 큰 광장이 하나 더 나온다.
이곳도 볼만한 광장이고 바자르도 풍성했지만 워낙 이맘스퀘어가 규모크고 아름답기에 이 곳은 그냥 묻혀버린 모양이다. 어느 가이드북도 이 광장과 바자르에 대해 안내가 없다.
이 곳 바자르는 좀 더 오래되고 더욱 페르시아 시장다운 분위를 풍겨 더욱 정감이 간다.
자메 모스크의 입구. 입구의 규모와 장식이 비교적 소박하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뭍어난다.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말아 놓은 양탄자가 방치되어 있다. 이 곳의 양탄자 산업은 모스크에서의 수요만으로도 유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스크마다 빈틈없이 양탄자를 깔아 놓았다.
미나렛.
내부의 실내장식 역시 비교적 투박하고 전체적으로는 소박하다.
하지만 부분부분 보이는 섬세한 문양의 아름다움은 이를 커버하고도 남는듯하다.
안으로 들어가 좌 우로 들어가면 채색 문양이 없고 육중한 느낌이 드는 공간도 있다.
이 곳에는 묵직하고 안정된 느낌의 아름다움이 있어 좋다.
천장에 자리잡은 돔의 문양은 돔마다 다르다.
중앙돔.
채색없이 문자로 장식된 벽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단순하게 반복무의로 뚫린 벽도 이 사원으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야 가는 공간마다 다른 전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모스크는 정말 처음인듯하다.
모스크를 나와 다시 바자르를 계속 둘러 보았다. 코코넛은 이곳에서 처음 보는걸 보면 수입산이 아닐까.
이곳을 떠나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간 시간은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18:00발 카샨행 버스.
카샨행 버스표.
카샨으로 가는 도시 이동은 세시간 짜리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저녁 9시에 카샨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팽후군과 만나기로 한 에흐산 게스트하우스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는 가다 말고 차를 잠깐 세우더니 두 개의 사각 과자 사이에 아이스크림이 든 먹을거리 두 개를 사와 내게 하나 건넸다. 요금에 포함될거 뻔히 알면서도 그냥 받아 먹었다. 맛이 예술이다. 지금도 그립다 그 맛이.
기사는 내가 가고자 했던 에흐산 게스트하우스 입구에서 내려주고 돌아갔다. 게스트 하우슨의 프론트.
체크인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들어오는 풀이 딸린 페르시아식 정원에 감동부터 몰려온다.
이 곳에 오자 정원에 앉아 그새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팽후군이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그는 먼저 이 곳에 도착하여 방을 잡았고 프랑스인 브앙슈군과 친해져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배정받은 도미토리는 이미 팽후군과 브앙슈군이 배정받은 3인실이었다. 토굴같은 방을 들어가면
세 개의 침대가 놓여져 있다.
그 토굴같은 방에서 나오면 응접실 같은 널찍한 곳이 나온다. 그 공간의 문을 열면 정원과 통한다.
저녁을 아직 먹지 못한 터라 브앙슈군과 팽후군에게 물으니 그들도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단다. 홍콩의 처자들이 음식을 준비중이고 이미 같이 먹기로 했다며 같이 먹잖다. 도착하자마자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 엄지를 들어보이는 팽후군과 공비모자를 쓴 브앙슈군과 함께 앉은 처자들은 팬시군(Pansy)과 에디트(Edith)군. 만들어 놓은 요리를 차리는 중이다. 덕분에 광동요리 먹고 친구도 얻게 생겼다. 에디트군이 나를 보더니 확신이 있는지 "일본인도 합류했네?" 엥?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곧 미안해했다.
좀 지나 모두가 모여 앉으니 음식을 가질러 갔던 두 처자 중 한 명이 돌아와 말했다. 많이 모였네, 홍콩, 중국, 프랑스, 그리고 일본인... "ㅡ,.ㅡ;" 내가 일본인같이 생겼나...? ㅡ,.ㅡ; 어쨌든 이들이 만들어 내놓은 음식은 제법 맛이 좋았다. 볶은 야채, 볶은 국수, 닭고기 잡채 등 푸짐했다. 시장기가 반찬이라지만 새로운 친구들이 가장 훌륭한 반찬이었다. 오른쪽부터 Edith, Pansy, Pinky, 나, 브앙슈, 나를 초대해 준 이들의 호의가 고마웠지만 그냥 얻어먹기만 하기엔 좀 찜찜했다. 테이블 위를 가만 보니 음료수가 없었다. 나는 먹던 중 잠깐 일어나 화장실 가는 척 하곤 게스트하우스 구내 매점으로 가 펩시 캔 7개를 사 하나씩 돌렸다. 모두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 이들은 이란이 위험한 나라로 생각해 걱정하시거나 만류할 것이 두려워 부모님께 다른 곳에 간다고 말하고 왓단다. ㅍㅎㅎ.
식사 후 설거지는 남자들이 도맡았다. 좁아터진 싱크대 앞에서 그 많은 그릇을 쌓아 놓고 우왕좌왕하던 우리 남정네들은 처음엔 손발이 안맞다가 역할을 분담하면서 손발이 척척 맞기 시작했다. 나는 거품세척, 팽후군은 거품제거, 브앙슈군은 물기제거 후 쌓기를 나눠 했다. 처자들이 좋아한다. 이들 귀여운 처자들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잠자리에 들 준비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서 토굴방으로 들어가니 분위기는 좋지만 보통 더운게 아니었다. 팽후군과 브앙슈군은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더워서 잠을 이룰수 없어 정원으로 나갔다. 좀 있으니 이들 네 명의 처자들이 바람쐬러 나왔다. 비앙카군의 제안으로 대화가 영어에서 중국어로 넘어갔다. 잡다한 이야기들이어서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지 "오빠"가 무슨 뜻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 친오빠, 아는 오빠, 연인으로서의 호칭, 이 세가지 의미를 알려 주었다. 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다시 들어가고 나자 나는 곧 다시 베개와 담요를 들고 아무도 없는 정원으로 나왔다. 이 곳에도 평상 같은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에는 양탄자와 쿠션이 깔려 있었다. 양탄자가 깔린 평상 위에 누워 편안할 줄 알았던 노숙이 모기 때문에 변수가 생겼다. 그래도 더운 것 보다 나은 것 같아 얇은 홑담요를 뒤집어 쓰고 잤다. 이따금 스스로의 뺨을 철썩철썩 갈기면서... 건조한 곳인데다 가을이어서 모기가 없을거라는 생각에 전자모기향을 두고 온게 두고 두고 생각이 났다. 이 번 여행엔 흘리고 와서 불편한게 왜 이리도 많냐. 아~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