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4 이란

좌충우돌 낭만의 이란 8(이스파한)

코렐리 2014. 10. 22. 16:32

2014.9.10(수)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든 덕에 이 날은 아침 07:00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마친 뒤 07:30에 정원에 차려진 식당으로 나가  아침식사를 했다. 이 곳도 사각 건물 중정에 정원을 두어 게스트들이 이 곳에서 식사하도록 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나 말고는 식사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전 호텔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아침식사다. 식사를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인 처자를 만났다. 처음엔 한국인이 아닌듯해 영어로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그동안의 일정에 그녀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좋은 여행을 즐기는 중이었다. 우리는 약간의 정보를 교환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맘 스퀘어 방향으로 걸었다. 가다 보니 뭐하는덴진 모르겠지만 공원이 기막히다. 이 곳은 궁전에 딸린 공원이었던 것 같다.

 

이맘 스퀘어(Imam Square)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자면 명짧은 사람은 가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생겼다. 스퀘어를 도는 관광상품인지 마차가 늘어서있다. 이집트 아스완에서 타봤으니 호기심이나 미련같은거 없다.

 

이란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지만 어마어마하게 크다. 분수가 터널을 이루자면 물의 압력이 상당할텐데...

 

풀 건너에는 이맘 모스크가 보인다.

 

정원수의 배치와 구조가 무척 세련되었다.

 

이맘 스퀘어의 원래 이름은 나크시-에-자한(Naqsh-e-Jahan). 가이드북에 이는 pattern of the world 의 의미라고 한다. '세상의 모형(?)'쯤 되시겠다.

 

이 광장에 면한 거대 사각 건물 안쪽으로는 길게 양 쪽으로 가게가 늘어서 있어 특이한 형태의 바자르를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서 제작되고 판매되는 수공품들은 섬세하기가 놀라울 정도다. 사더라도 줄 사람 없는 귀걸이.

 

옥색으로 컨셉을 가진 철제 그릇가게. 말이 수공품이지 예술작품이다.

 

한켠 끝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모스크 중 하나인 이맘 모스크가 면해 있다.

 

입구와 좌우에 세워진 미나렛.

 

섬세한 문양의 모자이크. 여기에 들이는 공은 가히 놀랄만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안쪽으로 본관 건물이 바로 들여다 보인다. 그늘을 만들기 위해 위해 드리운 차양이 미관을 해치고 저네적인 윤곽 감상에 방해가 된다.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면 문양에 넋을 놓게 된다.

 

동양상으로 찍어봤다.

 

이 곳 이스파한의 이맘 모스크는 이란에서 가장 큰 사원일 뿐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이 아름답고 유서깊은 모스크를 둘러보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차양 뿐 아니라 대충 말아 대충 방치해 놓은 양탄자들.

 

방문객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음이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로선 무엇보다 좋다.

 

아마도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곳 이란을 위함한 곳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인듯한데,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한국인은 딱 한사람 뿐이었다.

일본인들은 정말 많이도 만났다.

 

벽을 규칙성있게 뚫어 실내 밝기를 조절하는 이러한 시스템도 호감이 간다.

 

 

수리중인 사원의 돔.

 

사원 구석구석을 돌던 중

 

이 곳 모스크의 사제를 만났다. 그와 그의 수행원은 내게 사탕을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우리 사원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맞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혼자 여행중이시군요."

"예."

"이란에 며칠이나 머무세요?"

"이란 내에서 열흘정도 머뭅니다. 더 머물고 싶어도 일하러 돌아가야 합니다."

"이란에 오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는 외국인들이 이란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사제는 내게 묻고 나는 답하는 형식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내가 이야기 한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이란은 전부터 오랫동안 호기심을 갖던 나랍니다. 많은 중동국가들을 방문해 봤지만 모두 아랍국들이고 페르시아 문화권은 이 번이 처음입니다. 게다가 이 곳은 시아파 이슬람의 본산지인만큼 그에 따른 문화와 건축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게다가 이 곳의 건축문화는 아랍건축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란을 위험한 나라로 잘못알고 있더군요. 미국이 범죄가 많고 거리는 결코 안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위험한 나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더군요. 이 곳 중동이 서방세계 언론의 아웃사이더이다 보니 테러나 전쟁같은 안좋은 일이 있어야만 카메라를 들이대니 사람들 생각하기에 이란을 포함한 중동국가들은 전부 위험한 일만 생기는 줄 압니다. 우리도 AP나 로이터 같은 곳에서 뉴스를 사다 보도합니다. 언론이 그렇게 만들고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오해가 문제지요. 이란 사람들은 어찌나 친절하고 정직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해놓고 보니 나즈메군을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얘기냉? ㅡ,.ㅡ; 종교적인 문제도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평소의 소신을 피력했다.

"저는 카톨릭교도입니다.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카톨릭도, 개신교도 모두 다 같은 신을 믿는 종교인데 서로 반목하고 전쟁까지 하는걸 도대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몇 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터키에서 십자군의 범죄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가톨릭이 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좀 더 일찍 이루어졌어야 했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행각합니다."

그는 내게 이슬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아는게 있어야 모르는 것도 있게 마련이지요. 명함을 주시면 생각나는 대로 질문할테니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순니파와 시아파가 갈린 것은 종교 성립 초창기 서로 다른 이맘을 옹립하면서 두 개의 분파로 갈렸단 사실만 알 뿐이다. 그게 몇대 이맘 사후에 벌어진 일인지도 읽어본게 오래전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명함을 내주며 말했다.

"당신은 좋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여행 하세요."

 

나는 모스크 구석구석을 마저 둘러보았다.

 

화장실 세면장 사진을 찍은 이유는 화장실 마저도 고전적인 모양새를 갖고 있기 때문. 냄새나나...?

 

다시 밖으로 나와

 

모스크 좌우에 연결된 바자르의 길 중 오른쪽으로 돌기로 했다. 

 

카펫가게.

 

장식용 타일가게. 여기엔 조로아스터교와 관련이 있는 문양이 많다.

 

철판을 두드려 만든 주방그릇 가게. 우리 나라에서도 안성에서 만들어진 그릇과 주방기구들은 '안성맞춤'이라는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섬세한 수공품을 만들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이미 사라진 문화가 이들에겐 아직도 유효한 것 같아 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즈메군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만든 금속 솥단지는 오늘날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들보다 건강에 좋다고 한다.

 

이 곳에서 그 섬세한 예술품을 만드는 모습을 공짜로 볼 수 있어 적잖이 행복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 중 특히 여공의 모습에서 포스가 느껴진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세이흐 로트폴라 모스크(Seikh Lotfolla Mosque)

 

입구부터가 화려한 이 모스크는 바자르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길게 이어진 길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도 쉽다.

 

통로 아치형 천장의 섬세하고 화려한 모습

 

이 곳은 입구와 통로를 제외하면 그 외 공간은 하나뿐이다. 이 모스크에는 그 흔한 미나렛도 하나 없고 중정도 없고 달랑 이 공간 하나 뿐이다.

 

규모는 작지만 섬세하고 아름답기는 어느 모스크보다도 빼어나다.1602년에서 1619년에 지어진 이 모스크는 이 간소하고 특이한 모습에 일반적인 다른 모스크들과 달리 샤(shah)의 후궁들이 예배를 올리전 장소였다고한다.모스크의 이름은 통치자(샤)의 의부였던 셰이흐 라트폴라(Sheikh Lotfolla)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고 한다. 문양의 섬세함과 우아함은 어느 모스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여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세공일에 익숙하고 노련한 모습을 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시간은 이미 두시가 가까웠다. 가이드북을 봐도 당시 서있던 휘치에서는 좋은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다리도 아파오고 날도 더워 근처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운이 좋았는지 현지인들만 바글바글한 로컬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반가운 생각에 안으로 들어갔다. 현지인만 가득한 로컬식당에 내가 들어가니 수십개의 눈이 나를 신기한 동물 보듯 쳐다봤다. 북적북적한 가운데 자리가 다 차고 테이블 세 개 정도가 남았다. 나는 어디 앉을까 하다가 눈에 띠는 미모의 히잡을 두른 처자가 혼자 앉은 테이블의 옆테이블이 있음을 보고 일부러 그리로 앉으며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혼자 밥먹자면 심심하잖아.

"여기 앉아도 되죠?"

"그럼요."

나는 직원이 오길 기다렸다가 메뉴판을 보자고 했다.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옆자리 처자에겐 기회를 봐가며 말걸으려 했지만 이 상황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트여 놓았다.

"도와 드릴까요?"

"메뉴판을 보고 싶은데 직원이 내 말도 못알아 듣고 벽에 붙여 놓은 것도 없고..."

"여긴 메뉴가 한가지밖에 없어요. 원하는 음료나 요거트만 추가주문하면 돼요"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똑같은 음식만 놓고 먹었다. 그녀가 내 주문을 대신 해줬다. 이래서 트이기 시작한 대화중 옆테이블이어서 주변이 소란스러워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며 그녀는 내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그녀는 이란 북부 도시의 한 병원의 치과 레지던트라고 한다. 이름은 파타메. 이 도시에는 자료 조사차 방문했고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에 버스터미널로 가 공항행 버스를 탈 예정이란다. 그녀는 그 때까지 시간이 남는다며 원하면 이 곳 이스파한을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그냥 식사하며 얘기 상대만 찾았을 뿐인데 호박이 넝쿨째 넘어온다는 소리가 이런 경우인가?

 

어쨌든 나온 음식은 무척 저렴한데다 맛도 좋았다. 얇은 빵 한접시와 곁들일 요거트, 허브가 나왔다. 이게 다는 아니다.

 

빵 속에는 다쳐서 지진 고기 두 종류가 들어있다. 파타메군은 얼마 먹지도 않고 식사를 마쳤다. 원래 적게 먹느냐고 물으니 느끼해서 넘어가지 않는단다. 외국인인 나도 맛있게 잘먹는데 웬일인가 싶다.

 

펩시 콜라도 아니고 베이시란다. 생긴건 짝퉁펩시. 이란엔 이런거 대따 많다.

 

파타메군은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식사를 마친 뒤 내가 모두 다 지불해 버리면 혹시 오버일지 몰라 그녀에게 허락을 구했다.

"두 사람의 점심값을 내가 내도 되져?"

파타메군이 손사래를 치길래 각자 내잔 소린줄 알았더니 그녀가 내 밥값까지 계산해 버렸다. 엥?

이 곳에서 나오더니 파타메군은 보여줄게 있다며 따라오란다. 한 골동품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오래전에 만들어진 진품이라며 전시된 금속접시를 내게 보여준다.

 

보통 대단한 공이 들어간 작품이 아니다. 값이 상당히 높게 매겨져 있었는데 어차피 살 생각이 아니었으니 금액은 기억나지 않는다.

 

골동품 가게앞의 파타메군.

 

우리는 우선 이 어마어마한 이맘 스퀘어에서 벗어나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으로 갔다. 내가 처음 이맘광장으로 가면서 봤던 공원이 바로 이 곳인 것 같았다.

 

궁전이라고 해야 낡고 약간은 초라해 보이는 건물 하나 달랑 남았다. 외관으로 봐서는 그닥 화려하지도 않고 우아한 건물도 아니었다.

 

천장 장식은 화려하고 세밀하지만 그닥 우아한 맛도 없어 보였다.

 

이 궁전은 2개층에 20개의 방을 두어 대칭으로 지어졌으며

 

사파비드 왕조시대에 왕족의 휴식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돔 윗부분에는 빛이 들어 오도록 설계했으며 거울장식이 눈에 띤다. 궁전 안에선 파타메군.

 

궁전에서 나온 뒤 날이 더워 공원 산책로로 나왔다. 공원산책로는 길게 길을 따라 가운데 물을 흘려보내 주변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감각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쉬려니 길 건너편 벤치에 혼자 앉아 쉬던 여인네가 말을 걸어왔다. 처음 만났으니 하는 질문들은 뻔한대로 나왔다. 어디서 왔냐, 뭐하는 사람이냐, 이란엔 왜 왔냐 등 등. 나와 파타메군이 대답을 해주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물을건너(?) 우리 쪽으로 건너왔다. 그녀는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풀어냈다. 지레짐작과 달리 그녀는 영어실력이 좋은 편이었다.

"같은 이란 사람끼리 결혼해도 맞추기 쉽지 않은 판에 아랍인하고 결혼했으니 나도 참 바보지. 문화차이가 심해서 도대체 남편하고는 살 수가 없어. 난 그 작자하구 이혼할거라구."

그녀는 나와 파타메군이 무슨 관계라도 되는 줄 아는지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다. 물론 있는 그대로 답변해 줬다.

그러더니 나보구 결혼했느냐고 묻더니만 이 번에는 파타메군 보구 결혼했느냐고 묻더니 역시 안했다고 하니 턱으로 날 가리키며 이 남자 어떠쟈고 묻는다. 헐. 자기는 외국인하구 결혼한걸 후회한다면서 왜 남한테는 묘한 제안을 하능겨?

그녀는 그동안 여기 혼자 앉아 있으면서 어지간히 심심했던지 고개를 내게로 다시 돌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는 처자였다. 파타메군이 뒤에서 그만 자릴 뜨자는 신호를 해왔다. 말이 너무 많아 피곤하단다. ㅎㅎ 아래 사진은 파타메군과 너스레에 열중인 처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처자는 우유를 자식새끼처럼 안고 다녔다. 우유를 사서 집에 가려다가 공원에 들른건지...

 

다음으로 들른 곳은 Chehelstoon 궁전. 오후 세시에 문을 다시 열기 때문에 바깥에서 잠깐 시간을 때워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동양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여기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몇장인지 모르겠다.

 

궁전에 들어서면서부터 길게 놓인 풀부터 눈에 들어온다. 물이 깨끗하지는 않아도 건물의 그림자를 빛추어 볼만하다. 

 

이 곳의 안내판에는 사파비드 왕조의 샤 압바스의 지시로 지어진 이 궁전은 구조적으로 유니크한 건축의 걸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뭐가 유니크한건지 모르겠지만 안내판의 글자들은 지워지고 바래서 읽을수가 없다. 통과! 내부에 들어가면 실내 벽면에 그려진 문양이 더없이 섬세하고 큰 벽면마다 프레스코화가 드려져 있다. 아래 사진은 A.D.1518년에 있었던 샤 이스마일 사파비드와 오토만의 술탄 살림과의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샤 이스마일은 패배했다고 한다.

 

외관과 달리 섬세하기 짝이 없는 천장의 문양

 

A.D. 1621년 샤 압바스가 터키의 통치자 발리 모하메드 한을 영접하는 습습의 프레스코화.

 

왕궁에서 나온 우리는 파타메군의 짐을 찾기 위해 이맘스퀘어로 다시 갔다. 날이 어지간히 더웠다. 파타메군의 공항행 버스 시간도 여유가 있어 우리는 이맘스퀘어 한켠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아래 사진 하단의 하얀 국수같은 것이 이란의 아이스크림을 독특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이름을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이 것은 아이스크림과 섞어 먹으면 맛도 아주 좋고 출출할 때 먹으면 배가 든든하기까지 하다.

 

파타메군이 찍어준 사진.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파타메군.

 

파타메군은 어느 가게에 맡겼던 자신의 짐을 찾아 터미널로 간다며 내게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놀아준 그녀의 성의도 고맙고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 버스 터미널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시간 빼앗고 싶지 않다며 몇 번 사양하던 그녀는 못이기는척 내게 가방을 맡겼다. 터미널로 가 티켓을 확인한 뒤 파타메군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문자가 왔다. 이란같이 안전한 나라,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나라를 왜 자꾸 위험하다고 정부에서부터 싸잡는지 알 수가 없다.

 

파타메군이 선물이라며 사준 보석함. 함의 문양은 일일이 손으로 그런거라 예술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란인들의 섬세한 감각은 단연 세계 최고라 할만하다.

 

파타메군을 보내고 나서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밥먹을 일이 문제였다. 식당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빵을 굽는 집이 보여 카메라를 들이대 보았다. 빵가게 주인이 포즈를 취해주며 빵 하나를 내게 건넸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빵 먹고 나면 버릴수도 없고 갖고 다닐수도 없고 곤란해지니 짐짓 배부른 척 하며 사양했다.

 

좋은 식당을 찾아 걷던 중 야즈드의 실크로드 호텔에서 체크인을 기다리다가 방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에 나의 의견을 물은 뒤 혼자 다른 호텔을 찾아갔던 그 중국인 청년을 만났다. 그와 헤어진 뒤 조로아스터교 사원을 들른 뒤 야즈드의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까지 하면 이 번이 세번째 조우였다. 여행의 백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만남이다. 그의 이름은 팽후. 광동어 지역에 사는 친구였다. 알고보니 투숙 호텔도 나의 숙소와 같은 곳이었다. 이 때까지 식사를 마치지 못한 상태라 그에게 물어보니 그는 이미 식사를 마쳤고 가격 대비 좋은 식당이 호텔 길건너편 지하에 있으니 그 곳에서 식사하라고 일러준다. 다음날 호텔에서 7시 30에 아침 식사를 함께하기로 한 뒤 나는 그가 일러준 식당으로 가고 그는 쉬기 위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휑뎅그렁하게 큰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다. 하지만 나온 음식 대비 가격은 엄청 저렴했다.

 

저녁식사 후 배정받은 방은 아침에 식사를 같이 했던 한국인 처자가 머물었던 방이었다. 아침식사때 그녀가 했던 말에 의하면 3인실인 이 도미토리에 한 중국인이 함께 머무는데 돌출발언과 안정되지 않은 행동거지, 그리고 급작스럽게 변하는 기분표현 등이 적잖이 그녀와 다른 한 룸메이트를 당혹스럽게 했던 모양이었다. 한국인 처자는 이미 이스파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미 떠났다. 그를 방 안에서 만났다. 그가 이 곳 이스파한에서 구입한 기념품들을 내게[ 꺼내 보였다. 외모와는 달리 부잣집 아들인지 꾀나 값나가는 물건을을 적잖이 구입했는데 모두 친구들을 줄것들이라고 한다. 안정되지 않고 왠지 들뜬듯한 그의 말투에서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갔다. 나는 그와 부딫힐 일이 없었다. 그는 나가서 실컷 논 뒤 내가 잠자리에 든 뒤 돌아와 곧 잠잘에 들었다. 나머지 한 침대는 일본인 처자의 공간이라고 하는데, 내가 잠든 뒤 한참만에 돌아온 그녀는 거의 새벽 되어서야 돌아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