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랑 카~~~!(1-2: 캔디)
2014.5.31(토) 계속
Sri Dalada Maligawa 사원(치아사원) 정문을 나와 가까운 힌두교 비슈뉴 사원으로 찾아 가봤다. 아래 사진은 사원의 게이트. 게이트 위를 덮고 있는 지붕과 그 위로 솟은 또하나의 지붕은 네팔에서도 본듯한 양식이다. 게이트 벽면에는 힌두교 지식이 없는 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캐릭터가 새겨져 있고 다채롭게 채색되어 있어 나 같은 이교도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입구에 들어서니 또하나의 입구가 있고 신도들은 이 곳에 등잔을 하나씩 바친 뒤 들어가곤 한다.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좌우에 부조 인물상이 있으나 누군지 알길이 없다. 악의 상징으로 보이는 짐승의 머리와 몸통을 밟아 제압한 인물의 멋드러진 콧수염과 흡혈귀의 어금니, 그리고 네 개의 팔이 인상적이다. 비슈뉴의 신전 앞에는 대개 반인반조의 가루다가 그 앞에서 비슈뉴를 찬양하며 대기중인 모습을 봐왔는데... 네팔과는 또 다른 형태로 지어진 모양이다. 안에서 무언가 의식이 진행되고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
한 어린이가 제단에서 사제로부터 무언가 의식을 받고있다. 눈치 못채게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식을 집행하던 사제가 손사래를 한다. ㅡ,.ㅡ; 죄송.
허걱. 힌두교 비슈뉴 사원에 웬 부처상이... 도대체 불교와 힌두교 융합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불교의 힌두교 영향이라면 신성시 되는 코끼리와 서유기의 설화 정도만 알고 있는 나로선 약간은 당혹스럽다. 부처상 뒤로 화려하게 수놓은 오오라(Aura)가 오히려 더 볼만하다.
부처상이 있는 건물 앞에서 한 컷. 이 곳에서 한 사제를 만났다. 여기서 만나고 보니 이 분이 사제인지 스님인지 알길이 있나. 그는 자신의 처소로 보이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자신이 달라이라마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대략적인 자신의 소개를 한 뒤 내게 무언가 축복을 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내게 보여주는 공책에는 그동안 나와 똑같이 이 방으로 초대(?)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낸 헌금 목록이 있었다. 뭐지? 거의 대부분 2,000루피를 헌납했다. 적은 돈은 절대 아니다. 뭐지? 엮인 것 같았다. 나는 사제에게 물었다.
"얼마나 내면 되요?"
"원하는 만큼만 내시오."
"100루피만 내지요."
"대부분 2,000 루피를 내고 갔소."
"제가 내고 싶은 금액은 100루피입니다."
표정이 못마땅한 눈치다.
"그럼 1,000루피라도..."
나는 들은 척도 않고 당당하게 내 이름과 함께 100루피를 공책에 적은 뒤 주머니에서 꺼내 100루피를 건넸다. 사제의 얼굴이 찌그러지며 불만족을 내비쳤다. 헌금에 정해진 금액이 있다는 얘기는 전설로도 들어본 바 없는 나는 이러한 수법에 별로 말려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마지못해 100루피를 받고 나를 놓아(?) 주었다. 내가 공책을 오염(?) 시켰으니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지웠을까? 아님 "0"을 한 두개 더 붙였을까? 갑자기 2,000루피를 낸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비슈뉴 사원을 나온 나는 슬슬 주변을 둘러 보았다. 소박한 노점 아채가게에는 방금 수확한듯한 먹음직한 야채가 바닥에 놓여져 컬러풀한 싱싱함을 한껏 드러낸다.
슬슬 걸어 이동을 하다 보니 벌써 치아사원으로부터 벗어나 호수 건너편으로 와 있었다.
치아사원 바로 건너편에도 규모가 결코 작지 않은 한 불교사원이 자라잡고 있어 호기심에 발을 들여 보았다. 무언가 큰 행사가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많은 신도들과 스님들이 사원 뜰을 가득 메우고 있어 무슨 행사인지 궁금해 안으로 더 들아가 봤다.
뭔진 모르지만 기념 촬영중이었다. 뭔지도 모르고 나도 찍었다.
기념 촬영을 위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내게 밥을 먹었는지 손으로 시늉을 하며 물었다. 마침 난 아직 식전이었다. 손사래를 했더니 안으로 들어 오란다. 허. 이곳에서 보시를 받으면 가뜨기나 허기진데다 그야말로 흔히 체험하기 어려운 경험이 될 터였다. 따라 들어간 곳은 식당이었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비닐에 밥과 반찬을 싸고 그 위에 신문지로 한 번 더 싼 도시락 같은 밥을 받아 먹었다. 나를 손님으로 대접한 것인지 나를 데리고 들어간 이가 접시에 음식을 소담스럽게 나왔다.
양념된 캐슈넛도, 말린건지 튀긴건지 바삭한 튀각같은 것도 있고 콩으로만든 듯한 무언가도 놓여져 있고 커리가 그 위에 뿌려져 있었다. 손으로 먹는 느낌과 수저로 먹는 느낌이 맛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손님에게 내어 주는 수저를 마다하고 그들과 똑같이 손으로 먹었다. 손목에 털실이 묶인 것은 힌두사원에서 스님(?)이 묶어준 것임. 전에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에서 소년 수행자가 묶어 준 것과 같은 성격의 끈인듯하다. 룸비니에서는 동행자였던 뜀도령과 함께 그 끈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카톨릭 교도인 나의 손목에서는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끊어져 기념품 보관함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뜀도령의 손목을 감았던 끈은 놀랍게도 1년을 훨씬 넘게 끊어지지도 않고 주인의 손목을 지켰다. 여기서 다시 끈을 감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내 바로 옆자리에서는 두 명의 소녀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 눈이 마주치면 외국인 여행자가 자기네 사원 식당에서 같은 모양새로 밥먹는 것이 신기했는지 이따금 웃어 보였다. 그녀들의 인상이 좋아 허락 받고 한장 찍었다. 이보다 더 해맑고 아름다운 미소가 또 있을까.
건물 한 켠 그들의 처소로 보이는 곳에서 행사를 방관(?)하시는 스님들의 모습. 허락 받고 한 컷.
밥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니 행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했다. 모르긴 해도 불교계 거물인듯하나 무척 젊어 보인다.
정을 나서서 호수에 면한 인도에 올라서니 딱따구리로 보이는 귀여운 새가 한마리 죽은 고목 줄기에서 잠시 날개를 쉰다.
바로 그곳에 여차하면 빠져버릴 만큼 크고 깊은 눈망울을 가진 소녀가 눈에 띠는 통에 나도 모르게 멈춰섰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나는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양해부터 구하고 사진부터 찍었다. 생각해 보니 정작 소녀에게서는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는 외국인이 자신들이 아이를 예쁘다며 어쩔줄 몰라하니 흐믓하기 짝이없는 표정들이다.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과 더불어 코와 입에 녹은 크림이 더 뭍어 있었다면 더 귀여운 사진이 나왔을법도 하다. 가진 장비와 기술이 더 좋았다면... 조금 아쉽다. 가는 곳마다 이처럼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곳에서 발을 뗀지 얼마되지 않아 한 노인을 만났다. 호수 건너편 치아 사원을 향해 기도하는 한 노인의 모습은 경건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단순한 나는 이런데 잘 넘어간다. 그는 내가 지나가자 하던 기도를 마치고 이제 막 나를 발견한 체 하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둥 영양가 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뒤 나의 여행 일정까지 덤으로 물었다. 이제 곧 담불라로 떠날 참이라고 했더니 오늘은 축제가 있는 날이라 호수 건너편에서 밤이면 불꽃 놀이도 하고 전통 민속춤 공연도 있을 예정이라 오늘 이 도시에 몸을 담은 운좋은 행자가 그냥 다른 도시로 가버린다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 뒤 향후 행자의 일정을 내게 다시 물었다.
여행을 가면 그나라의 전통 공연은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보는 난데 마다할 리 없었다. 공연을 보고 싶은데 어디에서 표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표를 파는 곳을 안다며 나를 인도했다. 그가 리드하는대로 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방금 나온 사원 뒤쪽 마을로 따라 들어갔다.
한 공회당 같은 곳에서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고 그는 거기서 잠시 멈추었다.
"이 곳의 학생들인데 환경이 열악한게 문제"라며 뭔가 꿍꿍이 내지는 암시를 내게 던졌다.
나는 나대로 입장권 외에는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라 신경쓰지 않았다. 수강생들이 과연 노인과 관계가 있었을까. 모를 일이지만 왠지 부정적인 느낌이 지금도 든다.
그는 나를 다시 어디론가 데리고 가더니 경사진 마을 골목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샵(?)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각종 문양을 염색한 천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벽에 전시도 되어 있었다.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노파가 홍차를 내왔다. 눈치가 없어 노인의 속내가 뭔가 하던 나는 그제서야 속내를 알아 차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척 공연 입장권부터 구하고 싶다고 말하며 홍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는 염려 말라고 한 뒤 물어보지도 않은 작품 설명을 허락도 없이 열심히 했다.
"...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지요. 헌데 이 작품들은 값이 꽤 나갑니다. 당신에겐 로컬 가격으로 드리지요. 판매수익금은 방금 보신 수강생들의 학교 건립에 기부될겁니다."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그를 쉰 눈으로 보기 시작한 터였다. 나중에 축제가 있는 날이란 말도, 불꽃놀이가 있을거란 말도 모두 새빨간 거짓말임을 결국 찾아간 공연을 보러 찾아간 극장 관리인으로부터 듣고 알게 되었다.
"차도 잘 마셨고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작품들도 아주 좋군요. 그런데 보여주신 작품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당초 제게 말씀하신대로 전통무용공연 표나 구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이걸 사시면 그 학생들에게 기부를 하시는 겁니다. 좋은 일이지요. 이 작품이 마음에 안드시면 다른 작품들도 있습니다."
하며 다른 작품도 꺼내려 했다.
"제가 이 작품들에 관심이 있다면 기부도 하겠지요. 제겐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티켓은 어디서 팝니까."
부담스럽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은 작품도 있다는 둥 계속 나를 엮으려 하는 말에 노골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하니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내게 홍차까지 대접(?)하고 500루피짜리 티켓 한 장 파는데 그쳤다. 그는 그 표를 내게 팔아 얼마의 수수료를 챙지는지 몰라도 내게 투자한 노력의 결과로는 보잘것 없었을게다. 나는 보지 못하고 돌아 왔을 수도 있었던 공연을 참관함으로써 문화적 이해에 좀더 다가갈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그에게 투자한 시간은 흑자를 냈던 셈이다. 푸헐헐
이 곳에서 처음으로 본 대학 건물. 담벼락엔 초등학교 벽화 못지 않게 다채롭고 동화적임이 인상적이다.
걸어서 찾아간 공연장 Kandian Culture Center다. 아직 공연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이 곳에 앉아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다 말고 생각나서 기념품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오늘 축제가 있습니까? "
"무슨 축제요?"
"오늘 무슨 거대 축제가 있고 불꽃놀이도 있을거라고 한 노인이 그러던데요?"
"어느 노인이요?"
나는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고 그 노인한테서 표를 샀다고 하자 누군지 알겠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축제도 불꽃놀이도 없었다. 노인은 입장권 판매를 위탁받은 여러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기념품 가게 주인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나도 어이 없어 그냥 웃었다.
치아사원에서 표를 살때 내준 DVD.
호수 위에 떠있는 인공섬(아마도)
이 곳에서 앉아만 있기도 따분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근처에서 놀고 있는 동자승이 눈에 띠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그의 동료로 보이는 또 한 명의 동자승. 무척 맑아 마냥 선하게만 보이는 눈망울이 인상적이다.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숙소로 슬슬 걸어서 갔다. 결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많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고육책 중 하나였다.
숙소 근처의 한가게방. 왠지 어린시절 보았더 그런 가게 분위기가 보인다.
짐을 찾은 뒤에는 마을 바깥으로 통하는 길을 어슬렁거려 봤다. 예쁜 집들이 의외로 많이 눈에 띤다.
만만치 않게 더운 날씨에 다니는 도보여행도 그리 녹녹치는 않다.
탄산음료를 좋아하지 않지만 더위에 지쳤을때는 이만한 것도 없다.
공연 시간에 맞춰 다시 찾아간 캔디안 컬쳐 센터.
공연시간이 되자 적지 않은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공연은 약간은 어설퍼 보였다.
무용수들의 통일되어야 할 동작은 약간씩의 시간차로
통일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왠지 모르게 이 곳도 무관심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전통을 어렵게 고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라고 다를까. 판소리 같은 국악 공연에 우리는 얼마만큼의 관심을 갖고 얼마나 잘 보존하고 있을까.
하지만 캔디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보아야 할 공연인듯하다.
나름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장에서 각 춤에 대한 해설을 달아놓은 갱지 한 장 짜리 팜플렛(?)을 열심히 읽어 보았다.
여기소도 불춤을 춘다. 설명에 의하면 물을 몸에 대고도 화상을 입지 않는 현상은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굳이 불교신앙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럼 서커스장에서 보여주는 불춤은 뭐지? 하지만 공연 말미에 시뻘건 숯을 바닥에 깔고 그위를 춤추며 무용수들이 지날 때는 나도 대경실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신앙의 힘인건가...
오후 다섯시에 시작한 공연은 한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공연장을 나왔을 때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기념품가게 주인이 일러준대로 퀸스 호텔 건너편에서 9번 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버스 시간을 모르니 일단 교통편부터 확보한 뒤 밥을 먹을 참이었다. 담불라행 차량을 확인한 나는 터미널 주변으로 식사할만한 곳을 찾아 보았지만 딱히 땡기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뱃속에서 울려오는 시계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그나마 가장 나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가장 먹을만해 보이는 메뉴. 생긴대로 맛은 별로였지만 나는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맛있는걸 먹어야 되는데... ㅡ,.ㅡ;
18:50에 캔디를 출발한 버스가 담불라에 도착한 시간은 21:20.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내게 다가온 툭툭기사. 내가 가고자 했던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대자 대뜸 안다고 했다. 믿고 탔다. 북쪽으로 나를 태우고 데려간 곳은 엉뚱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아마도 제가 아는데로 데려가 수수료를 받는 모양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그곳이 아무리 가격 저렴하고 시설이 더 좋다 하더라도 나는 이런 경우를 싫어한다. 그가 경적을 울렸고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남의 휴가를 이따위로 망쳐도 되느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뒤 왔던 길로 되돌아 걸었다. 멋도 모르고 나온 주인은 왜그러냐며 툭툭기사에게 묻는 것 같았다. 밉살맞은 툭툭 기사는 뒤에서 졸졸 따라 다니며 정작 그 게스트하우스를 안다며 계속 올라타기를 종용했다. 나는 그가 치사스러운 속내로 나를 농락하여 한 것이 쓸데없는 기름 낭비에 시간낭비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경멸의 눈초리로 몇 번을 가라고 소리친 뒤에야 포기하고 아쉬운듯 가버렸다.
길을 가다 보니 피부병이 심한데다 영양실조 기미가 역력한 개 한바리가 쫓아다니며 으르렁거렸다.
'이거 똥개새끼까지 사람 꼭지 돌게 만드네?'
처음엔 모른 척 하다가 나중엔 안되겠다 싶어 돌멩이를 주워 드니 저멀리 떨어져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따라오는 놈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꼴에 멈추질 않았다. 몇 차례 돌을 던지고 돌멩이를 더 찾으니 그제서야 시비걸기를 포기한듯 간격 유지를 포기해 저멀리 떨어졌다.
"나중엔 별게 다 지롤을 떨어요..."
20분 이상 걸어서야 지도상에 랜드마크로 삼으려 했던 시계탑이 나왔다. 말이 시계탑이지 정작 시계는 맛갔다. 때는 늦은 시간이어서 22:00를 넘기고 있었다.
찾아가려 했던 게스트하우스는 불이 꺼져 있고 마치 폐쇄된 것 같았다. 여러번 사람을 불러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결국 바로 옆집으로 가서 물어보니 숙박료가 비슷했다. 환전한 돈은 이미 다 써버렸고 캔디에서는 마침 환전소가 눈에 띠지 않아 남은건 달러밖에 없었다. 집주인은 달러를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여권을 맡기고 다음날 아침 환전 후 방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하루종일 땀과 더위에 시달린 뒤 샤워를 하고 나니 날아갈 기분이었다. 일단은 잤다. 아마도 잠자리에 든 시간은 11시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