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4 스리랑카·태국 the 2nd

쓰리랑 카~~~!(1-1: 캔디)

코렐리 2014. 6. 12. 16:46

2014.5.31(토)

방콕 새내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뒤 공항으로 돌아와 굶주린 채(아, 젠장) 22:10발 콜롬보행 항공기에 올라탔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밖으로 보이는 대기중인 항공기.

 

저녁을 건너뛰고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맥주와 초컬릿으로 대충의 시장기만 달랜 뒤 만난 기내식이 반갑기 짝이 없었다. 모양새가 문제일까 맛이 문제일까. 최고의 반찬인 시장기 아니 허기짐이 있으니 게 눈감추듯 맛있게 먹어치웠다.

3시간여의 비행끝에 밤 12:00경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비자를 위해 지불한 돈은 미화 35달러. 입국 절차는 무척 간단했다. 비자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환전. 우선 100달러를 환전하니 1277루피를 준다.

 

비자를 받자마자 캔디로 가는 차량편부터 알아봤다. 이 날 가까운 콜롬보부터 가지 않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콜롬보는 여행 일정상 돌아가는 비행기가 가까운 도시이니만큼 마지막 일정에 넣어야 했다. 콜롬보가 가깝기는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아까운 대낮 시간에 캔디로 이동해야 했다. 공항에서 콜롬보 시내까지는 솔찬허니 멀다. 어차피 대중교통이 끊어진 시간인만큼 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입국절차후 나오자 공항 청사 안에 여러개의 여행사 부스부터 보인다. 이 중 하나가 내게 호객을 했다. 요금을 물어보니 론니에 나온 금액(5,000루피)보다 큰 7,000루피였던가 했던 것 같다. 흔히 있는 일이다. 여행사 책자는 그리 신속하게 업데이트 되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몇년 전 자료들인 탓이다. 여행사 관계자 말로는 정부 고시 요금이라고 했다. 6,000까지 해주겠다고 했지만 다른 여행사에서 더 깎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옆 여행사로 가봤다. 그 옆 여행사도 그 이상은 안된단다. 결국 6,000루피로 결정을 보니 어디엔가 전화를 건다. 차량을 부르는 것 같다. 조금 기다리자 전화가 다시 걸려오고 여행사 관계자는 나를 데리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차량에 태워 준 뒤 여행사 직원은 공항청사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잠을 자고싶어 뒷자리로 가 앉아 수면을 취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기사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내일 시간을 아끼려면 지금 자두어야 했기에 자게 내버려 두도록 요구하자 살짝 본색을 드러낸다. 팁 좀 줄 수 있느냐는거였다. 팀이란게 서비스에 달려있으니 당신에게 달렸단 소리를 하고는 원하는 게스트하우스명 이야기한 뒤 뒷좌석에 누워 잤다. 그 이른 새벽 캔디에 도착해 무조건 내려주면 골아프다. 호텔을 찾아 주면 주겠단 얘기. 캔디에 도착하자 그는 팁 생각에서였는지 열심히 호텔을 찾았다. 결국 그는 내가 이야기 했던 Green Woods 게스트하우스에 내려 주었다.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요금 6,000루피 외에 팁 500루피를 더 주었다. 적이 만족스러웠는지 더 달란 소리도 없이 고맙단 인사를 한 뒤 차를 몰고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게스트하우스를 찾느라 그가 전화를 한 탓에 주인은 내가 가서 누구 없느냐 소리를 치니 곧 밖으로 나왔다. 론니에 나온 정보는 정확하지 않았다. 가장 싼 줄로 알고 찾아온 이 게스트 하우스의 숙박료는 2,000루피였다. 새벽에 와서 잠깐 자자고 2,000루피를 내려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 협상을 시도해 보았지만 비성수기임에도 짤이 없었다. 방은 무척 깨끗했다.

 

욕실도 딸려 있고 딸린 욕실은 약간은 엉성한 시설에도 깨끗했다. 샤워를 하려고 꼭지를 돌리니 어찌나 물이 쫄쫄거리고 나오는지 짜증이 날 정도였다. 나오는 물도 시원한 맛은 도대체 없었다. 세면대의 물은 수채구멍이 막혔는지 빠지지도 않았다. ㅠㅠ 할 수 없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나와

 

전기 모기향을 피우기 위해 콘센트를 찾았더니 일케 생겼다.

 

준비해 간 어댑터. 이 한 세트면 어디 가서도 문제가 없었다. 근데 이게 뭐여? 아뿔싸... 맞는게 없넹? 뭐냐고... ㅠㅠ 다행이 침실에는 모기장이 있어 자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모기장 행태상 손발이 모기장에 닿아 그 모기장을 뚫고 덤벼올 가능성이 있다는게 문제였다. 카메라 배터리도 충전행 하는데... 방 바깥으로 나가봤다.

 

벽과 천장 여기저기에 앙증맞은 도마뱀이 매달려 있었다. 조용한 밤에 이녀석 사진을 찍느라 후레쉬가 터지자 놀란 이녀석 후다닥 자리를 옮기더니 멈춰선다. 자기가 왜 놀라 달아나는지도 그새 잊은 것 같다. 돌대가리 같은놈. 카메라 배터리도 충전하지 못했지만 최신형인데다 예비 배터리도 있어 다음날 하루 정도는 끄떡없을 터였다. 일단은 자는게 급했다. 잠자리에 든 시간은 세시 40분이 넘어 있었다.

 

2014.6.1(일)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잔 탓에 그럭저럭 시원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자 원숭이 한마리가  벽돌 난간에 올라 내 짐속에서 훔쳐낸 전자모기향 칩을 까고 있었다. 정신 나간 놈 같으니 그게 초컬릿이라도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원숭이가 자고 있는 내 방으로 들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놈이 호기심이 많아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면 어찌할 뻔 했나. 쫓는 시늉을 하자 그제서 꼬리를 내던지듯 내뺀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주변 풍광과 그에 들어 앉은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에서 자면서도 그걸 모르고 있었으니 조금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 대충 짐을 싸고 욕실에 들어가 놀라 자빠지는줄 알았다. 전날 밤엔 욕실 문을 열어 둔 채 샤워를 해서 몰랐지만 문짝에는 개미가 새까맣게 무리를 지어 바글거리고 있었다. 꿀이라도 묻어 있었던건지... 건드렸다간 본전도 못뽑을 대군이었다.  

 

어쨌든 아침을 먹고 캔디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짐을 들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아주 깨끗하고 운치가 있었지만

 

약간은 후덥지근했다. 문을 열려고 했더니 직원이 만류했다. 원숭이가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이어 나온 조식은 비교적 푸짐했다. 토스트 넉장에 계란 계란후라이, 잼과 마멀레이드, 홍차와 바나나 그리고 파인애플. 조식으로는 어딜 가도 이 이상은 나오기 어렵다.

 

식사후 나오면서 느끼는 후덥지근함은 숙소를 나서면서부터 은근히 땀빼게 만들기 시작한다.

 

티벳불교에 타르초가 있다면 여기엔 일케 생긴 등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공항에서부터 본 이 등을 뭐라고 부르는지 물어봤어야 했다. 모름. ㅡ,.ㅡ;

 

여행자롷 보이는 사람만 보이면 툭툭 기사들은 수시로 말을 건다. "어디가쇼?" 피곤하다. 길을 물으려면 수시로 만나게 되는 이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 물어야 한다. 이들이게 물어보면 덮어놓고 타라고 하기 때문. 걸어가면 될 거린데 알총 맞았냐 이거지.

 

무슨 의미인지는 하나도 알 수 없으나 붉게 그려지고 쓰여진 벽화 위에 붙여진 각종 광고포스터들도 특이한 문자와 맞물려 화려하고 예쁘기만 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광고 포스터를 붙인다. 이 벽 앞은 캔디를 떠날때까지 여러번 지나쳤지만 지나칠 때마다 눈길을 끄는 묘한 마력이 있다. 

 

손님을 마냥세월 기다리다 지나가는 여행자만 보면 끈질기게 말을 거는 툭툭 기사들.

 

캔디는 호수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녹지가 풍부해 무척 아름다운 도시다.

 

게다가 이 곳은 저개발국 치고는 거리도 무척 깨끗하다.

 

부처님의 치아를 모신 사찰(Sri Dalada Maligawa)의 배치도.

 

건축양식은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는 않지만 전반적인 모양새는 좀 특이해 보인다.

 

표를 사면 일단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긴바지를 입어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사전 정보에 따라 미리 준비해 간 등산복 바지를 길거리에서 꺼내 입고 있던 반바지 위에 입었다. 더운 곳에서 긴바지 입고 다니기는 싫고 그렇다고 반바지만 입고 다니자니 입장이 안되는 사찰이 몇군데 있고... 해서 준비한 것이 얇디 얇은 여름용 등산복이었다. 바지를 덫입고 있는 나를 보고 날도 더운데 이상한 놈 다보겠다는 듯 또는 길거리에서 뭐하는 짓이냐는듯 행인들의 시선은 왠지 불편하다. ㅡ,.ㅡ;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은 아치형태의 지붕이 덮고 있고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어 볼만하다.

 

사원 입구.

 

아치형의 입구는 곡선의 아름다움도 볼만하지만 프레스코화의 편안한 느낌의 채색이 보는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세심함이 눈에 띤다.

 

사원 본관 건물 한가운데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고 상아가 통째로 설치되어 있다. 부처님의 치아를 이곳에 모신건지...

 

철문 왼쪽을 보면 2층으로 불공을 드리러 올라가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눈에 띤다.

 

남들이 올라가니까 나도 올라가 봐야지. 뭐여? 뭐여? 아하. 이 곳2층에 많은 사람들이 예물(?)을 바치기도 하고 축복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마지막에는 셀로팬 비닐로 포장한 무언가를 만지며 기도하는 것 같다. 이게 뭘까.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가다 보면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길로 나오게 된다. 반대편으로 내려오다 보면 아래 사진의 공간에 사람이 전뜩 몰려 있고 참배객들이 계속 드나든다. 나도 함 들어가 보려고 줄 꽁무니에 붙어봤다. 집입자를 통제하더니 이내 마지막 진입자가 나오니 이내 문을 닫아 걸어버렸다. ㅡ,.ㅡ;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오자 곧 타악기와 나발 같은 피리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동영상으로 찍어봤다.

 

처마 아래 프레스코화는 우리 한국 사찰의 단청 못지 않게 아름답지만 칠이 희미해져 조금 아쉽다.

 

이 공간은 본당 뒤편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 가물가물해지는군. ㅡ,.ㅡ; 이 곳의 각 그림들에는 부다가 태어나서부터 열반한 뒤 치아가 이 곳에 안치되게 된 역사가 하나하나 설명되어 있다. Debadaha의 왕비 Mahmaya에게서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뒤 열반하고 육신은 묻히었으나 치아를 얻게 된 Arahath Kema가 Brahamadatta 왕에게 이를 바친다. 왕은 Golden Temple을 세우고 이를 안치하게 된다는 대충의 내용이다.

 

불공을 드리는 경건한 모습의 현지인들이 적잖게 눈에 띤다.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져 있으니 불교도들에겐 대단한 성지이니 일부러 먼곳에서 순례차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구석 구석을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와 오른쪽을 보니

 

수많은 등잔이 봉헌되어 있다. 등잔이나 초는 카톨릭이나 개신교에게 있어 촛불과도 같은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본당 건물에 쳐진 울타리 밖으로 나가 매표소 바깥으로 나가면

 

여기저기에 불당이 세워져 있어 모두 다 들러 보았다. 좌상과 와상 그리고

 

입상이 함께 안치된 불당도 있다. 한국에선 와상과 입상은 그다지 흔치 않은데 이 곳 스리랑카에서는 부처님의 모습이 실로 다양하다.

 

이관을 관리하시는 분인지 아님 그냥 불공을 드리러 오신 분인지. 불공 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한 컷 담아봤다.

 

여러개의 불당이 오밀조밀 모여져 있는 거운데 한 불당에 세 명의 아낙네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편안함이 인상적이어서 슬쩍 카메라를 들었더니 한 아낙은 이내 눈치채고 찍히기가 싫었는지 다른 아낙의 어깨 뒤로 숨는다. 절반이 안되는 성공. ㅡ,.ㅡ;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오른쪽으로 있어 발을 들여 봤다.

 

또 하나의 사원이 화려한 입구를 내밀고 세워져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곳은 힌두교의 사원이 아닌가 싶다. 이곳 스리랑카에선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 주고받음이 워낙 두드러져 그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바로 옆 불상이 모셔진 탑에는 헌화가 되어 있고 그 헌화된 꽃이 저희들 먹으라고 바쳐진 줄 아는지 정신없이 먹어대는 원숭이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다시 불당 밀집지역으로 돌아와 보니 주일학교 같은 시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적잖이 눈에 띠고

 

불경 공부를 위한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 곳은 뭐지? 코끼리가 쇠사슬에 묶여 있고 많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코끼리를 먼발치서 보며 신기해 한다.

 

이 곳에서 만난 소녀들. 가운데 있는 소녀는 외국인인 내게 다가와 내가 신기한지 이것저것 나에 대해 묻는다. 양해를 구한 뒤 이들의 사진을 찍고 나서 돌아서니 사진의 가운데 소녀가 달려와 함께 사진을 찍잔다. 그 때 무심코 준 명함을 보고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나의 방문계획에 잡혔다가 시간 부족으로 결국 건너 뛰게 된 아누라다푸라에서 온 칸차나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수줍어 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올해 스무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어려서 부친을 어의고 모친과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는 스스로를 가난하지만 꿈이 많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스리랑카에서도 친구 한 명 생긴 셈. 일이 바빠 답장을 써서 보내는데 열흘도 더 걸렸다. 미안 칸차나 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