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레코드샵 순례기3(신주쿠 재방문/마사유키의 초대)
2013.12.7(토)
이 날은 디스크 유니온 재즈관에 미국반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당연히 가볼 일이었다. 마사유키와 일찍 만난 우리는 아침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남을 배려하는데 있어서는 꼼꼼하기로 짝을 찾을 수 없는 마사유키군도 사전에 조사한 바가 없는건지 아니면 신주쿠엔 아침 먹기에 좋은 곳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 날은 적당한 곳에 들어가 적당히 먹기로 했다. 일이 많아 허구헌날 야근하며 사전 조사를 미처 하지 못한 내가 마사유키 없이 도쿄를 돌아다녔다면 레코드 가게들은 고사하고 쪽박 차고 돌아왔을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그냥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무난하기로 말하자면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일본식 커리를 먹었다. 일본에 왔으면 일본 커리를 먹어야지 이걸 보고 인도커리 먹고싶다고 생각하면 나 또라이 아녀?
짐작대로 무난했다. 불만은 없지만 한국에 비하면 알량하게 얹어 준 반찬이 우라지게 이색적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행사를 하는 레코드점이 문을 열는 시간이 아직 남았다.
우리는 마사유키군의 소개로 근처 전통있는 커피숍을 찾았다. 이 집이 몇 년 되었다더라? 어쨌든 전세계적으로 별다방이 대세고 그 외에는 별다방에 그냥 한 번 엉까보는 다른 커피숍들이 장악하는 이마당에 대단한 선전을 하고 있는 옛날식 커피숍이다. 우리도 80년대만 해도 이런 노땅다방 많았는데...
커피 맛도 평범하고 커피잔도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옛생각에 젖어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시간은 이때 한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다. 커피 한 잔 다 마시고 앉아 있기 지루해 혹시나 해서 디스크 유니온 재즈관으로 가봤다. 가보길 잘했다. 입장 순서표를 준다. 우리가 받은 번호가 10번대 초반이라 멋도 모르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는 행사는 아니었다. 문 열 시간이 되자 가진 번호표 순서대로 줄을 세우더니 정문이 아닌 후문 계단을 올라 가게 문을 열었다. 순서대로 들어가긴 했지만 일단 들어가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임자다. 클래식도 락도 영국반을 최고로 치지만 재즈반은 예외다. 미국음반의 사운드는 재즈 음악에 적격이어서 재즈매니아 치고 미국반 이외의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 별로 없... 아예 없지 않을까. 어쨌든 미국초반 일부를 처분하는 행사인 탓에 값은 무척 저렴한 편이었다. 평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음반 몇 장 집어 들었다. 그래도 가격 봐가며 너무 비싼 음반들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음반 중 생각보다 많이 저렴한 물건들만 샀다. 반질이 절대 완벽하지는 않다. 그 중 몇 장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Six Eye)
리 모건, Cornbread(New York)
리 모건, Charisma(Liberty)
호레이스 실버, The Styling of Silver(63rd)
호레이스 실버, Horace-Scope(63rd)
호레이스 실버, The Tokyo Blues(New York반)
호레이스 실버, Finger Popping with the Horace Silver Quintet(63rd)
지미 스미스, A Date with Jimmy Smith(New York반. 이건 초반 아님)
이 음반들 외에도 우리는 70년대 미국 프레스와 일본반을 엄청 집어댔다. 마사유키가 알아보니 많이 사면 싸단다. 우리는 함께 계산하기 위해 구입한 음반을 합쳤다. 10%의 할인도 이어졌다. 그래도 값은 엄청 높았다. 마사유키가 꼭지 돈 우리의 모습과 음반 구입에 지출하는 경비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계산하기 편하게 하도록 직원이 가격대별로 분류하는 통에 내 음반과 바람소리군의 음반이 섞여버렸다. 어느게 누구꺼게...? 허걱! 우리는 이걸 니껀지 내껀지 이게 얼마짜린지(일본에서는 음반을 사고 나면 가격표를 전부 떼어 버린다) 영수증에 내역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받고 보니 허걱! 영문은 알아보겠는데... 일어로 표기된 것도 거의 반은 돼넹? 너 일어 아셈? 몰라? 허걱! 나 일어 아셈? 몰라. 아, 젠장.
어쨌든 오늘은 마사유키군이 우리를 집으로 초대한 날이었다. 구입한 음반 모두다 숙소에 두고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다카다노바바의 간판도 없는 한 라멘집으로 갔다. 늦은 점심이었다.
밖에는 간판도 없고 안은 아무런 장식도 없고 무슨 창고 같기만 하다. 하지만 이 집은 우습게 볼 집이 아니라는 것이 마사유키의 설명. 이 집은 전국 라멘 인기투표에서 당당 4위를 차지한 집이고, 미슐렝 가이드에도 소개된 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주방엔 당연히 연세 지긋한 조리장이? 엥? 서너명이 조리하는데 모두가 다 20대 젊은 친구들이넹?
모든게 의외인 집이다. 그러면 맛은? 짙다 못해 걸쭉한 국물에 면발은 쫄깃한게 깊은 맛을 낸다.
아주 맛있다. 다음에 다시 도쿄에 방문하면 이 집 다시 들르게 될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전철을 타고 마사유키가 살고 있는 사야마시로 갔다. 우리 나라로 따지면 고양시? 아니 파주 정도 될려나? 도쿄 근교에서도 약간은 외진 곳이다.
마을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무엇보다 공기의 질부터가 다른 것 같다. 은퇴 후에 살면 도쿄에서도 멀지 않고 좋을 것 같은 그런 곳이다. 마사유키의 집으로 가다가 어느 한 집 창문에 장식된 화분이 예뻐서 한컷 찍어봤다.
마사유키군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파트다. 마사유키군의 어머니께서 혼자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일본형 미인으로 인상이 무척 좋은 분이셨다.
일본 가정에 방문해 문화를 체험하는 우리에게 마사유키군이 종이에 그려진 문양 하나를 내밀며 설명했다. 아래 사진의 문양은 마사유키군이 자신의 집에서 쓰는 일종의 문장이라고 한다. 카몬이라 불리는 이런 문장을 일본의 가정에 하나씩 다 갖고 있는데 해당 가문의 여자들이 정통 기모노를 입을 때 뒷쪽 칼라, 소매의 뒤편이나 옷깃 같은 곳에 이 문장을 달아 입는다고 한다.
차를 마시고 나서 마사유키는 외국인 관광객은 절대 오지 않는 이 곳 사야마시의 명소를 소개하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나왔다.
다리를 건너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우리를 안내했다.
차를 다시 끌고 나온 마사유키는 우리를 데리고 자신이 일하는 회사로 데리고 왔다. 전에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이 곳은 옮긴 직장이었다.
다음으로 우릴 데리고 간 곳은 고려인들이 모셔진 신사.
기념촬영 한 컷.
고려신사에는 고구려로부터 이어져 온 고려인들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배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보기 어려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일본의 신사에서 만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
신사 본당 입구에는 입당 전 손을 씻는 세수터가 있고
이를 지나 그 안을 들어서면 본당이 나온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고려신사의 모습.
오른쪽으로 돌아 사무실 쪽으로 가봤다.
신녀들이 사무실에서 밝게 웃으며 무언가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띤다. 모두가 고려인들의 후손인 모양이다.
마사유키가 우리를 위해 인터넷을 뒤져 준비한 신사 관련 자료다. 마사유키군의 꼼꼼함이 살짝 감동적이다. 이 신사에 대하여는 한국어로도 안내책자가 마련되어 있어 대략 함 읽어봤다. 고려 멸망 이후 왕족이 일본으로 망명했고 이들이 내린 뿌리가 오늘날의 고려신사에 이어진 것인데 이 신사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누군가의 글을 빌려 보니 이 곳 고려신사의 도리이(신사 입구에 开 자 모양으로 설치된 출입구로 이것이 사후 세계와 인간들의 세계를 가르는 문임)는 조선 8대 총독 미나미 지로가 세웠다고 한다. 현판은 당시 친일파의 거두 조중응이 썼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식민역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그 뒤에 알게 됐다. 마사유키군의 배려도 들르게 된 곳이지만 여기까지 알고 나니 기분은 좀 묘하다.
마사유키가 다음으로 데려간 곳은 집에서 가까운 온천이었다. 일본에서 체험하는 두 번째 온천욕이다. 일본의 온천욕은 우리와 시설이나 분위기 면에서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한 번쯤 체험해 볼만하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마사유키가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아버님도 여기서 온천을 하고 계신다는것. 우리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의 차이인지 당황해 하며 들어가길 주저하는 우리를 아무렇지도 않은듯 데리고 들어가려 했다.
일본에 온 뒤로 낮에는 레코드 가게를 찾아 다니고 가는 곳마다 선 채로 음반을 뒤져댄 며칠이라 온천욕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상항이었지만 알몸으로 친구 아버님을 초면에 만난다는 것은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능로 들어가니 전에 들렀던 이주 아타가와의 온천장처럼 각종 판매상품이 진열되어 있다.
그 곳을 지나면 탈의실로 갈라진다.
일본은 슬롯머신 게임이 보편화된건지 남자 탈의실에 들어오니 슬롯머신이 몇 대 설치되어 있다. 어쨌든 마지못해 따라 들어가면서도 마사유키의 아버님과께 인사를 해야돼나 마주치지 말아야 하나 고민 아닌 고민을 심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사유키는 야외온천탕으로 나갔고 우리는 실내탕에 있었다. 야외탕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마사유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만에 마사유키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르신이 안보이자 그제서야 우리도 야외탕으로 나갔다. 겨울바람이 알몸을 겂나게 엄습했지만 이미 실내탕에서 몸을 덮힌 상태여서 무척 시원했다. 아뿔싸 아직 가신게 아니었다. 우리는 수건으로 대충 가리고 마사유키의 아버님께 인사를 했다. ㅡ,.ㅡ; 우리가 의식되어서였을까 아버님은 곧 온천욕을 마치셨다며 밖으로 나가셨다. 5년은 감수했나 보다.
아버님은 어딘가 들를데가 있어 나가셨고 우리는 마사유키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께서 준비해 주신 저녁 식사에 맥주부터 나왔다. 마사유키군은 술을 즐겨하지 않는다. 우리 때문에 준배된 배려였다.
마시유키 집의 거실
맥주를 간단히 마시고 나자 전형적인 일본의 가정식이 준비되었다.
디저트까지 먹고 나서 곧 아버님이 들어오셨다. 생각해 보니 아버님은 어딘가 일이 있었던 게 아니고 우리를 위해 일부러 집을 나가 자리를 비우신 것 같다. 일본의 집은 한국과 달라 손님과 함께 가족이 모두 즐기기엔 좁다. 일본인인 마사유키군이 우리를 초대했다는 것은 사실 굉장한 호의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랬다면 저녁을 먹은 뒤 바로 일어 났어야 했는데 우리가 너무 눈치가 없었다. 한국에선 밥만 먹고 바로 일어나는 것도 사실 예의상 애매하다. 어쨌든 일본의 문화를 덜 이해한 것이다. 돌아오며 마사유키와 가족에게 너무나도 많은 폐가 된 것 같아 주착없이 밤 11시까지 않아 있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문화의 차이였으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역까지 배웅나온 마사유키와 헤어져 적잖이 늦은 시간에 호텔로 돌아와 이 날도 술안마시고 곱게 잤다. 다음날을 위해...